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이도(송중기 분)은 아버지 태종 이방원(백윤식 분)에게 머리를 숙였다. 하지만 태종 이방원은 눈치 10단 간파력이 대단한 인물이었다. 모든 나랏일을 아바마마의 뜻에 따라 거행하겠다는 말에 효,충,의 다 있지만 가장 중요한 한가지가 없었다. 바로 '진심'이었다. 그렇다. 이도는 진심으로 아바마마를 존경하지 않았다. 전날 숲 속에서 아바마마와 일종의 '맞짱'을 뜨면서 "나의 조선은 아바마마의 조선과 다를 것이다"가 진정 이도의 진심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왕인 이방원이 이도를 억누르면서 모든 일을 다 해나가고 있기 때문에 억지로 이방원에게 숙이고 들어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설령 이도가 이방원이 자결하라고 내준 '빈찬합'을 통해 방진을 풀어냈다고하나 현재 조선의 군주는 이도라고 하지만 아직까지는 이방원의 나라였기 때문이다. 

 

다만 이도는 이방원에게 처음부터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 방진으로 '이도'의 조선을 새로 이끌어나갈 해법은 다름아닌 현명한 학자들이 모을 수 있는 전각 하나 지어달라는 것이다. 이도가 새롭게 만드는 조선은 이방원처럼 왕 혼자서 모든 것을 독단적으로 해결하고자함이 아닌, 여러 사람의 지혜를 모아서 만물의 이치가 제 자리를 찾아가는 나라였다. 그래서 이방원은 묻는다. 혹시 정기준 때문은 아니나고?

그렇다. 정기준은 이방원에게나, 이도에게나 씻을 수 없는 상처였다. 삼봉 정도전의 조카인 정기준. 삼봉 선생은 태조 이성계를 받들어 그가 조선을 건국하는데 큰 공을 세운 공신이다. 실제 조선의 정궁인 경복궁과 4대문의 이름은 물론, 서울 도심과 조선의 문물의 기초가  정도전이 성리학의 법도에 따라 손수 지었을 정도로, 조선은 정도전이란 인물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 

하지만 신권 즉 재상 중심의 조선을 펼치고자 하였던 정도전과 강력한 이씨 왕조를 꿈꾸던 이방원과는 필연적으로 대결할 수 밖에 없는 관계였다. 이방원은 정도전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군주가 되기에 지나치게 똑똑하고 야심만만한 인물이었다. 그래서 정도전은 자식까지 거느린 왕자들을 제치고, 이성계 후비의 소생인 방석과 방번을 이성계 차기 후계자로 지목했다. 정도전에게 왕이란 조선의 꽃이자 상징일 뿐. 모든 권한과 뿌리는 정도전을 비롯한 선비들에게 있었다. 그래서 정도전에게 조선은 왕은 허수아비일 뿐, 선비가 중심이 되는 성리학에서 말하는  이상 국가이다. 
 

그러나 이방원은 모든 세상의 이치가 다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야 직성이 풀리는 인물이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에게 방해된다 싶은 인물을 모조리 다 제거하였다. 조선을 세운 일등공신 정도전도 배다른 이복동생들도, 심지어 자신을 왕위에 앉힌 심복들도 죽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방원이 '조선'을 위해 죽여야할 사람은 너무나도 많았다. 무로 백성을 진압하면 할 수록 더 큰 반항만 남는 법이니까 말이다. 


 

사실 태종 이방원 또한 끝까지 고려에 충성하고자하였던 정몽주의 피를 보면서까지 만들었던 조선을 사랑했다. 다만 그가 사랑하는 조선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부국강병이라는 목표 하에 일사천리로 움직여야했다. 이방원의 말이 법이고, 진리였다. 이 모든 게 다 건국한지 26년밖에 되지 않은 조선을 위한 일이라고 하였다. 이런 태종의 조선을 위한 일에 누구 하나 직언 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면 돌아오는 것은 오로지 죽음이니까. 

