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페룰쇼노(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분)는 칠레의 국민 시인이자 정치인 파블로 네루다(루이스 그네코 분)의 뒤를 쫓는 경찰이다. 오스카는 네루다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고, 계속 네루다의 뒤를 쫓는다. 그런데 관객들의 눈에 비춰지는 오스카는 경찰이 아니라, 네루다를 너무 흠모한 나머지,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따라다니는 한 명의 열성팬을 보는 것 같다. 




지난 1월 국내 개봉한 <재키>(2016)의 감독 파블로 라라인이 <재키>에 이어 완성한 영화 <네루다>(2016)은 여러모로 특이하게 다가오는 영화이다. 1971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파블로 네루다를 다룬 전기 영화인데, 네루다를 쫓는 경찰의 관점에서 네루다를 바라보고 평가한다. 제3자의 시선에서 한 인물을 바라보는 영화가 <네루다> 한 편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네루다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평가를 내리는 오스카의 자아도취성 보이스 오버는 쫓고 쫓기는 추격전과 어울리지 않게 감성적 이면서도 시적이다. 


네루다를 바라보는 오스카의 시선은 복잡 미묘하다. 오스카는 네루다를 경멸한다. 오스카에 따르면 네루다는 공산당 거물이라는 타이틀에 맞지 않게 굉장히 속물적이고 부르주아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다. 아내 델리아(메르세데스 모란 분)를 사랑하지만, 틈나는대로 매음굴에서 시간을 보내기 일수다. 심지어 경찰에 쫓기는 와중에도 여러 술집을 전전한다. 위선적인 면모가 다분한 네루다를 두고 오스카는 반드시 자신의 손으로 잡아서 처단해야할 범죄자로 명명한다. 




그러면서도 오스카는 네루다의 시를 즐겨 읽는다. 엄밀히 말하면 네루다가 늘 간발의 차로 자신을 놓치는 불쌍한 경찰 오스카를 위해 남긴 책 속의 시들을 즐겨 읽는다. 어쩌면 네루다가 오스카를 위해 쓰였을 시, 소설들을 읽어가며 오스카는 네루다를 더 잡고 싶은 환상 속에 빠지게 된다. 단지, 네루다를 잡아 들여야하는 임무 수행 차원이 아니라 자신이 경외하는 대상을 자신의 발 밑으로 기어 들어가게 하고싶은 욕망. 그렇게 오스카는 네루다와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는 꿈을 꾸기 시작한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48년 칠레는 혼돈의 시기 였다. 국민들을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채워주는 통제의 수단으로만 바라보는 위정자들은 칠레 곳곳에서 일어나는 민중 봉기를 폭력적인 방식으로 진압하고 있고, 대통령의 통치 방식에 반기를 든 네루다는 그를 잡고자 안달이 난 칠레 정부에 쫓기는 도망자의 신세로 전락한다. 대통령을 위시한 칠레의 귀족들은 도망자 네루다에게 ‘공산당 반역자’라는 프레임을 씌우며 네루다가 가진 명예와 인기를 끌어내기 위해 온갖 전락을 강구하지만 그럴수록 네루다를 향한 칠레 민중들의 사랑과 존경은 더욱 굳건해 진다. 




대통령으로부터 네루다를 잡아 오라는 명령을 받은 오스카는 네루다를 체포하는 행위를 완성함으로써 위대한 경찰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한다. 성매매에 종사하는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나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고 살아왔던 오스카는 칠레의 전설적인 경찰을 자신의 아버지로 떠받든다. (마침 오스카와 그의 성도 페룰쇼노로 같다.) 네루다는 지극히 속물적이고 위선적인 인간이고 오스카 자신은 그의 상상 속 아버지처럼 공명정대한 위인으로 스스로를 자화자찬 한다. 그러나 네루다와 네루다의 시에 감화될 수록 오스카는 자신 또한 속물적이고 칠레의 고귀한 귀족들에게 천대받는 하찮은 존재라는 사실을 서서히 인지하게 된다. 보통 민중들에게 한없이 가혹한 현실을 위로해주는 것은 네루다의 시이다. 네루다 또한 여느 위정자들과 다를 바 없이 속물적이고 영웅 놀이에 빠져있는 위선적인 존재라고 할지라도, 적어도 그는 칠레 민중들을 생각했고 민중들의 시선에서 여러 편의 시를 써내려 간다. 


