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부터 조선을 위해서라기보다, 사대부가 권력의 중심이 되어야한다는 개인적 욕망에 의해 모인 '밀본'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종 이도(한석규 분)가 만든 새로운 글자의 반포를 막는데만 집중하다가 이도 아들 광평대군까지 죽이는 무리수를 범하는 정기준(윤제문 분)의 행동이 못마땅할 법도 하구요. 


우의정 이신적(안석환 분)과 집현전 직제학 심종수(한상진 분)이 정기준과 함께 새 글을 반대했던 것은, 밀본 수장이 반대를 하고, 또 그 글이 자신들 사대부의 기득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위기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정기준과 달리 이도가 만든 새로운 글자를 접한 적도 없었고, 어쩌면 글자가 주는 파괴력을 모르기 때문에 왜 정기준이 글자에만 집착하다가 이러다가 밀본까지 와해시키는 최악의 상황까지 치닫게 되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습니다. 

 


결국 이신적과 심종수는 밀본 수장인 정기준을 배신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애초부터 다른 길을 꿈꿨던 이신적과 심종수는 끝내 같은 길을 가지 않았습니다. 그저 자신만의 안위를 생각하고 기회주의자처럼 여기 저기 기웃거리는 '철새' 이신적과는 달리, 겉으로 보여지는 심종수는 정기준보다 사대부가 주축이 되어야한다는 '밀본' 사상을 더욱 신봉하는 듯합니다. 어찌되었든 밀본은 물론, 자신들의 목숨까지 위협하는 정기준을 그냥 이대로 두고 볼수만은 없는 이들입니다. 

한글이 자신이 우려했던대로 '역병'처럼 퍼져나가게된 것을 알게된 정기준은 윤평을 시켜, 어떻게든 '해례'를 찾아 한글이 널리 퍼져나가는 것을 막으라고 지시합니다. 그런데 해례를 찾는 것은 비단 정기준뿐만이 아닙니다. 이제 정기준은 물론 이신적과도 다른 길을 가겠다고 결심한 심종수는 물론, 심종수가 자기마저 배신때린 것을 알고 명나라에서 보낸 자객 견적희에게 심종수를 미행하고 그보다 먼저 해례를 찾아올 것을 부탁합니다. 물론 그들이 해례를 찾는 주요 목적은 새 글을 막겠다는 것 그 자체보다, 그걸로 정기준을 협박하고 몰아내기 위함이 강합니다. 

 


이렇게 처음부터 사대부가 주류가 되어야한다는 욕망아래 어떠한 주체적 비전도, 국가에 대한 사명감도 없이 정적을 향해 온갖 테러와 음모를 자행한 '밀본'입니다.  정기준의 행보를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정기준 때문에 불안에 떨고있는 일부 사대부의 반발로 한글 반포를 막기 전에 조직이 먼저 해체될 전망입니다. 역시나 영민한 이도는 광평대군의 죽음과 밀본을 색출하기 위해 소이를 비롯한 나인들까지 내쫓는 폭군 연기 덕에 정기준 무리에서 이탈하려는 밀본이 있다는 것을 간파하고, 밀본이 자신들이 밀본이라고 알리면 목숨을 부지해주는 것은 물론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는 붕당으로서 인정을 해주겠다고하여 더욱더 교묘하게 이신적과 심종수를 흔듭니다. 

 


이도는 밀본을 색출하기 위해 당근과 채찍이라는 두개의 수단을 사용했습니다. 대신과 조정 몰래 한글을 창제한 것은 잘못했다고 진심으로 사과하면서 한글을 강력히 반대하는 대신들마저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더니, 밀본이라고하여 다 광평을 죽인 강상죄로 몰고가진 않겠다면서, 빨리 자수하여 광명찾으라는 이도입니다.

정치인이든 기업 최고 경영자이든지 간에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자신들의 부하들에게 미안하다고 정중히 사과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제 대세가 된 것을 가려보려고 조직원들의 신망까지 잃어가고 있는 정기준과 달리, 이도는 흔들리는 정적까지 감싸주는 듯 하면서, 밀본을 와해시키고 자신의 궁극적인 목적 한글까지 반포하고자합니다. 

