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이성계(유동근 분)가 보위에 오르는데 최대 걸림돌이었던 포은 정몽주(임호 분)를 살해한 이방원(안재모 분)의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내친 김에 역성 혁명파들과 함께 공양왕(남성진 분)까지 폐위한 이방원은 소원대로 아버지 이성계를 새로운 왕으로 옹립할 모든 준비를 마쳤다. 그런데 이성계가 왕의 자리를 한사코 거부한다.
오히려 이성계는 아버지를 대신하여 정몽주를 죽였다는 이방원에게 진노한다. 반면 전날, 정몽주와 마지막으로 만나는 자리에서는 힘없는 목소리로 진심을 다해 정몽주에게 매달린다. 평소 천하를 호령하던 호랑이는 온데간데 없고, 정몽주에게 자신과 함께 하자면서 애원하고, 정몽주가 죽자 이성을 잃고 넋두리하는 이성계의 다양한 심경변화는 가히 소름이 끼칠 정도다.
요즘 인기리에 방영 중인 KBS 주말 드라마 <정도전>은 가히 사극계의 어벤져스라고 불릴 정도로 수많은 명연기자들이 등장한다. 삼봉 정도전 역을 맡은 조재현부터 유동근, 이제는 <정도전>에서 죽음으로 퇴장한 임호, 박영규(이인임 역), 서인석(최영 역)까지. 하나하나 세기도 어려울 정도로 시대의 명연기자들이 지난 25일 40회를 맞은 <정도전>을 탄탄하게 빛내는 중이다.
연기신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는 <정도전>에서도 요즘 가장 화제의 중심이 되는 인물은 이성계 역의 유동근이다. 1996년부터 98년까지 방영한 <용의 눈물>에서 태종 이방원 역을 맡아 1997년 KBS 연기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한 바 있는 유동근은 이번 <정도전>에서 조선 태조 이성계가 되어 16년 전보다 더욱 업그레이드된 남다른 카리스마로 안방극장을 사로잡는다.
흥미로운 점은 <용의 눈물>에서 태종 이방원 아들 충녕대군(훗날 세종)으로 출연했던 안재모가 이번 <정도전>에서는 이방원으로 출연한다는 것이다. 16년 전만해도 <용의 눈물>에서 이성계(고 김무생 분)를 수시로 분노하게 했던 이방원이 <정도전>에서는 이성계가 되어 새로운 이방원과 부자 관계를 넘어선 날카로운 대립을 펼치는 것만으로도 시청자들에게 독특한 재미를 선사하는 터.
하지만 이방원에 포커스를 맞추었던 <용의 눈물>과 달리, <정도전>의 중심은 정도전이다. 하지만 드라마 <정도전>은 오직 정도전의 이야기만 펼쳐지지 않는다. 정도전과 함께 같은 시대를 살고, 때로는 그의 동지이자 정적이기도 했던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래서 한 때 정도전의 최고 정적이었던 이인임의 노련한 술수가 주목을 받았고, 정도전의 절친한 벗이었으나 결국 등을 돌린 정몽주의 비참한 최후가 고개를 숙연하게 한다.
<정도전>을 보다보면, 마치 고려 말, 조선 건국 당시 상황을 빌려 21세기 대한민국을 논하는 기분이 종종 들기도 한다. "굽히세요. 정치 하는 사람의 허리와 무릎은 유연할수록 좋은것이오.”, "정치를 오래 할 생각이면 이 말 명심하시오. 의혹은 궁금할 때 하는게 아니라 감당할 능력이 있을 때 하는 것이오.” 등 이인임이 남긴 명대사들은 정치의 본질을 제대로 꿰뚫는다는 찬사를 받기도 하였다. 드라마 작가로 활동하기 전,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활동한 정현민 작가의 오랜 경험과 통찰력에서 비롯된 결과물인 셈이다.
연출, 대본, 연기 삼박자를 고루 갖춘 웰메이드 드라마로 평가받는 <정도전>은 이제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정도전의 뜻대로 이성계는 왕이 되었지만 피바람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정몽주 시해를 시작으로 왕이 되겠다는 야심을 조금씩 드러내는 이방원과 기회주의자 정치인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하륜(이광기 분)의 부상. 역사가 스포일러인 <정도전>의 결말은 이미 명확하다. 원하는 대로 용상에 앉게 되었지만 결국 이인임의 경고대로 지옥의 불구덩이에 뛰어든 이성계와 이상적인 왕도 국가 건설을 꿈꾸었지만 결국 이방원, 하륜 등에 의해 죽음을 맞는 정도전. 이미 결과가 뻔한 드라마임에도 불구, 그럼에도 <정도전>의 다음 회가 벌써부터 기다려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랜 세월 미달이 아빠로만 기억되던 박영규의 통쾌한 반란, 한동안 왕 전문 배우로 불려야했던 임호의 눈물겨운 충신 연기, <태조왕건>에서 비교적 인상깊은 연기를 보여주었음에도 불구 그 이후 드라마보다 예능에서 더 자주 볼 수 있었던 이광기, 오열만으로도 숨죽이고 지켜보게하는 이색 역의 박지일. 여전히 녹슬지 않는 카리스마를 과시하는 서인석, 유동근, 조재현. <정도전>으로 다시 재주목받고 있는 안재모 등. 배우로서 묵묵히 최선을 다해 연기를 하는 이들을 한 자리에 보는 것만으로도 <정도전>은 시청할 가치가 충분하다.
배우들의 연기만으로도 눈길을 사로잡는 드라마. 최고의 드라마에는 최고의 배우들이 있었다.
정도전 40회의 명대사- 이성계가 어깨를 들썩이며 부릅니다. 개자식 이성계 호로자식 이성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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