하지만 이방원의 아들 이도는 달랐다. 불과 정기준을 만나기 전까지 그래도 이도에게 아바마마는 훌륭한 군주였다. 그러나 아직 약관도 되지 못한 어린 유생의 한 마디로 무고한 백성을 가차없이 칼로 베는 아바마마의 실체를 본 순간, 이도는 순간 아바마마의 횡포에 대적할 수 없는 자신을 탓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때 정기준은 그런 이도를 향해 "넌 아무것도 할 수 없어"를 속삭였다. 무자비한 아버지를 향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함은 왕의 자리에 까지 오른 이도에게 끝도없는 상처로 각인되었다. 

 


어쩌면 그 때 정기준과의 만남으로, 이도가 아바마마와는 다른 조선을 만들겠다는 마음이 굳혔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기준이 아니였다 하더라도 이방원의 힘과 잔인함으로 점철되던 조선은 바꿔야했다. 다시 현명한 선비들을 불러모아 그들의 의견에도 귀담아 듣고, 여러 우여곡절이 있더라도 인내하고 더 좋은 결과를 취합해야하는 길로 가는 것이 마땅했다. 이방원 또한, 조선이라는 성리학을 기반으로 만든 국가가 궁극적으로는 그렇게 가야한다는 것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방원은 아직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여전히 아직 제대로 뿌리를 박지못한 조선을 노리는 이, 정기준이 버젓이 살아있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이방원도 남몰래 정도광, 정기준 부자를 찾고 있었고, 이도 또한 그 부자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 두 조선의 상징이 정도광 부자를 찾는 이유는 역시나 달랐다. 이방원은 조선에 큰 위협이 될 만한 존재들을 제거하고 싶었고, 이도는 그 부자야말로 앞으로 이도가 이끄는 조선에 필요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정기준은 정도전이 이끈 밀본을 이끄는 수장으로 현재 이도에게 가장 두렵고도, 앞으로 조선을 발칵 뒤집을 수도 있는 가장 위험한 인물이다. 하지만 이도는 그 정기준마저도 자신의 품 안에 들이려고 하였다. 자신에게 큰 콤플렉스를 각인시키고 모욕을 준 이마저 받아들이려는 지도자가 바로 세종이고, 태종 이방원과 달리 성군이 될 수 있었던 이유이다. 가장 큰 정적마저 자신의 세력 하에 들이고자 하는 포용력과 담대함을 가지고 학문을 통해 자신에게 '진심'으로 충성할 수 있는 세력을 양성해 더 큰 지도력을 발휘하고자 하였던 군주 이도. 그런 이도였기 때문에 이방원이 하지 못했던 신흥 왕조 조선의 뿌리를 더욱 깊게 내릴 수 있었고, 600년이 지난 지금도 조선 왕조가 아닌 공화국의 후손들이 가장 좋아하는 지도자로 남게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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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 이방원(백윤식 분)은 유독 권력욕이 강한 사람이다.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 아들 중에서 가장 비범한 인물임은 틀림이 없다. 만약에 그가 이성계의 큰 아들이었다면, 아니 하다못해 이성계가 가장 총애했지만 결국 그 아비의 가슴에 비수를 꽃고 산으로 들어간 큰 아들의 다음 아들로 태어났어도 이방원이 수많은 이들의 피를 흘리면서까지 조선 최고의 권력자가 되는 비극은 없었을 지도 모른다. 

