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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전망대

슬로우 비디오. 잔잔하고 따뜻한 차태현표 휴먼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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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영화 <슬로우 비디오> 홍보를 위해 출연 배우인 차태현, 김강현과 함께 MBC <황금어장-라디오스타>에 출연한 김영탁 감독은 진짜 지루한 영화를 찍고 싶다는, 지극히 소박해보이지만 요즘 한국 상업 영화계에서는 언감생심인 남다른 포부를 밝혔다. 그래서 당당하게 지루한 영화를 추구한다는 김 감독의 신작 <슬로우 비디오>가 더 궁금해졌다. 한국 4대 투자배급사가 아닌 할리우드 메이저 배급사인 20세기 폭스사가 공동 제작 배급을 맡았다는 이번 김영탁 감독의 영화는 대체 얼마나 지루할까(?) 말이다. 





결과적으로 말해서, <슬로우 비디오>는 지루하기보단 착하고 따뜻한 영화다. 요즘 워낙 빠른 리듬감에 강한 장면을 앞세운 센 영화들이 많아서 <슬로우 비디오>의 잔잔하고 느릿하게 흘려가는 이야기가 상대적으로 지루하게 다가올 수도 있지만, 일상적이면서도 흥미로운 내용과 친숙하면서도 편안한 캐릭터들이 계속 관객들을 웃기고 울리는 덕분에 쉽사리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슬로우 비디오>의 주인공 여장부(차태현 분)은 움직이는 사물을 느리게 볼 수 있는 ‘동체시력’을 가진 남자다. 독특한 시력 때문에 20년 가까이 은둔형 외톨이로 지낸 장부는 CCTV 관제센터 계약직으로 오랜만에 사회에 발을 디디게 되고, 탁월한 순간 포착 능력 덕분에 관제센터의 에이스로 떠오른다. 





오직 TV 드라마를 통해 세상과 소통해온 장부에게 CCTV 너머 속 사람들의 삶은 또다른 드라마다. 하지만 TV 드라마 속 멋진 주인공들과 실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너무나도 다르다. 쳇바퀴처럼 바쁘게 돌아가는 고된 하루를 보내는 사람들 속에서도 장부가 집중하면서 지켜보는 이들은 그들 중에서도 가장 외로워보이고 힘겨운 나날을 보내는 소시민들이다. 또한 장부가 짝사랑하는 봉수미(남상미 분)는 알바로 생계를 이어나가는데, 설상가상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긴 빚까지 떠맡은 상황이다. 


곧 시력을 잃게 될지도 모르는 장부, 억대 빚에 허덕이는 수미의 인생은 불행에 가깝다. 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변변한 일자리를 못얻어 관제센터 계약직으로 근무하는 병수(오달수 분), 매일 밤 혼자서 야구하는 마을버스 운전기사 상만(김강현 분),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 병든 아버지를 대신해서 새벽 일찍 수레를 끌고 폐지를 줍는 백구(정윤석 분) 등 장부 주위 사람들도 사회적 기준의 성공과는 다소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들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원망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에게 주어진 일상에 묵묵히 최선을 다하며 살아간다. 빚갚기도 빠듯한 상황에서도 뮤지컬 배우가 되겠다는 꿈과 밝은 웃음을 잃지 않는 수미는 장부가 한 눈에 반할 정도로 예쁘고, 수미를 위해서라면 언제 어디든지 달려나갈 수 있는 장부는 TV 드라마 속 재벌 3세 못지 않게 멋있다. 


단지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지 않을 뿐이지, 이 세상을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각본 없는 리얼 드라마를 만들고 있다. 그동안 영화, 드라마 속에서 범죄자 감시 도구로 쓰인 CCTV를 소통의 매개체로 표현한 역발상이 돋보이면서도, 세상을 바라보는 김영탁 감독의 따뜻한 시선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유쾌한 휴먼드라마다. 





<헬로우 고스트>에 이어 좀 지루한 이야기를 추구한다고 할지라도, 훈훈하면서도 착한 영화를 만드는 김영탁-차태현의 조합은 이번 <슬로우 비디오>에서도 역시 통했다. 10월 2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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