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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전망대

무한도전 소지섭, 박명수 활약보다 빛났던 사실상 패러디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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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7일 무한도전의 부제는 분명 '소지섭 리턴즈' 였습니다. 절친한 형 정준하와의 의리와 여자친구 소문을 밝혀내라는 노홍철을 손 봐주기 위해(?) 무한도전 녹화장에 한걸음 달려왔지만, 정작 정준하의 갑작스러운 부상으로 녹화가 중단된 터라, 다시 재촬영에 흔쾌히 임한 소지섭입니다. 실제로 소지섭은 예능 출연이 낯설법한 톱스타임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으며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남겼습니다. 시청자들이 생각하는 배우병이니 스타병이니는 결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녹화가 중단되어 다시 녹화장에 찾아왔음에도 12간지 중에서 최고 간지라는 12간지라고 불리는 배우가 전문 예능인도 하기 어려운 수박 에어쇼를 세계 최초로 선보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였습니다. 그러나 역시 소간지는 소간지인가봅니다. 플라잉 체어로 뒤로 넘어져서 다들 우스꽝스러워지기 딱 좋은 장면에서도 여전히 멋있는 모습만을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호락호락 특급 게스트 소지섭에게 모든 시선을 집중시키도록 냅두는 무한도전 멤버들이 아니였습니다. 특히나 나이가 나이인지라 유독 몸쓰는 것에 약한터라 프로 레슬링, 조정 등 유독 강한 체력을 요구하는 특집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게시판 지분의 대다수를 차지했던 박명수의 남다른 각오가 엿보였습니다. 몇 달간 진행되었던 조정에서는 죽만 쑤던 그가 지난 주 동거동락에서는 정준하와 불장난 댄스로 다시 화제의 중심에 서더니, 이번에는 14회 연승으로 플라잉 체어 챔피언에 등극하는 위엄을 뽑내게 됩니다. 소지섭 특집으로 준비했다가 되레 지난주에 이어 박명수 특집으로 만든 소지섭 리턴즈였습니다. 

각자 호스를 연결하여 상대방의 풍선을 터트리면, 풍선이 터진 쪽이 의자 뒤에 있는 수영장에 풍덩 빠지는 게임에서 당연히 박명수의 열세를 점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어쩌면 참 시시하게 박명수의 패로 끝날 번한 게임으로 비춰지는 우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웬일로 박명수는 첫번째 도전자 정준하를 가뿐히 물리치고 수영선수 출신 소지섭을 제침은 물론 멤버들을 하나하나 제압해갑니다. 만날 골골거리는 박명수의 예상치 못한 폐활량에 멤버들은 흠찟 놀란 분위기입니다. 아무래도 박명수가 담배를 피우지 않으니 다른 멤버들에 비해서 폐활량이 좋다는 분석까지 속출하였습니다. 그러나 노익장을 과시하는 박명수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게임은 계속 누군가가 승자가 이길 때까지 계속 진행되었습니다. 원래 요즘 유행하고 있는 서바이벌 그리고 우리 인생사가 그렇게 돌아가지요. 한번 이겨도 영원한 승자가 되지 못하고 끝까지 그를 이겨보려는 도전자가 나타나는 현실. 그래서 챔피언은 언제나 외롭고 고독한 법입니다.  

그렇게 하나하나 승자 박명수에게 도전하는 무리들을 단숨에 물리친 박명수는 결국 마지막에 끝판왕이자 1인자인 유재석과 맞딱리게 됩니다. 이미 수많은 도전자들을 제압하여 힘이 다 빠진 박명수였지만 유재석에게는 질 수 없다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박명수는 유재석을 한번도 이겨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계속 1인자 유재석 밑에서 1.5인자 조력자로 만족해야했던 박명수였습니다. 유재석에게 홀로서기를 시도한 프로그램 중에 잘된 프로그램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악착같이 풍선을 불었습니다. 예전과는 달리 어디가도 남다른 체력을 자랑하며 눈을 휘둥그레하게만드는 유재석도 결코 호락호락한 상대는 아니였으나 결국 유재석마저 박명수에게 무릎을 꿇고, 이대로 2011년 mbc 연예대상은 그대로 박명수로 굳혀지는 듯 하였습니다.

 
허나 모든 경쟁자를 가뿐히 제압하고도 박명수는 쉽사리 챔피언 등극을 하지 못했습니다. 되레 룰을 변경하여 어떻게든 박명수를 물에 빠트리고자 이번에는 수박 빨리먹고 휘파람불기라는 미션을 급조합니다. 이미 풍선을 너무 많이 불어 힘이 다빠진 박명수는 그야말로 이빨이 다 빠진 호랑이일 뿐이였습니다. 박명수 또한 체념하는 분위기였습니다. 물에 빠지는것이 싫어 악착같이 풍선을 불었는데 이제는 수박빨리 먹기라 그야말로 한숨뿐입니다.

