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예능 범람 속에서, 또 하나의 음악 예능을 표방하며 등장한 MBC <내 인생의 노래 SONG ONE>(이하 <송 원>)의 시작은 썩 내키지 않았다. 유명 가수들이 각자 사연있는 노래를 가지고 리메이크 버전으로 재구성한다는 컨셉 또한 하도 많이 보아서 식상하게 느껴질 정도다. 그렇다. <송 원>은 그간 음악 예능에서 숱하게 보아왔던 구성들을 그럴싸하게 재배치해 놓은 구식 예능이다. 그럼에도 <송 원>은 추억의 매개체로 음악이 가진 힘을 익숙하면서도 편안한 방식으로 시청자들에게 들려주고 보여주는 방송 프로그램이다.
6회로 예정된 <송 원>은 최근 재결합 이후 첫 단독 콘서트를 계획 중인 H.O.T. 메인보컬 강타가 호스트로 분해 매주 다른 게스트를 초대하여 그들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었던 노래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진행자인 강타와 게스트들이 음악으로 교감을 나누는 매개체는 지금은 단종되어 잘 나오지도 않는 카세트 테이프. 여기에서부터 한 때 워크맨(소니에서 출시된 카세트 플레이어)과의 추억이 많은 30대 중반 이상 시청자들의 옛 기억들을 새록새록 떠올리게 한다.
카세트 테이프가 대중화되기 이전 LP판으로 음악을 들었던 시대의 사람들은 LP판에 대한 추억이 남다르겠지만, 80년대 중반에 태어난 기자가 학교다닐 때만 해도 대개 카세트, CD 플레이어로 노래를 들었다. 당시 기자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유행곡들을 공 카세트 테이프에 녹음하여 반복하여 듣곤 했는데, 지금처럼 월 정기결제하면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노래를 들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던 그 당시에는 일일이 녹음 버튼을 눌려야하는 엄청난 수고로움 속에서도 그만한 즐거움이 없었다.
그 때의 추억을 고스란히 대변하듯이 강타는 지금은 희귀템이 되어버린 카세트 테이프와 플레이어로 90년대 히트곡들을 들려주고, 원하는 노래를 듣기 위해 일일이 테이프를 돌리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MP3, 스트리밍 서비스로 노래를 듣고 자란 세대들에게는 일종의 문화충격 이겠지만, 그렇게 카세트 테이프로 노래를 듣던 게 불과 16년 전 이야기이다.
카세트 테이트가 등장할 정도로 <송 원>에서 다뤄지는 노래들은 주로 90년대 히트곡이다. 여러 음악 예능에서 숱하게 언급 되기도 했지만, 1990년대는 대중가요계의 한 획을 그었던 스타들이 대거 등장하던 시대이다. 1992년 ‘난 알아요’로 가요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서태지와 아이들을 필두로, 1988년 대학가요제로 데뷔한 이래 90년대 밴드 음악계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고 신해철(넥스트), 김건모, 신승훈, 이승환, 015B, 윤상,듀스 등 지금들어도 가요팬들을 설레게 하는 이름들이 90년대 가요계를 주름진 뮤지션들이다. 여기에 90년대 후반, 대한민국의 수많은 소녀팬들의 마음을 뒤흔든 아이돌의 시초 H.O.T., 젝스키스, 신화 같은 보이밴드의 등장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 17일 방영한 <송 원> 첫 회에서 진행자 강타와 동년배에, 함께 군복무를 한 남다른 친분을 가진 배우 겸 래퍼 양동근(YDG)를 첫 게스트로 섭외한 것은 음악을 통한 추억여행 컨셉을 지향하는 프로그램의 의도와 맞물려 있다. 어릴 때부터 스타 아역배우로 활동한 터라 학교보다 촬영장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았다던 양동근은 항상 카세트 플레이어로 노래를 들었고, 혼자 흥얼대면서 춤과 음악을 익혔다. JTBC <투유 프로젝트-슈가맨2>에서 이미 화제가 된 이야기이지만, 양동근(YDG)의 히트곡 ‘골목길’이 그가 어린 시절 즐겨 듣던 이재민의 ‘골목길’을 리메이크한 곡이라고 하니, 어린시절 양동근이 얼마나 음악을 즐겨 듣고 좋아했는지 짐작 가능한 대목이다.
이 날 방송에서 자신의 인생곡으로 이현우의 ‘꿈’, 고 마이클 잭슨의 ‘빌리진’, 듀스 ‘나를 돌아봐’, 서태지와 아이들 ‘컴백홈’, 업타운의 ‘카사노바’를 꼽은 양동근은 자신이 리메이크로 새롭게 부를 노래로 업타운의 ‘카사노바’를 꼽았다. 가히 실력파 래퍼 양동근(YDG) 다운 선택이다.
듀스, 드렁큰 타이거 등 힙합 1세대가 남긴 주옥 같은 명곡 중에서도 업타운의 ‘카사노바’를 꼽은 이유로, 양동근은 다른 힙합 노래에는 없는 노래 속 영화적인 스토리텔링 요소가 연기자 이면서 힙합 음악가인 자신의 정체성을 만족 시켰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양동근 버전의 ‘카사노바’는 원곡의 작곡자인 업타운 정연준이 직접 편곡과 프로듀싱을 맡아 원곡의 분위기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YDG만의 스웩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노래로 재탄생하였다.
90년대 가요에 대한 남다른 조예와 깊이를 보여준 강타의 재발견도 눈에 띈다. ‘노잼’이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박힌 강타는 멘트 만으로 큰 웃음을 주는 진행자는 아니지만, 마치 라디오를 듣는 것처럼 편안하면서도 차분한 진행으로 아날로그 감성에 걸맞는 추억 여행을 이끈다. 90년대를 풍미한 전설적 그룹 H.O.T. 멤버로 잘 알려져 있지만, 어릴 때부터 흑인 음악을 들으며 가수의 꿈을 키운 싱어송라이터 강타의 음악적 저력을 고스란히 확인할 수 있는 방송 이기도 하다.
앞서 말했지만 음악 예능의 홍수 속에 아직도 수많은 팬을 보유한 현역(?) 아이돌이긴 하지만 톱 예능 진행자는 아닌 강타를 앞세운 <송 원>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스타들의 인생이 담긴 주옥같은 명곡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인만큼, 카세트 테이프로 대변되는 아날로그 감성으로 음악에 얽힌 옛 추억을 새록새록 떠올리게 하는 것만으로도 <송 원>은 따스한 위안과 힐링을 안겨준다. 수십년의 세월이 지나도 사람들의 눈과 귀를 아름답고 행복하게 만드는 음악의 힘. <송 원>은 음악이 가진 놀라운 마법을 체험할 수 있는 편안한 음악 예능이다.
'예능전망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는 형님' 방송 복귀 선언한 신정환은 대중들의 용서를 받을 수 있을까 (5) | 2018.09.02 |
---|---|
백종원도 두손두발 들게한 뚝섬 경양식집 고집...시청자도 지친다 (2) | 2018.07.21 |
‘백종원의 골목식당’ 백종원이 초보 사장들에게 건네는 진심어린 한마디 (2) | 2018.07.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