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전망대

상의원. 판에 박힌 밋밋한 이야기 살린 배우들의 힘

반응형

천재의 타고난 재능을 질투한 남자. 영화 <상의원>의 주인공 조돌석(한석규 분)은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모짜르트의 천재성을 시기한 나머지 모짜르트를 죽음으로 몰고간 극중 살리에르와 많이 닮아있었다. 





오로지 신분 상승을 목적으로 수십년간 바느질에 매진한 상의원의 어침장 조돌석은 그 공로를 인정받아 몇 달 뒤면 양반이 된다. 꿈에도 그리던 양반이 된다는 생각에 들뜬 나날을 보내고 있던 조돌석 앞에 궐 밖 최고로 옷 잘 짓기로 소문난 이공진(고수 분)이 나타난다. 


옷을 오직 자신의 신분상승 목적으로만 간주하는 범인과 옷 만드는 그 자체를 즐기는 천재의 대결은 당연히 후자의 완벽한 승리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입는 옷에도 신분의 고하가 있고, 예의와 법도를 지켜야한다고 강조하는 왕조 국가에서 옷에 자유로운 영혼을 담고 싶었던 이공진의 꿈은 철저히 현실의 벽에 부딪치고 만다. 여기에 중전(박신혜 분)을 향한 이공진의 이뤄질 수 없는 애틋한 순애보가 더해져, 시대를 잘못 만난 비운의 천재 이공진의 비극을 강하게 덧씌운다. 


조선시대 왕실의 의복을 만들던 ‘상의원’을 배경으로 했기에, B급 정서로 중무장했던 발랄한 코미디 <남자사용설명서>로 영화판에 입성한 이원석 감독의 차기작이기에,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감각적인 사극 영화를 기대해볼 법도 했다. 





그러나 여러 화려한 의복이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한다는 것 외에 정작 ‘상의원’이라는 독특한 공간만이 펼칠 수 있는 특별한 이야기와 캐릭터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공진의 재능을 부러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시기하는 조돌석과 그를 곧잘 따르는 해맑은 영혼의 소유자 이공진이 마치 <아마데우스>의 살리에르와 모짜르트를 보는 것 같다면, 중전을 흠모하는 이공진과 중전의 미묘한 관계는 흡사 <광해, 왕이 된 남자>의 하선(이병헌 분)과 중전(한효주 분)을 연상케한다. 여기에 한국 사극의 단골 소재인 궁중 암투가 빠질 수 없다. 





조돌석이 이공진을 마냥 시기, 질투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마음을 나눈 좋은 친구였다는 차별점을 드러내고자 했지만, 판에 박힌 인물들 간의 관계의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낸 <상의원>을 그나마 살린 것은 눈을 쉽게 뗄 수 없는 아름다운 한복과 평면적인 캐릭터조차 혼을 불어넣고자 하는 배우들의 열연이다. 


극 중 이공진의 재능을 인정하면서도,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결국 이공진을 위기에 몰아넣는 조돌석 역의 한석규는 늘 그랬듯이 최상의 안정감있는 몰입도를 선사하며, 시대를 앞선 파격적인 의상으로 조선을 뒤흔든 이공진이 된 고수는 잘생긴 외모에 넉살을 더해 예쁜 중전은 물론,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한석규와 고수의 팽팽한 연기 대결과 아름다운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박신혜의 단아한 미모 속에서도 꿋꿋이 존재감을 발휘하는 유연석이 눈길을 끄는데, 절대 권력을 위해서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조차도 과감히 내칠 수 있는 젊은 왕의 예민한 잔혹함이 밋밋한 드라마에 잠시나마 활기를 불어넣는다. 12월 24일 개봉.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