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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전망대

사도. 살아가는 방식이 달랐던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이 빚어낸 잔혹한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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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수리의 아들로 태어나 평생 정통성 결여에 시달렸던 아버지와 부모의 기대와 달리 자유분방했던 아들, 아버지를 죽인 할아버지의 마음에 쏙 드는 세손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 해야했던 손자. 그 어떤 셰익스피어의 비극보다도 더 극적이고 잔혹한 이야기이기에 수많은 드라마, 영화로 회자되었던 사건을 이준익 감독은 영화 <사도>를 통해 다시 꺼내어든다. 





영조가 아들 사도세자를 죽인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존재하지만, 이준익 감독은 부자간의 갈등, 엄밀히 말하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 판이하게 달랐던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그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로 풀어나가고자 한다. 


출생으로 인한 트라우마로 인해 평생 컴플렉스에 시달렸던 영조(송강호 분)는 왕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모든 면에서 신하들을 압도하는 뛰어난 자질을 과시하는 것만이 군주로서 위엄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었던 영조는 자신의 아들 세자(유아인 분)에게도 자신이 살아왔던 방식 그대로를 강요한다. 하지만 아버지의 뜻과 달리 공부보다도 예술, 무술에 더 관심이 많았던 세자는 자연스레 아버지의 눈엣가시로 자리잡는다. 





아들과의 관계에서도 아버지가 아닌 궁중의 예법을 강조하며 매사 엄격히 아들을 다루던 영조와 그런 아버지에게 강하게 반발하던 세자의 대립은 좀처럼 좁혀질 기미가 보여지지 않는다. 심지어 영조는 세자를 향해 “넌 존재 자체가 역모야.”라는 폭언까지 일삼는다. 결국 갈등의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진 부자는 살아남기 위해 서로에게 칼을 겨누게 된다.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부자간의 치킨게임에서 세자의 아내 혜경궁 홍씨(문근영 분)을 비롯한 주변인들중 어느 누구도 세자의 편을 쉽게 들지 않는다. 그 중에서 가장 힘이 센 영조의 눈치를 보며 각자 살아남을 방도만 열심히 모색할 뿐이다. 


영조가 아들 사도세자를 죽음으로까지 내몬 데에는 여러가지 가설이 있지만, 분명한 이유는 딱 하나,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이다. 마찬가지로 세자의 친모인 영빈(전혜진 분), 혜경궁 홍씨도 이미 영조의 눈밖에 난 아들과 남편을 구하는 대신, 그나마 왕이 될 가능성이 있는 세손을 지키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세자를 버린다. 





살아남기 위해 가족도 죽이는 일이 예사가 되어버린 궁중에서 그들이 늘상 강조하는 예법은 사라진지 오래다. 가장 힘 센 사람의 말이 법이며, 보다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것이 아닌, 자신의 기존 자리를 지키며 살아남는 것이 지상최대의 목표가 되어버린 이들의 관심사는 오로지 생존이다. 


그간 궁중 내 권력에 대한 욕망과 암투를 집중적으로 담아내던 여타 사극과 달리 <사도>는 누군가를 짓밟고 이겨 지금보다 더 좋은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열망이 보이지 않는다. 내가 살기 위해 누군가를 죽여야만하는 딜레마만 존재할 뿐이다. 그 대상이 아버지이든, 아들이든, 남편이든 오직 자신이 살아남아야한다는 욕망만 가득하던 이들은 결국 돌이킬 수 없는 비극으로 치닿게 된다. 





나 하나 살자고 아들을 뒤주에 가두어 죽인 영조와 세손을 위해 세자의 죽음을 묵인해야만했던 영빈과 혜경궁 홍씨는 분명 사도세자의 죽음에 자유로울 수 없는 살인자이며, 방관자들이다. 


그러나 이들의 잔인무도한 행위에 돌을 던지는 대신, 가족을 죽게한 죄책감에 가슴을 치며 통곡하는 아이러니한 슬픔에 함께 울 수 있는 것은 자칫 잘못하면 목숨을 잃을 수 있는 궁중 안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했던 사람들의 비극적 운명이 가슴에 와닿기 때문은 아닐까. 





생존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지, 차마 뒤를 돌아볼 겨를이 없었던 완고한 영조와 그런 아버지를 이해하려고 하면서도 매번 아버지의 기대에 어긋날 수밖에 없었던 세자. 각자 살아가는 방식이 달랐을 뿐더러, 소통 또한 원활하지 않아 평생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었던 아버지와 아들은 결국 생사의 갈림길에 서서야 쉽게 꺼낼 수 없었던 서로의 속마음을 털어내기 시작한다. 


그 누구보다도 세자가 좋은 왕이 되어 자신의 위신을 세워주길 간절히 바랐던 아버지와 아버지의 마음에 쏙 드는 왕이 되고 싶었던 아들은 아들을 죽은 왕. 미쳐서 아버지를 죽이려고 했던 아들로 기억되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을 똑똑히 목도한 세손은 할아버지와 어머니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으면서도,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를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이것이 이준익 감독이 송강호, 유아인, 전혜진, 문근영, 소지섭 등 명배우들과 함께 덤덤하게 재연한 영조와 사도세자, 정조 이야기의 전부다. 





최대한 객관적이게 조선 역사상 가장 큰 비극 중 하나인 아버지 영조와 아들 사도세자과의 갈등을 그리고자 하면서도, 살아남고자 하는 욕망을 예리하게 포착한 <사도>. 생존이 그 어느 때보다 화두인 시대, 나날이 깊어져가는 세대간의 갈등과 그 원인까지 영조와 사도세자의 이야기로 빗대어 풀어내고자 한, 지금 이 시점에서 절실히 필요한 이야기가 안겨주는 울림은 크고도 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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