아이러니하게도 조선 초기 시대 유능한 왕들은 대부분 다 장자가 아니다. 가문은 장자가 잇는다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성리학 국가에서 정작 성리학이 정한 질서에 모범을 보여야하는 왕실에서 가장 기본을 깨트린다는 것은 성리학 왕조 조선의 정당성을 약화시킨다. 그래도 조선 초기에는 조선 중, 후기처럼 성리학이 심화되지 않았다. 성리학 신봉자로 신권 중심의 나라를 세우고자한 정도전 스스로가 이성계 첫째 부인에서 난 다 큰 아들들을 제치고, 이제 막 어린애 티를 벗은 방석, 방번 형제를 왕위에 옹립하려고 했으니. 만약 그 때 정도전이 이성계 둘째 부인 자식들이 아닌 그중에서 가장 뛰어난 아들인 이방원을 왕위에 앉히려고 했으면 그래도 형제들끼리의 칼부림은 일어나지 않았을까? 아니다. 원래 정도전과 이방원은 숙명적으로 대적할 수 밖에 없는 운명에 놓였다. 정도전은 조선을 재상 중심의 나라로 만들려고 하였고, 반면 이방원은 왕 중심의 강력한 군주 국가로 만들고자 하였다. 하지만 본래 성리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신하들끼리의 당파를 만들고, 신권이 강한 정치를 권하는 쪽이었다. 만약 정도전 하나를 제거한다고 해도, 또 성리학에 깊이 빠져든 나머지 군주 중심의 통치를 하고자하는 이방원에 반기를 드는 세력은 나날이 늘어날 것이다. 그래서 이방원은 자기에게 반기를 들 조짐만 보이면, 바로 제거하였다. 그게 이방원의 정치다. 

 


자기에게 걸리적 거리는 모든 것이라면 바로 과감히 제거해버리는 이방원에게 이도 즉 충령대군과 같은 온화하고 생각이 깊은 아들이 태어났다는 것은 기적이다. 본래 이방원의 피를 가장 많이 타고난 아들은 첫째인 양녕대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태종은 첫째, 둘째를 놔두고 셋째 아들인 이도에게 자신의 왕위를 계승한다. 그것도 자신은 상왕으로 자리를 옮기고 아들을 꼭두각시 주상으로 앉혀놓고 실질적인 통치권은 다 자기가 차지한다. 아들 이도에게는 넌 오로지 방진이나 하면서, 내가 하라는대로만 하라고 엄명을 내려놓았다. 역사적 정설로는, 이방원이 흘린 피는 앞으로 세종이 성군이 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희생이었다고 하나, <뿌리깊은 나무> 속의 이방원은 여전히 권력욕에 눈이 먼 나머지, 아들 중에서 가장 유약한 이도를 앉혀놓은 듯 보인다. 그래야 자기 입맛에 맞게 왕이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르는 조선으로 굴릴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도(송중기 분)는 한반도 땅에 있었던 역대 왕조 중에서도 가장 성군으로 평가됨은 물론, 가장 희대 천재형 인물이었다. 이방원 역시 만만치 않은 인물임에는 틀림없으나, 이도의 천재성을 따라갈 수는 없었다. 다만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흘린 피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려왔고,틈만나면 왕과 아비의 특권으로 이도를 강압적으로 누르곤했던 이방원때문에 상대적으로 기를 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세종은 자기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어느 모르는 이가 했던 말 "넌 혼자서 아무것도 못해"라는 말에 깊은 상처를 안고 있으면서, 유일하게 스스로 할 수 있는 방진에 집착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방진은 천재 이도에게 단순한 놀이가 아니었다. 앞으로 조선을 이끌어갈 왕으로서 아버지 이방원이 잔인하게 밀고나갔던 조선 땅을 모두다 공평하게, 그리고 어느 누구의 희생이 없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어나가고자하는 것이 바로 이도였다. 그래서 이도는 방진의 숫자를 맞춰보면서 세상의 이치를 깨닫게 되었다. 아버지 이방원은 여러 고민없이 오로지 하나(1)을 빼고 그 외 모든 것을 과감하게 제거했지만 이도는 결국 방진을 풀어내었다. 그리고 이제 드디어 아버지 이방원에게 맞서게 된다. 33방진을 어느 한 숫자의 제거없이 완벽히 풀어냈으니 나의 조선은 아버지의 조선과는 다를 것이다면서 말이다. 

이제 그 풀기 어렵다하여 악마의 '마'방진이라고까지 불리는 방진을 풀어낸 이도는 아버지가 휘두르는 '칼'보다 더 무서운 것을 알게 되었다. '칼'로 짓밟을 수록 더 날카로운 '칼'이 나오게 되지만, 글을 앞세운 문화로 인한 통치는 한 방울의 피도 흘리지 않으면서 더욱 무섭게 상대방을 진압할 수 있다. 그게 바로 600여년전에 태어난 왕 이도가 파악하던 리더십이다. 