그러나 막상 의자에 앉으면 언제 그랬나는듯이 다시 생기가 도는 챔피언입니다. 그렇게 정준하, 소지섭, 노홍철, 정형돈, 하하, 길을 거뜬히 수영장 물로 내보낸 박명수는 수박을 너무 많이 먹어 팽팽해진 복부 상태로  끝판왕 유재석과 맞딱드리게됩니다. 정말 질기고 질긴 인연입니다. 유재석도 이번에는 질 수 없다는 분위기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박명수 대단하다고 박수를 보낸 이미 주위는 모두다 유재석 편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슬슬 새롭게 등장하는 강자 유재석에게 자리를 내줘야할 판이였습니다. 하지만 유재석을 이기겠다는 박명수의 투혼이 철철 넘치는 나머지, 반칙으로 유재석의 입을 막으면서까지 완벽한 챔피언으로 등극하는 듯 하였습니다. 

하지만 유재석 박명수의 피할 수 없는 운명적인 대결 이전에 유재석은 이중에서 누군가 빠지는 사람이 마지막 축하쇼를 빛낼 주인공이라면서 못을 박았습니다. 그랬는데 유재석이 물에 빠지고, 또다시 빠지는 순간 유재석은 손가락으로 오직 한 사람을 가르키면서 큰 소리로 외칩니다. "박명수" 

결국 챔피언 박명수는 이렇게 허무하게 마지막 축하쇼에서 열연하는 주인공이 되어버렸고, 유재석의 계략으로 유재석은 플라잉 체어 대결에서 '사실상' 챔피언으로 등극하게 됩니다. 이렇게 박명수는 마지막에 어이없게 물에 빠지면서 (사실상)패자로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그가 세운 14연승이라는 어마어마한 기록은 '어쨌든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서 명실상부 그 기록이 인정되어 다시 3회전에 자동 진출하게 되는 특권을 누리게 됩니다. 

분명 플라잉 체어쇼의 주인공은 보기만해도 자기보다 쟁쟁한 멤버들을 제치고 무려 14번이나 승리한 박명수였습니다. 유재석은 마지막 도전에서 박명수에게 패한 도전자일뿐이며 누가뭐래도 승리자는 박명수입니다. 그러나 무한도전 세계에서 게임은 끝났다고 끝난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영원한 마무리를 인정해주지 않고 끝까지 사기와 멈출 줄 모르는 반전으로 혀를 찌르는 무한도전에서 유재석은 물이 무서워 악착같이 풍선을 불고 수박을 삼키던 챔피언 박명수를 물에 빠트리고 자기가 그 자리를 '사실상' 차지했노라고 선언합니다. 이미 유재석 추종자로 돌아서버린(원래도 그랬지만) 소지섭을 포함한 무도 멤버들은 유재석의 '사실상' 승리에 자신들끼리 자축을 하는 분위기입니다. 그래봤자 진짜 챔피언은 박명수 옹인데 말이죠. 



순간 25.7% 득표율에 투표함조차 개봉하지 못했는데도 '사실상' 승리했다면서 자신들의 패배를 부인하는 듯한 아전인수격 해석으로 자축하던 모 정치인이 연상됩니다. 이상하게 무한도전은 전 인터넷을 뒤흔드는 '사실상' 발언 이전에 녹화한 분량인데도 묘하게 '사실상'으로 들끓은 현 세태와 비슷하게 흘려가는 양상을 보였습니다. 25%만 투표해도 사실상 승리했다는 발언 한마디로 '사실상 파리도 새' 라는 말부터 시작해서 '등록금 25%만 내도 사실상 납부' '수능에서 25%만 해도 사실상 만점'이라는 패러디가 속출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엄연히 말해서 '사실상'은 완전한 승리가 아닙니다. 그저 승리를 거두지 못한 사람이 자신의 패배를 순순히 인정하지 않고 원래 자기가 이기는 게임이였다면서 억지 해석일 뿐이죠. 어짜피 무한도전의 사실상 승리는 여기서 박명수가 쉽게 챔피언에 등극하면 재미가 없으니까, 일부로 박명수를 물에 떨어트리고자 일부로 짜낸 전략이지만, 무한도전 밖의 세상인 우리가 사는 세상까지 '사실상'이 성립되면 기존의 체제가 무너지는 위기를 초래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요즘은 예능보다 정치판에서 더 우습기 짝이 없는 말도 안되는 유행어들이 툭툭 나오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무한도전보다 더 황당하고 유재석, 박명수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보다 더 재미있는 유행어들이 예능인들과 비교도 안되는 고상하고도 높은 지위에 계시는 분들의 입에서 나왔다는 예능 개그 소재로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는 어두운 세상입니다. 그러나 지금보다 더 덜 민주적으로 꼽히던 '80년대' '우리 회장님' 90년대 '주병진쇼'에도 그랬듯이 역시 코메디의 꽃은 단연 사회에 대한 촌철살인이 돋보이는 날카로운 풍자와 패러디입니다. 어느 한 쪽의 정치색이 짙어서 한 정치인의 우스꽝스러운 말을 패러디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누구의 편을 들어서라기보다, 객관적인 민주 시민의 눈으로 봤을 때 아닌 것은 아니라고 패러디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를 허하는 것이 진정한 민주 사회가 아닌가 싶습니다. 어찌되었든 실로 오랜만에 무한도전에서 요즘 떠들석하게 흘려가고 있는 민감한 단어 '사실상' 을 전혀 거부감들지않게 자연스러운 큰 웃음으로 전달하는 패러디를 보게 되어 통쾌할 따름입니다. 부디 예전처럼 무한도전이 감히 고상하신 어느 분의 언행을 따라했다는 이유로 정치색 짙은 프로그램으로 찍히지 않을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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