 


이제 자신이 새 글을 만든다는 것이 널리 알려진 이상 이도가 감추고 싶은 비밀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솔직하게 자신의 글을 보여주면서 밀본을 포함한 반대하는 대신들과 맞짱뜨고 싶어하기까지 합니다. 물론 이도는 이신적과 심종수 또한 정기준이 그토록 감추고픈 새 글 해례를 보고 싶다는 것을 잘 알고 있겠지요. 허나 이도가 만든 해례는 기존의 사대부들의 패러다임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백성들의 눈높이에 맞춰있습니다. 동료 나인에게 해례로 밝혀진 소이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다 해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신체구조, 그동안 사용했던 말을 기반으로 만들어져있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고, 또 금방 가르칠 수 있는 것이지요. 

일단 어떻게든 정기준과 이제 정기준을 배신한 이신적과 심종수는 어떻게든 해례 소이의 목숨을 위협하면서까지 한글 반포를 막으려고 하겠죠. 하지만 소이와 궁녀들이 그간 '역병'처럼 퍼트렸던 해례의 증거는 각설이패와 아이들의 노래에 의해서 걷잡을 수 없이 널리 알려질 것입니다. 기존 사대부가 애지중지 여겼던 자신들만의 매체와는 전혀 비교될 수 없는 새로운 '언론'의 힘입니다.  반면 이제 같은 조직원들까지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분열된 밀본은 누가 먼저 해례를 찾고 그걸 어떻게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용해먹을까만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결국 서로에게 칼을 겨누면서 스스로 자신들의 몰락을 앞당기는 밀본입니다.

애초부터 배신자가 나타나고 와해될 조직 밀본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정기준만을 배신한다는 반전은 그렇게 충격적이지도 놀랍지도 않았습니다. 만약 이중에서 가장 밀본 신봉자로 알려진 심종수가 알고보니 영화 '무간도'처럼 세종이 밀본에 심어놓은 스파이다면 모를까, 그저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정기준과 이신적과 다른 길을 가는 심종수의 배신은 담담하게 느껴질 뿐입니다. 어찌되었든 무조건 사대부가 중심이 되어야한다고 자신들의 기득권의 유지만 관심있었던 밀본이 서로를 못믿게 되어 배신하게 되는 설정은 시청자들로서는 그저 통쾌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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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준(윤제문)이 이끄는 밀본에 의해서 납치당할 위기에 처한 소이(신세경)과 광평대군(서준영). 하지만 마지막으로 어딘가 떠나기 직전 소이를 몰래 보러온 똘복(강채윤, 장혁)에 의해서 밀본의 납치 행각은 저지 당한다. 


그 사이 밀본은 당연히 납치가 이뤄진 것을 알고, 도성 곳곳에 '광평 대군이 납치 되었으니 현재 만들고 있는 새 글을 보여주고 ( 새 글을 포기하라)'는 방을 붙인다. 아직 광평 대군의 납치를 자신들 안에 손 안에 넣지 않았고, 다시 잡는다는 보장이 없는데 말이다. 이건 마치 "내가 아이를 유괴했으니 얼마 간의 돈을 내 통장으로 입금해라"는 보이스피싱이다. 아니면 "일단 돈을 내놔라. 그럼 3개월 안에 아이를 납치하여 다시 돌려 주겠다" 식이던가. 

하지만 정작 밀본 측에 의해서 아들이 납치되었다는 보이스피싱(?)을 당한 이도(세종 한석규)는 의연하다. 물론 그가 광평대군의 안위가 걱정이 안되는 것은 아니다. 광평은 세종의 수 많은 아들 중에서도 이도가 제일로 아끼고 총명했던 다섯째 아들이다. 아들 중에서 누구보다 아버지를 잘 이해하기에 가장 가까이에서 아버지의 새 글 연구를 도왔다. 그런 아들이 한글 창제에 가장 깊숙이 관여했었던 학사 3명을 연달아 죽인 밀본의 손에 넘어갔으니 아들이 어찌될지 불안해하지 않을 수 없다.

허나 이도는 애써 태연한 척을 보였다. 처음에는 현재 자기 발로 의금부행을 자처하여 포박에 묶어있는 윤평(이수혁)에게 울면서 "내 아들을 찾으면 내가 한글을 포기하겠다"면서 윤평을 기쁘게 하다가(?) 갑자기 표정 하나 싹 바뀌고 "내가 이럴 줄 알았지" 하면서 윤평의 약을 한층 더 올린다.

 


"이럴 줄 알았나. 똑똑히 들어라. 나는 네 놈들이 누구인지 관심이 없다. 뭘 원하는지도 상관치 않는다. 중요한 건 네 놈들이 뭘 원하던지 하나도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한 피로서 되갚을 것이다. 다만 보여줄 것이다. 네 놈들이 어떻게 실패하게 되는지 똑똑히 지켜볼 것이다. "

밀본에게 납치된(?) 광평의 소식은 당연히 관료들의 귀에게 까지 전해졌다. 현재 밀본 조직원으로도 비밀리에 활동 중인 우의정 이신적(안석환)과 심종수(한상진)은 대군의 안위가 더 중요하다면서 빨리 새 글을 보여주라고 이도를 설득하고자한다. 하지만 이도의 답은 대략 이러하다. 