안타깝게도 그토록 '칼'이 흘리는 피에 경계를 하였던 세종의 혈육에서 역시나 조부 이방원에 버금가는 독재자가 한 명 출연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방원, 수양대군에 못지 않은 학살자가 나오기도 하고, 또한 세종에 버금가는 훌륭한 정치를 하였던 지도자도 이따금씩 나왔다. 하지만 피로 인한 권력은 곧 순식간에 무너지는 법이다. 앞에서만 고개를 숙일 뿐. 결국은 때를 기다리면서 또다른 피바람을 낳을 뿐이다. 하지만 자신의 목숨을 겨눈 정적에도 베풀 수 있는 관용과 부드러움은 더많은 이들의 지지와 존경을 받는 법이다. 물론 태종 이방원이 휘두른 칼 때문에 세종이 자신의 통치에 훼방을 놓을 인물이 다 제거된 상태에서 완벽한 정치를 펼칠 수 있었다는 점도 없지 않아 있다.

하지만 세종은 그토록 자기를 죽이고 싶은 노비 강채윤마저도 결국은 완전히 왕에게 복종을 하게 만드는 인물이다. 세종이 살았던 1400년대나, 세종이 반대세력을 물리치면서 만들어낸 한글로 보다 많은 이들이 똑똑해진 21c 대한민국이나, 정치에 대한 본질은 같다. 독재는 잠시는 조용할 지 모르나, 후에 걷잡을 수 없는 더 큰 반발을 초래한다. 반면 만물의 조화를 표방하는 정치는 그 과정에서는 온갖 잡음이 들릴지 몰라도 결국은 온 국민의 존경과 나라 안의 평화를 가져온다. 호시탐탐 이 나라를 노리는 외적이 침입했을 때도 똘똘 뭉쳐 위기를 이겨내는 큰 힘을 가져오게 한다. 그래서 세종이 인간 이도가 가지는 모든 약점을 극복하고 그 어느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성군의 위치와, 유례없는 태평성대를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이다. 

덧) 어린(?) 이도 역할을 맡은 송중기가 이리 연기를 잘하는 배우인 줄은 몰랐다. 젊은 배우가 외유내강형의 섬세한 감정을 표현하는게 쉽지만은 않을텐데;; 진짜 한석규만 아니었어도 송중기가 세종을 계속 해도 될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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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쩐의 전쟁>, <바람의 화원> 연출자 장태유PD 연출, <대장금>,<히트>,<선덕여왕> 김영현 작가, 16년만에 드라마로 컴백하는 배우 한석규, <추노>, <마이더스>의 장혁. 제작진, 연기자 이름만 들어도 <뿌리깊은 나무>는 이미 예견된 히트작이었다. 하지만 요즘 연출과 작가의 필력, 연기력 등 모든 성공요소를 다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실망만 안겨준 드라마가 수도 없기 많기 때문에 <뿌리깊은 나무> 또한 뚜껑을 열기 전까지는 안심할 수 없었다. 