오스카의 시선에서 바라본 네루다는 도덕적으로 완벽한 인물은 아니다. 아집과 독선, 부르주아 근성으로 똘똘 뭉친 네루다는 보통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흠많고 실수하는 평범한 인간 중 하나다. 그럼에도 민중을 사랑했고 그 나름대로 민중들의 편에 서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네루다는 어두운 현실에서도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같은 존재다. 언제나 역사의 중심에 서있었던 네루다는 자신의 시와 소설을 통해 한낱 하찮은 존재로만 취급받았던 민중(오스카)들에게 생명을 불어넣고 그 자신처럼 빛나는 존재의 반열에 올려놓는다. 




시적 감각을 활용한 독창적인 서사 문법으로 주목받은 영화 <네루다>가 더욱 아름답고 매혹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네루다를 사랑하면서도 경멸하는 오스카의 시점으로 네루다와 민중들을 하나로 만든 파블로 라라인의 탁월한 관점에 있다. <재키>에 이어 <네루다>까지 실존 인물을 스크린으로 다시 호명하는데 있어서 자신만의 탁월한 경지에 오른 파블로 라라인은 그렇게 시대를 대표하는 거장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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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를 무료하게 살아가던 일록(백승환 분)에게 미국 시카고에서 살던 친구 예건(이웅빈 분)이 찾아와 그의 곁에 눌러 앉게 살게된다. 시카고에서는 도무지 일자리를 구할 수 없어서 무작정 한국에 왔던 예건은 무심결에 일록에게 4중창단을 결성할 것을 제안한다. 이 말에 솔깃한 일록은 그날부로 4중창단 멤버들을 모으기 시작하고, 그렇게 오디션만 여러번 보러다닌 대용(신민재 분), 대용을 따라 오디션을 보러 다니다가 지금은 부인 지혜(윤지혜 분)에게 꼼짝없이 잡혀 살고 있는 준세(김충길 분)이 남성 4중창단 ‘델타 보이즈’ 멤버로 합류한다. 




고봉수 감독의 장편 데뷔작 <델타 보이즈>(2016)의 스토리라인은 굉장히 단순하고도 얼핏 보면 평범하다. 지루한 일상을 살아가던 주인공이 어느날 흥미로운 무언가에 눈을 떠 새로운 변화를 맞는다는 성장담은 여러 영화, 소설, 드라마에서 늘상 보아왔던 이야기이다. 그런데 <델타 보이즈>는 우연한 기회에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맞게된 주인공이 정신적, 세속적 성공까지 이루는 해피 엔딩과는 거리가 멀다. 그토록 원하던 노래를 하게 되었지만, 가수로서 성공을 거둘 수 있는 여러 요소들이 상당히 부족해보이는 ‘델타 보이즈’ 멤버들의 미래는 한없이 불투명해 보인다. ‘희망고문’. 무작정 노래를 시작한 ‘델타 보이즈’ 멤버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말이다. 


