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깊은 나무>의 최대 수확이 있다면 바로 송중기의 재발견이 아닌지? 그동안 학벌 좋고 어여쁘게 생긴 꽃미남으로 이미지를 굳힌 스타 송중기에게 <뿌리깊은 나무> 청년 이도는 그에게 배우로서 대성할 수 있는 싹을 꽃피웠다. 

송중기의 연기는 첫 회에서 장인 심온 대감이 역모죄에 연루되어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어깨를 떠는 것으로만 봐도 그가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섬세한 감정표현을 가졌음이 입증되었다. 이도. 특히 젊은 이도는 독재자 아버지 이방원의 기에 죽어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없는 전형적인 외유내강형 패턴을 보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장인이 곧 아바마마에 의해서 죽을 것을 알면서도 미친 척 방진놀이에만 집중하고, 어깨를 떠는 것만으로도 이도가 얼마나 아바마마를 두려워하고, 아바마마에 의해서 수많은 지인들이 죽어갔다는 것에 분노하고 있지만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 없는 비극적인 상황을 효과적으로 그려내었다.

그 뒤 만날 아바마마 이방원의 꼭두각시에 불과했던 이도는 아버지를 죽인 웬수를 갚는다고 혈안이된 똘복(훗날 장혁이 맡은 강채윤)을 두고 아바마마에게 맞짱을 떴으며 그 이후 이도가 약해서 군주자격이 없다고 가볍게 여긴 무휼(조진웅 분)이 이도를 다시 보고 평생 그의 옆에서 충성을 다 바침을 결심하였다. 그 때 이도가 누군가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비단 무휼뿐이 아니었다. tv를 통해서 그 장면을 지켜보던 수많은 시청자들도 이미 연기에 대해서는 절대 고수 자리에 올라간 백윤식과의 정면대결에서도 이제 겨우 27세에 지나지 않은 청년이 결코 밀리지 않는 장면을 보면서 '환희'를 느꼈다. 그리고 송중기는 다시 8회에서 재등장하여 중년 이도가 된 한석규와 다시 대결을 펼쳤다. 한 마디로와 나와 나와의 대결이었다.

불과 송중기의 출연은 고작 4회 남짓이지만, <뿌리깊은 나무>에서 청년 이도의 역할을 매우 중요하다. 단순히 아역(?)으로서 향후 성인 연기의 바톤을 이어받는 수준에서 머무르지 않는다. 청년 이도의 이상이 곧 드라마의 핵심이요, 더 나아가 이 세상이 나아가야할 방향이다. 물론 이도가 꿈꾸는 세상은 지독하게 비현실적이다. 왕으로서 오로지 백성을 위하고, 나라를 위한다고하나 매번 왕이 하는 일에 불만을 가지고 그의 목숨을 노리는 사람이 부지기수로 늘어난다. 분명 이도의 목을 노리는 이들은 정기준이 본원으로 있는 '밀본'과 강채윤뿐만이 아닐 것이다. 실제 세종이 살아있었을 그 당시 '밀본'도 '강채윤'도 없었지만 분명 세종이 하는 일마다 태클을 걸고 왕을 죽여서라도 그 일을 방해하는 무리들이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세종이 하는 일 모두 결국은 기득권층이 차지한 이익을 줄여서 백성들에게 혜택을 주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매번 선거에서도 잘 드러났지만 가진 자들은 자신의 기득권이 누군가에 의해서 흔들어지는 것을 경계한다. 그들이 꿈꾸는 세상은 별반없다. 그저 조용히 계속 그 사람들에게 유리하게 흘려가는 것이다. 어차피 그들은 자신들만의 성 안에서 비슷한 사람들끼리 똘똘 뭉쳐 살고 있기 때문에 성 밖에 있는 백성들이 굶어죽든 말든 관심이 없다. 오로지 자신들의 배를 배부르게하고, 곳간을 더 빵빵하게 채우고 자식들이 자신의 특권을 계속 이어나가게하는 것이다. 이것은 1400년대에도, 1800년대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정작 분노해야할 백성들은 대부분 입을 다물 수 밖에 없다. 글을 모르기 때문에 자신들의 의견을 표현할 수도 없고, 어디가서 마땅히 하소연할 때도 없기 때문이다. 수령이라는 자도 결국은 기득권층의 일원일 뿐이고 결국은 성리학의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유림의 권리를 강화시킨다는 명분 하에 백성들의 수탈이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에 딱히 반론을 제기할 수도 없다. 그러다가 참다참다 못한 백성들은 가장 불법적인 폭동으로서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고자하지만 그 역시나 대부분 실패로 끝난다. 그래서 기득권층은 이대로 계속 백성들이 자신들의 밑에서 자기네들 시키는대로만 굽실거리면서 살아주길 바란다. 아마 백성들이 자신들만큼 똑똑해지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는 이들은 그들이 아닐련지.

