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방영한 JTBC <밀회>에서 서회장(김용건 분)은 자신의 비리를 모두 오혜원(김희애 분)에게 뒤집어 씌우고자 한다. 서회장의 말에 순수히 응할 혜원이 아니다. 서회장 일가를 상대로 반격을 준비하는 혜원. 그러나 혜원은 여전히 어렵게 편입한 상류사회의 일원을 포기할 수 없다. 





혜원은 자신의 내연남이면서 동시에 음악적 동지인 이선재(유아인 분)에게 이렇게 말한다. 상류사회에 들어가고 싶다는 욕망 하나만으로 지금껏 달려온 혜원은, 서회장 일가의 계략으로 모든 것을 다 잃을 위기임에도 불구 여전히 자신이 그간 힘들게 일구었던 자리를 잃고 싶지 않다. 아름다운 청춘을 바쳐가며, 서 회장 일가의 시녀노릇까지 자청한 혜원에게 간신히 비집고 들어간 상류사회 구성원은 그녀의 모든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혜원은 그저 서 회장의 필요에 의해 언제든지 버려질 수 있는 꼬리에 불과했다. 그룹과 재단의 돈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몸통 대신 화를 입는 깃털. 그것이 바로 혜원이 힘들게 마련한 그녀의 현재 자리였다. 





혜원은 자신의 욕망에 누구보다 충실한 사람이었다. 건초염으로 피아니스트로서의 성공이 좌절되자 혜원은 과감히 대학 동기이자 서한 그룹 딸인 서영우(김혜은 분)의 유학길에 동행, 영우의 수족이 된다. 그리고 서한 예술재단에 입성, 치밀하고도 신중한 일처리를 인정받으며 예술재단 부대표로까지 성공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감히 쳐다보지도, 올라가지도 못하는 기획실장, 부대표 자리에 만족하지 못하는 혜원은 오랫동안 품어온 더 큰 욕망을 발현하고자 한다. 혜원에게 자신이 가진 것들을 동등한 입장에서 공유하기 싫은 서회장 일가의 계략에 무너질 상황임에도 말이다. 


서회장에게 금일봉을 받고, 자신에게 모든 것을 다 뒤집어 씌울 검은 속내를 단박에 알아챈 혜원은 즉각 선재를 불려 더 이상 서회장 일가에게 그들의 관계가 들통나지 않도록 조심할 것을 주문한다. 그리고 자신이 처한 위기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쇼윈도 남편인 강준형(박혁권 분)과의 화목한 부부 코스프레도 자청한다. 반면, 혜원의 부탁을 일단 따르긴 하지만, 선재는 그는 물론이거니와 지금까지 이룬 것, 앞으로 가질 것까지 모두 잃고 싶지 않다는 혜원을 이해할 수 없다. 





한 때 혜원에게도 선재처럼 오직 피아노만 생각한 순수한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혜원은 아무런 사회적 배경없이 피아노에 대한 열망으로 똘똘 뭉친 선재의 재능과 매력에 이성조차 잃은 채 흠뻑 빠져들었다. 그러나 물불 안가리고 혜원에게 돌진하는 선재와 달리, 혜원은 속세의 때가 묻을 대로 묻었다. 상류층 출신이 아닌 혜원이 상류층에 들어가고 싶으면, 작은 여우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상위 1%의 부정부패를 도와주며,  간신히 상류층 모임에 합류한 혜원은 그 대가 얻은 기득권을 놓치고 싶지 않다. 


40대 상류층 기혼 여성과 20대 남자의 은밀한 만남으로 그려지긴 하지만,  <밀회>의 혜원과 선재의 관계는 오직 불륜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자신이 그간 일군 것을 잃을 까 두려워 점점 보수화 되어가는 기성세대와 딱히 잃을 것 없고 그래서 새로운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신세대의 또다른 만남이기도 하다. 




혜원은 선재의 패기와 열정을 부러워하고 높게 사지만,  선재와 같은 순수한 상태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혜원은 자신에게 내려놓음을 주문하는 선재를 엄중히 다그치며, 자신은 절대 그간 일군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명백히 밝힌다. 


돈과 사회적 지위로 계층이 구분되어지는 세상. 신분 상승을 목표로 재벌의 비리에 동참한 혜원의 모습은 더 많은 돈과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부정부패가 만연해진 대한민국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혜원은 온갖 비리는 다 저지르는 서한 그룹과 예술재단의 뒤치다꺼리에 염증을 느끼고 잘못된 일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지만,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기 위해 눈을 질끈 감고 그 대열에 기꺼이 동참한다. 





