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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형(김래원 분)의 결혼을 코 앞에 두고 불쑥 드러낸 파혼 선언은 양가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약혼녀 향기(정유미 분) 아버지(박영규 분)의 오랜 절친이자, 그가 운영하는 병원에서 월급 병원장으로 근무하는 지형의 아버지(임채무 분)는 당장 친한 친구도 잃고, 실업자가 될 판입니다. 평소에도 히스테리 기질이 있던 향기 엄마(이미숙 분)은 노발대발을 하면서 어떻게해서든지 지형의 앞길을 막겠다면서 단단히 벼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상처를 입었을 향기가 걱정입니다. "난 너를 사랑하지 않아. 그동안 딴 여자 있었다. "는 본인으로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말을 듣자마자 향기는 극도의 스트레스를 느끼고 구토를 시작하게 됩니다. 향기가 구토하는 예고편을 보고 임신 아니냐는 말이 있었지만 1년동안 관계가 없었기에 임신은 아닌 듯 합니다.
향기가 연이어 구토를 하고 몸져 누운 것은 순전히 지형 때문입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줄곧 지형만을 따라다니고, 당연히 그의 아내가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향기로서는 그한테 극도로 배신감을 느낌은 물론 그런 인간에게 청춘을 다 바친 자기 자신한테도 원망스러울 겁니다.
그러나 향기는 결코 지형에 대한 분노나 원망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그녀 마음 속에는 지형이 밉고 죽고 싶을 정도로 패주고 싶을 지도 모릅니다. 허나 그녀는 이런 말도 안되는 상황에 우왕좌왕하는 부모 앞에서 "다 내 잘못이다. 서로의 합의 하에서 벌어진 일이다. (지형) 오빠를 다그치지 말라" 라면서 끝까지 지형을 위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정작 본인은 계속 타들어가는 마음에 거의 뻣뻣한 송장이 되어가고 있는데 말이죠.
너무 좋은 집안에서 귀한 외동딸로 곱게 사랑받고 커서 그런가요. 그래서 지형이란 한 남자에게만 매달랐고, 그저 그가 하자는 대로만 순종하고 살았습니다. 조선시대 양반집 규수가 따로 없습니다. 그리고 자기 부인을 숭고하게 여긴 나머지 창녀들과 잠자리를 가졌다는 앙드레 지드 이야기에 '앙드레 지드'가 누구나고 물어볼 정도로 머릿 속에 지식이 많은 것도 아닙니다. 고모집에 얹혀 눈칫밥 먹고 어렵게 자랐음에도 신춘문예에도 당선되고 나름 도도하게 살아가고 있는 똑똑한 서연(수애 분)과 비교될 만도 합니다. 어찌보면 지형의 입장에서는 너무 어릴 때부터 봐와서 무엇보다도 자기 좋다고 죽자사자 따라다녀서 여자이기보단 그저 챙겨줘야할 동생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향기보다 서연을 가슴에 품을 법도 합니다.
서연은 맺고 끊임이 강한 여자입니다. 영리하기도 하지만 어렵게 자라 일찍 철이 들었기 때문에 세상의 이치를 훤히 꿰뚫고 있습니다. 그래서 애초부터 공식적으로 남의 남자였던 지형과 해서는 안될 사랑임을 알고 마음에 끌려 시작을 했음에도 애초부터 그를 소유하겠다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그와 행복한 사랑의 결말을 맺고 싶지만 꾹꾹 참아온거죠. 서연은 향기와 지형과는 다르게 감정보다 이성이 더 먼저 작동할 수 있는 여자니까요.
