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촉망받는 바둑 영재였지만, 프로 기사 입단 실패 이후 우여곡절 끝에 고졸 검정고시 학력으로 원 인터내셔널 계약직 사원이 된 tvN <미생>의 주인공 장그래(임시완 분)은 명문대 졸업에 화려한 스펙의 소유자들이 즐비한 회사에서 눈에 가장 띄는 미운 오리새끼이다. 신입사원 중에서 유일하게 계약직으로 들어온 장그래가 회사 내에서도 가장 기반이 약한 영업 3팀에 배정받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장그래는 입사 동기 중에서 가장 일 잘하는 상사 오상식(이성민 분) 과장 밑에서 가장 체계적으로 일을 제대로 배우고 있었다. 회사의 실세 최전무의 눈밖에 났을 뿐, 업무 능력만큼은 최고로 정평이 나있는 오과장은 갓 들어온 신입사원에게도, 부서 내 눈엣가시로 찍힌 여사원도 따뜻하게 다독일 줄 아는 상사 중의 상사다.
그러나 계약직이긴 하지만, 고졸 검정고시 학력으로 뛰어난 스펙을 가지고 있던 다른 인턴들을 제치고 원 인터내셔널에 입사한 장그래처럼 오상식은 현실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또 하나의 판타지일 뿐이다. 오히려 자신들보다 뛰어난 능력을 갖춘 여사원 안영이(강소라 분)를 대놓고 무안을 주는 자원팀 사람들과 장백기(강하늘 분)을 극도로 경계하는 나머지 그에게 어떤 업무도 주지 않는 철강팀 대리가 더 사실적으로 다가온다.
회사 내 그 사람의 평판보다 실적과 업무 능력이 더 중요시 여기는 회사라는 세계에서 IT 영업팀의 박대리(최귀화 분)처럼 사람만 좋은 직원은 그리 썩 달가운 존재가 아니다. 심지어 박대리의 까마득한 입사 후배인 장백기조차 박대리가 신입사원 영업 OJT를 담당하게 되었다는 소식에 인상부터 찌푸린다.
허나 장그래는 달랐다. 박대리에게 다가가 오과장으로부터 어떤 계약에서도 인정을 잃지 않는 분이라고 들었다면서 그의 사기를 높인 장그래는 박대리가 거래처의 이중 계약을 목격한 위기의 순간에도 박대리와 함께 하며, 박대리가 큰 결단을 내리는데 적지않은 힘이 되어준다.
학력은 고졸에서 멈추었지만, 오랜 세월 바둑을 두어온 터라 또래에 비해서 시야를 보는 눈이 넓은 편인 장그래는 박대리가 회사에서 거래처의 이중 계약을 고발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훈수를 둔다. “무책임해지세요.”
인정이 많아서 그런지, 박대리는 자신과 회사의 이익 못지 않게 거래처의 입장 또한 걱정하는 쪽이었다. 하지만 사사로운 감정으로 거래처를 대하는 박대리의 순수함은 회사에서 무능으로 치부될 뿐이다. 심지어 박대리가 진심으로 걱정했던 거래처 또한 기어이 박대리의 뒤통수를 치고만다. 예전의 박대리였으면 그냥 좋은 게 좋다고 아무 일 없었다는듯이 넘어갔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장그래라는 박대리의 숨은 능력을 믿어주는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박대리는 비로소 자신을 꽁꽁 둘러싸고 있던 껍데기를 완전히 벗어낸다.
박대리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두 팔 벗고 나섰다가, 오히려 자신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정수로 임원 비상 회의에 맞서는 박대리의 의외의 모습에 충격을 받은 장그래는 일개 신입 주제에 잘 알지도 못하고 주제넘게 박대리에게 훈수를 둔 자신을 질책한다. 평소 장그래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장백기를 이를 두고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면서 냉정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하지만 장백기의 판단과는 달리, 박대리는 진심으로 자신의 가난한 껍질을 벗겨주었다는 장그래에게 고마워하고 있었다.
사회의 그럴싸한 구성원에 속하기 위해 일찌감치 세상을 사는 법을 터득했던 장백기에게 일개 고졸 계약직임에도 상사들의 신임을 얻는 장그래는 상당히 불편한 동료다. 여타 요즘 취업준비생들과 다를 바 없이 원 인터내셔널 사원이 되기 위해 자신의 청춘 모두를 스펙 쌓기에 바쳐야했던 장백기는 자신 못지 않게 노력한 취업 고시생들 대신 그 자리를 꿰찬 고졸 낙하산 장그래를 인정하지 않는 것을 세상의 정의라 말한다.
그러나 장백기가 중, 고등학교 시절부터 취업이 성공할 때까지 책상 앞에 공부를 하고, 어학연수, 인턴 등으로 입사를 위한 실무경험을 쌓을 동안 장그래는 프로 바둑 기사가 되기 위해 오직 바둑을 위해서만 달려왔고, 그 꿈이 실패한 이후에는 장백기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밑바닥 생활을 전전해야만 했다. 그리 특별한 스펙과 대기업 입사를 위한 경험이 전무했던 장그래가 그 누구보다도 회사 생활에 잘 적응한 것은 단순히 상사를 잘 만나서도, 운이 좋아서도 아니다. 그동안 고졸 검정고시 학력으로 어떻게든 아등바등 살아보고자했던 장그래의 노력이 오늘날 장그래를 만든 것이다.
장백기는 장그래를 그동안 아무 노력도 하지 않은 빽좋은 낙하산이라고 단정지을 지 몰라도, 꼼수를 정수로 받을 줄 알고, 시야에 가려진 타인의 숨겨진 재능을 북돋울 줄 아는 장그래는 이 시대가 원하는 취업시장에 최적화된 인재들에게는 결여되어있는 특별한 무기가 있었다.
학교 성적으로 서열을 매기는 학교에서는 갑의 위치였다고하나, 지금은 실적을 따내기 위해 옛 고교동창을 떠받들여 모셔야하는 을이 되어 친구에게 간, 쓸개 다 빼주어도 영업 실패라는 굴욕을 당해도 허허 웃어야하는 오 과장처럼, 그동안 회사에서 무능력한 존재로 낙인 찍혔으나 장그래의 도움으로 회사 영업 시스템 체계 개선이 큰 공을 세운 박대리처럼 사람 일은 한 치도 알 수 없는 법이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기준과 잣대로 사람과 세상을 평가하고 재단하려고 드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일인지 일깨워주던 <미생> 6회. 장그래의 말처럼 우리 모두에겐 자신만의 바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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