헌데 세종은 백성들을 위해 세법도 다시 바꾸고, 심지어는 누구나 쉽게 익힐 수 있는 글자를 만들겠단다. 지배층 입장에서는 당장 자신들의 이익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 아울려 자신들이 몇 백년 굳건히 유지할 수 있는 기반도 서서히 무너질 기세다. 당연히 유림들과 관리들은 결사 반대이다. 그 과정에서 이도는 성리학의 근간이 무너진다는 명분으로 반대하는 심종수니 이신적 등 충신을 위장한 밀본 세력들을 색출할 것이다.

이 드라마에서 참 아이러니한 점이 있다면, 대신들 중에서 가장 성리학 제일주의에 빠진 나머지 왕은 허수아비고 재상이 조선을 지배해야한다는 신념을 가진 밀본들이 백성들과 나라에 입장에서 볼 때는 가장 부패하였고, 탐욕에만 가득찬 간신들이다. 어쩌면 이들이 신권중심을 옹호하는 것도, 삼봉 정도전처럼 조선을 위해서라기보다, 그저 자신들의 이익을 고이 보전하기 위해서 가담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여기에는 이렇게해서라도 밀본집단을 곧 세종이 처단해야할 '악'의 집단으로 몰고가려는 제작진의 노림수가 섞여있다. 만약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자 '정의'를 구현하고자하는 세종의 목을 노리는 사람들마저 세종처럼 깨끗하고 나라를 위하는 신하들이라면 대다수 시청자들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세종과 밀본간의 대결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누가 권력을 잡던 말던 조선은 계속 살기 좋은 나라가 될 것이기 말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세종 이전에도, 이후에도 정치는 선과 선의 대결이라기보다는 그 반대끼리의 대결, 혹은 보수와 개혁의 대결로 치닫곤 하였다. 그 중에서도 개혁세력이 잠시 힘을 얻기도 하였지만 곧 무너졌고 그 개혁세력마저도 점점 더러움으로 물들게 되었다. 처음부터 전체 백성들의 이익이 아닌, 자신을 비롯한 몇몇 특권층의 이익만을 대변하고자 입신양명하려는 이들은 드물 것이다. 다 누구나, 심지어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 경우조차 다 나라를 생각하는 것이고 국익을 위함일 것이다.

그렇게 위정자들이 국가와 백성을 두고 치열한 대결을 펼치는 동안 백성들은 점점 지쳐갔다. 그러다가 누군가는 먹고사는 것도 제대로 해결안되고, 그 나물이 그 밥이라고 아예 모든 것에 철저히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더 이상 못참겠다고 들고 일어서곤 한다. 당연히 기득권층은 백성들이 아예 포기하길 바랄 지도 모른다. 후자의 경우가 된다면 어떻게해서든지 그 싹이 더 크게 피어오르기전에 싹뚝 잘라버리려고 할 것이다. 그래야 자신들이 힘겹게 지켜온 이익이 고이고이 보전될 터이니 말이다. 

그렇게 자신은 아바마마처럼 피의 통치가 아닌 문의 치세로 만들겠다고 다짐하여 20여년이상 그렇게 집권해온 세종도 계속 이어지는 자신이 아끼는 신하들의 의문사와 결국은 자신도 죽을 수 있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군주로서는 한없이 훌륭한 왕이지만, 그 역시나 한 인간으로는 결함도 많고 콤플렉스로 똘똘 뭉친 약자였기 때문에 이 모든게 두렵고 후회스러울 수도 있다. 결국 이도는 과거 20년 전 야심만만하게 아바마마에게 '나는 집현전으로 이방원과 다른 이도의 조선을 만들겠다고' 공헌한 자신을 꾸짖기까지 이른다. 다 그 잘난 너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청년 이도의 멱살을 잡으면서 몰아붙인다. 