하지만 ‘델타 보이즈’ 멤버들은 함께 모여서 노래를 하는 것만으로 진심으로 행복해하고 즐거워한다. 그렇다고 이들이 태생적으로 낙천적인 성격을 가진 것도 아닌 것 같다. 자신에게 공장 운영을 맡기던 형부와 싸우고 홧김에 공장을 나와 갈 곳이 없어진 일록은 일이 안풀릴 때마다 거울을 보고 눈물로 범벅이 된 자신의 빰을 때리거나, 온 몸으로 야구공을 맞는 자학 행위를 일삼는다. ‘델타 보이즈’ 활동 때문에 아내와 갈등이 생긴 준세는 매일같이 아내와 육탄전을 벌인다. ‘델타 보이즈’ 활동에 가장 적극적으로 임하는 대용 또한 그 나름대로 우울한 속사정이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대책없이 살아가는 ‘델타 보이즈’ 멤버들의 삶은 한심 그 자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가수로서 한없이 자격 미달인 ‘델타 보이즈’를 응원하고 싶다. 만약 친한 지인 중에 재능도 없고 적은 나이도 아는데 무작정 노래 하겠다고 뛰어드는 사람이 있으면 도시락 싸서 따라다니며 말리고 싶기도 하겠지만, 적어도 노래를 통해서 비로소 삶의 행복을 찾은 ‘델타 보이즈’ 멤버들의 선택을 무모하다고 폄하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델타 보이즈>에 출연한 백승환, 신민재, 김충길, 이웅빈 배우와 몇 차례 단편영화를 만들었던 고봉수 감독은 그 배우들과 의기투합 형태로 <델타 보이즈>를 제작하기에 이른다. 영화에 예건이 잠깐 소개한 것처럼, 50년대 활동하던 미국 남성 4중창단 ‘델타 리듬 보이즈’에서 영화 제목 겸 영화 속 그룹명을 따왔다. 통상 단편영화 제작비보다 더 적은 250만원으로 완성한 영화는 고봉수 감독이 연출 겸 촬영을 맡았고, 배우들이 스태프 역할까지 겸하며 일당백 역할을 했다. 영화 <델타 보이즈>가 극중 ‘델타 보이즈’ 멤버들이 처한 상황 그 자체이기도 하다. 


열악한 환경에서 이뤄낸 높은 완성도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촬영에 들어가기 전 개략적인 상황만 배우들에게 전달해주고, 대사, 리액션 등은 배우들에게 전적으로 맡기는 고봉수 감독의 연출 방식이다. 영화 속 대사 70% 이상의 배우들의 애드리브로 채워진 <델타 보이즈>는 연기를 하는 배우들의 실제 성격이 캐릭터에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가면서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는다. 제작비 문제로 컷을 여러 번 나눌 수 없기에 고육지책으로 선택했다는 롱테이크 촬영 기법도 배우들이 가진 역량을 한 단계 끌어 올린다. 배우들에 대한 감독의 믿음과 배우들의 재능이 최상의 결과물을 만들어 낸 셈이다. 


여러모로 영화를 찍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일단 부딪쳐 봤던 <델타 보이즈>는 현실적인 이유로 각자 가진 꿈을 포기하곤 하는 사람들에게 포기하지 말고 나아갈 것을 주문한다. 물론 꿈을 이루려고 하는 사람들이 모두 성공의 과실을 맛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델타 보이즈>는 지난해 제17회 전주국제영화제 공개 이후 한국경쟁 부문에서 대상을 받고 인디포럼, 서울독립영화제, 무주산골영화제 등에서 호평 세례를 받았지만 영화 속 ‘델타 보이즈’ 멤버들은 조그마한 대회를 나가는 것도 힘들어 보인다. 사실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현실과 꿈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영화 속 ‘델타 보이즈’ 멤버들의 상황이 대부분 사람들이 처한 현실이기도 하다. 


그러나 ‘델타 보이즈’ 멤버들은 자기들 스스로가 노래로서 성공할 수 있다는 ‘꿈’은 이미 버린 지 오래다. 대회에 나가서 상을 받고 스타가 될 것이라는 생각 자체를 애시당초 하지 않았다. 그냥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끼리 함께 노래하고 시간을 보내는 그 자체에 만족하고 행복해 한다. 어쩌면 영화 속에서 가능한 이야기로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영화 <델타 보이즈> 시작이 그랬고, 세속적인 성공 여부를 떠나서 함께 영화를 만드는 것을 행복해 했던 사람들은 꿈과 현실을 담은 멋진 영화 한 편을 만들어 낸다. 




