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종일관 우울하고 날카로웠던 지난날과 달리, 너무나도 행복하고 포근한 분위기가 지배했던 KBS 주말드라마 <내 딸 서영이> 마지막이였다. 지난 3일 방영한 <내 딸 서영이> 마지막회는 그동안 49회 동안 흘렸던 서영이(이보영 분)과 삼재(천호진 분)의 눈물을 고스란히 보상이나 하듯이, 드디어 화해한 부녀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환하고 정겨웠다. 


첩첩산중 쌓인 오해 더미에 가려 서로를 반목하고 살아왔던 이들이 각각의 원망을 풀고 행복해지는 모습은 전형적인 가족 드라마의 클레셰를 넘어, 손발이 오글거릴 정도였다. 특히나 <내 딸 서영이>는 여타 주말 드라마와 달리 시크한 모습을 보여왔기에, 그 닭살돋음이 더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우리나라 일일, 주말 연속극의 고질병이라고 볼 수 있는 지독한 '행복강박증'이라고 하더라도, 이상하게 그 진부한 해피엔딩이 싫지 않다. 


<내 딸 서영이>는 스토리 전개 방식이나, 인물 구도 면에 있어서 전형적인 주말 드라마 형태를 답습한다. 어느 주말 드라마가 그랬듯이, <내 딸 서영이> 주 무대는 가족이고, 끝내 가족의 틀을 벗어나지 않았다. 극 중후반부에 여주인공 서영은 가족의 품을 떠나 홀로 서기를 시도했지만, 결국 그녀의 선택은 완벽한 가족의 품안에 포근히 안기는 것이었다. 





이왕이면 여주인공이 남편이었던 우재(이상윤 분) 재결합없이 정말로 그녀 혼자 나름대로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줄 법도 하다. 하지만 가족 체계가 나날이 무너지는 시대, 무엇보다 '가족'을 중시하는 보수적 가치관을 가진 중장년층 세대가 주시청자로 꽉 잡고 있다는 KBS 주말연속극 시간대에는 쉽게 감당할 수 없는 도전이다. 가족 없이 나 혼자 잘 살 거야를 외치던 서영이가 오랫동안 등을 돌리던 아버지에게 용서를 구하고, 이별을 선언했던 우재와 재결합하여 아이까지 낳고 알콩달콩 사는 결말은, 아무리 요즘 '싱글족'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하나, 이왕이면 내 자식은 결혼해서 아이낳고 살았으면 하는 다수의 부모들의 판타지를 완벽히 대변한다. (우리 부모님도 매한가지다) 


그러나 <내 딸 서영이>가 단순히 보수적 중장년층 판타지 충족에만 머물렀다면, 오늘날 '국민드라마'라고 불릴 정도의 엄청난 인기를 끌긴 어려웠을 것이다. 시간대 특성상 뭘해도 시청률 30%는 보장한다는, KBS 주말연속극이라고 하나, <내 딸 서영이>는 기존 중장년층 시청자외에 주인공 서영이 또래인 20~30대 시청자들의 폭발적인 지지를 받은 주말 드라마였다. 




솔직히 말하면 글쓴이는 평소 KBS 주말 연속극을 즐겨보지 않았다. 그 시간대의 드라마는 어른들을 위한 이야기가 전부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 시간대 드라마는 대부분 그래왔다. 하지만 <넝쿨째 굴러온 당신> 이후 서서히 젊은 시청자들의 공감대를 형성해온 KBS 주말 연속극은 <내 딸 서영이>를 정점으로 완벽히 젊어지고 있었다. 비록 결말에서 '결국은 가족'이라는 보수적 가치관과 완전히 타협하긴 했지만, 서영이와 아버지와 갈등을 빚고 서서히 해결하는 과정은 무조건 보수적 어르신들의 입장에서만 바라보지 않았다. 




<내 딸 서영이>의 서영이는 기존 가부장적 시각으로 봤을 때, 자신의 행복을 위해 부모를 등진 패륜 자식에 가깝다. 하지만 <내 딸 서영이>는 서영이를 단순 악녀로만 바라보기보다 그녀가 사랑하는 아버지를 외면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제시한다. 서영이의 살려달라는 절규를 듣고 정신을 차리긴 했지만, 그 이전까지 서영이 아버지 삼재는 내가 서영이라도 등을 돌리고픈 무늬만 부모였다. 물론 자식된 입장에서 아무리 못난 부모라도, 부모를 버릴 수 없다. 하지만 그러면 안되는 것을 알면서도 불구, 부모와 가족을 등지고 진정한 홀로서기를 시도하는 서영이의 도전은 요즘들어 더더욱 부모 세대와 격한 갈등을 벌이는 젊은 세대에게 큰 공감대와 지지를 받기 이른다. 비록 서영이의 홀로서기는 다시 가족의 편입으로 급마무리 되었지만, 어른들을 위한 드라마에서 젊은이들의 시각이 반영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있는 '혁명'인 셈이다. 