그렇다고 지형 또한 이성적 감각이 마비되어 모두를 경악시키는 대형사고를 터트린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도 지금까지 최대한 이성을 지키고자 노력했습니다. 향기네 집에 신세지는 아버지를 생각해서. 무엇보다도 자기밖에 모르는 천진난만한 향기를 생각해서 꼭 결혼을 해야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순수히 서연을 포기하였고 몸만 향기에게 의탁했지만 마음만은 계속 서연을 그리워하다가 마는 남자로 살려고 했습니다. 허나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온 서연의 알츠하이머병에 지형은 걷잡을 수 없이 폭발하고 맙니다. 정작 서연과 한마디의 상의와 통보없이 자기가 혼자 결혼을 깨고, 사랑없는 결혼은 못하겠답니다. 뒤늦게 지형의 파혼 소식을 듣게된 서연과 서연의 사촌오빠이자 지형의 친구인 재민(이상우 분) 또한 뜯어말리지만 도저히 지형의 확고한 요지부동을 풀 이는 없을 듯 합니다.
뒤늦게 주변의 모든 상황을 충격의 도가니로 만들어버린 지형이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지형의 아버지와 향기의 아버지는 지금이 조선 시대도 아니고 어떻게 어른들의 추진한 결혼 앞에서 한치도 자기의 주장을 펼치지 못하나고 반문 하지만 분명 지형과 향기의 결혼은 지형으로서 거부하지 못하는 엄청난 압박이 숨어져 있었습니다. 향기네 병원에서 근무하는 아버지의 입장도 고려해야하지만 무엇보다도 향기가 지형을 너무나도 미친 듯이 사랑합니다. 만약에 향기만 아니었더라도 지형은 진작에 사랑없이 자기와 뜻과는 전혀 무관하게 진행되는 결혼에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밝힐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물정 모른채 이 세상에서 가장 천진난만한 얼굴로 '오빠'하면서 따라다니는 향기 앞에서 "난 너 사랑하지 않아. 난 다른 여자가 더 좋아" 하면서 매몰차게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허나 향기의 몸을 몇번 탐하고 이제 결혼이 불과 하루 앞두고 "난 너와 결혼하기 싫다"를 통보받는 것보다는 진작에 향기에게 모진 상처를 주는게 훨씬 더 나을 법 했습니다. 그러면 향기는 빨리 마음 추스리고 지형보다 더 좋은 조건의 향기를 아껴줄 수 있는 남자 만나서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 상황은 이도저도도 아닙니다. 이미 결혼식이 내일인데 갑작스런 결혼 취소는 분명 그들만의 문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위의 수근거림을 받을게 분명합니다. 결코 사실이 아닌데도 말 옮기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얼토당토되지도 않는 추측성 이야기로 이들을 더욱 난도질 할 것이 뻔하구요. 당연히 사회적 체면을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어른들은 걱정이 태산도 아닙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향기가 스트레스를 받아 몸저 누웠다는 것이 결혼 취소로 받을 세간의 비웃음거리와 지형 집안의 몰락보다도 보는 이들의 가슴을 미어지게 합니다.
네 분명 향기는 앙드레 지드가 누군지도 모를 정도로 머릿 속에 든 것도 없고, 세상 물정을 몰라 다른 여자에게 눈돌리고 있는 지형의 수상쩍은 행동을 파악하지 못했고, 영리하게 그의 마음을 돌려놓을 계산 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점이 오히려 지형을 질리게했고 결국 지형에게 차이는 비극을 초래하게 됩니다. 하지만 남들보다 똑똑하지 못하고 지나칠 정도로 착하여 엄마에게조차 팔푼이라는 비이냥을 듣고 하지만 세상 누구보다 인간에 대한 이해와 배려심을 가진 아름다운 여성입니다. 제 아무리 좋은 집에서 곱게 자랐다고해도 자기뿐만 아니라 남의 입장도 헤아려주면서 자기 혼자 모든 아픔을 뒤집어 쓰고자하는 사람은 그리 흔치 않습니다. 차라리 향기 엄마처럼 서연을 찾아가 그녀의 머리카락을 끄집어 잡아 댕기던가, 아님 쿨하게 마음을 정리하고 다른 남자 찾아 떠나던가 하겠지요.