 
하지만 청년 이도는 승하하기 일보 직전인 아바마마 이방원에게 그랬던 것처럼 중년 이도을 비웃으면서, 그럼 아바마마의 무덤에 가서 무릎꿇고 눈물을 흘려라를 주문한다. 평생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던 중년 이도로서는 펄쩍 뛸 수 밖에 없다. 아바마마처럼 살지 않을 것이라고 그렇게 다짐 또 다짐을 하였는데 결국은 자신들의 신하가 죽고, 자기마저 죽을 수 있다. 어쩌면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고 있을 지 모른다. 차라리 아바마마 말씀대로 자신을 위협할 만한 싹을 진작에 제거했다면 자신이 아끼는 신하들이 억울하게 죽는 일은 미연에 방지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국 피로 흥한자는 피로 망한 법이다. 아바마마 이방원은 평생 두다리 쭉 뻗고 잠을 자지 못했을 것이다. 부엉이 소리만 들어도 바들바들 떨었다. 결국 이방원이 지은 죄가 아들 이도에게 전가된 것일 뿐이다. 사실 이방원도 계속 많은 이들을 죽이면서까지 왕이 되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처음부터 피를 흘리다보니 그 피를 보고 더더욱 광분하는 이들에 맞서기 위해 더 많은 피를 봐야했을 뿐이다. 이렇게 무자비한 폭력과 억압으로 강제적으로 상대방을 숨막히기 하는 통치는 결국은 반발과 아예 걷잡을 수 없는 상태로 약화될 뿐이다. 

중년 이도는 청년 이도를 향해 권력의 독은 안으로 그리고 더이상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깊게 퍼진다고 하였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질병도 초기에 발견해서 재빨리 치료를 받아야하듯이, 권력의 독 또한 그 낌새를 알아차리고 재빨리 제거를 했어야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권력의 독 때문에 계속 고통받아야하는 백성들의 불만 또한 속히 어루만져줘야한다. 다행히 아바마마가 희대의 학살자라는 치명적인 결함빼곤, 그 외에 아무것도 흠잠을 데가 없이 착실하게 통치해온 이도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게는 백성들의 이름으로 그 권력의 독을 처단할 수 있는 절대적인 명문이 생겼다. 그래서 이도는 자신을 죽이기 위해 혈안이 된 강채윤에게도 "너의 길을 계속 가거라"를 말하면서, "나 또한 나의 길을 가겠다"를 다짐했다.

 


그렇다. 비록 곧 자신의 목이 달아나는 일이 있어도 백성의 아버지인 왕은 백성들을 널리 이롭게하고, 나라를 바로 세우는 길을 계속 가야할 것이다. 그러나 곧은 왕이 자기 혼자서 깨끗함으로 곱게 치장한 반대 세력과 대적은 멀고도 험하고 외롭다. 과거 세종의 옆에는 젊고 깨끗한 집현전 학사들이 힘겨운 싸움을 이어나가는 왕을 도왔지만 이제는 대다수의 청년들이 나라와 국민을 위한 지도자를 알아보고, 호시탐탐 그 지도자를 경계하는 세력들에게 지켜주고, 행여나 그들에게 흔들리지 않고 계속 초심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한다.

다행히 이제 젊은이들은 기득권층을 향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기반을 자신들의 힘으로 다시 쟁취할 수 있게 되었다. 배우 유아인처럼 20대 참정권을 언급하면서 '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존엄을 가진 인간이란 이유로 발전지향적 변화를 가지는 모든 공통 분모 안에서 민주주의가 나왔다. 이기기 위해서 투표하는 것이 아니다' 라는 굉장히 옳은 말을 펼칠 수 있는 의식있는 젊은이들도 많아졌다. 그러나 유아인이 마지막에 자신의 트위터에서 지적했던 것처럼 가장 중요한 것은 청년 이도처럼 나의 조선은 과거 이방원의 조선과는 다를 것이라는 그 때 그 마음을 변하지 않고 유지하고, 자기 혼자 배부르게 되었다고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기보다 자신도 물론이요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세상을 계속 꿈꾸어야한다. 그래야 얼마나 잘하는지 지켜보자는 기성세대의 비이냥을 이기면서, 끝내 다 모두가 잘살기 위함이라는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는 법이다. 그래서 청년 이도는 여러모로 중요하다. <뿌리깊은 나무>에서나 현재 대한민국에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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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너돌양



태종 이방원(백윤식 분)은 유독 권력욕이 강한 사람이다.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 아들 중에서 가장 비범한 인물임은 틀림이 없다. 만약에 그가 이성계의 큰 아들이었다면, 아니 하다못해 이성계가 가장 총애했지만 결국 그 아비의 가슴에 비수를 꽃고 산으로 들어간 큰 아들의 다음 아들로 태어났어도 이방원이 수많은 이들의 피를 흘리면서까지 조선 최고의 권력자가 되는 비극은 없었을 지도 모른다. 

