본문 바로가기

영화전망대

김기덕 피에타. 혼탁한 현실을 향한 잔인하면서도 슬픈 경고

반응형





오랜 잠적기 끝에 활동을 재개한 김기덕 감독에게 <피에타>는 여러모로 감회가 남다른 작품이다. 이미 해외에서 인정받는 거장 김기덕이었지만, <피에타>는 그에게 세계 3대 영화제 중의 하나인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가장 높은 '황금사자상' 트로피를 안겨 주었다. 하지만 수상 여부를 떠나서 <피에타>는 한동안 영화를 만들지 못할 것이라고 낙심하고 있던 감독 김기덕을 다시 일으켜 세운 작품이다. 


2011년 국내에는 베일에 감춰져있던 김기덕 감독의 자전적 모노 드라마 <아리랑>이 2011 칸 영화제를 통해 그 정체가 공개되었을 때, 많은 이들은 그 충격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1996년 <악어>로 감독 데뷔 이후 쉬지 않고 영화를 만들어 오던 김기덕 감독이 갑자기 정체를 감추고 사라졌을 때, 많은 이들은 그를 걱정하면서도 왜 그가 영화판을 떠나야하는 이유에 대해서 여러가지 추측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 중에는 김기덕 감독이 믿었던 조감독 출신 감독의 배신도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김기덕 감독은 사람들의 이런 저런 말에 침묵을 지켜왔다. 그렇게 3년 이상을 은둔 생활 하였던 김기덕은 2011년 겨울이 되어서야 왜 자신이 영화와 세상에 등을 돌린 이유를 낱낱이 그리고 속시원히 밝혀 낸다.


그의 영화에 냉담했던 한국 대다수 대중들의 반응과는 달리, 세상에 내놓은 작품 족족 해외에서 인정받았던 김기덕은 한 마디로 거침없는 감독이었다. 충무로 위주로 돌아가는 한국 영화계에서 김기덕은 철저히 아웃사이더였지만, 해외에서 입지를 굳힌 명망높은 감독이었기에 그에게 영화를 배우고 싶다고 그의 제자로 들어오는 능력있는 영화인들도 있었다. 


안타깝게도 상업성과 흥행을 중시하는 대한민국 영화계에서는 예술적 가치는 높아도 수익성은 없는 김기덕 영화에 투자를 하길 꺼려한지라, 김기덕 감독의 영화는 저예산은 기본이요, 현장 모니터도 제대로 못하는 열악한 환경에서 촬영에 임해야했다. 하지만 김기덕은 영화를 만드는 그 자체가 즐거웠고 행복이었다. 그의 표현에 빌리면 그는 영화 촬영이 끝나고 편집을 하면서도, 또 다른 영화의 시나리오를 써내려갈 정도로 영화에 미쳐있었다. 그만큼 김기덕은 영화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영화없는 김기덕의 삶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나 2006년 개봉한 <비몽> 촬영 중, 하마터면 여배우가 잘못될 수 있었던 아찔한 상황을 겪고난 이후 그는 갑자기 영화 연출에 대한 자신감을 잃기 시작한다. 자신의 예술 세계를 구현하기 위해서, 또다른 누군가가 희생당할 수 있다는 무시무시한 교훈을 얻게된 김기덕은 연출에 잠시 손을 놓고 자신의 조감독 출신들을 감독으로 키워내는 제작자로서 변모를 꽤한다. 


김기덕의 지원을 받고 데뷔한 감독들의 성적은 준수했다. 역시나 그 후배들의 재능을 탐낸 메이저 제작사, 배급사는 그들과 접촉을 시도하고, 결국 몇 작품을 김 감독과 함께 할 것이라고 호언장담한 한 감독은 끝내 김기덕 감독 곁을 떠나게 된다. 김기덕 감독도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지만, 믿었던 후배의 배신. 특히나 자본의 유혹에 인간 간의 믿음과 의리가 깨질 수 있다는 것에 큰 상처를 받은 김 감독은 무려 3년간의 은둔 생활에 돌입한다. 그리고 3년만의 침묵을 깨고 그만의 방식으로 컴백의 신호탄을 알린 김기덕 감독은 <피에타>를 통해 완벽히 부활에 성공한다. 


영화 <피에타>는 제목에 내포되어있는 의미 그대로 자비와 구원을 담은 영화다. 죽은 예수의 몸을 떠받치고 비탄에 잠긴 성모 마리아의 모습을 묘사한 피에타는 김기덕 이전에도 미켈란젤로, 고흐 등 수많은 거장들의 작품에 크나큰 영감을 주었다. 


영화에서 어머니 마리아를 통해 구원을 받는 이는 인간의 죄를 사하기 위해 스스로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와는 정반대의 성향을 갖춘 인간 말종 강도(이정진)이다. 엄마라고 불리는 여자(조민수)가 나타나기 전까지 강도는 채무자들의 돈을 받아내기 위해서 불구로 만들어 버리는 와중에도 어떠한 죄책감도 느낄 수 없는 악마였다. 


태어날 때부터 어머니에게 버림받았던 강도는 인간 간의 사랑, 믿음, 미안함, 용서라는 단어를 모르고 살아왔다. 강도 역시 자신도 모르게 엄마(여성)의 따스한 품을 갈망하지만 누군가를 어떻게 사랑하는지도 모르던 강도는 채무자의 엄마 혹은 아내 앞에서 채무자를 불구로 만드는 악랄한 방법으로 자신을 버린 세상, 엄마에게 복수를 꾀한다. 