드라마의 하이라이트인 서영이와 아버지의 화해를 위해 한걸음씩 잘 나가다가, 갑자기 삼재가 복막염으로 인한 패혈증으로 생사의 위기를 넘길 당시엔, 누구 하나가 아파야 모든 것이 해결되는 우리나라 드라마의 전형적인 고질병 재림을 보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까지 들었다. 하지만 <내 딸 서영이>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자체가 극단적인 상황으로 곯아야지만, 겨우 터질 정도로 극화된 부모, 자식 세대의 갈등을 고려해볼 땐 그리 억지 전개로 보긴 어렵다. 




<내 딸 서영이>가 주말 드라마 고정 시청자인 중장년층은 물론, 청년층이라는 신규 애청자 유입에 성공한 것은, 드라마가 보여줬던 세대 갈등과 해법이 각 세대를 넘나드는 공감대 형성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했음에도 불구, 죽을 고비를 넘어서야 자식의 용서를 받은 삼재는 이 나라 다수의 부모를 상징했고, 반면 부모는 자신의 인생에서 짐만된다고 생각한 서영은, 지난 대선 이후 부모 세대에 의해 완벽히 좌지우지당한 앞날에 힘들어하는 자식 세대의 표본이었다. 


너무나도 완벽했던 <내 딸 서영이>의 행복한 마무리를 두고, 중장년층은 그토록 기다리던 결말에 함박웃음을 지을 법도 하다. 아버지를 원망하고 살았던 딸이 아버지의 깊은 사랑을 깨닫고 용서를 구하고, 다시 부모와 남편의 곁으로 회귀했으니 이토록 완벽한 보수적 해피엔딩이 또 어디있을까. 


하지만 철옹성같았던 서영이가 다시 아버지에게 마음의 문을 연 것은, 딸의 울부짖음에 완전히 새 사람이 된 아버지의 변화가 있었기에 가능한 기적이었다. 한 때 이혼 위기까지 갔었으나, 그 어느 때보다 사이가 돈독해진 강기범(최정우 분)-차지선(김혜옥 분) 부부도, 소위 '꼰대'로 불리던 강기범이 변했기에 행복해질 수 있었던 것이다. 


자식으로서, 여성으로서 독립을 선언했던 서영이가 다시 아버지와 남편이 있는 집으로 돌아간다는 설정은 전형적인 가부장적 가치관 회귀로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서영이가 다시 '가족'으로 돌아가는 과정은, 무작정 자식과 아내의 일방적 '희생'만을 강요하지 않았다. 단순히 자식 세대는 무조건 부모 세대를 공경하고 따라야한다는 것이 아닌, 부모 세대의 자식 세대를 향한 배려와 이해를 함께 보여주는 진정한 소통방식을 보여준 것이다. 


앞서 말했지만, 서영이를 비롯한 자식 세대는 결코 부모 세대를 버리거나 외면할 수 없다. 하지만 과거 이삼재와 강기범이 자라던 시절처럼 기성 세대의 가치관을 무조건 젊은 세대에게 강요하거나 주입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 어느 때보다 세대 간의 갈등이 격렬해지는 지금, 상대를 향한 일방적 양보만을 바라는 것이 아닌  마음의 문을 여는 대화로, 서로의 입장을 이해해보는 것은 어떨까. 


같은 시대를 산다고 해도, 각각 다른 세계를 보고 있는 부모와 자식이 서로가 만족할 수 있는 합의점을 찾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과정이긴 하다. 하지만 더 늦기 전에, 후회하기 전에 자식과 부모, 혹은 가족 사이에 진솔하게 마음을 털어놓아야한다는, 당연하지만 잊고있던 소중한 진리를 몸소 깨닫게 해준 것만으로도 <내 딸 서영이>는 '국민드라마'로서 완벽히 성공한 것이다. 




