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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전망대

도망자. 비의 우측보행에서 빵터진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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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도망자는 추노와는 다르게 심각함이 필요없이, 그저 즐기는 용도로 만든 B급 드라마였습니다. 대한민국 최고 무술감독 정두홍에 맞써도 이길 수 있는 비의 괴력은 그렇다 치고, 윤손하는 한국어로 말하고, 적룡은 중국어로 말하는데, 왜 한국어와 중국어를 잘 알아듣는 분이 구태어 왜 서로 각자 모국어만 쓰는 지도 적룡도 배려할 겸 자막의 최소화를 위해서라도 집중해서 보고 있자니 뭔가 쌩뚱맞은 상황으로 비춰집니다. 그래도 흥미진진한 스토리는 차마 채널을 다른 곳으로 돌리게 하지 못하는 마법이 숨겨져 있는 것 같았습니다. 마지막 회 쯤에 가면 비와 이나영의 이루지 못하는 사랑에 시청자들을 눈물바다로 만들지는 모르겠지만, 이왕 웃길려고 만든 드라마로 보여지니만큼, 끝까지 쿨하게 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보통 한국형 블록버스터 주인공은 절대선이어야하는데 지우를 착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지우 잡는데 온 경찰 인생을 받은 도우를 악인이라고 몰고가는 건, 도우를 3번 죽이는 행위입니다. 그는 단지 대한민국 정의를 위해서 지우라는 놈한테 갈비뼈에 총 2번이나 맞아가면서 지우를 쫓는 자가 되어버리니까요. 유감스럽게도 케빈 정의 살인 용의자는 지우가 아니지만, 어떻게 진정 이 나라의 정의를 위해서 사냥개처럼 들려 붙는 형사가 실존 인물이라는 영화 '살인의 추억' 형사님빼고 참 오랜만에 본 것 같습니다. 그것도 현실에서가 아니라 드라마에서 뵈어서 떨떠름할 뿐이죠.


지우라는 인간은 그저 탐정으로서의 본능에 충실할 뿐입니다. 어쩌다가 진이를 만나서, 지우보다 더 질긴 놈을 만나서 일생의 대결을 펼치는 것 뿐이고 그러다가 21C판 영웅이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탐정 노릇을 오래하다보니 머리는 참 좋은 것 같습니다. 아는 것도 많고 비유도 잘하고.

드라마 제목 자체가 풍자의 서막을 알리던 추노와는 달리, 도망자는 사회를 비꼬기 위해서 만든 드라마로 보여지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천성일은 천성일인가봅니다.

지우는 진이를 침대로 유인하면서 자신은 우측에 눕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가 좌편향은 안된다고 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2007년 대선 이후 갑자기 우측 통행으로 바꿨다고 합니다. 순간 전 역시 추노 작가 천성일이라면서 무릎을 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공식적으로 좌측 통행에서 우측통행으로 바뀐지는 겨우 작년의 일입니다. 작년이라고 해봤자 2009년 10월 이후지요. 엄연히 말하면 2007년 대선 이후 즉각적으로 지하철, 공항 등 모든 장소에서 우측통행을 하라고 명령을 내린 것은 아니였습니다. 여전히 좌측 통행에 길들어진 많은 사람들은 힘들어하고 있고, 편하라고 시행한 제도인데 에스컬레이터 이용 면에 있어서도, 경제적 효율성으로는 불편한 통행이 이어지고 있는 경우도 종종 발생합니다.
그런데 왜 여기서 지우 입에서 우측통행이라는 말이 나왔을까요? 그것도 왜 꼭 2007년 대선 이후를 강조했을까요?더 이상은 정치적 이야기라 언급은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전 추노 작가의 소름끼칠 정도의 은유와 풍자능력에 찬사를 보내고 싶을 뿐입니다. 풍자는 풍자일뿐. 알아채면 혼자 빙그레 웃고 마는거지, 그거 가지고 따지고 드는 것도 작가와 제작진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습니다. (하지만 2007년대선부터 우측통행을 강조하셨던 분들은 그게 아니죠)

전작 '추노'에 비해서 여러 아쉬운 요소가 더러 보이는 '도망자'이긴 합니다. 주인공 비(정지훈)의 연기가 지나치게 오버하고 가벼워보인다고 지적받았던 첫회와는 달리, 2회에서도 여전히 과도하게 깐죽거리는 모습이 남아있었긴하지만, 2회가 끝날 때쯤 이정진에게 내가 범인이 아니라면서 자연스럽게 분노하는 씬을 보고나니, A급은 아니라도 B급 블록버스터 남자주인공으로는 손색이 없었습니다. 확실히 추노와 비교해서 좋아진건 여주인공의 존재감과 연기였습니다. 이다해도 추노 이전에는 연기력 논란이 거의 없었던 좋은 배우였지만, 추노 출연 당시 이다해에 대한 비난들을 감안하여, 여주인공 캐릭터를 심각하게 고민한 흔적도 역력하고, 이나영 또한 초반 몸을 사리지 않는 액션연기로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남자주인공 비에 모잘라, 이나영 애인으로 분한 다니엘 헤니와 비를 쫓는 형사 도우로 나오는 이정진 모두 요즘 드라마 주요 시청자로 인식되는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충분했습니다. 그리고 탐정 영화이다보니 도중에 잔인한 영화도 나오고, 다소 민망한 장면도 연출되겠으나 부담감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즐겁게 웃으면서 볼 수 있다는 점도 도망자의 매력 포인트가 아닐까 싶네요.

여전히 묵언수행하는 비가 거슬리긴하지만,오버감 넘치는 첫 회와는 달리 조금 더 좋아진 티가 나는 연기, 그리고 몸을 사리지 않은 액션 연기는 역시 월드스타 비의 존재감을 제대로 입증한듯 합니다. 추노 제작진이라고 작품성을 기대하기보다는, 볼거리와 작품 전반부에 배어있는 코믹 요소들과  잘 어울려섞인 풍자적 요소에 초점을 맞추고 보면 꽤나 만족스러운 드라마로 남겨질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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