아이러니하게도 조선 초기 시대 유능한 왕들은 대부분 다 장자가 아니다. 가문은 장자가 잇는다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성리학 국가에서 정작 성리학이 정한 질서에 모범을 보여야하는 왕실에서 가장 기본을 깨트린다는 것은 성리학 왕조 조선의 정당성을 약화시킨다. 그래도 조선 초기에는 조선 중, 후기처럼 성리학이 심화되지 않았다. 성리학 신봉자로 신권 중심의 나라를 세우고자한 정도전 스스로가 이성계 첫째 부인에서 난 다 큰 아들들을 제치고, 이제 막 어린애 티를 벗은 방석, 방번 형제를 왕위에 옹립하려고 했으니. 만약 그 때 정도전이 이성계 둘째 부인 자식들이 아닌 그중에서 가장 뛰어난 아들인 이방원을 왕위에 앉히려고 했으면 그래도 형제들끼리의 칼부림은 일어나지 않았을까? 아니다. 원래 정도전과 이방원은 숙명적으로 대적할 수 밖에 없는 운명에 놓였다. 정도전은 조선을 재상 중심의 나라로 만들려고 하였고, 반면 이방원은 왕 중심의 강력한 군주 국가로 만들고자 하였다. 하지만 본래 성리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신하들끼리의 당파를 만들고, 신권이 강한 정치를 권하는 쪽이었다. 만약 정도전 하나를 제거한다고 해도, 또 성리학에 깊이 빠져든 나머지 군주 중심의 통치를 하고자하는 이방원에 반기를 드는 세력은 나날이 늘어날 것이다. 그래서 이방원은 자기에게 반기를 들 조짐만 보이면, 바로 제거하였다. 그게 이방원의 정치다. 

 


자기에게 걸리적 거리는 모든 것이라면 바로 과감히 제거해버리는 이방원에게 이도 즉 충령대군과 같은 온화하고 생각이 깊은 아들이 태어났다는 것은 기적이다. 본래 이방원의 피를 가장 많이 타고난 아들은 첫째인 양녕대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태종은 첫째, 둘째를 놔두고 셋째 아들인 이도에게 자신의 왕위를 계승한다. 그것도 자신은 상왕으로 자리를 옮기고 아들을 꼭두각시 주상으로 앉혀놓고 실질적인 통치권은 다 자기가 차지한다. 아들 이도에게는 넌 오로지 방진이나 하면서, 내가 하라는대로만 하라고 엄명을 내려놓았다. 역사적 정설로는, 이방원이 흘린 피는 앞으로 세종이 성군이 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희생이었다고 하나, <뿌리깊은 나무> 속의 이방원은 여전히 권력욕에 눈이 먼 나머지, 아들 중에서 가장 유약한 이도를 앉혀놓은 듯 보인다. 그래야 자기 입맛에 맞게 왕이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르는 조선으로 굴릴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도(송중기 분)는 한반도 땅에 있었던 역대 왕조 중에서도 가장 성군으로 평가됨은 물론, 가장 희대 천재형 인물이었다. 이방원 역시 만만치 않은 인물임에는 틀림없으나, 이도의 천재성을 따라갈 수는 없었다. 다만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흘린 피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려왔고,틈만나면 왕과 아비의 특권으로 이도를 강압적으로 누르곤했던 이방원때문에 상대적으로 기를 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세종은 자기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어느 모르는 이가 했던 말 "넌 혼자서 아무것도 못해"라는 말에 깊은 상처를 안고 있으면서, 유일하게 스스로 할 수 있는 방진에 집착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방진은 천재 이도에게 단순한 놀이가 아니었다. 앞으로 조선을 이끌어갈 왕으로서 아버지 이방원이 잔인하게 밀고나갔던 조선 땅을 모두다 공평하게, 그리고 어느 누구의 희생이 없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어나가고자하는 것이 바로 이도였다. 그래서 이도는 방진의 숫자를 맞춰보면서 세상의 이치를 깨닫게 되었다. 아버지 이방원은 여러 고민없이 오로지 하나(1)을 빼고 그 외 모든 것을 과감하게 제거했지만 이도는 결국 방진을 풀어내었다. 그리고 이제 드디어 아버지 이방원에게 맞서게 된다. 33방진을 어느 한 숫자의 제거없이 완벽히 풀어냈으니 나의 조선은 아버지의 조선과는 다를 것이다면서 말이다. 

