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전망대

간첩 이념과 국가 위에 있는 생계와 가족의 위대함

반응형

맨 처음 북의 지령을 받고 남한으로 내려왔을 때, 그들은 조국 통일을 위해 남조선을 해방시키겠다는 투철한 신념이 있었다. 


하지만 최소한의 공작 자금도 주지 않는 어려운 조국은 그들을 무한 방치해놨고, 결국 '간첩'들은 대한민국 사람들과 별다를 바 없는 소시민의 일원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나간다. 북한에서는 나름 엘리트 코스를 밟았던 유능한 간첩 김과장(김명민 분)은 중국에서 불법 비아그라를 밀수입하며 전세금 걱정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남조선 해방을 위해 이 한몸 불사르겠다면서 외친 우대리(정겨운 분)은 투철한 한우지킴이가 되어 한미 FTA 반대 정면에 나선다. 





그렇게 북녘의 조국을 잊고, 대한민국 소시민으로서 고군분투 하던 김과장, 강대리(염정아 분), 윤고문(변희봉 분), 우대리에게 오랜만에 불연듯이 나타난 최부장(유해진 분)의 존재는 썩 달갑지 않다. 하지만 그는 피도 눈물도 없는 북한 최고의 암살자다. 자칫 최부장의 심기를 건드렸다가는 바로 하늘나라로 떠나는 수가 있다. 게다가 일단 그들은 '간첩'이니 위에서 내려온 최부장의 명령을 따라 조국을 배신한 리용성의 목을 따는데 협조해야한다. 하지만 오직 리용성의 목만 노리는 최부장과 달리, 대한민국 고정 간첩들이 노리는 것은 리용성이 남한에 망명하면서 받았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얼마간의 돈이 넣어졌을 것으로 사료되는 금고다. 


영화 제목 그대로, 영화 <간첩>은 남한 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고정 간첩 이야기다. 때문에 일부 보수 세력에서는 영화 개봉 전부터 행여나 간첩에 대한 경계심을 무너트릴 수 있다고 우려를 자아내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영화 속 고정 간첩 김과장은 국정원 소속 팀장(정만식 분)이 그의 존재를 꿰뚫고 있으면서도 가만히 냅둘 정도로 간첩의 임무보다 가장으로서의 역할에만 충실할 뿐이다. 오죽하면 김과장이 운영하는 불법 밀수 사업체에 몇 년 째 침투해있는 국정원 여직원은 "김과장은 간첩이 아니라 사기꾼"이라고 푸념한다. 하지만 그것은 국정원 등 대한민국 정보국 담당자를 혼란에 빠트리게 하기 위한 '계략'이라기보다 자본주의 국가 '대한민국'에서 한 가정을 이끌어야하는 보통 남자의 책임감이다. 거기에다가 그는 남한의 가족뿐만 아니라 북한의 오마니와 동생의 생계까지 책임져야한다. 





미모의 정보요원에서 억척스러운 동네 부동산 아줌마가 되어버린 강대리의 상황도 김과장과 다를 바가 없다. 남편과 이혼하고 싱글맘이 된 강대리는 시각장애인 학부모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녀는 대한민국 토박이 여성들보다 '돈'에 집착할 수 밖에 없었고 어떻게든 리용성이 머물고 있는 안가의 금고를 터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10년 만에 조국의 배신자를 처단하기 위해 남조선 땅에 내려온 유부장은 조국을 위한 사명감 따위는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린 '간첩'들이 못마땅하기 그지 없다. 하지만 여전히 북한의 특권층으로 당에 충성할 수 있는 기력이 있는 유부장과 달리, 오래 전에 경제 사정이 어려워진 북녘의 조국에 방치되어 버린 채 남한 땅에서 스스로 버텨나가야했던 '간첩'들은 주어진 공작활동보다 생계를 위한 하루 일과에 충실할 뿐이다. 



김과장, 강대리, 윤고문, 우대리를 통해 재조명된 '간첩' 들은 그간 '간첩' 하면 떠오르는 무시무시한 존재가 아니다. 분단국가에서 아직도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하는 '간첩'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조국의 앞날'보다도 '돈'과 '가족'을 우선시 하는 그들의 모습.  '간첩'으로서의 사명감보다 도심 속에서 벌어지는 피튀기는 혈전보다 치열한 사회에서 살아남아야한다는 절박함으로 가득한 평범한 '소시민'에 가깝다. 


조국의 혁명을 완수하기 위한 당의 명령을 이행해야하는 '공작원'임에도 불구, 제사보다 젯밥에 관심있는 '간첩'같지 않은 '간첩'들을 통해 영화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간단 명료하다. 국가를 향한 애국심과 충성은 국가가 개개인에게 기본적인 의식주와 생활 기반을 마련해주어야 저절로 우러나는 법이다. 반대로 국민의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해주지 않는 국가는 오히려 국가를 향한 반감만 키우기 마련이다. 유부장이 무서워 반강제적으로  리용성 암살 시도에 가담에 협력하긴 했지만, 우대리는 자신을 마냥 방치해놓은 조국에 강한 불만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시골에서 축산업에 종사하는 우대리가 한미FTA 시위에 적극 참여한 것은, 그가 북녁에서 지령받아 움직이는 '빨갱이'라서가 아니라, 자신의 생계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있기 때문이다. 


과거 냉전 시대에는 유부장처럼 어린 시절부터 철저히 교육받은 국가관과 이념에 따라 개인이 움직였다면, 현대 사회는 국가보다 개인의 자유와 행복이 우선시 되는 시대다. 한 때는 북한체제 유지를 위해 앞장선 김과장이 자신의 진짜 조국에 회의감을 느낀 것도, 가족의 안위를 위해 북한 간첩으로서 배격시해야할 '자본주의' 체제에 철저히 순응한 것도 어떻게든 살아야하는 절박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제는 추상적인 이념보다 구체적인 비전과 정책을 제시하며 불안한 미래에 떨고 있는 국민들을 안심시킴과 동시에 국가에 대한 자긍심을 높여야하는 시대다. 하다못해 영화 속 간첩들도 사명감을 뒤로하고 자기 살기 위한 밥벌이에만 관심가질 정도다. 실제 간첩들도 영화 <간첩>처럼 그렇게 변했는지까지는 의문이지만, 이데올로기의 상징인 간첩마저의 소시민화 변신은 그만큼 살기 힘든 서민들의 빡빡한 그림자를 보는 것 같아 서글프기까지 하다. 그만큼 생계 문제에 힘들어하는 서민들에게 안정적인 미래와 비전을 얼마만큼 보장해주느나에 따라 이번 대선의 척도가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공감하시면 손가락을 꾸욱 눌러주세요^^
제 블로그가 마음에 드시면 구독+을 눌러주세요.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