강도가 피빨아먹으면서 기생하는 이들은 철거 직전 청계천 공장에서 남은 건 빚밖에 없는 노동자들이다. 당장 급전이 필요해 자신이 불구가 되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강도에게 돈을 빌려야하는 이들의 사정은 딱하기까지 하다. 측은지심이 뭔지도 모르는 강도는 자신과 다를 바 없이 사회적 약자로 몰린 이들을 잔인하게 짓밟아 버린다. 





그러나 엄마라는 여자 출연 이후, 강도는 인간의 탈을 쓴 악마에서 구원받는다. 엄마라는 여자를 통해 가족의 사랑, 행복을 알게된 강도는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수많은 사람들에게 몹쓸 짓을 해왔는지를 깨닫게 되지만 그들은 강도에 의해 불구가 되고, 비극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남은 가족들은 아들 혹은 아버지 대신 강도를 향한 복수를 꿈꾼다. 그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무자의 어머니는 실제로 강도에게 크나 큰 복수를 감행한다. 엄마라는 여자를 통해 '구원'과 '자비'를 받았다고해도 이미 수많은 이들에게 고통을 준 강도를 쉽게 용서할 순 없다. 


태어날 때부터 혼자였던 강도는 해체된 가족에서 잉태한 불운의 씨앗이다. 강도를 키워줄 여건이 되지 않아 그를 낳고도 버린 엄마. 그리고 자신을 버린 엄마를 원망하고 미워하다가 심장없는 악마가 되어버린 강도는 아무런 죄의식 없이 또다른 가정의 해체에 나선다. 보험금을 타내 채무를 받기 위해 채무자들을 단숨에 불구로 만들어버리는 강도 때문에 사회 안정망 밖에 놓여있었던 채무자 가족들은 그나마 가족들을 먹여살릴 보호자를 잃어버리고 더 아래로 추락해버린다. '돈'이 최우선의 가치인 세상에 '돈'이 없어 벼랑 끝에 몰린 이들이 그 '돈' 때문에 아예 낭떠러지로 떨어져 버린 것이다. 





예수가  세상 사람들의 죄를 대신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인 숭고한 희생 뒤에도 악마들은 끊임없이 생산된다. 그리고 악마들을 처단하는 과정에서 싹튼 증오와 복수 역시 계속 반복된다. 그 사이 이 세상에서 절대적 위치를 차지하게 된 '돈'은 인간을 더욱 타락시키고 수많은 피를 흘리게 한다. '돈'이면 뭐든지 다 할 수 있는 자본주의의 예속화가 커질 수록 사람들은 '돈' 때문에 서로 간의 믿음을 저버리고, '돈' 때문에 서로를 미워하다가도 다투거나 서로 죽이기까지 한다. 결국 김기덕 감독이 3년 동안 은둔 생활을 택한 것도, 자본주의가 잉태한 폐해에 대한 '환멸' 때문이다. 


<아리랑>으로 2011 칸 영화제에서 비공식 부문에서 최고 큰 '주목할 만한 시선'을 받고 다시 감독으로 활동할 수 있다는 '용기'를 얻은 김기덕 감독은 <피에타>를 통해 자비와 구원이란 주제를 다룬다. 자기 때문에 배우가 잘못 되었을 지도 모른다는 아찔한 상황에 놓였던 죄책감.  '돈' 때문에 자신을 배신했던 누군가에게 받은 상처로 힘겨운 나날들을 보였던 김기덕 감독은 <아리랑>, <피에타>를 통해 그를 짓누르던 무언가의 압박을 스스로 툴툴 털어내버리고자 한다. 


김기덕 감독은 자신을 잠시 폐인으로 만들어 버리고, 인간들 위에서 군림하는 돈에 대해 진지하게 묻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없어서는 안될 '필수불가분'의 존재이지만, 결국 그 돈을 만들어낸 인간들에 의해서 더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드는데 이바지할 수 있고, 그 정반대인 '괴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김기덕 감독의 눈을 통해서 보여진 세계는 돈에 대한 절박함과 순수한 본능으로 빙자된 삐뚤어진 '욕망' 으로 인해 인간의 존엄성이 심하게 훼손된지 오래다. 





엄마라는 여자를 만나기 전까지, 현실의 약자를 공격하는 강도는 자신이 얼마나 큰 죄를 저지르는지 모를 정도로 죄의식이 결여된 인간 백정이다. 도저히 '동정심'만으로도 이해하고 용서할 수 없었던 강도가 엄마라는 여자를 만나고 그제서야 자신이 지은 죄를 스스로 갚아가는 과정을 통해 김 감독은 '돈'과 '욕망' 때문에 스스로 존엄성 갖춘 인간이 되길 포기하는 괴물들이 넘쳐나는 세상을 엄중히 경고한다. 


자제할 수 없었던 돈과 성적 욕망에 파괴된 악인을 구원할 수 있는 방법은 '사랑'을 통해 서로 간의 믿음을 회복하는 것뿐이다. 물론 여기서 그동안 지은 죄에 대한 책임은 별개의 문제다. 


베니스 황금 사자상 수상 소감문 중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로  "'피에타'를 통해 돈이면 다 된다는 무지한 우리의 현주소를 돌아보고 더 늦기 전에 진실한 가치로 인생을 살기를 깨닫기를 기원한 김기덕 감독. 인간의 존엄성 회복이란 화두를 제시하며 우리 앞에 등장한 <피에타>는 김기덕 감독의 작품 중에서도 최고의 카타르시스를 전할 작품으로 꼽을만 하다. 이번 베니스 황금 사자상 수상을 계기로 <피에타>를 상영하는 개봉관이 더 많이 늘었으면 하는 바이다.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공감하시면 손가락을 꾸욱 눌러주세요^^
제 블로그가 마음에 드시면 구독+을 눌러주세요.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