<내 딸 서영이>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해피엔딩으로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하지만 이삼재와 이서영의 진정한 화합은 전적으로,  함께 얼굴 맞대면서 살아야할 이 시대 모든 부모와 자식의 몫이다. 단순히 판타지에 불과한 주인공 가족의 되찾은 행복에 대리만족에 머무르게 하기보다, 우리가 사는 현실까지 되짚어 보게 하는 <내 딸 서영이>의 마지막 회가 진한 여운을 남긴다. 역시 <내 딸 서영이>가 국민 드라마 맞긴 맞는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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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너돌양





엄연히 말하면 KBS 주말 연속극 <내 딸 서영이>는  부모와 자식 간 세대 갈등을 전면적으로 부각시킨 것 외에 딱히 새로운 소재는 보이지 않았다. 대한민국 대부분 드라마에서 단골 요소로 꼽히는 재벌과 신데렐라 스토리를 여주인공 서영(이보영 분)의 신분상승을 통해 보여주더니, 드라마의 다른 축을 맡은 상우(박해진 분), 호정(최윤영 분), 미경(박정아 분)을 통해 삼각관계까지 그려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내 딸 서영이>가 평소 KBS 주말 연속극을 보지 않은 젊은 시청자들에게까지 폭넓게 사랑받을 수 있었던 비결은,  뻔한 내용임에도 불구 지극히 어른들 시각이 아닌 청년들의 시각으로 바라본  세대갈등 해법 제시가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 주말 연속극과 다른 문법으로 드라마를 이어가는 <내 딸 서영이>의 결말에 제법 기대가 컸었다. <내 딸 서영이>만큼은 다른 드라마와 달리, 무조건 자식 세대와 여성만의 양보로 갈등이 억지 봉합되지 않는 참신한 화해를 보여줄 것이라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내 딸 서영이> 시청자들의 오랜 숙원을 풀어낼, 서영이-삼재 부녀 갈등의 해법으로 제시한 카드는 아무래도 서영이 아버지 삼재(천호진 분)이 쉽게 나을 수 없는 병에 걸린 것으로 가닥을 잡은 듯 하다. 




극 중 삼재가 크게 아플 것이라는 설정은 이미 지난주 16일 방영한 45회 공방 여사장과 함께 삼겹살을 먹는 저녁식사 씬에서 암시된 바 있다. 그 당시엔 너무나도 뻔해보이는 설정이기에, 과연 기존의 식상한 문법을 제대로 뒤집는 필력으로 호평받은 <내 딸 서영이>가 굳이 삼재 불치병 설정이란 무리수(?)를 택할까 싶었다. 하지만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드디어 오랫동안 물과 기름처럼 제대로 섞이지 못하던 서영이와 아버지 삼재가 마음의 문을 열고 조금씩 서로에게 다가가려던 찰나, 복통을 호소하던 삼재는 끝내 휴게실에서 쓰러지게 된다. 


오늘 방영할 48회를 미리 보여주는 예고편을 보니, 삼재가 앓고 있는 병은 역시나 꽤나 심각해 보인다. 아버지의 짙은 병색을 알게된 서영이는 눈물을 흘리고, 의사임에도 불구 아버지가 몸 속에 큰 병이 있다는 것을 간과한 상우는 자책한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최종회 시청률 50%를 내심 염두에 두고 있다는, <내 딸 서영이> 제작진의 고도의 노림수가 숨어있다. 50부작으로 다음주 종영 예정인 <내 딸 서영이>는 아직 3회나 남았고, 어떻게든 드라마 최대 하이라이트인 삼재와 서영이의 감동적인 화해 무드를 위한 뭔가 극적인 상황이 필요했다. 그래서 식상하다는 시청자들의 비판을 충분히 예상하면서도, 삼재를 환자로 몰아갈 수 밖에 없다. 불치병이야말로 우리나라에서 드라마가 뿌리깊게 박힌 이래, 주인공의 비극적인 상황을 극대화시키면서,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하기 위해 가장 많이 활용된 3대 요소 중 하나아닌가. 




"믿었던 <내 딸 서영이> 너마저."


그래도 <내 딸 서영이>만큼은 쿨하게 자연스럽게 삼재와 서영이가 화해하길 바라던 시청자들은 생각지도 못했던 강한 뒤통수에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다른 드라마라면 그럼 그렇지 하고 아무렇지 않게 넘어갈 수 있었지만, <내 딸 서영이>는 시청자들에게 그렇고 그런 주말 연속극이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하긴 아직 47회밖에 안됬음에도 불구, 드라마의 가장 백미로 남을 삼재와 서영이 화해 장면이 좀 일찍 나온다 싶었다. 드라마 제목 자체가 <내 딸 서영이>인만큼 서영이 이혼이나 독립 선언은 속전속결로 진행되었다쳐도, 정작 드라마의 주제인 부모와 자식 세대의 진정한 화합은 막판까지 쉽게 보여주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삼재와 서영이의 빠른 화해를 방해하는 요소로 느닷없는 삼재가 병에 걸려 쓰러지는 장면이 나올 줄은 미처 예상치 못했다. 