"지랄하고 자빠졌네" 

이도는 호탕하게 웃으면서 이는 조선 왕조의 조정과 왕실을 우습게 안 처사. 그리고 우리 광평은 자신 때문에 아버지가 대사를 그르치길 바라지 않는 과인의 자랑스러운 아들이다고 하면서 설마 광평대군을 납치하면 이도가 쫄겠지하는 밀본의 코를 납작하게 해준다. 

 


이도의 과감한 행보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내친 김에 이도는 대신들에게 이미 우리 말과 소리를 본 따 우리의 글을 거의 다 만들었다는 선포를 한다. 거기에다가 혹시 조정 안에 숨어있는 밀본에게 정기준에게 이 한마디 꼭 전해달란다. "겨우 폭력이라니" 

어린 시절 정기준과 이도가 첫 대면을 하였을 때, 이도는 자신의 앞에서 아버지 태종 이방원의 부당성을 지적한 정기준에게 주먹을 날린다. 그 때 이도에게 맞았던 정기준은 이도를 철저하게 비웃으면서 "겨우 폭력이나" "넌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라는 말로 이도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긴다. 그 때부터 이도에게 정기준이라는 인물은 마음 속 깊이 열등 의식과 주저앉게만드는 두려운 존재였다. 허나 이도는 정기준에 대한 열등감을 "내가 반드시 정기준을 넘겠다" 하는 일념 하에 성군이 되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한다. 되도록이면 어느 누구도 피를 흘리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수십 년을 버텼다. 반면 이도 앞에서 폭력의 부당성을 꾸짖었던 정기준은 되레 퇴보했다. 30~40년 전 자기가 정기준에게 휘둘렸던 주먹 그 이상으로 겨우 폭력으로 이도를 제압하고자하는 정기준이다. 정기준은 정권을 잡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폭력을 휘둘렸다고하나, 그렇다고 학사 3명을 죽인 죄가 정당화되는 것도 아니요, 협상 대상 광평대군을 잡은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이도에게 강한 약점만 잡힌 셈이다. 

그렇게 자신과 자신이 만든 새 글을 반대하는 대신들 앞에서 의연함과 당당함을 보인 이도 또한 광평 대군이 걱정이다. 대신들을 만나기 이전에 이도는 광평의 이름을 부르면서 목놓아 울었다. 대신들 앞에서 "지랄하고 자빠졌네"를 외친 이도의 눈가는 너무 울은 나머지 시뻘건하였고, 여전히 이도는 광평 생각에 곧 눈물이 나올 정도로 격양되어있었다. 한 마디로 "내가 웃는게 웃는게 아니야" 였다. 

 


이도 또한 지금 당장이라도 사랑하는 아들을 구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하지만 이도에게는 아들의 목숨 못지 않게 귀중한, 자신의 가족을 넘어 온 백성들을 위한 새 글을 포기할 수 없었다. 자꾸만 남보다 자신의 자식만을 위하는 21C한국에서는 감히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도뿐만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 일하는 지도자들은 대사를 위해 자신의 가족은 물론 심지어 자신의 목숨까지 버릴 수 있었다. 최근에 종영한 <계백>의 주인공은 마지막 신라와의 결전을 앞두기 전 병사들의 사기를 올리기 위해 속으로 울면서 자신의 가족을 베어버려야했고, 제갈공명은 치명적인 실수를 한 마속을 울면서 죽여야했다. 

 


자신의 권력욕에 앞선 욕심이기도 하다. 광평 대군의 목숨과 바뀌면서 한글을 창제한다고 해도 당장 백성들이 새 글의 우수성을 알아주는 것도 아니요, 이도의 위상이 급격히 올라가는 것도 아니다. 제 아무리 백성을 위한다고하나, 아직까지는 새 글을 만들어 백성을 위하겠다는 이도 개인의 욕심에 불과하다. 

하지만 새 글을 만들겠다는 이도의 대의는 옳았다. 모두를 이롭게하는 대사를 위해서 이도는 사랑하는 아들을 눈물을 흘리면서 버릴 수도 있었고, 그 아들 또한 그 누구보다 아버지의 뜻을 이해했다. 지금처럼 국가와 국민의 안위가 아니라, 오로지 자신만의 욕심과 눈앞에 보이는 이익만을 생각하는 기득권층은 이도와 광평대군의 깊은 뜻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할 듯도 하다. 

