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다수 예술 영화 팬들이 손꼽아 기다려온 그 이름.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신작 <마스터(The Master>는 고갱의 3대 걸작 중 하나인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가 드러내고자 하는 세계관과 비교적 비슷한 물음으로 접근하는 영화로 볼 수 있다.
고갱의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에 따르면,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근원적으로 내포한 두려움과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누군가를 향한 절대적인 믿음과 복종을 통해 안정과 구원을 찾고자 한다.
신흥종교 ‘사이언톨로지교’ 창시자에게 영감을 얻었다는 영화 <마스터>는 전쟁으로 혼란스러웠던 시대. 삶의 방향을 잃어버린 남자와, 누군가를 앞세워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고자 하는 또 다른 남자의 관계를 종교와 교주에게 맹목적으로 빠져든 사람들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믿음과 자유 의지. 그리고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의 허구성을 낱낱이 파헤친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프레디(호아킨 피닉스 분)은 전쟁 참전 후유증으로 심각한 정신적 외상을 겪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그의 정신적 방황은 폐소공포증이라기보다, 사랑하는 여인 도리스에 대한 그리움에서 비롯된다. 도리스를 사랑하지만 그녀에게 다가갈 수 없었던 프레디의 트라우마는 더 큰 부메랑으로 다가와 스스로를 옭죈다.
제어가 되지 않는 충동적 행위로 일상 생활조차 불가능했던 프레디에게 랭케스터 도드(필립 세이무어 호프만 분)이 이끄는 ‘코즈’는, 프레디도 남들처럼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제시하는 구원의 손길이었다. 인간의 의지만으로 감정을 통제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있는 랭케스터는 인간 심리를 연구하는 ‘코즈’ 연합회를 조직하고 스스로를 ‘마스터’로 칭한다.
그 어느 누구도 프레디의 돌발 행위에 위협을 느낄 뿐. 그의 폐소 공포증 치료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던 암울한 상황. 프레디는 인간의 자유 의지를 앞세워 자신도 좋아질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랭케스터에게 급격히 빠져든다.
하지만 자신을 구원해줄 것이라고 존경해 마다하지 않는 랭케스터의 이론에 회의적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을 응징하는 열혈 신도 프레디는 더욱 위협적이고 두려운 존재로 치닫게 된다. 랭케스터 가족을 위시한 ‘코즈’ 연합회 멤버들은 공격적이고도 불안한 성향이 다분한 프레디를 극도로 경계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자신의 이론을 입증하는데 프레디만한 인물이 없다고 생각한 랭케스터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 끝까지 프레디를 곁에 두고자 한다.
프레디, 랭케스터 모두 서로가 절실히 필요했던 상황. 랭케스터에게 보내는 프레디의 맹목적 믿음과 신뢰와 달리, 랭케스터 또한 완벽한 인간은 아니었다. 랭케스터 또한 불완전했기에 자신을 보완해줄 프레디가 필요했고, 그들은 서로 끊임없이 갈구한다.
서로의 필요에 의해서 관계를 맺었던 두 사람간의 쌓인 믿음과 신념은 위태로웠고, ‘마스터’ 랭케스터에 대한 프레디의 복종이 끝나는 순간, 자연스레 이별의 수순을 밟게 된다.
인간 대부분이 절대자가 아닌 불완전한 존재로 태어난 이상, 아무도 가보지 않은 미지의 망망대해에서 누군가에게 속 시원히 해결책을 제시하는 완벽한 ‘마스터’가 존재한다는 것은 애시 당초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스터>는 모두를 만족시킬 순 없겠지만, 그 나름의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137분에 육박하는 러닝타임을 뚝심있게 항해한다. 선장이라면 어떠한 순간이 와도 배를 지켜야하듯이. 끝을 알 수 없는 목적지를 향해 가는 배를 운행하는 과정에서 과거, 허상에 얽매이며 누군가에게 맹목적으로 의지하는 식으로, 본인이 지켜야할 자기 자리를 비우기보다, 흘려가는 현실에 충실하며 스스로가 자신의 삶에서 주체가 되어야하는 것.
생각하는 동물 호모 사피엔스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부딪치는 고통을 해결하고, 끊임없이 갈망하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완벽하진 않지만, 나름의 생각거리를 제시하는 <마스터>. 그렇게 이 시대 천재 감독으로 불리는 폴 토마스 앤더슨은 역시 그를 기다린 수많은 영화팬들의 믿음과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7월 11일 개봉.
*솔직히 고백하자면, 지난 주 목요일 폴 토마스 앤더슨의 <마스터>를 처음 보았을 때, 깜빡 졸았다. 하필이면 가장 중요한 부분을 놓쳤던지라, 결국 지난 화요일 16일. 영화를 두 번 보았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마스터>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인간의 가장 궁극적이고 근원적인 문제점에 냉철한 질문을 던지고, 자신만의 해법을 제시하는 천재 감독의 심오한 세계를 얄팍한 지식과 철학으로 받아들이기엔 너무나도 벅찬 감이 있다.
나의 한계를 여실히 각인시켜준 <마스터>. 아마 머지않아, 이 영화를 또 다시 볼 것 같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완벽히 이해할 수 있겠다고는 장담할 수 없지만, 영화라는 진리를 향해 찾아가는 망망대해에 선 보잘 것 없는 한 인간으로서, 연출, 극적으로 접근하는데 있어서 배울 점 많은 <마스터>를 만난 건, 행운이다. 폴 토마스 앤더슨. 제목 그대로 ‘마스터’ 그 자체인 영화에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한 줄 평: 인간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겪는 알 수 없는 끝없는 항해에 대한 폴 토마스 앤더스만의 놀라운 보고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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