올해 2월 <델타 보이즈>에 출연한 백승환, 신민재, 김충길, 윤지혜 등과 <튼튼이의 모험>이라는 새로운 영화를 찍은 고봉수 감독은 지난 5월 열린 제18회 전주국제영화제에 초청되어 대명컬처웨이브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리고 고봉수 감독은 백승환, 신민재, 김충길, 윤지혜가 출연하는 새로운 영화를 구상 중이다. 그 이전에 <델타 보이즈>가 6월 8일 극장 개봉 형태를 통해 더 많은 관객들과 만나게 된다. 어느새 한국 독립 영화계의 새로운 브랜드로 자리 매김하고 있는 고봉수 사단의 시작을 알리는 <델타 보이즈>를 보면서 세상을 힘차게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얻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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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 나이트> 시리즈 대성공 이후 DC코믹스와 워너브러더스가 만든 슈퍼 히어로 영화들은 그리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저스티스 리그’라는 큰 그림을 바라보고 야심차게 시작한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2016, 이하 <배트맨 대 슈퍼맨>)은 쓰디쓴 혹평 세례를 한몸에 받기도 했다. 오히려 어린이 관객층을 대상으로 제작한 <레고 배트맨 무비>(2017)가 <배트맨 대 슈퍼맨>보다 훨씬 재미있고 완성도가 높다는 굴욕을 받기도 했다. 그래도 온갖 안좋은 소리를 다 듣던 <배트맨 대 슈퍼맨>에서도 유일하게 칭찬 받는 존재가 있었으니, 이름하여 ‘원더우먼’이다. 




지난 31일 개봉한 <원더 우먼>(2017)은 위기의 DC코믹스를 살릴 구세주로 평가받는 원더 우먼을 위한 단독 타이틀 영화다. 배트맨, 슈퍼맨과 다르게 영화로 제작된 바 없이, 오직 TV시리즈로만 팬들과 만났던 원더우먼의 첫번째 영화이기도 하다. <원더 우먼>이 캐릭터 탄생 이후 76년 만에 영화화 된 것은, 전세계에서 불고 있는 여권신장 운동 등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DC코믹스와 함께 슈퍼 히어로 양대산맥을 형성하는 마블 스튜디오(요즘은 DC코믹스보다 훨씬 더 잘나가고 있지만)보다 먼저 여성 히어로 솔로 영화가 나왔다는 것에 의미가 크다. 


솔직히 <원더 우먼>은 극적인 완성도에 있어서 잘 만든 작품으로 보기 어렵다. 일단, 여자들만 사는 비밀의 섬에서 공주로 자랐던 다이애나(갤 가돗 분)가 원더우먼으로 거듭나는 이야기는 이미 다른 히어로물에서도 여러번 재탕되어왔던 서사다. 원더우먼이 가진 거대한 능력치를 담아내기에 액션신은 지극히 평범하고, 그녀가 상대하는 빌런은 제우스의 아들이라는 소개가 무색하게 유독 약해보인다. 그나마 눈여겨볼 부분이 있다면, 기존 남성 히어로물과 반대로 영웅과 영웅의 성장을 도와주는 연인의 성별이 바뀌었다는 것. 그런데 이것만으로도 <원더 우먼>은 굉장히 신선하고 흥미진진한 히어로 영화로 다가온다. 




훗날 원더 우먼이 되는 다이애나는 여자들만 살고 있는 아마존 데미스키라 왕국의 공주다. 제우스 신의 아들이자, 전쟁의 신 아레스의 공격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최강의 능력을 지닌 다이애나는 독일군의 피습에 섬에 불시착한 스티브 트레버 대위(크리스 파인 분)을 도와주게 되고, 운명처럼 제1차 세계 대전이 진행 중인 전쟁터에 나선다. 