대신들에게 엄중 선포한 이후 처소로 돌아오는 길에 이도는 이제 완전히 광평대군을 잊고, 그를 위해서 눈물을 흘리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한다. 그런데 눈 앞에 보이는 광평대군, 그리고 팔을 다친 아들을 보고 이도는 다시 휘청거린다. 다행이도 광평대군은 밀본에 납치 도중 똘복이 손에 구출되었다. 또한 반나절 만에 한글을 깨우친 똘복은 어명을 따를 것이라면서, 끝내 세종의 편이 되어 주었다. 이도의 가장 강력한 적이 가장 든든한 아군으로 편입된 순간이다.



이처럼 국가와 국민을 위해 자신이 아끼는 것까지 포기할 수 있는 지도자에게는 자연스럽게 국민들이 따르기 마련이다. 만약에 이도가 자신을 죽이려고하는 똘복을 역시나 칼로서 응징하려고 했다면, 오히려 이도에 대한 똘복의 반감만 더 커지고, 밀본과 협력하는 사단까지 발생했을 것이다. 하지만 애초부터 그릇이 달랐던 세종이기에, 자신의 큰 콤플렉스조차 스스로 극복할 수 있었던 이도이기에 그는 자신의 목에 칼을 겨누는 똘복뿐만 아니라 한글 창제에 반대하는 대신. 그리고 정기준까지 포옹할 수 있었다. 자신의 강적까지 끌어안으려고 하는 자세. 그것이야말로 민주주의 지도자가 갖춰야할 최고의 덕목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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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깊은 나무>의 최대 수확이 있다면 바로 송중기의 재발견이 아닌지? 그동안 학벌 좋고 어여쁘게 생긴 꽃미남으로 이미지를 굳힌 스타 송중기에게 <뿌리깊은 나무> 청년 이도는 그에게 배우로서 대성할 수 있는 싹을 꽃피웠다. 

송중기의 연기는 첫 회에서 장인 심온 대감이 역모죄에 연루되어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어깨를 떠는 것으로만 봐도 그가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섬세한 감정표현을 가졌음이 입증되었다. 이도. 특히 젊은 이도는 독재자 아버지 이방원의 기에 죽어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없는 전형적인 외유내강형 패턴을 보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장인이 곧 아바마마에 의해서 죽을 것을 알면서도 미친 척 방진놀이에만 집중하고, 어깨를 떠는 것만으로도 이도가 얼마나 아바마마를 두려워하고, 아바마마에 의해서 수많은 지인들이 죽어갔다는 것에 분노하고 있지만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 없는 비극적인 상황을 효과적으로 그려내었다.

그 뒤 만날 아바마마 이방원의 꼭두각시에 불과했던 이도는 아버지를 죽인 웬수를 갚는다고 혈안이된 똘복(훗날 장혁이 맡은 강채윤)을 두고 아바마마에게 맞짱을 떴으며 그 이후 이도가 약해서 군주자격이 없다고 가볍게 여긴 무휼(조진웅 분)이 이도를 다시 보고 평생 그의 옆에서 충성을 다 바침을 결심하였다. 그 때 이도가 누군가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비단 무휼뿐이 아니었다. tv를 통해서 그 장면을 지켜보던 수많은 시청자들도 이미 연기에 대해서는 절대 고수 자리에 올라간 백윤식과의 정면대결에서도 이제 겨우 27세에 지나지 않은 청년이 결코 밀리지 않는 장면을 보면서 '환희'를 느꼈다. 그리고 송중기는 다시 8회에서 재등장하여 중년 이도가 된 한석규와 다시 대결을 펼쳤다. 한 마디로와 나와 나와의 대결이었다.