그러나 서회장 일가가 저지른 비리가 수면 위에 드러나는 순간, 아무리 발버둥쳐도 깃털에 불과했던 혜원은 몸통이 꾸민 일을 대신 책임져야한다. 진작에 방향을 고쳐 잡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 신분상승에 눈이 멀어 결국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 놓은 덫에 걸린 혜원은 그렇게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Posted by 너돌양

지난 28일 방영한 JTBC <밀회> 11회에서 오혜원(김희애 분)이 그녀보다 20살 어린 이선재(유아인 분)을 남자로 몰래 만났을 때 만해도, 아무도 모르는 줄 알았다. 그런데 혜원의 남편 강준형(박혁권 분)은 물론이거니와 한성숙(심혜진 분), 서영우(김혜은 분), 심지어 왕비서까지 서한예술재단 사람들 모두 혜원과 선재의 사이를 어림짐작 눈치채고 있었다. 행여나 사람들이 선재와의 관계를 더 알아챌 까봐, 인적 드문 으슥한 곳에서만 선재를 만나는 등 모든 행동이 조심스러운 혜원. 그럼에도 혜원은 그녀의 불륜으로 자신의 목을 조아오는 사람들보다 선재를 만나지 못하는 현실이 더 힘들고 고통스럽다고 한다. 





이미 김수현 작가가 집필한 SBS <내 남자의 여자>, <밀회> 안판석PD가 연출한 JTBC <아내의 자격>으로 극 중 불륜 설정을 몇 번 경험한 바 있는 배우 김희애에게 불륜녀 캐릭터는 그리 낯설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전 드라마들과 달리, 아들 뻘 미소년과 사랑에 빠진 설정은 차치하더라도, <밀회>의 오혜원은 기존 김희애가 연기한 불륜녀 캐릭터들과 상당한 차이를 드러낸다. 





<내 남자의 여자>에서처럼 동생 남편을 유혹한 이화영(김희애 분)에게 격분한 나머지, 육탄으로 공격하는 김은수(하유미 분)도 없고, <아내의 자격>처럼 눈치봐야하는 시댁 식구들도 없지만, <밀회>의 오혜원은 <내 남자의 여자> 은수와 <아내의 자격> 시댁들보다 더 무서운 사람들과 싸워야한다. 


필요에 의해 혜원을 기획실장으로 고용했지만,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언제든지 혜원을 버릴 수 있는 사람들. 그래서 혜원은 서한예술재단 사람들 시녀 노릇하면서 힘들게 쌓아온 자리를 놓지 않기 위해서, 아등바등 살아야했다. 행여나 서한예술재단 사람들에게 책 잡히는 일이 생길까봐 언제나 도덕과 상식 준수를 강조하며, 이성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혜원. 그러던 중 도저히 이성적인 사고로 통제되지 않는 선재를 만난 혜원은 겁없이 사랑의 불구덩이에 뛰어들었고, 그 결과 혜원은 지금 자신의 불륜을 빌미로 언제든지 자신을 잡아먹을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과 맞서야한다. 





이길 수 있다고 도저히 확신이 들지 않는 싸움에 임한 혜원은 두렵다. 그간 힘들게 일구었던 모든 것이 날아가 버릴까봐. 하지만 혜원은 자기 때문에 장래가 촉망된 선재의 날개를 잃을까봐 더 두렵다. 무엇보다도 선재를 만나지 못한다는것이 더 괴롭다. 


사회적인 성공을 위해, 자신의 감정을 최대한 통제하고, 성공 법칙대로만 행동해왔던 혜원에게 선재는 처음으로 머리가 아닌 마음이 먼저 끌려 시작한 사랑이기도 하다. 온갖 처세술에 능한 혜원과 달리, 이제 막 세상에 발 딛기 시작한 선재는 그 또래 청년들과 비교해서도 이것저것 재보기 보다 자신의 감정이 이끌리는 대로 행동하는 경향이 강하다. 처음엔 선재의 구애를 완강히 거부했으나, 이제는 선재에게 완전히 빠져버린 혜원은 처음으로 그녀의 삶에 물음표를 던진다. 





무료했던 쇼윈도 부부생활, 말이 좋아 예술재단 기획실장이지 온갖 구정물 나는 더러운 일 뒤처리로 하루하루를 보내도, 성공을 위한다는 미명 하에 겨우겨우 참아냈던 지난 날. 하지만 선재를 만나고, 선재와의 만남을 빌미로 그녀의 모든 것을 꼬투리잡는 승냥이들의 진짜 얼굴을 보게된 혜원은 천천히 자신을 둘러싼 가식과 위선의 가면을 벗는다. 그리고 자신의 진심과 정면으로 마주한다. 아무리 아름답게 포장한다고 한들, 미화될 수 없는 불륜이지만 그것을 통해서야 진정으로 자신의 진짜 모습을 되찾은 혜원이 어딘가 모르게 서글프게 다가온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Posted by 너돌양

무뚝뚝한 맏딸 만지(고아성 분)보다 엄마(김희애 분)을 다정다감하게 잘 따르던 둘째딸 천지(김향기 분)이 죽었다. 평소보다 빳빳하게 교복 셔츠를 다리고, 뭘 사달라고 조르지 않았던 천지가 아침부터 mp3을 사달라, 목도리를 다시 짜달라 할 때부터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이렇게 유서 한 장 달랑 남기지 않고 일찍 엄마와 언니 곁을 떠날 줄 몰랐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세 가족이 나란히 식탁에 앉을 때부터 천지의 비극은 예고되어 있었다. 