하지만 역시 <선덕여왕>의 김영현 작가는 달랐다. 기존 정사와는 다른 접근으로 나가면서도 풍부하면서도 설득력있는 이야기로 보는 이들을 매료시키는 필력을 가진 김영현 작가가 새로 도전한 인물은 바로 이도 세종대왕. 국민들이 좋아하는 만원 화폐에 계신 분으로, 대한민국 왕조 최고의 성군이자 한글 창제자이신 대왕. 그러나 수많은 국민들이 존경하는 위인임에도 불구하고 사실 인간 이도에 대해서 알려진 바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세종대왕하면 근엄하고, 오로지 백성들을 사랑하는 애민정신으로 똘똘 뭉친 어진 왕이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세종대왕은 세계 어느 위대한 황제와 견줘봐도 정치, 군사, 경제 등 모든 방면에서  완벽한 천재였다. 그래서 김영현 작가와 <뿌리깊은 나무>를 공동으로 집필한 박상연 작가는 "세종대왕은 알면 알 수록 정말 위대한 분이시다"라고 극찬을 하였다. 하지만 세종대왕이 더 위대한 이유는, 바로 지도자로서 유독 백성을 위하고 자신의 목숨을 걸고 앞으로 백성들이 지도층에 맞서 새로운 권력을 만들 수 있는 '문자'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만약에 세종이 그저그런 왕이었다면, 기존 세력에 대항하기 때문에 엄청난 반발을 불러일으킬 문자를 만들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 '충녕'이 아닌 '양녕','효령'이 되었다면 21C 현재에도 보기만 해도 머리가 아파오는 한자를 사용하면서, 인터넷에 댓글 치는 것도 상당히 어려움을 호소하고 살 뻔 했다. 물론 세종대왕처럼 비범한 지도자가 작정을 하고 '한글'에 버금가는 문자를 만들었을 수도 있겠지만,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단순히 '한자'라는 글자가 글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도층과 피지배층의 격차와 지도층이 앞으로도 글자를 알아보지 못하는 백성들을 상대로 권세를 펼칠 수 있는 굉장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종은 '한글'을 만들려 하였던 것이고, 지배층은 당연히 반발할 수 밖에 없었다.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고, 사용할 수 있는 문자. 설상가상으로 관료를 등용하는 과거 시험에 '한자'가 아닌 새로운 글자인 '한글'로 본다면, 법제적으로는 양반이 아니라 일반 상민도 볼 수 있으니 양반들이 그렇게 유지하고픈 신분제도마저 무너질 위험이 있다. 그래서 지배층들은 한글이 도입된 이후에도 과거시험만큼은 유려한 '한문'으로 보게 했다. '한자'가 '한글'보다 더 수준있고 지식의 척도를 잘 말해준다는 이유로. 지금도 그 지식의의 수준을 가늠하는 수단이 '한자'에서 '영어'로 바꿨을 뿐 지배층과 피지배층을 나누는 문자 기준은 변함이 없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에도 '영어'를 잘하기 위해서 수많은 가족들이 기러기 가족과 막대한 외화유출을 감수하고 외국으로 떠나고, 대학생들은 오직 영어 관련 자격시험 고득점에 목을 멘다. 그래도 지금은 누구나 쓸 수 있는 '한글'이 있어서 의사소통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고 인터넷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얼마든지 피력할 수 있다. 하지만 세종이 막 왕에 즉위할 당시에는 일반 백성들은 간단한 상소문조차 쓸 수 없었다. 아니, 아예 읽지 못해서 목숨까지 잃는 봉변을 당하는 안타까운 일이 부지기수 였다. 

아마 강채윤(장혁 분)이 똘복이로 살았을 시절 그의 아버지도 조금 모자라긴 하였지만 만약에 문자를 읽을 수 있었다면  세종(송중기 분)이 장인을 위해서 보냈으나 이미 누군가에 의해서 조작된 밀지를 곧이 곧대로 충녕의 장인이자 어르신 심온 대감에게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그 밀지로 인해 심온 영감이 화를 당하고, 역시 똘복의 아버지 또한 밀지를 전달했다는 죄 하나만으로 억울한 죽음을 당한다. 그 때부터 똘복은 이 모든게 다 이도때문에 발생한 일이라면서 분노를 표하고, 결국 이도 앞에서 반드시 왕을 죽이겠다고 선언한다. 그 때부터 똘복은 아버지를 죽이게한 웬수 이도를 죽이기 위해 복수의 칼을 간다. 그리고 강채윤으로 변신한 똘복은 기어코 궁에 입성 이도를 죽을 날만 손꼽아 기다린다. 하지만....

