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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전망대

광해, 왕이 된 남자. 추석에 볼 만한 종합 오락 선물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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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관객과 평단을 막론하고 9월 최고 기대작으로 선정된 <광해, 왕이 된 남자>는 공동 제작, 제공, 배급을 맡은 CJ 엔터테인먼트로서는 어떻게든 사활을 걸어야하는 작품이다. 올해 한국 영화는 상영관 독점과 엄청난 홍보비의 힘을 빌려 < 도둑들>을 한국 영화 역대 최대 관객수 동원이란 기록 수립을 눈앞에 두고 있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물량 공세에도 불구 결코 밀리지 않는 저력을 보여줬다. 그리고 용산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두개의 문>이 홍보 부족과 저조한 상영관 수에도 불구 7만 관객수를 기록하였고, 한국 영화계에서 철저히 비주류였던 김기덕 감독은 얼마 전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최고 상인 '황금 사자상'을 수상하였다.

 

한창 한국 영화가 각광받던 2000년대 이후 신르네상스라고 불릴 정도로 풍요기를 맞은 충무로이지만, 여기에 마냥 웃을 수 없는 집단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남들 웃고 있을 때 울고 있는 이들은 충무로의 가장 큰 손이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CJ 엔터테인먼트이다. 실제로 CJ 엔터테인먼트는 작년 <마이웨이> 재앙이후 그 어느 때보다 가장 추운 혹독기를 겪고 있다. 다행히 <연가시>가 평단의 혹독한 반응에도 불구 500만 가까운 관객을 동원하는 깜짝 흥행을 거두어 CJ를 잠시 기쁘게 하였지만, 그 뒤에 날아온 <알투비: 리턴 두 베이스>의 융단 폭격은 CJ를 더욱 비참하게 한다.

 

<알투비>의 흥행 참패를 두고, 호사꾼들은 <라스트 갓 파더>, <7광구>, <마이웨이>에 이은 CJ 블록버스터의 잔혹사를 거론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상업 배급사 CJ 측에서는 혹평보다 더 무서운 것은 <알투비> 흥행 실패로 빚어진 막대한 손실이다. 작년 <마이웨이> 재앙 이후 고위 관계자에게 책임을 묻고 대대적인 내부 개편을 단행하기도 하였던 CJ다. 다행히, <마이웨이> 정도는 아니지만 <알투비>가 가져온 적자도 CJ로서는 뼈가 아플 뿐이다.

 

어찌 되었던 CJ는 <광해>를 필사적으로 띄워야한다. 다행히 <광해>는 평단의 반응도 최고조고, 시사회를 다녀온 일반 관객들의 반응도 호의적이다. 이 정도면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이 붙어서 인지, CJ 측은 예정보다 <광해> 개봉일을 한 주 앞당긴다. 물론 CJ의 위력을 앞세워 <도둑들>에서 처음 활용하던 톱스타들을 요란하게 총동원한 화려한 레드카펫 홍보는 기본이다. 요즘 몇몇 네티즌들의 도마 위에 오른 주연 이병헌이 약간 걸림돌이 될 수도 있으나, 워낙 작품에 대한 평이 좋고 배우의 연기도 훌륭하기에 괜찮다는 분위기가 압도적이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는 제목 그대로 조선 15대 왕 광해군을 다룬 영화다. 연산군과 함께 종, 조의 칭호를 받지 못하고 군으로 불려야하는 비극의 군주. 그러나 슬프게도 광해군을 내세운 영화조차, 광해군이 주인공이 아니다. 정작 주인공은 얼마 간 광해군을 대신 왕 노릇을 해야했던 천민 하선이다.

 

북인의 지지를 엎고 왕위에 등극한 광해는 재위 내내 폐위와 독살 위험에 시달린다. 궁에서는 도저히 편히 잠들 수 없었던 광해는 계속 궁 밖으로 나가고 싶어했으나, 허균(류승룡)은 궁을 지키길 종용한다. 결국 광해와 허균은 광해가 궁 밖으로 출타 중일 때 대신 편전 안에 있어줄 대역을 찾게 되고, 결국 광해와 쏙 빼닮은 광대 하선이 낙점된다.

