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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전망대

내 딸 서영이. 박해진 향한 최윤영의 가슴아픈 자격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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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어른들 말씀에 여자는 자신을 좋아하는 남자와 결혼해야한다는 말이 있었다. 이제 과거 남성우위 사회에서 벗어나 양성평등(?) 시대에 도래한만큼, 그 말이 꼭 정답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사랑은 움직이는거야."는 유명한 광고 카피처럼, 설령 호감가는 남자가 처음부터 자신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본인의 노력하에 자신에게 다가오게 할 수 있으리라.


<내 딸 서영이>에서 이서영(이보영 분)-강우재(이상윤 분)과 함께 러브라인 중추를 이루는 최호정(최윤영 분)-이상우(박해진 분) 부부는 애초 사랑없는 결혼으로 이뤄진 케이스다. 자신이 좋아하는 상우가  자기 아닌 동료 의사 미경(박정아 분)과 깊은 관계임을 알지만, 호정은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누나 서영 때문에 누나의 시누이 미경과 헤어진 상우는 오랫동안 자신만을 바라본 호정에게 청혼을 한다. 


"난 널 사랑하지 않아. 하지만 널 사랑하도록 노력해볼게."


뒤늦게 미경과 헤어진 상우의 속사정을 듣고 속상해하는 서영이에게 상우는 자신은 스스로가 감당할 수 있는 일만 한다고 하였다. 상우의 다짐대로, 그는 결코 책임감없는 사람은 아니다. 호정에게 청혼한 이후 미경을 깨끗이 잊고 호정이와 함께하는 가정에 충실하려고 했고 최대한 호정이에게 맞춰주려고 노력했다. 상우말마따라 호정이만큼 그를 사랑해주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자신과 결혼하기 얼마 전까지 만난 여자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면서도, 또 그녀를 잊기 위해 자신을 택한 것도 알면서도 말이다. 




그런 점에 있어 호정이에게 너무 미안해서, 어떻게든 잘 해주려고 노력하는 상우에 비해, 잊을만하면 불쑥 튀어나오는 호정의 자격지심에서 비롯된 오해는 호정에게 행하는 상우의 모든 진심을 왜곡해석하기 충분했다. 아니, 아무리 상우가 아무런 딴 마음 안먹고 호정에게 잘해준다고해도 호정이 자격지심을 가질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애초 사랑해서 호정을 택한 것도 아니다. 상당히 삐딱하게 보자면 불가항력에서 발생한 미경과의 이별을 이기기 위해 호정을 택한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종의 비겁한 선택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상우에게는 재벌집딸이자 동료 의사인 미경보다 재벌집은 아니지만 부유하게 순수하게 자라 너무나도 착한 호정이가 신붓감으로는 제격이다. 미경과 바로 헤어지고 자신과 결혼하고자하는 상우의 청혼에 선뜻 응할 정도로 한없이 착하고, 그만큼 상우를 사랑하는 여자가 호정이다. 




의사이긴하지만 가진 것이 없는 상우와의 결혼을 위해 으리으리한 큰 집을 나와 조그마한 전셋집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떼가 묻지 않은 아이가 호정이다. 남자 직업이 그 대단한 의사라고하나,  더 좋은 혼처가 들어올 수 있음에도 불구, 오직 사랑을 쫓아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희생할 줄 알고, 요즘 이런 여자 보기 드물 정도로 남편에게 헌신하는  호정이 캐릭터에 자연스레 수많은 남성들이 관심 가지는 것은 당연지사다. 하지만 호정이같은 여자는 서영이같은 평범한 집안의 여자가 재벌3세와 결혼하는 확률 못지 않게 만나기 어렵다. 게다가 남편이 사랑한 옛 애인의 정체를 알고 있음에도. 그것도 자기 아닌 다른 여자를 선택했다가 다시 자신에게 돌아온 남자를 품을 수 있는 여자는 흔치 않다. 


비록 상우는 자신을 사랑해서 결혼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자신이 잘하고, 남편을 사랑하면 언젠가 상우가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해줄 것이라는 믿음 하에 아무런 딴짓도 안하고 홀시아버지 모시고 오직 집안일에만 충실해왔다. 그러다보니 자신에게 무뚝뚝하기 그지 없었던 상우가 차츰 달라져있었다. 언젠가 자신의 블로그에 적어놓은대로의 희망사항이 차츰 이뤄지고 있었다. 순수무방비 상태인 호정은 드디어 상우가 자신의 진심을 알려줬다고 기뻐하고 있었다. 정말로 호정이는 자신과 상우와의 사랑이 통해서 상우가 변한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호정과 다르게 일찌감치 현실을 깨달은 친구는 호정의 무공해 순수한 믿음을 산산조각 부수어낸다. 