 


<뿌리깊은 나무>는 세종의 한글 창제 과정을 다루면서, 그 당시 '한글'로 큰 혜택을 보게될 백성들 즉 강채윤 같은 노비 출신들이 당시에는 이 새로운 문자에 대해서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에 초점을 맞췄다. 작가의 생각은 그 당시 피지배층은 한글 창제에 대해서 마냥 설레면서 박수치지는 않았을 것 같단다. 오히려 그들은 왕이 왜 굳이 새로운 문자를 만드는데 힘을 쏟는가라는 의문을 품을 법도 하다. 그 문자 덕에 그들의 후손들도 '대통령'이 될 수 있고, 지배층의 반열에 올라갈 수 있는 기반을 닦게 되었지만, 당시 피지배층들에게 '한글'이라는 문자는 그야말로 어안이 벙벙할 듯 하다. 그래서 작가는 강채윤을 통해 당시 막 처음으로 '한글'이란 문자를 접한 백성들이 한글을 어떻게 받아들였으며, 결국 세종과 연합하여 한글을 반대하는 지배세력과 싸워나갔는지를 보여주고자 한단다. 그래서 초반부 글을 몰라 억울하게 죽은 강채윤의 아버지와 그 모든 분노를 이도에게 몰고간 강채윤을 그러내었다. 하지만 결국 그는 진심으로 백성들을 사랑하는 왕 '이도'의 진심을 알고 시종일관 왕을 노리는 세력들과의 다툼에서 왕을 보호할 것이다. 

 


<뿌리깊은 나무>는 단순히 세종대왕의 이면에 가려진 인간 이도와 한글 창제 과정에 있었던 숨막히는 에피소드를 재조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드라마가 아닌 듯 하다. 어질고 품위있는 왕과는 차원이 다른, 저잣거리에서나 들릴법한 속어를 궁중에서 사용하고, 농경사회 조선에서 육식을 좋아하고, 가끔은 신경질도 잘내는 그역시 인간에 불과한 이도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군주'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이 가진 약점을 슬기롭게 조절할 줄 알았고 무엇보다도 진심으로 백성을 이해하고자 하였고, 그래서 당대 백성들뿐만 아니라, 평민, 노비의 후손마저 권력을 잡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그래서 이도가 인간으로서 가진 모든 약점이 커버되면서, 600년이 지난 이후에도 대한민국 왕조 역사상 흠잡을 데 없는 최고 성군으로 추앙받는 것이다.

바야흐로 선거철이다. 또한 의도치않게 대통령을 뽑는 대선 이후 빅매치라는 서울시장 보궐 선거도 치뤄야 한다. 특히사 서울 시장은 대선으로 나가는 발판이기 때문에 서울시민이 아니라도 모든 국민들이 관심을 가질 법도 하다. 이제 우리 국민들은 대부분 다 '한글'도 읽을 줄 알고, 어느 정도 배웠기 때문에 이제 스스로의 힘으로 진정으로 국민들을 위하는 지도자를 직접 선출할 자격이 있다. 과거 세종과 강채윤이 살았던 시절에는 꿈도 꿀 수 없었던 획기적인 변화이다. 비록 백성들을 사랑했지만, 아직까지 역사적 사료로 판단해보면 전형적인 군주의 틀에 머물렀던 세종 또한 백성들이 직접 '지도자'를 선출하는'혁명'까지는 원했을 것 같지는 않은 듯 하다. 오히려 세종은 칼로서 자신의 권력을 정

당화한 아버지 태조 이방원과 달리, 새로운 문자를 창조하여 백성들을 자기의 편으로 끌

인후 더 많은 지배층을 무력화시키고자하는 의도로 까지 비춰지기도 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가 만든 '한글'은 보다 많은 조선민들을 이롭게 하였고, 보다 자유롭게 하였다. 이것이 바로 세종의 한글 창제 이유이자, 그토록 이도를 죽이고픈 강채윤이 결국은 세종에게 진심으로 머리숙어 항복한 이유다. 첫 도입부만 봐도 뭔가 큰 메시지를 내포하는 굉장한 드라마 하나 탄생할 기세다. 요근래동안 이처럼 보는 이의 가슴을 뛰게하는 드라마는 실로 오랜만인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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