이제 그 풀기 어렵다하여 악마의 '마'방진이라고까지 불리는 방진을 풀어낸 이도는 아버지가 휘두르는 '칼'보다 더 무서운 것을 알게 되었다. '칼'로 짓밟을 수록 더 날카로운 '칼'이 나오게 되지만, 글을 앞세운 문화로 인한 통치는 한 방울의 피도 흘리지 않으면서 더욱 무섭게 상대방을 진압할 수 있다. 그게 바로 600여년전에 태어난 왕 이도가 파악하던 리더십이다. 

안타깝게도 그토록 '칼'이 흘리는 피에 경계를 하였던 세종의 혈육에서 역시나 조부 이방원에 버금가는 독재자가 한 명 출연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방원, 수양대군에 못지 않은 학살자가 나오기도 하고, 또한 세종에 버금가는 훌륭한 정치를 하였던 지도자도 이따금씩 나왔다. 하지만 피로 인한 권력은 곧 순식간에 무너지는 법이다. 앞에서만 고개를 숙일 뿐. 결국은 때를 기다리면서 또다른 피바람을 낳을 뿐이다. 하지만 자신의 목숨을 겨눈 정적에도 베풀 수 있는 관용과 부드러움은 더많은 이들의 지지와 존경을 받는 법이다. 물론 태종 이방원이 휘두른 칼 때문에 세종이 자신의 통치에 훼방을 놓을 인물이 다 제거된 상태에서 완벽한 정치를 펼칠 수 있었다는 점도 없지 않아 있다.

하지만 세종은 그토록 자기를 죽이고 싶은 노비 강채윤마저도 결국은 완전히 왕에게 복종을 하게 만드는 인물이다. 세종이 살았던 1400년대나, 세종이 반대세력을 물리치면서 만들어낸 한글로 보다 많은 이들이 똑똑해진 21c 대한민국이나, 정치에 대한 본질은 같다. 독재는 잠시는 조용할 지 모르나, 후에 걷잡을 수 없는 더 큰 반발을 초래한다. 반면 만물의 조화를 표방하는 정치는 그 과정에서는 온갖 잡음이 들릴지 몰라도 결국은 온 국민의 존경과 나라 안의 평화를 가져온다. 호시탐탐 이 나라를 노리는 외적이 침입했을 때도 똘똘 뭉쳐 위기를 이겨내는 큰 힘을 가져오게 한다. 그래서 세종이 인간 이도가 가지는 모든 약점을 극복하고 그 어느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성군의 위치와, 유례없는 태평성대를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이다. 

덧) 어린(?) 이도 역할을 맡은 송중기가 이리 연기를 잘하는 배우인 줄은 몰랐다. 젊은 배우가 외유내강형의 섬세한 감정을 표현하는게 쉽지만은 않을텐데;; 진짜 한석규만 아니었어도 송중기가 세종을 계속 해도 될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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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쩐의 전쟁>, <바람의 화원> 연출자 장태유PD 연출, <대장금>,<히트>,<선덕여왕> 김영현 작가, 16년만에 드라마로 컴백하는 배우 한석규, <추노>, <마이더스>의 장혁. 제작진, 연기자 이름만 들어도 <뿌리깊은 나무>는 이미 예견된 히트작이었다. 하지만 요즘 연출과 작가의 필력, 연기력 등 모든 성공요소를 다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실망만 안겨준 드라마가 수도 없기 많기 때문에 <뿌리깊은 나무> 또한 뚜껑을 열기 전까지는 안심할 수 없었다. 


