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전망대

'파리의 에릭 로메르' 로메르의 파리를 너무나도 사랑했던 씨네필의 뜨거운 고백

반응형

에릭 로메르 영화를 한번도 보지 않았던 리차드 미섹 감독은 TV를 보다가 우연히 자신이 카메라 앞에 지나가는 영화 한 편을 보게 된다. 그 영화의 제목은 <파리의 랑데부>(1995). 1994년 어느날, 이제 막 호감을 가지고 만나기 시작한 여성과 함께 파리의 거리를 걷던 미섹 감독은 영화를 찍는 것 같은 상황을 무심코 지나갔는데, 그걸 에릭 로메르 감독이 무심결에 포착한 것. 그 때부터 에릭 로메르 영화에 호기심이 생긴 미섹 감독은 에릭 로메르의 초기작부터 그의 유작인 <로맨스>(2007)까지 로메르가 만든 모든 영화를 보게 된다. 너무 로메르 영화에 빠진 나머지 수십 번 이상 돌려 보기까지 한 미섹 감독은 아예 로메르를 위한, 엄밀히 말하면 파리를 사랑한 로메르를 위한 헌정 영화 한 편을 만들게 된다. 이름하여 <파리의 에릭 로메르(Rohmer in Paris)>(2013)이다. 




로메르 영화에 등장한 많고 많은 장면들 가운데 미섹 감독이 집중한 풍경은 로메르 영화에 등장하는 파리의 전경이다. 로메르가 걸었던 영화 여정을 추적하던 미섹 감독은 로메르 영화 속 등장인물들처럼 곁눈질로 (로메르) 영화 속 공간들을 샅샅이 훑으며 로메르와의 연결을 꾀하고자 한다. 원래 파리 출신은 아니었던 장 마리 모리스 셰레는 20대 중반 파리에 정착하며 에릭 로메르라는 이름을 갖게 되고, 그 곳에서 훗날 누벨바그를 함께 이끈 장-뤽 고다르, 프랑수아 트뤼포, 자크 리베트와 교류를 시작한다. 파리의 수많은 지역 중에서도 라탱 지구에서 정착한 로메르는 그의 심리적 고향 라탱에서 수많은 영화를 만들었고, 언제나 라탱 주위를 빙빙 맴도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미섹 감독의 말을 빌러 라탱은 로메르에게 있어 '창조적 자궁'과 다름 없었다. 


안타깝게도, 로메르를 향한 헌정 영화까지 만들며 감독 자신이 너무나도 사랑하는 로메르와 연결(접속)을 시도했던 미섹 감독은 그가 로메르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 지 4개월 만에 유명을 달리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렇게 로메르를 향한 감독의 끈질긴 구애는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가 되어버리고, 이에 상심한 미섹 감독은 로메르 영화 속에 반드시 등장 하는 비슷한 장면들을 모아 이어붙이는 일종의 강박을 보여 준다. 


<오후의 연정>(1972), <비행사의 아내>(1980), <녹색광선>(1986), <내 여자 친구의 남자 친구>(1987), <겨울 이야기>(1992) 등 에릭 로메르의 영화 속 장면들을 인용하여 에릭 로메르의 영화 세계를 이야기하는 <파리의 에릭 로메르>는 일종의 오디오 비주얼 필름 크리틱(시청각 매체로서 영화를 비평하는 형식) 형태를 띄고 있다. 하지만 영화 비평이라고 보기에는 대놓고 에릭 로메르에 대한 사랑 고백을 늘어놓는 영화는 한 시대를 풍미 했던 위대한 영화 감독 에릭 로메르를 향한 뜨거운 연서의 성격도 동시에 가진다. 에릭 로메르를 파리와 영화를 매우 사랑한 씨네필로 위치 시켰던 미섹 감독은 자신 또한 에릭 로메르의 영화를 사랑하는 씨네필을 자청하며 에릭 로메르, 그리고 로메르가 사랑했던 파리에 대한 예찬을 끊임없이 늘어놓는다. 




에릭 로메르를 너무나도 사랑한 나머지, 그를 위한 영화까지 만들었던 미섹 감독은 <파리의 에릭 로메르>에서 이렇게 말한다. 에릭 로메르는 파리를 그냥 찍은 감독이 아니라, 파리를 기록한 감독이라고. 파리에 살고 있는 수많은 파리지앵들의 풍경을 담아내고자 했던 로메르의 영화는 씨네필들의 전설이 되었고, 그들의 가슴을 뛰게한 에릭 로메르 영화 속 파리와 파리의 산보자들은 로메르의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의 기억 속에 여전히 살아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