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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전망대

아버지의 이메일. 아버지 세대를 이해하고자하는 자식 세대의 진심어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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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영화 <아버지의 이메일> 홍재희 감독이 아버지하면 떠오르는 추억은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큰 돈을 벌기 위해서 몇 년 이상 베트남, 중동에 다녀오신 아버지는 그 이후 술독에 빠져 가족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홍 감독은 아버지가 미웠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자신에게 보낸 아버지의 수십 통 이메일을 본 홍 감독은 이메일에 적힌 내용을 토대로, 아버지의 지난 삶을 돌아보기로 결심한다. 





1934년 황해도 황주에서 태어난 홍재희 감독 아버지 고 홍성섭은 2008년 둘째 딸 홍 감독에게 메일을 남기고, 재개발로 홍역을 치루던 서울 금호동 자택에서 숨을 거둔다. 인민군이 싫어 어머니와 누이들만 남기고 혈혈단신 월남한 아버지의 삶은 굴곡진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하고 있었다. 


1952년 미군 부대에서 파지를 주우며 제법 큰 돈을 만졌지만, 이후 사기당해 평생 경제적 어려움을 겪은 아버지의 목표는 다시 돈을 버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돈을 벌기 위해서 베트남으로 떠났고, 사우디아라비아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홍재희 감독 아버지가 베트남, 중동으로 간 것은 분명 큰 돈을 벌고자하는 이유가 컸다. 하지만 홍 감독 아버지는 돈을 버는 것 외에도 외국으로 나가고자하는 욕망이 누구보다 컸던 분이었다. 해외 파견 근무를 넘어, 아예 한국을 떠나 외국으로 이민을 가고 싶었던 아버지는 안타깝게도 그 꿈이 좌절되고 만다. 홍 감독 어머니의 가족이 친북활동에 연루되었기 때문. 그 때부터 홍 감독의 아버지는 삶의 의욕을 점점 잃게 되었다. 


한 때는 뛰어난 영어실력으로 미군 부대에서 근무하여 제법 많은 돈도 벌고, 파월시험에서 당당히 1등을 차지한 아버지였다. 하지만 홍재희 감독의 가족들이 기억하는 아버지는 매일 술독에 빠져 가족들을 힘들게하는 존재였다. 잦은 해외 근무 탓에 가족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아버지는 가족들과의 추억이 그리 많지 않다. 어머니와 미국에 거주하는 언니는 여전히 아버지를 향한 상처가 깊고도 컸다. 아버지와 같이 대화를 나눠본 적이 손에 꼽는다는 막내 동생에게 아버지는 툭하면 어머니를 괴롭히는 무능력한 가장으로 기억된다. 







북한의 억압된 체제를 피해 남한으로 도피했고, 찢어지게 가난한 삶을 면하게 위해 악착같이 살았지만, 운이 따라주지 않아 결국 털석 주저앉게 된 아버지의 파란만장한 75년 인생사를 다룬 <아버지의 이메일>은 그저 한 개인의 일대기로만 그치지 않는다. 체제 안정을 이유로 개인의 삶을 제한했던 시대에 순응해야했던 우리 아버지 세대 이상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한 때 홍재희 감독은 집을 나갈 정도로 아버지가 싫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 홍감독은 자신에게 장문의 이메일을 보낸 아버지의 지난 삶을 이해하고 싶었다. 아버지가 남긴 모든 것을 그대로 물려받을 순 없겠지만, 마냥 부정만 할 수는 없기에. 그래서 홍 감독은 아버지의 이메일을 토대로 아버지의 발자국을 추적했고, 그의 인생이 담긴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세상에 나온 <아버지의 이메일>은 홍 감독의 아버지는 물론, 우리 아버지들에게 조금이나마 다가가게 할 수 있는 물꼬를 틔운다. 





물론 아버지 세대를 쉽게 이해하는 어렵다. 돌아가신 아버지와 남은 가족들의 화해를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로 끝났다는 홍재희 감독의 담담한 고백처럼 아버지 세대와 자식 세대가 서로에게  마음의 문을 활짝 열기 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하지만 가까이 있으면서도 너무나도 멀었던 아버지의 입장이 되어, 그의 시선으로 잠시나마 세상을 돌아보는 시도만으로도 <아버지의 이메일>이 보여준 성과는 뚜렷하다. 2012년 제38회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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