 

그러나 얼마 뒤 광해는 의문의 병을 앓고 정신을 잃게 되고, 광해가 의식을 회복하는 동안 허균은 하선에게 당분간 왕 역할을 하라고 명령한다. 생각지도 못했던 왕 역할에 하선은 잠시 두려움을 느끼게 되지만, 은 20냥에 특유의 넉살로서 껄껄 웃고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아마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를 본 관객들은 공감할거다. 차라리 광해라 아니라 하선이 왕이었음 좋겠다. 아니 국가와 백성을 우선 생각하는 인간미 넘치는 그가 현재 우리나라 지도자였음 하는 엉뚱한 생각도...ㅡ.,ㅡ

 

하지만 백성 입장에서 국가의 아버지이자, 모든 권력을 다 가지고 있을 것으로 보이던 왕은, 아무것도 자기 마음대로 결정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게다가 광해가 집권하던 시절에는 중립 외교와 실리를 추구하던 북인을 못마땅하게 여긴 서인과 남인 세력이 강성해지던 시대다. 서인과 남인은 힘을 모아 광해군이 하고자 하는 일을 족족 반대하고 심지어 왕의 처남마저 역모죄로 몰아 죽이고 중전을 폐위시켜 광해까지 끌어내리려는 음모까지 서슴지 않는다.

 

허균의 가르침 하에 왕으로서 지켜야할 예법, 말투, 걸음걸이까지 습득하며, 함부로 입을 놀려서도 안되고 그의 진짜 정체를 들켜서는 안되는 위험 천만한 왕 노릇을 시작한 하선은 허균과 조내관(장광)도 놀랄 정도로 빠른 시간 안에 군주로서 모습을 갖추어간다. 예민하고 난폭한 기질이 다분했던 진짜 광해와 달리, 정많고 따뜻함이 넘치는 하선이 백성을 이끌어가는 어버이로서 적합해 보인다.

 

게다가 하선은 '정치'가 뭔지 모르는 평범한 백성이기 때문에 오히려 나라와 백성을 위한 자신의 소신을 펼쳐 나갈 수 있었다. 자신의 측근 뿐만 아니라, 한낱 수랏간 나인에 불과했던 15살 소녀 사월이(심은경). 그리고 하선의 정체를 의심하고 칼을 겨누었던 도부장(김인권)조차 따스하게 감싸줄 수 있었던 하선은 자신을 단순히 왕 대역으로 대했던 허균조차 감화시킨다.

 

 

 

광해군 일기에 15일간의 기록이 사라진 것을 추측하여, 우리가 알고 있는 광해 외에 또다른 광해 이야기를 다룬 <광해, 왕이 된 남자>는 일개 백성에서 갑자기 왕의 신분에 오르게 된 하선을 통해 군주가 갖추어야할 면모와 자질을 논한다. 하지만 완벽한 군주의 모습을 보여준 하선과는 달리, 정작 진짜 왕이 소홀히 다뤄진 영화는, 이번 영화를 계기로 광해의 재조명을 기대했던 이들에게는 아쉬움을 줄 소지가 있다.

 

예를 들면 영화는 광해의 업적으로 알려진 명과, 청 간의 중립 외교와 대동법 시행도 모두 하선의 의지에서 비롯되어있다고 그리고 있다. 물론 진짜 광해도 중립외교와 대동법에 뜻이 있었겠으나 정치의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고 국가를 위해 밀어붙인 하선의 역할론을 중대시한 영화는 아무리 감독의 상상력에서 비롯된 팩션이라해도 논란의 여지가 적지 않다.

 

광해군은 역사적으로도 평가가 엇갈리는 민감한 인물이다. 지금도 어떤 이는 광해의 이복동생 영창군을 죽인 것을 빌려 그를 폭군이라고 하고, 어떤 이는 당쟁 싸움의 희생양이라고 시대를 잘못 만난 비운의 군주라고 아쉬워 한다. 놀랍게도 현재 대중들 간에 호불호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배우 이병헌이 역사학적으로 가장 논쟁이 많은 광해를 연기했다는 것은 운명과 같다.