하지만 역시 <선덕여왕>의 김영현 작가는 달랐다. 기존 정사와는 다른 접근으로 나가면서도 풍부하면서도 설득력있는 이야기로 보는 이들을 매료시키는 필력을 가진 김영현 작가가 새로 도전한 인물은 바로 이도 세종대왕. 국민들이 좋아하는 만원 화폐에 계신 분으로, 대한민국 왕조 최고의 성군이자 한글 창제자이신 대왕. 그러나 수많은 국민들이 존경하는 위인임에도 불구하고 사실 인간 이도에 대해서 알려진 바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세종대왕하면 근엄하고, 오로지 백성들을 사랑하는 애민정신으로 똘똘 뭉친 어진 왕이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세종대왕은 세계 어느 위대한 황제와 견줘봐도 정치, 군사, 경제 등 모든 방면에서  완벽한 천재였다. 그래서 김영현 작가와 <뿌리깊은 나무>를 공동으로 집필한 박상연 작가는 "세종대왕은 알면 알 수록 정말 위대한 분이시다"라고 극찬을 하였다. 하지만 세종대왕이 더 위대한 이유는, 바로 지도자로서 유독 백성을 위하고 자신의 목숨을 걸고 앞으로 백성들이 지도층에 맞서 새로운 권력을 만들 수 있는 '문자'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만약에 세종이 그저그런 왕이었다면, 기존 세력에 대항하기 때문에 엄청난 반발을 불러일으킬 문자를 만들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 '충녕'이 아닌 '양녕','효령'이 되었다면 21C 현재에도 보기만 해도 머리가 아파오는 한자를 사용하면서, 인터넷에 댓글 치는 것도 상당히 어려움을 호소하고 살 뻔 했다. 물론 세종대왕처럼 비범한 지도자가 작정을 하고 '한글'에 버금가는 문자를 만들었을 수도 있겠지만,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단순히 '한자'라는 글자가 글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도층과 피지배층의 격차와 지도층이 앞으로도 글자를 알아보지 못하는 백성들을 상대로 권세를 펼칠 수 있는 굉장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종은 '한글'을 만들려 하였던 것이고, 지배층은 당연히 반발할 수 밖에 없었다.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고, 사용할 수 있는 문자. 설상가상으로 관료를 등용하는 과거 시험에 '한자'가 아닌 새로운 글자인 '한글'로 본다면, 법제적으로는 양반이 아니라 일반 상민도 볼 수 있으니 양반들이 그렇게 유지하고픈 신분제도마저 무너질 위험이 있다. 그래서 지배층들은 한글이 도입된 이후에도 과거시험만큼은 유려한 '한문'으로 보게 했다. '한자'가 '한글'보다 더 수준있고 지식의 척도를 잘 말해준다는 이유로. 지금도 그 지식의의 수준을 가늠하는 수단이 '한자'에서 '영어'로 바꿨을 뿐 지배층과 피지배층을 나누는 문자 기준은 변함이 없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에도 '영어'를 잘하기 위해서 수많은 가족들이 기러기 가족과 막대한 외화유출을 감수하고 외국으로 떠나고, 대학생들은 오직 영어 관련 자격시험 고득점에 목을 멘다. 그래도 지금은 누구나 쓸 수 있는 '한글'이 있어서 의사소통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고 인터넷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얼마든지 피력할 수 있다. 하지만 세종이 막 왕에 즉위할 당시에는 일반 백성들은 간단한 상소문조차 쓸 수 없었다. 아니, 아예 읽지 못해서 목숨까지 잃는 봉변을 당하는 안타까운 일이 부지기수 였다. 

아마 강채윤(장혁 분)이 똘복이로 살았을 시절 그의 아버지도 조금 모자라긴 하였지만 만약에 문자를 읽을 수 있었다면  세종(송중기 분)이 장인을 위해서 보냈으나 이미 누군가에 의해서 조작된 밀지를 곧이 곧대로 충녕의 장인이자 어르신 심온 대감에게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그 밀지로 인해 심온 영감이 화를 당하고, 역시 똘복의 아버지 또한 밀지를 전달했다는 죄 하나만으로 억울한 죽음을 당한다. 그 때부터 똘복은 이 모든게 다 이도때문에 발생한 일이라면서 분노를 표하고, 결국 이도 앞에서 반드시 왕을 죽이겠다고 선언한다. 그 때부터 똘복은 아버지를 죽이게한 웬수 이도를 죽이기 위해 복수의 칼을 간다. 그리고 강채윤으로 변신한 똘복은 기어코 궁에 입성 이도를 죽을 날만 손꼽아 기다린다. 하지만....

