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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전망대

파리5구의 여인. 예술가의 험난한 숙명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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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출신이지만, 자국뿐만 아니라 프랑스에서도 큰 사랑을 받는 작가 더글라스 케네디의 작품에는 유독 자신과 비슷한 직업군인 소설가 혹은 예술가들이 종종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더글라스 케네디가 직접 각색을 맡아 눈길을 끈 영화 <파리5구의 여인>의 주인공 톰 릭스(에단 호크 분)는 한 때 미국 내에서 촉망받는 소설가에 대학교수였지만, 제자와의 스캔들에 휩싸여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남자다. 영화는 원작 소설과 달리 톰이 왜 아내에게 이혼당하고 딸아이와도 쉽게 만날 수 없었는지에 관한 사유가 명확히 드러나진 않지만, 모든 것을 다 잃고 벼랑 끝에 떨어진 톰의 우울한 현실이 간결하게 압축되어 보여지는 초반 시퀀스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딸을 만나기 위해 무작정 파리로 찾은 톰은 딸을 만나긴커녕, 여행 당시 가져온 전재산을 도둑맞아 빈털터리로 전락하기에 이른다. 프랑스 내에서도 불법 이민자들이 모여사는 허름한 호텔에 외상으로 묶게된 톰의 생활을 비참하기 짝이 없다. 경제적 궁핍 속에 그토록 보고 싶은 딸 아이마저 만날 수 없는 최악의 상황. 그 때 운명처럼 톰의 곁에 찾아온 뮤즈 마르짓(크리스틴 스콧 토머스 분)는 절망의 기로에 선 톰의 유일한 희망이요, 구원의 손길이다. 


원작 소설이 주인공 해리와 마지트의 미스터리하면서도 강렬한 로맨스로 전 세계 팬들을 사로잡았다면 영화 <파리 5구의 여인>은 원작 작가인 케네디가 각본을 맡았음에도 불구, 그 누구도 쉽게 거부할 수 없는 마르짓의 유혹의 몸짓보다 끊임없이 추락하는 톰의 절망적 몸짓에 중점을 맞춘듯하다. 





오늘날 더글라스 케네디를 세계 최고의 작가의 반열로 올라서게한 <빅 픽처>의 주인공 벤과 달리 <파리 5구의 여인>의 톰은 딸과 함께 행복하게 살고픈 평범한 삶을 갈망하는 중년 남성일뿐이다. 그에게 소설이란 다시 딸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도구에 가깝다. 그래서 톰은 매일밤 이상하고도 끔찍한 일이 일어나는 지하실의 악몽을 꾹꾹 참아가며, 다시 자신을 일으켜세울 수 있는 소설 창작에 모든 촉각을 기울인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한다고한들, 스캔들로 바닥까지 추락한 남자를 정상 위로 끌어올릴 수 있는 '소설'이 쉽게 나오지는 않는 법. 타고난 예술가라기보단, 보통 사람들처럼 살고픈 톰에게 그의 뮤즈 마르짓은 인생의 바닥까지 경험해본 자만 세상을 놀라게하는 위대한 걸작을 탄생시키는 법이며, 딸을 비롯 모든 것을 내려놓으라고 종용한다. 





언뜻보면 한 여자의 쉽게 뿌리칠 수 없는 위험한 집착이 만든 스릴러 치정극에 가까워보일 수도 있다. 정체를 쉽게 알 수 없는 마르짓을 둘러싼 놀라운 사건을 파헤치는 초, 중반의 미스터리적 접근 기법와 서스펜스는 비교적 탄탄한 편이다. 


하지만 영화 <파리5구의 여인>은 어디까지나 경제적 이유로 소설가로 지망했던 남자가, 깊은 절망을 딛고 진정한 예술가의 길로 들어선다는 일종의 성장극이다. 하지만 다수의 성장 스토리와 달리, 마르짓의 안내를 받고 '예술'의 세계로 인도받은 톰은 그리 행복하지도, 성취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지금까지 그를 어둠으로 밀어넣은 짖궃은 운명의 장난보다 더 우울하고 잿빛가득한 환상의 세상은 위대한 예술적 성취를 위해 자신을 끊임없이 끝을 알 수 없는 짙은 고뇌와 고독의 세계로 몰아붙이는 예술가의 필연적 숙명을 연상시킨다. 


소설보다도 더 친절하지 않은 모호하면서도 시니컬한 결말이 더 깊은 사색에 빠지게 하는 진한 커피향같은 여운을 남긴다. 깊은 절망 속에서도 삶을 향한 의지의 끈을 놓지 않는 에단 호크의 호소력있는 연기와 톰을 위로하면서 동시에 그를 나락으로 빠지게하는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는 거부할 수 없을 정도로 치명적으로 매력적이다. 지난해 국내 개봉한 <엘르>에서 줄리엣 비노쉬를 새로운 세계로 인도하는 매력적인 여대생으로 열연한 폴란드 출신 요안나 쿨리크의 관능적 매력을 다시 보는 것도 반갑다. 





허나, 그 불친절한 마무리 기법이 영화가 진정으로 말하고픈 메시지를 흐릿하게하는 한편, 영화 외적 완성도를 반감시킨 것은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을 법하다. 4월 25일 개봉 


한 줄 평: 예술의 길은 험난하고, 모든 일에는 응당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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