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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전망대

압구정 백야. 극적인 재회 나눈 백야와 장화엄. 그럼에도 여전히 찜찜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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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방영한 MBC <압구정 백야> 141회에서 속세와 인연을 끊고 비구니가 되기로 결심한 백야(박하나 분)은 자신의 위장 자살이 진짜인 줄 알고 이성을 잃은 장화엄(강은탁 분) 소식을 듣고, 부리나케 화엄이 있는 병원으로 향한다. 그 곳에서 애틋한 재회를 나눈 백야와 장화엄. 다시 돌아온 백야에, 그녀와 화엄의 결혼을 반대했던 화엄의 조모 옥단실(정혜선 분)과 문정애(박혜숙 분)은 흐뭇한 미소를 감추지 못한다. 





화엄의 집안을 거의 풍비박산하다시피했던 백야의 자살 소동극은 백야가 돌아옴에 따라, 헤프닝으로 일단락되었다. 백야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니 모든 것이 일사천리다. 그토록 백야와 화엄의 결혼을 말렸던 단실과 정애도 화엄이 병석에서 일어나자마자 둘을 결혼시킬 분위기고, 백야와 오랜 앙숙이었던 그녀의 친어머니 서은하(이보희 분)과의 관계도 급화해로 돌아설 듯하다. 전작 <오로라 공주>처럼 살벌한 '데스노트'는 없었지만, 그 못지 않게 충격적인 전개로 화제를 모은 <압구정 백야>의 결말은 보통의 일일 드라마처럼 해피엔딩으로 끝날 듯하다. 


그런데 모든 주인공들이 묵은 앙금을 풀고, 하하호호 지내기에는 지난 141회 동안 벌어놓은 사건들이 상당하다. 이는 <압구정 백야> 뿐만 아니다. 대부분의 일일, 주말 드라마가 보여주는 현상이다. 드라마 종영을 몇 회만 남겨둔 시점에도 "너 죽고 나 죽자" 식으로 치고박고 싸웠던 등장 인물들은 극적인 상황을 계기로 화해 혹은 악인이 죗값을 치룬다는 식으로 훈훈하게 마무리 짓는다. '열린 결말'을 보여주는 드라마도 종종 있으나, 등장 인물들의 선악 구도가 명확하고, 악인으로 등장하는 인물의 악행이 심하게 그려지는 드라마일 수록 전형적인 인과응보, 해피엔딩 식 결말이 뚜렷한 편이다. 


그런데 <압구정 백야>의 여주인공 백야는 주인공임에도 불구, 악인에 가깝다. 물론 그녀가 복수의 화신이 되어버린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어릴 적 자신과 오빠를 버린 매정한 친어머니. 하지만 그 친어머니는 부모를 찾는 백야 오빠 백영준(심형탁 분)의 손길을 야멸차게 거절했고, 영준을 죽음으로 모는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한다. 이 모든 불행이 친어머니 은하에게 비롯된 사실에 분개한 백야는 은하를 향한 복수를 감행한다. 은하의 의붓 아들 조나단(김민수 분)과 결혼하는 것. 나단과의 결혼을 말리는 은하의 반대가 확고하긴 했지만, 결혼에 이르는 과정은 비교적 순탄했다. 문제는 결혼 이후다. 


접근 자체가 '복수'라는 불순한 의도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시작부터 잘못된 결혼에 대한 대가는 나단의 황당한 죽음으로 귀결된다. 나단이 죽은 이후, 백야는 속죄(?) 하는 의미에서 자발적으로 은하네 집으로 들어가 시집살이를 자청한다. 그런데 누가봐도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잡는 '역시집살이'다. 그마저도 언제부턴가 시들해지더니, 어릴 때부터 백야에게 연정을 품던 화엄이 백야에게 결혼하자고 다짜고짜 매달린다. 하지만 화엄 집안은 남편을 잃은 지 얼마되지 않은 백야를 며느리로 들이는 것을 탐탐지않게 여기고, 결국 백야는 자신이 죽은 것처럼 위장하여 비구니가 되겠다는 극단적인 선택을 감행한다. 


놀랍게도 <압구정 백야>는 선악구도가 명확하지 않다.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인물들만 존재할 뿐이다. 장무엄(송원근 분)과 결혼한 이후 돌변한 육선지(백옥담 분) 또한 타고난 악녀라기보다는 속물과 허영심으로 가득찬 인간에 가깝다. 비단 <압구정 백야> 뿐만 아니라, 임성한 작가의 드라마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속물적이고, 위선적이다. 


그런데 유일하게 여주인공을 사랑하는 남자들만은 임성한 작가 특유의 속물 근성 가득한 욕망덩어리와 거리가 멀다. <압구정 백야>만 봐도 집안, 학벌, 외모, 직업 모든 것을 다 갖춘 화엄과 나단은 일편단심 백야를 향한 눈물겨운 순애보를 보여준다. 연이은 줄초상에 비하면 충격의 강도가 한참 약하긴 하지만, 자살로 위장하여 산 속으로 들어간 백야의 행보가 황당한 헤프닝으로 끝난 것도, 백야를 향한 화엄의 애틋한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온갖 시련과 좌절 끝에 극적으로 상봉한 백야와 화엄. 그런데  시청자 입장에서는 분명 눈물겹고 뭉클하게 다가와야할 두 선남선녀의 재회임에도 불구, 이상하게도 코미디 프로그램 속 한 코너를 보는 것 같다. 드라마 속 등장 인물들은 마치 세상의 모든 고통을 짊어진듯 심각한 표정을 지어보이지만, 그걸 보는 시청자들은 깔깔깔 웃게하는 아이러니함. 가히 임성한이 구축한 세계니까 가능한 헤프닝이다. 


어찌되었던, <압구정 백야>를 끝으로 은퇴를 발표한 임성한 작가는 자신의 마지막 작품을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지을 생각인가보다. 하지만 아직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모두다 행복해지는 가능성을 보여주었음에도 불구, 뭔가 불길한 한 방이 나올 것 같은 예감이 드는 것은 무엇일까. 이 또한 임성한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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