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드라마전망대

감자별2013QR3. 멜랑콜리아의 시트콤 버전?

반응형

tvN 새 시트콤 <감자별2013QR3>(이하 <감자별>)을 보고 있으면, 묘하게 라스 폰 트리에 감독 영화 <멜랑콜리아>가 생각난다. 라스 폰 트리에 나치 발언만 아니었으면, 그의 생애 두번째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으로 남았을 <멜랑콜리아>는 (물론 <멜랑콜리아>의 엄청나게 높은 작품성과 완성도를 무시할 수 없었던 칸 영화제 측은 커스틴 던스트에게 여우주연상을 시상한다...) '멜랑콜리아'라는 이름의 행성이 지구에 날아들어오는 과정에서 인간의 불안심리, 우울증을 논하는 굉장한 영화다. 





지구가 멸망할지도 모른다는 가정 하에 시작하는 <멜랑콜리아>와 달리, 아직 '감자별'이 날아오지도 않았던 <감자별>은 지구 멸망 대신, 감자별이 지구에 온 이후, '멘붕'에 빠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시트콤답게 다소 코믹하게 다루고자하는 것 같다. 그런데 정체불명의 행성이 지구에 날아오는 것 외엔 당췌 별다른 공통점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았던 <멜랑콜리아>와 <감자별> 사이에 아주 미묘한 점접이 발견된다. 


<멜랑콜리아>에서 커스틴 던스트가 맡은 저스틴은 뛰어난 미모에 능력까지 인정받은 잘나가는 커리어 우먼이다. 엘프 중의 엘프 스웨덴 미남 알렉산더 스카스가드와 초호화 결혼식을 하는 참으로 기쁜 날. 불행히도 저스틴은 '멜랑콜리아'라는 행성이 지구에 날아와 지구가 멸망할지도 모른다는 깊은 우울증에 빠진 저스틴은 결혼식날 직장 부하와 관계를 하는 돌연 행동을 벌이다가 결국 결혼식은 파토나고, 저스틴의 병색은 더욱 깊어진다. 그런데 이 심각한 우울증이 중세 귀족의 성을 보는 것 같은 대규모 저택에서 여유롭게 살고 있던 저스틴 언니(샬롯 갱스부르 분), 형부(키퍼 서덜랜드 분)에게도 옮기게 된다. 


저스틴이 '멜랑콜리아'를 만나기 전까지만해도 모든 것은 완벽했다. 그녀의 언니와 형부는 상위 1%에 해당하는 부유층이었고, 광고 카피라이터로 성공을 거둔 저스틴 역시 부와 명예 모든 것을 갖춘 조각 미남과의 결혼으로 탄탄한 미래가 보장되어 있었다. 그러나 지구가 곧 멸망하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빠지게 되자, 궁전같은 저택도, 조각을 빚어놓듯이 잘생긴 남자도 무용지물이 되어버린다. '멜랑콜리아' 때문에 지구가 멸망하는 일은 추호도 없을 것이라고 가족들과 저스틴을 안심시키던 형부는, 다시 '멜랑콜리아'가 눈 앞에 나타나자 그 충격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 많은 돈과 사랑하는 가족을 남겨두고 말이다. 


그런데 지구가 멸망한다는 두려움에 멘붕에 빠진 부유층, 중산층의 붕괴 과정은 놀랍게도 <감자별>을 통해서 그대로 재현된다.


<LA 아리랑>을 시작으로, 김병욱PD의 세계관은 언제나 중산층이 등장하였다. 중산층의 소소한 일상과 그 속에 숨어있던 유머를 끄집어내어 사람들의 공감대를 이끌었던 김병욱PD의 시트콤은 MBC <하이킥> 시리즈를 통해서 서서히 중산층의 균열을 끄집어내고자하는 흔적이 역력했다. 아예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에서는 김병욱PD 시트콤의 상징이었던 중산층을 초반부터 붕괴시켰다. 이번 <감자별>에서도 정체불명 행성 출연으로 가장 제일 '멘붕'에 빠진 이들은, 행성이 날아오기전 까지만해도 완벽한 삶을 살았던 노씨 일가가 될 전망이다. 





하지만 '감자별'이 오기 전에도 이들은 그들이 가진 부와 명예에 걸맞게 그리 품위스럽지도, 행복하지도 않아 보인다. 자신이 카사노바였음을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할아버지 이순재를 시작해서, 노씨 일가에서 완벽한 정상인은 없는 듯 하다. 노수동(노주현 분)은 전립선 비대증을 앓고 있어 마음대로 소변 보는 것 조차 쉽지 않고, 아버지 수동의 대를 이어 주식회사 콩콩 대표로 취임하는 아들 노민혁(고경표 분)은 아무리 잘났다고 쳐도 부담스러울 정도로 자기 자랑이 심하다.  인권변호사를 남편으로 둔 노보영(최송현 분)은 완벽한 삶에 대한 강박관념이 절정에 다다른 수준이다. 


<감자별>에서 한 축을 담당하는 노씨 일가 남자들이 하나같이 소심하고 부인, 처가의 눈치를 보고 산다는 설정은 김병욱PD 시트콤에 늘 등장하던 단골 캐릭터이기에 식상하게 다가오는 것도 없지 않다. <지붕뚫고 하이킥> 식모 신세경과 88만원 세대 황정음을 합쳐놓은 것 같은 나진아(하연수 분)는 이제 김병욱PD 시트콤에서 빠질 수 없는 우울한 청춘을 상징한다. 제2의 스티브 잡스, 마크주커버그가 되겠다고 외치는  홍혜성(여진구 분)이 그나마 독특해보이는데, 아직 2회만 방영한지라, 어떤 캐릭터라고 단정지을 수  있는 단계는 아닌 것 같다. 





그러나 김병욱PD는 자신이 늘 구사해오던 캐릭터의 자기 변주에서 벗어나, <하이킥> 시리즈부터 조금씩 드러내오던 멜랑콜리아적이면서도 염세적인 시각으로, 중산층의 모순과 엄청난 위기가 도래하는 와중에도 어떻게든 '중산층'으로서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아등바등 거리는 그들의 모습을 그려내고자 한다. 


IMF 경제 위기 이후, 대한민국 경제를 지탱했던 중산층이 점점 줄어들어만 가고, 계층 간 빈부격차가 나날이 벌어지는 시대, 앞으로 다가올 미래가 지금보다 더 나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는 현실. 어쩌면 2013년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감자별'이란 정체불명 행성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불확실성에 오는 불안과 우울을 모두 동반한 '멜랑콜리아' 덩어리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아무리 김병욱PD의 시트콤은 원래 첫 회가 재미없다고 하나, 어디서 웃어야할지 모르겠고, 비위가 약한 글쓴이같은 사람은 도무지 보기 힘들었던 1, 2회였음에도 불구, 그럼에도 지극히 개인적으로 <감자별>이 기대된다. 과연 <지붕뚫고 하이킥>,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보다도 더 대놓고 멜랑콜리적인 이야기를 김병욱PD는 어떻게 풀어낼지 말이다. 설마 이번에는 <지붕뚫고 하이킥>과 같은 결말은 내놓지 않겠지 하면서, 과연 이번에는 어떤 우울한 이야기를 보여줄건지. 이 또한 김병욱PD 아니면 할 수 없는 도전아닌가.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