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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전망대

착하지 않은 여자들. 위선덩어리 나현애는 변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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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KBS <착하지 않은 여자들> 종영을 하루 앞두고서야 김현숙(채시라 분)은 30년 전 자신의 고교 퇴학을 이끈 장본인 윤미숙으로부터 사과를 받아낸다. 그럼에도 당시 현숙을 퇴학시키는데 앞장섰던 나현애(나말년, 서이숙 분)는 과거의 일로 자신을 옭매이는 현숙이 귀찮기만하다. 여전히 자신이 저지른 행동에 모르쇠로 일관하는 현애에게 현숙이 진정한 사과를 받아내는 일은 요원해보인다. 





30년동안 억울하게 고등학교를 퇴학당한데에 대한 한을 품고 살았던 현숙이 원하는 바는 딱 두가지이다. 첫째, 학교 측으로부터 퇴학무효처분을 받는 것과, 자신을 도둑으로 내몰고 학교에서 쫓나낸 현애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받아내는 것. 다행히도, 지난 13일 방영한 23회에서 현숙은 그토록 기다리던 퇴학무효처분을 받아냈고, 이로소 그녀가 퇴학하는데 결정적인 이유로 작용했던 도둑 누명도 말끔히 벗어냈다. 


그러나 문제는 나현애이다. 원래 가지고 있던 이름을 개명할 정도로 불우했던 지난 날과 완전한 단절을 꿈꾸는 나현애는 남에게는 엄격하지만, 자신에게는 한없이 관대한 위선적인 인물이다.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려는 나현애에게 구태여 30년 전 있었던 불미스러운 사건을 가지고 물고 늘어지는 현숙은 하루라도 빨리 떼어내고 싶은 거추장스러운 존재다. 


현애와 같은 인물들은 쉽게 자신의 잘못이나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다. 자신이 행하는 행동을 무조건 옳고 바른 것이라고 일방적으로 판단해버리는 현애는 본인 스스로 한 치의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다. 그럴 수록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계기로 작용하면 좋겠지만, 현애가 택한 방식은 ‘회피’다. 수십년 동안 현애는 자신이 벌인 실수, 잘못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해왔다. 대신 자신의 치적을 부각시키며 과거 훌륭한 교사였던 우아한 서초동 사모님으로 이미지 구현에 성공한다. 


이제는 고결한 귀부인으로 살고싶은 현애에게 현숙은 감추고싶은 그녀의 치부를 수면 위로 떠오르게하는 일종의 재앙이다. 하지만 현숙에게 30년 전 퇴학사건은 그녀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뀌게한 비극적인 상처다. 평생을 고교 퇴학 컴플렉스에 갇혀살았던 현숙에게 퇴학무표처분과 나현애의 사과는 불우했던 지난날을 딛고 일어나고 싶은 그녀에게 꼭 넘어야할 산이다. 


미숙으로부터 기어코 사과를 받아내는 현숙에게 현애는 이렇게 말한다. “너도 애엄마이면서.” 현숙이 수십년전 과거로 걸고 넘어지지 않았어도, 조용히 덮고 지나갈 수 있었다. 자신이 무심코 던진 돌 때문에 누군가는 큰 고통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지못하는, 아예 알려고도 하지 않는 현애는 구태여 미심쩍게 지나간 과거 문제를 다시 제기하는 현숙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하지만 현애가 자초한 현숙의 문제는 현숙 혼자 참아내고 분을 삭힌다고 해도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억울하게 학교에서 쫓겨난 이후 현숙은 종종 가족에게 민폐를 끼치는 사고뭉치로 전락하고 만다. 학교를 제대로 마치지 못했던 컴플렉스를 극복하고자 딸 정마리(이하나 분)를 자신의 뜻대로 명문대 박사로 만들었지만, 여전히 현숙은 행복하지 않다. 고교 퇴학 컴플렉스로 스스로를 ‘상처투성이’라고 일컫는 현숙이 명문대 박사인 자신의 딸과 급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마리의 남자친구 이루오(송재림 분)와의 교제를 악착같이 반대하는 것은 그녀가 가진 이중성을 명확히 보여주는 결정적 장면이다. 평생 현애를 원망하며 살았던 현숙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현애를 닮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억울함을 증명하고자하는 현숙의 노력은 그녀의 인격, 성품과 별개로 평가받아야한다. 고교 퇴학의 아픔을 이겨내고자 나름 열심히 살았지만, 30년 전의 트라우마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한 현숙은 용기를 내어 지금까지 자신을 힘들게하는 과거와 정면으로 부딪치고자 한다. 


억울하게 돌을 맞아 평생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입었는데,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주기는 커녕, 개인적으로 감당하고 극복해야할 문제로 국한시키는 분위기가 팽배한 사회에서 자신에게 손해를 입힌 잘못된 과거를 되짚고자했던 현숙의 고군분투는 쉽지 않았다. 자신에게는 그저 잊고 싶을 뿐인 수십년 전 일로 자신을 몰아세우는 김현숙이 야속할 뿐인 나현애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부끄러운 치부는 감추기에만 급급한 현애는 현숙을 부당하게 불량 학생으로 몰아세운 자신의 잘못을 도통 인정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 오늘 방영하는 최종회에서 나현애에게서 갑작스런 ‘개과천선’이 일어나지 않는 한 김현숙을 향한 그녀의 진심어린 사과는 여전히 요원해보인다. 설령 나현애가 극적으로 변한다고 한들, 어디까지나 드라마니까 가능한 기적이라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우리는 지금 그런 세상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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