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방영한 KBS <착하지 않은 여자들>의 안국동 강선생의 세모녀는 과거 상처를 받았고, 그로 인한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있지 못한 상태다.
엄마 강순옥(김혜자 분)은 남편 김철희(이순재 분)이 30년 전 외도로 집을 나간 이후 긴 세월 외롭게 살았으며, 성공한 앵커우먼으로 대한민국 최고 신붓감이었을 김현정(도지원 분)이 반평생 싱글을 택한 것도 어머니와 자신을 버린 아버지에 대한 증오감이 그녀의 마음 한켠에 자리잡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안국동 강선생 세모녀 중에서 가장 과거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이는 순옥의 둘째딸 김현숙(채시라 분)이다. 아들 귀한 집에 사내 아이로 태어나야했지만, 여자 아이로 태어난 현숙은 어릴 때부터 우등생 언니 현정과 줄곧 비교당하며 할머니의 구박을 고스란히 받아야했다. 학교에 들어가서는 자신을 미워하는 담임 교사 나말년(서이숙 분, 나현애로 개명)에 의해 부당한 퇴학을 받았다.
그 때문에 줄곧 열등감과 학벌 콤플렉스를 달고 살아야했던 현숙은 자신의 외동딸 정마리(이하나 분)을 반듯한 엘리트로 만드는 것으로 대리 만족을 느끼고자 한다. 하지만 현숙의 원래 뜻대로 대학 교수 자리에는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밀려났지만, 그래도 명문대 박사에 걸맞는 사회적 위치를 가진 남자와 결혼 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던 딸 마리가 검도 사범을 만나고 있다고 한다. 설상가상으로 마리의 남자친구의 엄마는 자신의 철천치 원수 나현애다.
영문도 모르고 다시 집으로 되돌아왔지만 이내 기억을 되찾은 철희. 그리고 서로를 사랑하는 자식들 때문에 또다시 정면으로 충돌하게된 현숙과 현애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면서 <착하지 않은 여자들>은 제2라운드에 접어들었다.
장모란(장미희 분) 때문에 집을 나간 자신 때문에 30년 이상 고통 속에서 살았던 아내와 자식들과 달리, 철희는 30년 전의 기억을 모두 잃어버린 상태다. 순옥의 지고지순한 노력 때문에 순옥이 자신의 아내였다는 것을 어렴풋이 인식할 때 쯤, 가족과 함께 간 기차여행에서 예전의 기억을 떠올린 철희는 그제서야 30년 전 자신이 저지른 행동에 대한 죄책감에 빠진다.
현숙이 딸 마리와 급이 맞지 않다면서, 자신의 아들 루오(송재림 분)을 앞에 두고 모욕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던 현애는 순간 화를 참지 못하고 현숙의 뒤통수를 가격한다. 이내 현숙은 현애를 폭행죄로 고소하고, 30년 전과 달리 입장이 완전히 뒤바뀌어버린 현애는 울분을 토한다. 30년 전 자신에게 그랬듯이 진심을 다한 반성문을 요구하는 현숙에게 현애는 그럴 수 없다고 응수한다. 하지만 고소에 이어 청소년 상담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던 와중 벌인 비리 때문에 사면초가에 몰린 현애는 어쩔 수 없이 현숙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척한다.
지난 날 받았던 충격과 아픔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 세월이 흘려 자연스레 나이는 들었지만, 이들이 살고있는 시간은 여전히 자신들에게 고통을 안긴 ‘그 날’에 머물러있다. 그 때 받았던 상처를 제 때 치유받지 못한 사람들은 수십 년이 지난 후에도 아픔 속의 과거를 움켜쥐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 트라우마는 자신뿐만 아니라, 주위의 사람들, 자식들까지 번져 또다른 고통으로 이어나간다.
어떤 이들은 말한다. 때로는 망각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하지만 망각의 힘은 어떠한 불미스러운 사건, 사고에 대한 재발 방지와 근본적인 치유가 뒤따를 때 제대로 발휘하는 법이다. 불행히도 30년 전 자신들이 받은 아픔에 대해서 그 어떠한 제대로 된 해결책없이 흘려 내보내야했던 순옥의 세 모녀는 시간이 지나도 그 때 그 날의 일들을 쉽게 놓지 못한다. 그리고 그 과거는 그녀들의 현실을 억누르며, 끊임없이 지난 날의 굴레에 빠지게 한다.
물리적인 시간은 지나도, 자신들을 힘들게했던 과거를 극복하지 못하고, 여전히 그 주위를 맴돌고 있는 사람들. 망각이 최선이라고 은연중에 강요하는 시대, 치유 받지 못한 지난 날의 상처를 부여 잡으며, 계속 새로운 비극을 잉태해나가는 <착하지 않은 여자들> 속 사람들이 마냥 허구 속 등장인물들처럼만 보여지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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