 

현재 도마 위에 올려져있는 그의 사생활과 관련된 이야기와 별개로 이병헌은 자신이 맡은 역할을 관객들에게 몰입시키는 능력이 다분한 배우다. 성격이 정 반대인 인물을 동시에 수행해야했기에 날카로운 광해를 연기했다가, 갑자기 사람좋은 하선으로 둔갑해야하는 이병헌은, 두 명의 광해 등장으로 혼란에 빠질 수 있는 관객들을 차분히 그리고 편안하게 각각의 세계로 인도한다. 때문에 관객들은 광혹한 광해의 불안한 감정과 사람을 소중히 생각하는 하선의 따뜻한 심장을 모두 겪게 되고, 그들이 필연적으로 겪는 고충 또한 진심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점점 군주의 면모를 갖추어가는 하선에 집중한 탓에 정작 진짜 광해가 군주로서 겪는 고뇌가 빠져있는 것은 군주의 진정한 자세를 담겠다는 영화의 메시지를 모호하게 한다. 하지만 조선 광해 시대를 빌려 현재를 그리는 영화임을 감안했을 때. 지금은 국민의 지지를 받으면 지도자가 될 수 있는 민주주의 사회다. 하선을 통해  천민임에도 어릴 때부터 왕의 자질을 체계적으로 교육받은 이보다 더 훌륭한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의도는 적절해 보인다.

 

초, 중반까지 웃음과 감동이 적절히 조화되며, 스토리 전개가 매끄럽고 탄탄하게 쌓아올린 것에 비해 결말이 흐지부지 마무리 되는 것은 아쉽다. 허나 <광해>가 <피에타>처럼 베니스 영화제에 출품하는 작품도 아니고 철저히 대중들의 반응을 고려한 상업 대중 영화임을 비추어 봤을 땐 비교적 높은 완성도를 자랑한다. 

 

무엇보다도 <광해>에서 가장 칭찬해주고 싶은 것은 어느 하나 빠지는 이 없는 배우들의 연기다. 그동안 젠틀한 남자 이미지가 강했던 이병헌 이번 작품으로 코믹에도 능하다는 숨겨진 재주로 관객들을 진심으로 웃기고 울리고 <내 아내의 모든 것>에서 마성의 카리스마로 신드롬급 인기를 자아내던 류승룡은 웃음기를 제거한 냉철하고 믿음직한 허균 그 자체가 되었다.

 

지난해 온 국민을 들끓게 하던 <도가니>에서 리얼한 연기로 본의아니게 미움을 받아야했던 장광은 듬직한 내시로 하선을 잘 보필하였고, <마이웨이> 진짜 히어로 김인권은 존재만으로 든든하다. 특별 출연 격으로 광해, 하선,허균과 맞붙는 악역으로 등장한 김명곤 전 문화부장관은 자칫 가볍게 흘려갈 수 있는 영화의 흐름의 긴장감을 팽팽하게  쥐어준다.

하선과 단팥죽 우정을 쌓은 사월이 심은경은 어린 나이 답지 않게 똑부러진 연기로 보는 이들을 흐뭇하게 하고, 우려했던 것과 달리(?) 한효주는 적은 분량에도 불구 비교적 강인하면서도 아름다운 왕후의 연기로 감탄을 자아낸다.

 

대선을 코앞에 둔 시기. 정치와 소통이라는 흥미진진한 화두와 소재. 대중영화로서는 손색없는 연출, 완성도와 빼어난 배우들의 연기. 이 정도면 추석에 온 가족이 모두 부담없이 웃고 즐길 수 있는 오락 영화로 손색이 없다. 거기에다가 국내 최대 멀티플렉스 CJ CGV를 앞세워 <광해> 흥행에 사활을 건 CJ 엔터테인먼트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으니 더할 나위 없는 호재다. 9월 13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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