그러나 향기는 지형이 다른 여자때문에 자신을 버리는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서연의 존재를 부모님에게 함구합니다. 지형 어머니(김해숙 분)의 말처럼 아직까지 지형을 포기하지 못했다는 방증이기도 하지만 지형을 배려하고자하는 향기의 따뜻한 마음없이는 불가능한 배려였습니다. 그저 자기 혼자 끙끙 앓으면서도 내 탓이다면서 자신을 자책하는 향기가 안쓰럽고 그래서 따스히 안아주고 싶을 정도 입니다.
제아무리 고등학교 시절부터 서로에게 한눈에 반하고 남몰래 그리워하였다고 하더라도 지형과 서연은 아예 시작조차 하지 말았어야하는 사이였습니다. 정 그렇게 지형이 서연때문에 죽고 못살겠다면 진작에 부모님에게라도 결혼 못하겠다는 사실을 알리고 아버지와 향기 엄마한테 맞아서라도 자신의 소신을 일찍아 밝혔어야했습니다. 비록 서연은 자신의 자존심때문에 막장 드라마 여주인공이 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어쩌면 지형이 진작부터 그가 알아서 밀어붙어 향기가 아닌 자신을 선택하길 간절히 원하고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 너무나도 뒤늦은 지형의 파혼은 향기는 물론이고 서서히 기억을 일어가는 서연마저도 곤란하게 만들어버립니다. 서연이 이번 지형의 파혼을 대놓고 부추긴 것은 아니지만, 결국 그녀때문에 발생한 일이기 때문에 분명 서연의 존재가 향기 엄마나 지형 아버지에게 알려진 순간 서연은 '내남자의 여자'의 한 장면처럼 향기 엄마(이미숙 분)에게 모욕을 당할 것이 뻔합니다. 지형 아버지는 수억원의 돈봉투를 주면서 빨리 지형의 마음을 돌려놓으라고 독촉하겠죠.
참으로 지형도 서연도....그리고 향기도 참 안타깝습니다. 설사 지형이 집안의 강요와 향기 때문에 억지로 결혼식을 올린다고해도 이미 다른 여자가 있고 마음에도 없는 결혼은 또다른 아픔의 씨앗입니다. 차라리 식은 올리고 나중에 조용히 이혼을 하자는 향기 엄마말처럼 결국 이들에게 예고된 것은 서로를 향해 깊어지는 상처와 분노입니다. 왜 지형은 이렇게 결혼식 앞두고 깽판칠 것이 뻔하면서도 왜 진작에 양 측 여자가 덜 상처받게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했나 싶기도 합니다. 물론 이건 김수현 작가의 의도된 극의 전개일 뿐이지만 어디 지형같은 남자가 김수현 드라마 속에만 있는 유형인가요. 다만 현실 속의 대부분의 남자들은(지형 친구로 분한 알렉스처럼) 지형과는 달리 돈과 권력 앞에서 무릎을 꿇고 그 이익만을 우선 생각할 뿐이죠. 그래서 제 아무리 서연이 불치병에 걸렸다고해도 눈 딱감고 향기와 결혼식을 올릴겁니다. 그리고 뒤로서 딴짓을 하겠죠.
어떻게보면 결혼 이후 계속 이중 살림을 차리느니 차라리 지금 난 그런 표리부동한 인간은 되지 못하겠다고 선언하는 지형이 더욱 양심적으로 보여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연 그리고 향기에게 아주 무책임한 남자가 되어버린 지형입니다. 애초부터 서연의 향한 지형의 마음은 제3자가 보기에는 불온하기 짝이 없지만, 그걸 알면서도 애써 감싸주고 다 자기 탓으로 돌리는 향기 때문에 더더욱 지형이 용서되지 못할 듯 합니다. 그래서 향기도 서연도 지형도 안타깝습니다. 차라리 향기가 지형을 덜 사랑했다면 향기도 덜 아파했을텐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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