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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전망대

미생 9회. 스스로 실패자로 규정하는 장그래의 족쇄 풀어준, 김대리의 따뜻한 말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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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7일 안타깝게 유명을 달리한 고 신해철은 생전 JTBC <국경없는 청년회 비정상회담>(이하 <비정상회담>)에 출연하여, 한국 청년들에게 이렇게 당부하였다. 


"흔히 꿈은 이뤄내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지만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잃어버려서는 안되는 것이 있고 또한 그 꿈이 행복과 직결된 것은 아니라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다.네가 무슨 꿈을 이루는 지에 대해 신은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하지만 행복한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엄청난 신경을 쓰고 있다. 그러니 꿈을 이룬다는 성공의 결과보다는 자신의 행복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하지만 고 신해철의 간절한 당부와 바람과 달리, 여전히 2014년 대한민국을 살고있는 청년들은 행복을 느낄 겨를도 없이, 꿈을 이루는 것조차 한낱 꿈이 되어버리는 세상에 살고 있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닌,  타인의 이목, 기존 세대가 정해놓은 보편적 기준에 맞추어 자라나는 새싹들의 꿈이 재단되어 버리는 세상에는 자연스레 학벌, 어학 능력, 인턴 경력 등 소위 ‘스펙’이 사람을 평가하는 중요한 잣대로 작용한다. 


지난 14일 방영한 tvN <미생> 9회의 박 과장(김희원 분)의 기준에 따르면, 그 흔한 대학 졸업장도 없이 대기업인 원 인터내셔널에 들어온 장그래(임시완 분)은 무엇을 해도 성에 차지 않는 ‘미운 오리 새끼’이다. 비단 박 과장뿐만이 아니다. 대부분의 대기업에 들어간 임직원들이 다 그렇듯이 힘들게 공부하여 좋은 대학에 입학하여 그 곳에서도 치열한 경쟁을 뚫고 당당히 입사 시험에 합격한 이들의 눈으로 봤을 때 장그래는 빽이 좋아 별다른 노력없이 쉽게 회사에 입성한 ‘낙하산’이다. 





그러나 박과장을 비롯하여, 드러나는 스펙만으로 누군가를 평가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장그래가 한 때 프로 바둑기사가 되기 위해, 자신들이 명문대에 입학하기 위해 들였던 시간, 노력 그 이상을 바둑에 투자했다는 사실은 알지 못한다. 다만 장그래는 바둑기사가 되기 위해 노력했음에도 불구, 프로에 입단하지 못했을 뿐이다. 


어린 시절 전부를 걸었던 바둑의 꿈이 좌절되고, 다른 일을 하기에는 변변치 않은 스펙을 가지고 있다는 냉정한 현실을 터득하게 된 장그래는 스스로를 ‘실패자’라고 규정한다. 그래서 박 과장을 비롯한 회사 사람들이 자신을 ‘낙하산’, ‘검정고시’, ‘얼굴마담’ 등 대놓고 인신공격을 가해도 장그래는 출소한 장기수마냥 꾹 참는다.





보다 못한 김동식(김대명 분) 대리가 하염없이 참기만 하는 장그래를 대신하여 화를 낸다. 무조건적인 예스맨의 자세는 자존심까지 없어보이게 하여, 도리어 상대방에게 자신을 더 낮잡아 보이게 할 뿐이다. 


결국 장그래는 김대리를 자신의 집에 초대하여, 그동안 애써 숨기려고 했던 과거를 모두털어놓는다. 자신은 현재 상사들을 상대로 실질적 접바둑을 두고 있으며, 그동안 바둑을 둔 과거를 숨길 수밖에 없는 이유까지. 장그래의 아픈 과거를 알게된 김대리는 스스로를 실패자로 규정하는 부하직원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넨다. 당신은 실패자가 아니라고 말이다.  





지방대 출신으로서 원 인터내셔널에 입사하기 위해 다른 명문대 지원자보다 더 곱절로 노력해야만 했던 김대리는 그렇게 힘들게 회사에 들어갔을 때 오히려 성공이 아니라 문을 하나 더 연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털어놓는다. 


김대리의 말마따라, 남들이 부러워하고, 자신도 원하는 회사에 들어갔지만 결국은 연봉과 승진이 전부라는 직장 생활에서, 어쩌면 우리는 성공과 실패가 아니라 죽을 때까지 다가오는 문만 열면 사는 것이 아닐까. 





김대리의 위로처럼, 장그래는 결코 실패한 인생이 아니다. 다만, 장그래는 그토록 원하는 바둑이라는 문이 아닌, 원 인터내셔널의 계약직 사원이라는 문을 열었을 뿐이다. 비록 장그래는 프로 바둑기사가 되는 문턱 앞에서 좌절을 했지만, 그가 바둑에 들인 시간과 노력은 무용지물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장그래는 자신의 장기와 경험을 살려, 보통의 신입사원들은 미처 생각도 하지 못하는 일들을 해내고 있었다. 


성공이란 남의 이목이나, 세상이 정해놓은 보편적인 기준이 아닌, 자기가 그 순간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달려있다는 것. 사회와 회사를 상대로 접바둑을 두면서, 세상을 배우고 또 그 진리를 우리에게 다시금 일깨워주는 장그래의 바둑판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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