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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전망대

시그널 2회. 1989년으로 돌아간 무전기. 그 시절 진짜 얼굴과 응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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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반은 한국영화에 있어서 수준높은 작품이 연이어 쏟아지던 시기 였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류승완, 2000)을 시작으로 <공동경비구역JSA<박찬욱, 2000), <소름>(윤종찬, 2001), <복수는 나의 것>(박찬욱, 2002), <지구를 지켜라>(장준환, 2003), <바람난 가족>(임상수, 2003),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에 빛나는 <올드보이>(박찬욱, 2003) 등 지금까지도 한국영화의 대표작으로 거론되는 영화들이 즐비한 2000년대 초반에도 가장 평단과 관객들의 높은 지지를 얻었던 영화는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2003)이다. 


이 영화는 잘 알려져있다시피 지금까지도 미제로 남아있는 ‘화성연쇄살인사건’을 다룬다. 이 ‘화성연쇄살인사건’은 훗날 tvN <갑동이>(2014), 그리고 지난 22일 첫 방영한 tvN <시그널>의 모티브로 이어지게 된다. <살인의 추억> 개봉 당시에도 ‘화성’을 다루었다는 이유만으로 화제가 되었고, 이 영화가 오랜 숙원 이었던 범인 찾기에 조금이나마 기여 했으면 하는 바람도 없지 않아있겠지만, 슬프게도 이 영화는 정작 범인을 잡는데는 그리 큰 도움은 되지 못했다. 범죄물을 표방했지만, 사실상 미스터리에 더 가깝고, 범인을 잡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경찰의 유능성을 강조하기 보다, 수사과정에서 벌어지는 폭력과 억압을 중점적으로 다루었던 이 영화는 그 당시에도 확실히 문제작 이었고, 할리우드 색채가 뚜렷한 장르물을 한국식으로 옮기는데 능하면서도, 사회적 메시지까지 고스란히 전달할 줄 아는 봉준호 감독의 저력을 완전히 각인 시키게 한다. 


그로부터 13년이 지난 지금도, 한국의 젊은 영화학도들 사이에서 한국영화의 모범이라 불리며, 제2의 봉준호가 되기를 자청하게 만드는 이 영화의 힘은 어느 누구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끔찍한 사건을 통해 당시 한국 사회를 돌아보고자 했던 감독의 의지가 있었다. 


영화의 모티브가 되었던 ‘화성연쇄살인사건’이 처음으로 일어난 1986년은 민주화를 요구하는 항쟁의 열기와 이를 저지 하려는 공권력 과의 싸움으로 얼룩진 한 해였다. 당시 1988년 서울 올림픽이 열리기 전, 서울을 전세계에 처음으로 알리는 아시안게임이 한창이었다고 하나, TV 화면에 비치는 서울의 아름다운 풍경을 과시하기 위해, 힘없는 민중들의 보금자리가 소리소문도 없이 파괴 되었다는 것을 알리는 곳은 거의 없었다. <살인의 추억>이 주목하는 1980년대 중반의 핵심은 여기에 있었다. 독재 정권의 정당성을 보여주기 위해, 사건과 무고한 사람이 범인으로 의심받고, 그를 범인으로 몰고가기 위해 잔인한 고문이 꺼리낌없이 행해져왔던 시대. 연쇄살인마에게 이유없이 끌러갔던 부녀자들의 억울한 죽음도 끔찍하지만, 용의자 자백을 받아낸다는 명분 하에 벌어지는 취조실 내 사건 또한 보는 이들의 심장을 떨리게 하는, 이 영화가 기억하고자 하는 살인의 추억은 단순히 ‘화성’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 그 자체만 국한되지 않았다. 






<살인의 추억> 이후 ‘화성’을 다룬 드라마로는 <갑동이>도 있었지만, <살인의 추억>이 내포하고 있던 문제의식, 시대정신까지 함께 계승하고자 하는 적자의 영예는 일단 <시그널>에게 돌아갈 듯하다. 첫 회부터, 공권력의 무능함과 불성실함을 폭로하는 이 드라마는 우여곡절 끝에, 영원히 미제로 남을 뻔한 유괴사건을 일단락짓고, 이 드라마의 진짜 주제인 ‘경기남부 부녀자 살인사건’으로 활시위를 당긴다. 


그런데, 첫 회에서 ‘김유정 유괴사건’을 해결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던 존재가 놀랍게도 15년 전에서 온 무전이다. 마치 오래 전 부터 2015년을 살고있는 박해영(이제훈 분)과 계속 연락을 주고 받았다는 듯이, 태연하게 박해영 경위님이라고 부르는 무전 속 이재한(조진웅 분)의 정체는 간담까지 서늘하게 한다. 





그렇다. 2015년 박해영과 무전을 주고 받는 2000년의 이재한, 그리고 앞으로 ‘경기남부’ 사건을 해결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줄 1989년 이재한은 이미 사람들의 기억 속에 완전히 잊혀진 유령같은 존재다. 그가 2000년 있었던 의문의 실종사고 이후 그의 생사는 여전히 불투명하지만, 사람들은 이미 그를 잊었고, 그와 관련된 기억까지 완전히 잊고 싶어한다. 


하지만 완전 범죄가 없듯이, 완전한 기억 말살도 존재하지 않는다. 15년 전에서 온 무전을 타고 2015년 사람들 앞에 ‘짠’하고 나타난 이재한은 누군가에 있어서는 그리움과 반가움의 존재일 것이고, 다른 누군가에 있어서는 <해리포터>의 볼드모트처럼 이름도 언급 해서는 안될 두려운 존재다. 이재한을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이재한을 떠올리게 하는 단서조차 필사적으로 막으려고 하는 것은, 그들이 감추고 싶은 비밀, 비리와 깊숙이 연관되어있기 때문이다. 





 2000년, 이재한 실종사건 당시, 그 사건에 적극 가담하거나, 방조한 이들은 어떻게든 이재한의 실종과 관련된 진실이 드러나는 것을 막을 것이고, 그러기 위해 더 큰 음모를 꾸밀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록, 그들의 추악한 맨 얼굴이 더 명확히 드러나는 법이다. 어린이 유괴 사건, 연쇄살인사건 등 강력 범죄로 상처받는 피해자 가족들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희망과 믿음 하에 이 드라마가 기획 되었다고 하나, 그들의 바람이 하나둘씩 실현될 수록 아이러니하게도 사건을 일으킨 범죄자 외에도 진실이 드러나는 것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들도 있다는 것을 넌지시 알려주는 <시그널>이 진짜 시청자들에게 보내고 싶은 신호는 무엇일까. 





과연 1989년으로 발길을 재촉하는 <시그널>은 서울올림픽의 영광과 경제성장의 풍요로움에 숨겨진 80년대 후반의 진짜 얼굴을 찾아내는데 성공할 수 있을까. 2000년에 이어 1989년 그 때 그 시절로 조용히 주파수를 맞추고자하는 <시그널>에 적극적으로 응답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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