 


<뿌리깊은 나무>는 세종의 한글 창제 과정을 다루면서, 그 당시 '한글'로 큰 혜택을 보게될 백성들 즉 강채윤 같은 노비 출신들이 당시에는 이 새로운 문자에 대해서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에 초점을 맞췄다. 작가의 생각은 그 당시 피지배층은 한글 창제에 대해서 마냥 설레면서 박수치지는 않았을 것 같단다. 오히려 그들은 왕이 왜 굳이 새로운 문자를 만드는데 힘을 쏟는가라는 의문을 품을 법도 하다. 그 문자 덕에 그들의 후손들도 '대통령'이 될 수 있고, 지배층의 반열에 올라갈 수 있는 기반을 닦게 되었지만, 당시 피지배층들에게 '한글'이라는 문자는 그야말로 어안이 벙벙할 듯 하다. 그래서 작가는 강채윤을 통해 당시 막 처음으로 '한글'이란 문자를 접한 백성들이 한글을 어떻게 받아들였으며, 결국 세종과 연합하여 한글을 반대하는 지배세력과 싸워나갔는지를 보여주고자 한단다. 그래서 초반부 글을 몰라 억울하게 죽은 강채윤의 아버지와 그 모든 분노를 이도에게 몰고간 강채윤을 그러내었다. 하지만 결국 그는 진심으로 백성들을 사랑하는 왕 '이도'의 진심을 알고 시종일관 왕을 노리는 세력들과의 다툼에서 왕을 보호할 것이다. 

 


<뿌리깊은 나무>는 단순히 세종대왕의 이면에 가려진 인간 이도와 한글 창제 과정에 있었던 숨막히는 에피소드를 재조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드라마가 아닌 듯 하다. 어질고 품위있는 왕과는 차원이 다른, 저잣거리에서나 들릴법한 속어를 궁중에서 사용하고, 농경사회 조선에서 육식을 좋아하고, 가끔은 신경질도 잘내는 그역시 인간에 불과한 이도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군주'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이 가진 약점을 슬기롭게 조절할 줄 알았고 무엇보다도 진심으로 백성을 이해하고자 하였고, 그래서 당대 백성들뿐만 아니라, 평민, 노비의 후손마저 권력을 잡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그래서 이도가 인간으로서 가진 모든 약점이 커버되면서, 600년이 지난 이후에도 대한민국 왕조 역사상 흠잡을 데 없는 최고 성군으로 추앙받는 것이다.

바야흐로 선거철이다. 또한 의도치않게 대통령을 뽑는 대선 이후 빅매치라는 서울시장 보궐 선거도 치뤄야 한다. 특히사 서울 시장은 대선으로 나가는 발판이기 때문에 서울시민이 아니라도 모든 국민들이 관심을 가질 법도 하다. 이제 우리 국민들은 대부분 다 '한글'도 읽을 줄 알고, 어느 정도 배웠기 때문에 이제 스스로의 힘으로 진정으로 국민들을 위하는 지도자를 직접 선출할 자격이 있다. 과거 세종과 강채윤이 살았던 시절에는 꿈도 꿀 수 없었던 획기적인 변화이다. 비록 백성들을 사랑했지만, 아직까지 역사적 사료로 판단해보면 전형적인 군주의 틀에 머물렀던 세종 또한 백성들이 직접 '지도자'를 선출하는'혁명'까지는 원했을 것 같지는 않은 듯 하다. 오히려 세종은 칼로서 자신의 권력을 정

당화한 아버지 태조 이방원과 달리, 새로운 문자를 창조하여 백성들을 자기의 편으로 끌

인후 더 많은 지배층을 무력화시키고자하는 의도로 까지 비춰지기도 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가 만든 '한글'은 보다 많은 조선민들을 이롭게 하였고, 보다 자유롭게 하였다. 이것이 바로 세종의 한글 창제 이유이자, 그토록 이도를 죽이고픈 강채윤이 결국은 세종에게 진심으로 머리숙어 항복한 이유다. 첫 도입부만 봐도 뭔가 큰 메시지를 내포하는 굉장한 드라마 하나 탄생할 기세다. 요근래동안 이처럼 보는 이의 가슴을 뛰게하는 드라마는 실로 오랜만인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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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너돌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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