삼재가 쓰러진 후, 서영은 아버지의 병색이 완연해진 쯤에야, 뒤늦게 아버지의 진심어린 사랑을 알게된 자신의 무심함을 자책할 것이다. 하지만 굳이 삼재가 쓰러지지 않아도, 서영은 자신을 위해 완전 새 사람이 된 아버지의 진심을 깨닫고, 그동안 아버지에게 차갑게 대한 것에 용서를 빌고, 앞으로 아버지에게 잘하겠노라 다짐한 상태였다. 그러나 <내 딸 서영이>는 좀 더 감동적인(?) 부녀의 화해를 위해, 서영이가 집을 뛰쳐나간 이후 정신차리고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던 삼재를 환자로 만들어 차마 눈물없이 볼 수 없는 서영이의 사부곡을 기대하는 것 같다.  


참으로 가슴 절절했던 예고편처럼, 예상치 못한 새드엔딩으로 흘러갈 수도 있다. 하지만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KBS 주말 연속극 특성상, 의사인 아들, 딸 혹은 전 사위 우재(이상윤 분)의 도움으로 다시 건강해지는 삼재의 해피엔딩으로 갈 확률이 높아보인다. 이대로 삼재를 떠나보내기엔, 이제야 아버지의 진정한 사랑의 힘을 깨닫고, 다시 아비의 품으로 돌아가려는 서영이는 물론, 그동안 서영이를 생각해서 열심히 살아온 삼재에게도,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두 부녀의 화해만을 간절히 바랐던 시청자들에게도 못할 짓이다. 


하지만 <내 딸 서영이>마저 끝내 불치병이 안겨주는 신파의 유혹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은  강한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결말을 떠나 다소 작위적으로 보일 수 있는 삼재의 병색 완연은 <내 딸 서영이>만이라도 쿨 하게, 자연스럽게 등장인물 간의 화해를 기대했던 이들의 적잖은 아쉬움을 남긴다. 그럼에도 불구, 그동안 뻔한 설정, 갈등임에도 불구 허를 찌르는 전개로 시청자들의 감탄을 이끌어낸 드라마인만큼,  삼재를 끝내 환자로 만든 <내 딸 서영이>의 마무리에 사뭇 기대를 걸어보련다. 이왕이면 가볍게 급성 맹장 걸린 삼재로 갔음 싶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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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너돌양






지난 9일 방영한 <내 딸 서영이> 43회 말미에 마술사 배영택(전노민 분)에게 제대로 낚여버린 차지선(김혜옥 분)의 구세주는 역시나 예상대로 서영이(이보영 분)이었다. 자신이 쫓아낸 전 며느리임에도 불구, 간통에 휘말린 아내 사건을 조용히 처리하고자했던 강기범(최정우 분)은 사건 수습 변호사로 서영이를 부른다. 


서영이는 특유의 기지를 발휘, 이 사건이 단순 사기꾼 부부가 차지선의 돈을 노린 범행이 아니라는 점을 알게된다. 어찌되었던 서영이 덕분에 일은 잘 해결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을 믿지 않은 남편에게 단단히 화가 난 차여사는 강기범과 이혼을 선언하며 집을 나간다. 


뜬금없이 간통 사건에 휘말린 차여사의 위기는, 서영이와 우재(이상윤 분)의 재결합을 위한 개연성 확보 차원에서 벌어진 해프닝이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차여사의 간통 사건은 비교적 빠른 시간 내에 해결되었다. 대신 차 여사가 강기범과 이별 선언하면서 일은 더 꼬여만 간다. 


애초 강기범과 차지선은 사랑없는 정략 결혼으로 이뤄진 사이다. 거기에다가 강기범은 독단적이고, 지극히 자기중심적이다. 이기적인 성격은 차지선도 매한가지나, 그래도 감수성이 풍부한 차여사에 비해, 강기범은 날카로운 바늘로 찔러도 피 한방울도 나오지 않는 그런 사내다. 아내가 간통사건에 휘말렸을 때, 억울하게 간통녀로 몰린 아내를 걱정하기보다 행여나 밖에 소문이 퍼져나갈까봐 이혼시킨 전 며느리까지 끌여들이는게 강기범이다.



