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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전망대

사임당 빛의 일기. 민폐 여주로 등극한 사임당 역사 왜곡도 정도껏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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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사임당 빛의 일기>(이하 <사임당>)은 역사적 사실과 픽션이 결합한 판타지 역사 드라마이다. 하지만 아무리 허구가 가미된다고 한들, 역사 왜곡 수준의 픽션까지 쉽게 받아들이겠다는 말은 아니다. 특히나 신사임당처럼 5만원권 지폐 인물로 선정될 정도로 유명한 역사적 인물이면 더더욱 말이다.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신사임당은 서인의 종주로 성리학을 집대성한 율곡 이이의 어머니이자, 시와 그림 등 예술에 조예가 깊었던 현모양처의 상징이었다.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신사임당이 현모는 맞지만 양처라는 의견은 분분하지만, 어찌되었던 우리에게 신사임당은 율곡 이이를 훌륭하게 키운 어머니이다. 


드라마 <사임당>은 율곡 이이 어머니 이미지에만 얽힌 사임당을 새롭게 조명하고자 한다. 드라마 기획의도대로 사임당에게도 애틋한 첫사랑이 있었는지도 모르고, 조선후기 보다는 여성들의 삶이 자유로웠다고 한들, 여성들의 사회 진출은 꽉 막혀있던 조선이라는 사회에 비판의식을 가지고 나름대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율곡 이이 어머니라는 사실과 그녀가 남긴 몇 점의 글과 그림을 제외하면 그 어느 것도 기록으로 남겨진 것이 없기에 으레 짐작과 추측만 가능할 뿐이다. 


여성으로서 시대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파이터 사임당의 모습만 기대한 것은 아니다. 안타깝게 이뤄지지 못한 첫사랑도 많은 사람들이 겪게되는 성장의 단면 이기 때문에, 사임당이라는 인물을 입체적으로 그리기 위해서 요긴하게 쓸 수 있는 극적장치가 될 수 있다. 하지만 4회까지 바라본 <사임당>은 사임당(이영애 분)의 첫사랑 이겸(송승헌 분) 이야기에 너무나도 많은 부분을 할애하는 것 같다. 그래, 사임당을 잊지 못한 이겸이 남긴 그림과 사임당 일기가 이야기의 단초로 작용하니 사임당과 이겸의 관계가 중요하게 다뤄질 수밖에 없겠다. 그런데 사임당의 이야기를 꼭 그녀의 첫사랑으로 풀어내야하는지는 의문이다. 지금까지 영화나 드라마로 다뤄지지 않았던 사임당을 그려낼 수 있는 방식은 무궁무진할 터인데 왜 하필 사임당의 첫 사랑으로 드라마의 실마리를 찾아야만 할까. 




그런데 더 골때리는 것은 끝내 이뤄지지 못했던 어린 사임당(박혜수 분)과 이겸(양세종 분)의 이별을 다루는 방식이다. 사임당과 이겸은 혼인을 약속하지만, 그들 사이를 질투한 석순(훗날 휘음당 최씨)의 간계로 오해가 쌓이던 찰나, 사임당이 비극의 소용돌이 한복판에 서게 되면서, 사임당과 이겸의 관계는 파탄을 맞게 된다. 이겸과의 혼약 파기는 둘째치고, 무고한 백성들을 죽음으로 내몰린 것 모두 사임당이 자초한 일이다. 너무나도 정의로운 탓에 불의를 참지 못하는 사임당의 패기가 수많은 백성들과 그녀의 아버지를 죽인 셈이다. 


사임당은 단지 백성들이 기근에 고생하는 와중에도 사치와 향락을 일삼는 위정자들에게 실망해 그들을 비판하는 그림에 중종(최종환 분)이 아버지에게 내린 시를 함께 썼을 뿐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자신을 포함 모든 이들을 불행하게 만든 사임당의 행동은 민폐의 끝판왕이자, 고구마 1000개를 먹은 것 같은 답답함만 안겨준다. 




무엇보다도 사임당 아버지 신명화가 당쟁에 휘말려 목숨을 잃었다는 역사적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아무리 사임당의 첫사랑을 극적으로 그리고 싶다고 한들, 역사왜곡도 정도껏이다. 역사적 사실이 아닌 허구는 이겸이라는 가상의 인물로 족하다. 여기에 <사임당>은 이겸을 오랫동안 사모해왔고, 사임당의 재능을 질투한 악녀 휘음당 최씨까지 등장한다. 흡사 MBC <대장금>에서 민정호(지진희 분)와 궁중 최고의 요리사 자리를 두고 서장금(이영애 분)과 평생을 대결한 최금영(홍리나 분)의 관계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그렇다. <사임당>은 사임당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타임슬립 판타지 드라마를 제외하곤 이영애 최고 출세작 <대장금>과 비슷한 구석이 많아 보인다. (공교롭게도 <대장금>, <사임당> 모두 조선 중종조를 배경으로 한다.) <대장금>이야 서장금이 조선 최고 의녀였다는 기록 외에 아무런 역사적 흔적을 남기지 않았으니,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쉬었지만, 사임당처럼 현모양처 이미지로 굳어진 역사적 인물을 작가 마음대로 그려낸다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또한 2017년 시청자들은 <대장금>의 서장금처럼 너무나도 착하고 불의를 참지 못한 나머지, 매회 온갖 시련은 다 겪는 전개를 원하지 않는다. (물론 아직도 이런 류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중장년층 시청자들이 많이 있기는 하다)신사임당의 재능을 못마땅하게 여긴 나머지 그녀를 질투하고 훼방놓는 악당들의 잔악무도함도 한 두 번이다. 그런데 <사임당>은 벌써부터 악당들에 의해 수도없이 고초를 겪을 사임당의 고난과 묵묵히 뒤에서 사임당을 지켜줄 이겸의 애틋한 로맨스가 훤히 보인다. 홈페이지 등장인물 소개만 봐도 그런 기운이 온다. 우리가 원했던 <사임당> 이야기는 이게 아닌데, 점점 예상을 빗나가는 <사임당>의 앞으로의 이야기가 불안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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