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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전망대

장고: 분노의 추적자. 타란티노만의 A급 캐릭터 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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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작 <저수지의 개들>을 시작으로 쿠엔틴 타란티노의 역사엔 '타협'과 '중도'는 없는 듯 한다. 언제 어디서나 항상 끝을 보고 하는 쿠엔틴 타란티노의 스타일은 극명한 호불호를 양성한다. 


2009년 브래드 피트 주연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을 시작으로, 역사극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듯한 쿠엔틴 타란티노의 새로운 아이템은 놀랍게도 타란티노 본인이 속한 자국의 역사다. 그것도 현재 흑인 대통령을 재선시킨 미국의 역사에서는 엄청나게 부끄러운 흔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고로 국내엔 <장고: 분노의 추적자>와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다니엘 데이 루이스 주연의 <링컨>의 시대적 배경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세르지오 코르부치의 1966년작 동명 영화에서 이름을 빌려온, <장고: 분노의 추적자>의 주인공 장고는 흑인이다. 흑인이라면 무조건 노예로 착취해오던 시대를 잘못 만나, 사랑하는 아내와 헤어지고 쇠고랑 찬 채 어디론가 팔려가고 있던 장고(제이미 폭스 분)은 참으로 운좋게 무늬만 의사이지 실상은 현금사냥꾼 닥터 킹(크리스토프 왈츠 분)의 도움으로 노예에서 해방, 단박에 폼나는 총잡이로 변모하기에 이른다. 장고가 닥터 킹의 도움으로 자신을 억압하던 노예 매매상을 제거하고 자유를 획득하는 과정 또한 참으로 타란티노스럽긴 하다. 하지만 오프닝에서 분노의 추적자로 거듭나는 장고의 모습은 맛보기에 불과할 뿐이다. 


주인공 장고를 비롯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맡은 캔디까지, 모든 캐릭터들이 다 생생히 살아있는 영화이지만, 그래도 <장고: 분노의 추적자>에서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를 꼽으라면, 주인공 장고 제이미 폭스도,  악덕한 농장 주인 캔디의 옷을 입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도 아닌,  장고의 협력자 크리스토퍼 왈츠다. 






게다가 쿠엔틴 타란티노 남자인만큼 말도 참 많다. 눈 앞에 총알이 날라오는 일촉즉발 상황에서도 한시도 쉬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이 꼭 해야하는 말을 이어가는 닥터 킹의 화술은 보는 이들의 입을 떡 벌어지게 할 정도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지독할 정도로 말많고 수다스러운 크리스토퍼 왈츠는 결코 귀찮거나, 짜증나게 다가오지 않는다. 아마도 말이 정말로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계속 가까이 두고픈 몇 안 되는 남자를 꼽자면 그건 바로 쿠엔틴 타란티노 속의 크리스토퍼 왈츠가 아닐까. 


그런데 개인적으로 크리스토퍼 왈츠가 맡은 바운티 헌터 '닥터 킹' 외에도, 제일 눈길이 가는 캐릭터가 있다면, 그것은 다름아닌 사무엘 L. 잭슨이 연기한 스티븐이다. 남부 대부호 캔디(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 밑에서 집사로 일하고 있는 스티븐은 본인 또한 흑인이면서, 오히려 백인들보다 같은 종족 흑인을 '검둥이'라 부르며 경멸한다. 


오랫동안 캔디네 집안 대대로 헌신한 대가로, 주인님의 은덕(?)으로 집사로 승격한(?) 스티븐은 (그래봤자 캔디의 하인에 불과하지만) 스티븐은 캔디네 집안에 있는 다른 노예들보다는 높은 위치를 악용하여, 노예들을 억압하는데 일조한다. 뼛속까지 백인이 만들어낸 노예제도에 순응하여(혹은 줄타기에 성공하여), 결국은 자신과 다를 바 없는 처지의 흑인들을 탄압하는 스티븐은 일제강점기 시대 친일파를 잠시나마 연상시킬 정도다. 물론 스티븐은 태어날 때부터 흑인으로 태어난 이상, 백인 주인을 섬기는게 당연한 이치라고 믿을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살긴했지만 말이다. 





때문에 캔디 옆에서 같은 흑인인 장고와 브룸힐다 커플을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오히려 그들 부부를 위기로 몰리게하는 스티븐은, 사악한 농장 주인으로 설정된 캔디보다 그 악의 강도가 더 커보이게 마련이다. 


스티븐의 귀띔으로 브룸힐다를 찾기 위해 자신을 찾아온 장고와 닥터 킹의 목적을 알게된 캔디는 장고 앞에서 그간 자신의 집에서 일해온 노예들의 노예 근성을 철저히 비웃는다. 아니 그것은, 자신과 같은 백인 주인을 공격할 수 있는 틈이 생겨도, 끝까지 백인들을 잘 섬겨온 흑인 노예 전체를 비아냥거리는 말이었다. 





하지만 모든 흑인들이 다 캔디네 집에서 일했던 노예들처럼 충실한 백인의 종으로 살았던 것은 아니다. 독일 신화에서도 가장 유명한 브룸힐다 공주를 위험에서 구출하는 전사처럼, 흑인으로 태어난 장고는 닥터킹의 도움으로 평생 노예로 살 뻔한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극복하기에 이른다. 장고에게 선의를 베푼 바운터 헌터 닥터킹이나, 장고의 아내에게 친히 '브룸힐다'라는 좋은 이름을 붙어준 백인 주인 모두, 미국인이 아닌 독일인이라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어쩌면 타란티노는 독일인이라고 다 자신의 전작 <바스터즈: 거친 너석들>의 나치스러운 것은 아니야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무엇보다도 뒤마의 출생의 비밀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신의 집 노예들에게 프랑스 귀족과 아이티 흑인 노예 사이에서 태어난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주인공으로 이름지었던 캔디도 흥미진진한 것은 매한가지다. 


흑인의 목숨을 껌으로 알면서, 정작 흑인의 유전자를 가진 위대한 예술가를 동격하고 흠모하는 캔디의 이중성은 서부 액션극에 21세기 첨단 흑인 힙합음악을 배경음악으로 전면 배치해놓은 타란티노 그 자체처럼 탁월한 설정이다. 백인으로 태어났지만, 끊임없이 흑인 문화를 자신의 작품 세계로 승화시킨 타란티노는 역시나 기대 이상의 멋진 영화를 만들어내었다. 2시간 40분에 가까운 러닝타임의 압박도 거뜬하게 견디어낼 수 있는, 역시 타란티노는 동시대에 함께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씨네필의 심장을 뛰게하는 최고의 감독 중 하나다. 


한 줄 평: 쿠엔틴 타란티노만의 캐릭터 뒤틀기는 신의 경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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