 


강기범에게 자신의 아내가 바람을 피고 안피고는 중요한 일이 아니다.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아내는 간통죄에 휘말려 자신과 위너스 그룹의 명예를 추락시킬뻔했다. 그런데 서영이처럼 어떠한 책임도 묻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할 아내가, 자신에게 단단히 실망했다며 집을 뛰쳐나간다. 아내가 집을 나갔음에도 불구, 자신이 아내에게 어떤 중대한 실수를 벌였는지 감지하지 못한 채 눈 깜짝도 안하는 남자. 참으로 강기범스럽다. 


<내 딸 서영이>에서 강기범은 전형적인 가부장적 태도를 지닌 가장이다. 사업실패와 노름으로 딸에게조차 외면받는 이삼재(천호진 분)와 경제력있는 아내에게 쥐어 살다가 이제 막 독립선언하며 집을 나간 최민석(홍요섭 분)과 달리 그는 국내 굴지의 재벌가 회장에 막강한 재력과 능력을 거머쥔 강한 남자다. 운영하는 사업체에서도, 집안에서도 그는 자신의 뜻대로 군림하고자 한다. 여전히 가부장적 사고관을 가진 강기범에게 있어서, 아내와 자식들이 자신의 뜻을 거스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자신을 하늘처럼 섬겨야하는 아내와 자식들이 서서히 반기를 들기 시작한다. 참을 수 없었지만, 설날 명절 텅 빈 대저택에서 자기 혼자 덩그러니 남아있는 사실을 알게된 강기범은 그제야, 수십년간 아내 혼자 겪어야했던 극도의 외로움을 체감으로 느끼게 된다. 


주말 홈 드라마 <내 딸 서영이>의 주제는 가족의 화합이다. 주인공인 서영이는 노름을 일삼는 아버지 삼재와 등 진지 오래이지만, 삼재의 변화에 서영이 또한 서서히 문을 열고 있는 중이다. 반면 겉으로 보기엔 화려한 재벌가였던 강기범집은 집안끼리 결속으로 오랜 세월 사랑없이 부부생활을 유지해온 강기범, 차지선을 필두로 강기범도 모르는 외도로 낳은 성재(이정신 분)로 한동안 몸살을 앓아야했다. 거기에다가 오랜 세월 부모님의 사랑없는 정략결혼의 폐해를 똑똑이 지켜본 딸 미경(박정아 분)은 진정한 사랑을 찾기 위해 재벌가 딸인 자신의 정체까지 속여왔다. 


무능을 넘어서 자식들에게 짐만 되는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서영이만큼은 아니지만, 우재와 미경 또한 권위를 앞세워 아내와 자식들 위에서 군림하려는 아버지의 존재를 썩 달가워하지 않는다. 다만, 능력있는 아버지 덕분에 잘 먹고 잘 살아왔고, 또 윤택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아버지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자꾸만 가족 내에 아버지의 권위가 추락하는 시대에도, 강기범이 강력한 카리스마로 무소불위 가장으로 군림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여기에 있다. 강기범의 남다른 능력과 힘 덕분에 그의 슬하에 있던 아내, 자식들은 밥 굶지 않고, 등록금, 생계 걱정없이 호화로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다. 때문에 강기범은 절대적인 경제권을 내세워 가족들을 압박했고, 철저히 자신의 뜻대로 가족을 이끌고자 한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그리 많지 않았던 시절, 한 가족 구성원 내에서 유일하게 경제적 능력이 있었던 가장의 영향력은 그야말로 절대적이었다. 하지만 이제 시대는 변했고, 더 이상 산업화 시대처럼 유일하게 경제권을 쥐고 있는 가장과 어른임을 내세워 아내와 자식들 위에서 군림하고자하는 발상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강기범 또래 남성들은 집안의 가장과 연륜이 많은 어른이라는 이유로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관을 젊은 세대에게 전수하고픈 의지가 강한듯하다. 그리고 지난 2012년 대선 때 어르신들의 반란은 확실히 통했다. 


