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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전망대

'기프실(2018)' 4대강 사업으로 사라진 마을. 카메라로 기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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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프실. 외래어처럼 들리는 이 이름은 지금은 이명박 정권의 ‘4대강 사업’으로 사라진 실제 지역명이다. 제20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한국장편경쟁 상영작 <기프실>(2018)의 배경이 된 경북 영주시 평은면 기프실 마을은 영주댐 건설로 수몰된 지역이자, <기프실> 문창현 감독의 친할머니와 아버지 형제가 나고 자란 집안의 뿌리이다. 




다른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감독에게 기프실 마을은 할머니가 살고있는 한적한 시골이었다. 하지만 할머니의 집이 4대강 사업으로 허물어진다는 소식을 접하는 순간, 기프실은 감독의 카메라로 기억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공간으로 체화 된다. 문창현 감독에게 기프실은 할머니와 많은 추억이 깃든 의미있는 장소이자, 4대강 사업으로 파괴되고 소멸되는 지역이다. 


할머니가 살던 집이 영주댐 건설로 수몰된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부터 감독은 할머니의 집과 기프실 마을을 카메라로 조금씩 기록해 나간다. 본격적인 촬영이 진행된 것은 기프실에 살았던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부터 이다. 병환이 있으셨던 감독의 할머니는 오래 살던 집을 떠나 요양원에 계셨고, 죽어서야 비로소 기프실 집을 찾는다. 할머니는 떠나고 없지만 감독은 기프실에 대한 기록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기프실>에는 돌아가신 감독의 할머니 외에도 철거 직전까지 마을을 지켰던 노년의 여성들이 등장한다. 기프실 할머니들과의 만남의 시작은 4대강 사업에 대한 조사와 기록 이었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할머니와 감독의 카메라와의 거리는 점점 좁혀진다. <기프실>은 철거 직전까지 마을을 지켰던 할머니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감독의 친할머니는 기프실 마을을 떠나고 없지만, 감독은 마을에 남아있는 다른 할머니들과 관계를 맺으며 영주댐 건설로 사라진 기프실을 기억하고자 한다. 




영화의 시작은 4대강 사업에 대한 문제 의식에서 출발한다. 오프닝부터 엔딩 타이틀이 올라갈 때까지 <기프실>은 평화롭고 아름다웠던 마을을 송두리째 지워버린 4대강 사업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잃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4대강 정책을 향해 직설적이고 강경한 목소리를 내는 대신, 영주댐 때문에 삶의 터전을 잃은 할머니, 학교를 떠나야하는 어린 학생들, 폐허로 남은 흔적들을 보여주며 한국형 녹색 뉴딜로 추진된 4대강 사업의 허실을 조용히 꼬집는다. 


4대강 사업이 영주댐 건설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기프실 마을에 대한 감독의 관심을 환기 시켰다면, 감독의 친할머니와 얽힌 사적 기억과 마을 할머니들과의 유대 관계는 기프실에 대한 감독의 애착을 끌어올린다. 몇몇 주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영주댐 건설이 기정사실화된 현실에서 감독이 기프실 마을과 주민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카메라로 기록하고 기억하는 것이다. 


돌아가신 할머니를 그리워하고, 철거 직전 마을을 쉽게 떠나지 못하는 감독의 내레이션은 소멸된 공간과 사람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극대화시킨다. 그러나 영화가 강조하는 것은 마을이 사라진 그 이후다. 기프실 마을은 사라졌지만 새롭게 자리 잡은 터전에서 이전과 다름없이 땅에 씨를 심고 농작물을 가꾸는 할머니들의 삶은 계속 되고 우리의 삶도 그러하다. 




지나간 과거는 되돌릴 수는 없겠지만,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정부 실책 하에 조용히 사리진 소중한 것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 그런 점에서 댐 건설을 위해 닦은 신작로 옆의 공터에 싹을 틔우며 땅을 지키고자 하는 할머니들과 이를 고스란히 담아내며 할머니들의 은밀한 투쟁을 지지하는 감독의 카메라는 여러모로 닮아 있다. 자신의 사적 기억에 관한 내밀한 고백을 통해 비슷한 기억을 가진 관객들의 공감대를 이끌고 여성(감독)과 여성(기프실 할머니)와의 긴밀한 관계 맺음 방식으로 성장 중심의 개발 정책의 허상을 파헤치는 인상적인 다큐멘터리 영화다. 문창현 감독의 <기프실>은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서울인권영화제 상영 이후 오는 14일까지 열리는 제23회 인디포럼에서 관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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