"너가 희망사항 적어놓은 블로그 글 봤겠지!"


친구를 통해 사태파악한 호정은 더이상 자신에게 베푸는 남편의 호의가 반갑지 않다. 호정이가 원하는 것은 아내니까 잘해줘야겠다는 의무감이 아닌,  꼬부랑 할머니가 돼도 날 진짜로 사랑하게 됐을 때 진정으로 해주는 것을 원한 것이다. 호정이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여자들이 자신의 남편 혹은 연인에게 바라는 희망사항이다. 그런데 자신을 사랑하게되어서 변했다고 생각한 남편은 변한게 하나도 없었다. 그저 자신이 아내니까 같이 사는 부부니까 당연히 해줘야하는 숙제같은 의무감에 사로잡혀있었다. 상우는 호정에게 항변한다. 일부로 볼려고 본 건 아니였다고. 그래, 아예 사랑없이 결혼해 수십년간 무늬만 부부행세해 온 차지선(김혜옥 분) 남편 강기범(최정우 분)에 비하면 상우는 적어도 결혼한 즉시 서로를 믿고, 상대를 사랑하고 존중해야하는 부부의 기본 덕목을 지키려고 최선을 다하는 좋은 남편이다. 


하지만 상우는 아내 호정에게 이미 모든 과거를 들킨 남자다. 세상에 사연없는 사람은 없고, 과거없는 사람은 없다고 하나, 호정은 상우가 미경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아무리 상우가 아내라는 의무감에 잘해줄려고 노력한다고 하더라도, 호정의 자격지심과 오해는 쉽게 풀리지 않는다. 


자신을 향한 긍정적인 변화의 실체를 알게되었지만, 그래도 호정은 못이기는 척 하고 상우가 베푸는 남편으로서의 호의에 선뜻 응하려고 했다. 그래서 기분좋게 남편에 다가가던 찰나, 자라보고 놀란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고, 수화기 건너 누군가와 통화하는 상우의 대화에 호정이는 다시 한번 처절하게 무너진다. 분명 상우는 호정이와의 데이트, 어색한 관계를 두고 이야기한게 아니다. 그는 분명 호정이와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하지만 소름끼칠정도로, 상우와 후배 의사와의 대화는 여전히 상우와의 관계있어서 의기소침하고 자신없는 호정이를 큰 충격에 빠트렸다. 




"난들 뭐 하고 싶어서해. 의무감으로 하는거지. 그 상태 그대로 둘 수 없잖아. 야 그냥 눈감고 웃으면서 하는거야. 당연히 귀찮고 피곤하지. 야 그래도 내가 선택했으니까. 최선을 다해야지 뭐. "


말도 안되는 극적 상황까지 끌어모아 결국은 등장인물들의 진정한 화해를 추구하는 주말 드라마 특성상, 사랑보다 의무감이 앞선 상우-호정이 부부도, 45회 말미 위급한 상황에 처한 호정이 사건을 계기로 진정한 부부의 사랑을 재확인할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행복한 결실을 맺기까지, 상우의 진심어린 사랑을 받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한 호정이 남몰래 흘렸을 눈물은 그녀와 비슷한 또래 여성으로서 그저 아름답고 순수하고 예쁘다기보다, 가슴을 아프게 한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남편임에도 불구, 그럼에도 언젠가는 자신을 정말로 사랑하겠지 하며 환한 미소로 기꺼이 속여주는 호정의 행동이 같은 여자로서 때로는 답답하고도 어리숙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어쩜 내가 호정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거 니 블로그보고 안거네." 하면서 안쓰럽게 쳐다보는 친구와 하나도 다를 바가 없었다. 




당연히 예정되어 있는대로 <내 딸 서영이>에서 호정이의 상우를 향한 지독한 헌신은 그녀가 바라는 대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되겠지. 하지만 결혼 이후 남편으로서의 의무감에 호정에게 잘해주려는 상우의 노력에도 불구, 계속 제자리만 맴돌았던 호정이의 가슴앓이에, 덩달아 수십년 동안 은둔자로 살았던 차지선 여자 에피소드는 '아무리 사랑은 변한다고하나 역시 여자는 어른들 말씀대로 자신을 사랑하는 남자하고 결혼해야하는 건가.'하는 씁쓸한 뒷맛만 남게한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결혼한 대가로 연이은 오해에 빠지고 끝내 곤경에 처하는 <내 딸 서영이> 속 호정이 캐릭터가 그걸 더더욱 부추기기도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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