기존 KBS 주말 홈 드라마를 즐겨보는 기성 세대 애청자들에게 "패륜아"라는 곱지않은 눈초리를 받고 있음에도 불구, <내 딸 서영이>가 기존 주말 드라마와 달리 젊은 세대들로 지지층을 넓힌 배경에는, 서영이와 아버지가 겪는 갈등의 상징성때문이다. 극중 서영이는 재능있고 똑똑한 재원이지만, 사사건건 서영이의 발목을 잡는 아버지 때문에 이루고 싶은 꿈이 좌절되는 시련을 겪는다. 하지만 자신의 거듭되는 괴롭힘에 절규하는 딸의 눈물을 보고 정신차린 아버지는 그동안 딸을 힘들게했던 지난날을 뼈저리게 반성하고 새 사람으로 거듭나기 이른다. 

아무리 못난 부모라고해도, 자식은 결코 부모를 버릴 수 없다는 가부장적 사고관으로 비추어볼 때, 끝내 부모를 등진 서영이는 호로 자식에 가깝다. 하지만 <내 딸 서영이>는 아버지를 버린 서영이의 불효를 탓하기 보다, 아버지와 인연을 끊을 수 밖에 없는 서영이의 피치못할 사정을 촘촘히 그려낸다. 그러면서 아버지를 이해해야하는 서영이의 희생만 강조하기보다, 달라진 삼재를 통해 기성세대 또한 자식 세대에 발맞춰 나아가야하는 인식 변화를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서서히 달라진 모습으로 자식들과 한층 가까이하고자하는 삼재와 호정이 아버지 민석과 달리 경제력을 앞세워 막강한 가장 위치를 공고히하고 있는 기범은, 오직 아내와 자식들의 복종만을 강요한다. 당연히 기범에 대한 가족들의 반발은 나날이 커질 수 밖에 없으며, 더 이상 기범의 가부장적 가족 운영에 참을 수 없었던 아내 지선은 집을 나간다. 그리고 아버지 닮아 독단적인 성격이 고민이라는 우재 또한 집안의 우화를 자초한 아버지의 독선적이고도 이기적인 태도에 아쉬움을 토로한다. 


카리스마 넘치는 아버지 밑에서 여유롭게 자라, 한번도 자기보다 어려운 이 사정 고려하는 법 모르고 자랐을 법한 우재가 남의 마음을 헤아리기 시작한 것은, 서영이와 헤어진 이후, 그녀의 아버지인 삼재를 만나면서부터이다. 삼재와 서영을 통해 한순간 직장 잃은 가장의 비애와 가족들의 눈물을 알게된 우재는 기범에게 악감정을 품고 마술사 배영택을 시켜 자신의 어머니 차여사를 간통녀로 몰고간 협력업체 사장을 흔쾌히 용서한다. 기범은 쓸데없는 일을 했다고 우재에게 화를 내지만, 서영이와 삼재를 통해 마음의 문을 열고 진심으로 남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터득한 우재는 협력업체에 몸담은 직원들과 가족들 등 여러 목숨을 살린 선의를 베풀었다. 


간통녀로 몰릴 뻔한 차지선의 에피소드는 분명 서영과 우재 가족들을 다시 연결하는 중요한 고리였다. 그러나, <내 딸 서영이>는 누구나 예측 가능한 뻔한 전개를, 서영이와 우재 가족들의 재결합 수준에서 엉성하게 마무리짓는 단순한 수습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서영이를 부르는 촌극을 벌이긴 했지만, 차여사의 이혼 선언으로 이어진 혀를 찌르는 의외의 전개는 어쩌면 서영이, 삼재와의 갈등보다 더 심각했던 강기범의 가부장 판타지의 허울을 한꺼풀씩 벗겨 내려간다. 





그러면서 우리 아버지는 어머니가 집을 나가도 요지부동이라는 우재의 회의적인 반응과 달리, "세상에 절대라는 것은 없어." 하면서 예전과 너무나도 달라진 삼재의 변화를 떠올리는 서영. 분명 가장의 권위를 내세워 무작정 가족들을 짓누르기만했던 강기범은 변해야하고, 또 변할 것이다. 서영이의 말대로 절대로 변하지 않는 것은 없으니까. 도저히 구제불능일 것 같은 서영이의 아버지도 환골탈태하지 않았나. 


무작정 자식 세대의 어른 세대의 복종만을 강요하는 것이 아닌, 자식 세대와 부모 세대의 허심탄회한 이해와 포용을 강조하는 드라마 <내 딸 서영이>. 그 어느 때보다 세대갈등이 극심해지는 시대, 명확한 해법은 가져다 주진 않더라도, 한번쯤 나의 부모, 혹은 자식의 상황을 되돌아보게 하는 그런 드라마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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