이동진 평론가를 비롯한 몇몇 사람들은 <원더 우먼>을 두고 ‘DC판 <퍼스트 어벤져>’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제1,2차 세계대전를 거치며 진정한 슈퍼히어로로 거듭나는 영웅의 성장기. 마블의 ‘어벤져스’를 이끄는 캡틴 아메리카의 탄생기를 그린 <퍼스트 어벤져>(2011)와 원더 우먼의 탄생 과정을 한 편의 영화로 만든 <원더 우먼>은 여러모로 비슷한 구석이 많아 보인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캡틴 아메리카는 인류의 기술과 후천적 요인으로 슈퍼 히어로가 된 반면, 제우스가 만들었다는 원더 우먼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영웅이라는 것. 그리고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특별한 약점이 없다. 




모든 것을 다 갖춘 완벽한 존재이지만, 여성의 참정권이 비로소 인정될 정도로 여성 인권이 한없이 미미 했던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 사람들의 눈에 원더 우먼은 그저 예쁜 여자로만 비춰진다. 전쟁터 뿐만 아니라 여성의 사회 활동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세상 자체가 원더 우먼이 싸워야할 대상이다. <원더 우먼>에서는 여성에 대한 편견과 차별에 맞서 싸우는 원더 우먼의 활약상을 세심하게 다루지는 않는다. 사실, 수억명의 남자들도 못하는 일을 혼자서 거뜬히 해내는 원더 우먼은 남자, 여자라는 성별을 완전히 초월해 버린 반인반신이다. 그럼에도 여성으로서 가진 능력을 전적으로 활용하여, 남성 히어로들의 단점을 가뿐히 상쇄시키는 원더우먼의 통쾌한 승리는 그동안 적체되어왔던 DC 코믹스의 오랜 부진까지 시원하게 날려버린다. 


솔직히 말해서 <원더 우먼>은 영화 자체에서 오는 재미보다 원더 우먼 역을 맡은 갤 가돗, 그리고 원더 우먼의 연인으로 출연한 크리스 파인 배우의 매력에 기댄 바가 크다. 지난 2014년, 자신의 SNS에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공을 옹호하는 글을 올린 행위가 심히 걸리긴 하지만, 그럼에도 갤 가돗은 ‘신의 한수 캐스팅’이라고 불릴 정도로 강렬한 여전사 원더우먼을 십분 구현한다. 특히 갤 가돗의 시원한 웃음이 치명적인 매력포인트로 작용한다. 원더우먼 파트너로 등장한 크리스 파인과의 케미스트리도 좋고, 다이애나(원더우먼)-스티브와의 러브라인이 짧아 아쉽기까지 하다. 요근래 등장한 슈퍼히어로물 중 <원더 우먼>처럼 사랑이야기로 가슴을 애타게 하는 영화가 또 있었을까. 원더 우먼이 펼쳐낼 다른 이야기가 심히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DC 코믹스에 대한 케케묵은 갈증을 해갈해준 원더 우먼의 타이틀 영화는 <원더 우먼>에서 끝나면 안된다. DC 코믹스의 경쟁사 마블 스튜디오의 대표 히어로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토르 처럼 시리즈 별로 원더 우먼을 위한 영화가 제작되었으면 한다. 배트맨, 슈퍼맨과 함께 DC 코믹스를 대표하는 히어로 캐릭터이자, 요즘에는 오히려 배트맨, 슈퍼맨보다 인기가 좋은 원더 우먼은 그럴 만한 자격이 충분하다. 앞으로 제작되는 <원더 우먼> 시리즈에서는 갤 가돗과 애틋한 호흡을 보여준 크리스 파인은 나오지 못하겠지만(<킹스맨>의 콜린 퍼스처럼 다시 살아서 돌아올 일도 없겠고) 갤 가돗의 일당백으로 위기의 DC 코믹스까지 구해낸 <원더 우먼>의 다음 활약상을 기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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