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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전망대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괴기한 이야기에 숨겨진 비극적인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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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의 수남(이정현 분)은 항상 꿈을 꾼다.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엘리트가 되는 꿈, 청각장애인인 남편 규정(이해영 분)이 수술을 잘 받아 귀가 잘 들리는 꿈, 불의의 사고로 손가락을 잃은 남편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평소 그의 꿈인 집을 장만하는 꿈, 자살을 기도하다 식물인간이 된 남편이 다시 의식을 회복하는 꿈, 그리고 재개발이 이뤄져 집을 보다 높은 가격에 팔아 남편 병원비에 보태는 꿈. 





하지만 이상하게도 간절히 바라던 꿈이 하나씩 이뤄질 수록 수남이 짊어지고 가야할 고통과 불행은 점점 더 커져만 간다.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장편제작과정 출신의 안국진 감독의 첫 장편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참으로 기괴하고도 끔찍한 영화다. 내용 전개가 지나치게 엉뚱하고 극단적으로 치닿는다는 느낌도 없지 않다. 하지만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엔딩 크레딧이 끝나도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게하는 묘한 힘이 있다. 





극 중 이정현이 맡은 수남은 다양한 면모를 가진 야누스 같은 인물이다. 우선 그녀는 굉장히 순수하고도 순진하다. 자기만 열심히 하면 남부럽지 않게 잘 살 수 있다고 믿는 수남은 뼈빠지게 일만 한다. 이미 회복 불능 단계에 접어든 남편도 자신이 열심히 수술비만 대면 깨어날 것이라고 철썩같이 믿는다. 그러나 수남이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죽어라 일을 할 수록 늘어나는 것은 빚뿐이다. 


개미처럼 묵묵히 일만 해서는 잘 살 수 없는 이 세상을 살아가기에 지독할 정도로 순진했던 수남은 왜 그녀가 열심히 일을 해도 더 가난해지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대신 반드시 꿈을 이루겠다는 맹목성만 존재할 뿐이다. 착하게만 살아서는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수남은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살고자 한다. 그런데 그 방식이 너무나도 황당하고 잔인하다. 그렇게 그녀는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물불 안가리는 괴물이 된 것이다. 





그 누구보다 착하고 성실했던 수남을 마녀로 만든 것은 그녀를 둘러싼 환경이다. 수남 혼자 장애인 남편을 혼자 부양하면서 힘들게 살아감에도 불구, 그들에게 제공되는 복지는 지극히 형식적이다. 수남의 주변인 대다수가 수남의 어려운 형편을 이용하여, 자신에게 유리한 목적을 이루려고만 하지 그녀를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이는 하나 없다. 


생존을 위한 각개 전투에 나설 능력도 되지 않는 사람들이 속수무책 쓰러지건 말건, 자기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이기심만 존재하는 사회. ‘성실한 나라’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로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가 구현하는 세상은 냉혹하고도 비정하다. 하지만 약간의 과장이 있을지 언정, 2015년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이토록 실감나고 섬뜩하게 그려낸 영화가 또 있을까. 





한 개인을 넉넉하게 감싸주는 넉넉한 배경이 없다면, 꿈이 이뤄지는 세상이 아닌, 꿈을 꿀수록 불행해지는 세상. 여전히 자기만 잘하면 얼마든지 꿈을 이룰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는 수남과 달리, 일찌감치 현실을 깨닫고 많은 것을 포기한 현 청년 세대를 위한 잔혹동화. 순수와 광기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이정현의 폭발적인 명열연과 더불어 이 황당할 정도로 등골 오싹하게 하는 이야기가 엔딩 크레딧이 끝나도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게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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