<완득이> 이한 감독과 원작 김려령 작가가 다시 의기투합하여 제작한 영화 <우아한 거짓말>은 딸의 죽음 이후, 먼저 간 딸의 발자취를 더듬어가는 남은 가족들의 이야기이다. 천지는 학교 폭력의 피해자였고, 뒤늦게 동생 천지가 왕따로 힘들어했다는 사실을 알게된 만지는 천지의 주변 인물을 추적해가면서, 천지를 미처 살피지 못한 자신의 무심함을 탓한다. 


천지가 죽기 전부터, 천지가 학교 폭력에 시달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엄마 현숙은 딸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자, 아예 가해자 화연(김유정 분) 가족이 운영하는 중국집 근처로 이사를 간다. 딸의 죽음 이후에도 아무일 없었다는 것처럼 남들보다 더 씩씩하게 웃곤 했던 현숙은 아무리 묻으려고 노력해도 도저히 묻혀지지 않는 천지 생각에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는 나날들이 허다하다. 





영화는 현숙, 만지, 천지 가족 외에도 천지를 괴롭힌 화연의 가족, 현숙네 옆집에 사는 공무원 준비생 추상박(유아인 분), 한 때 현숙의 애인이자, 만지, 천지 친구이기도 한 곽만호, 미란, 미라 가족이 등장한다. 꼬인 실타래처럼 이들 등장인물은 저마다 사연을 가진 채 뒤엉켜있다. 


학교 내에서 '전학생 킬러'로 소문이 자자한 화연은 중국집 운영 때문에 14년 동안 노후된 아파트에서 붙박이처럼 살고있는 부모에게 앙심을 품고 있으며, 학교 내 비공식 은따인 천지에게 먼저 손을 내민 다정한 미라(유영미 분)은 자신의 아빠 만호(성동일 분)가 천지 엄마와 함께 있는 모습에 상처를 받고, 그 뒤로 천지에게 절교를 선언한다. 현숙, 만지가 옆 집으로 이사오기 전부터, 천지와 친분이 있던 상박은 어릴 때 큰 화상을 입고, 교내 따돌림을 이기지못해 자퇴한 굴곡진 과거를 가지고 있다. 





왕따 주도자 화연, 본의 아니게 왕따에 가담했던 미라 모두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보여준 <우아한 거짓말>은 그럼에도 학교 폭력에 가담한 아이들에게 쉽게 면죄부를 쥐어주진 않는다. 전적으로 아이들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 아닌, 아이들을 잘 살피지 못한 어른들의 부주위를 강조한다. 그렇다고 무작정 어른들의 무심함을 꾸짖지 않는다. 원인 규명에만 힘쓰는 것이 아닌,  충격적인 사건 이후 어떻게 살아야할지에 더 주목하고자 한다. 


영화는 섣불리 '용서'라는 단어를 남용하지 않는다. 화연 엄마의 사과를 거절하는 현숙의 말에 따르면, '받고 싶지 않은 사과는 또 하나의 폭력'으로 간주될 수도 있다. 대신 현숙과 만지는 자책이나, 질책, 마음에 내키지 않는 억지 용서가 아닌 동생의 죽음으로 상처를 받은 서로를 보듬아주는 방식으로 아픈 후유증을 이겨내고자 한다. 만지가 천지 자살 이후 동료들의 따돌림으로 자꾸만 겉도는 화연의 손을 잡아준 것도 자신의 동생을 죽음으로 내몬 화연을 용서하는 것이 아닌, 천지와 같은 제2의 피해자를 막고자함을 위함이다. 





학교 폭력 그 자체보다, 그 이후 상황에 더 관심을 두고자 했던 <우아한 거짓말>은 뒤죽박죽 엉커버린 꼬인 실타래를 천천히 풀어가며, 힘든 상황에서도 애써 괜찮은 척 우아한 거짓말을 벗하며 지내는 이들에게 넌지시 묻는다. 때로는 너무 착하게만 흘려가는 이 영화가 지극히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각 개인의 삶이 너무 바쁘다는 이유로, 정작 소중한 이에게 소홀히하곤 하는 우리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따뜻한 포옹'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잠시라도 인지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적지 않은 위로로 다가온다. 

여담으로 오늘 방영하는 JTBC <밀회>에서 파격적인 연상연하 커플아닌, 평범한 이웃으로 먼저 조우한 김희애와 유아인을 보는 재미로 쏠쏠하다. 3월 13일 개봉.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Posted by 너돌양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