불과 송중기의 출연은 고작 4회 남짓이지만, <뿌리깊은 나무>에서 청년 이도의 역할을 매우 중요하다. 단순히 아역(?)으로서 향후 성인 연기의 바톤을 이어받는 수준에서 머무르지 않는다. 청년 이도의 이상이 곧 드라마의 핵심이요, 더 나아가 이 세상이 나아가야할 방향이다. 물론 이도가 꿈꾸는 세상은 지독하게 비현실적이다. 왕으로서 오로지 백성을 위하고, 나라를 위한다고하나 매번 왕이 하는 일에 불만을 가지고 그의 목숨을 노리는 사람이 부지기수로 늘어난다. 분명 이도의 목을 노리는 이들은 정기준이 본원으로 있는 '밀본'과 강채윤뿐만이 아닐 것이다. 실제 세종이 살아있었을 그 당시 '밀본'도 '강채윤'도 없었지만 분명 세종이 하는 일마다 태클을 걸고 왕을 죽여서라도 그 일을 방해하는 무리들이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세종이 하는 일 모두 결국은 기득권층이 차지한 이익을 줄여서 백성들에게 혜택을 주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매번 선거에서도 잘 드러났지만 가진 자들은 자신의 기득권이 누군가에 의해서 흔들어지는 것을 경계한다. 그들이 꿈꾸는 세상은 별반없다. 그저 조용히 계속 그 사람들에게 유리하게 흘려가는 것이다. 어차피 그들은 자신들만의 성 안에서 비슷한 사람들끼리 똘똘 뭉쳐 살고 있기 때문에 성 밖에 있는 백성들이 굶어죽든 말든 관심이 없다. 오로지 자신들의 배를 배부르게하고, 곳간을 더 빵빵하게 채우고 자식들이 자신의 특권을 계속 이어나가게하는 것이다. 이것은 1400년대에도, 1800년대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정작 분노해야할 백성들은 대부분 입을 다물 수 밖에 없다. 글을 모르기 때문에 자신들의 의견을 표현할 수도 없고, 어디가서 마땅히 하소연할 때도 없기 때문이다. 수령이라는 자도 결국은 기득권층의 일원일 뿐이고 결국은 성리학의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유림의 권리를 강화시킨다는 명분 하에 백성들의 수탈이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에 딱히 반론을 제기할 수도 없다. 그러다가 참다참다 못한 백성들은 가장 불법적인 폭동으로서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고자하지만 그 역시나 대부분 실패로 끝난다. 그래서 기득권층은 이대로 계속 백성들이 자신들의 밑에서 자기네들 시키는대로만 굽실거리면서 살아주길 바란다. 아마 백성들이 자신들만큼 똑똑해지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는 이들은 그들이 아닐련지.

헌데 세종은 백성들을 위해 세법도 다시 바꾸고, 심지어는 누구나 쉽게 익힐 수 있는 글자를 만들겠단다. 지배층 입장에서는 당장 자신들의 이익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 아울려 자신들이 몇 백년 굳건히 유지할 수 있는 기반도 서서히 무너질 기세다. 당연히 유림들과 관리들은 결사 반대이다. 그 과정에서 이도는 성리학의 근간이 무너진다는 명분으로 반대하는 심종수니 이신적 등 충신을 위장한 밀본 세력들을 색출할 것이다.

이 드라마에서 참 아이러니한 점이 있다면, 대신들 중에서 가장 성리학 제일주의에 빠진 나머지 왕은 허수아비고 재상이 조선을 지배해야한다는 신념을 가진 밀본들이 백성들과 나라에 입장에서 볼 때는 가장 부패하였고, 탐욕에만 가득찬 간신들이다. 어쩌면 이들이 신권중심을 옹호하는 것도, 삼봉 정도전처럼 조선을 위해서라기보다, 그저 자신들의 이익을 고이 보전하기 위해서 가담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여기에는 이렇게해서라도 밀본집단을 곧 세종이 처단해야할 '악'의 집단으로 몰고가려는 제작진의 노림수가 섞여있다. 만약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자 '정의'를 구현하고자하는 세종의 목을 노리는 사람들마저 세종처럼 깨끗하고 나라를 위하는 신하들이라면 대다수 시청자들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세종과 밀본간의 대결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누가 권력을 잡던 말던 조선은 계속 살기 좋은 나라가 될 것이기 말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세종 이전에도, 이후에도 정치는 선과 선의 대결이라기보다는 그 반대끼리의 대결, 혹은 보수와 개혁의 대결로 치닫곤 하였다. 그 중에서도 개혁세력이 잠시 힘을 얻기도 하였지만 곧 무너졌고 그 개혁세력마저도 점점 더러움으로 물들게 되었다. 처음부터 전체 백성들의 이익이 아닌, 자신을 비롯한 몇몇 특권층의 이익만을 대변하고자 입신양명하려는 이들은 드물 것이다. 다 누구나, 심지어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 경우조차 다 나라를 생각하는 것이고 국익을 위함일 것이다.

그렇게 위정자들이 국가와 백성을 두고 치열한 대결을 펼치는 동안 백성들은 점점 지쳐갔다. 그러다가 누군가는 먹고사는 것도 제대로 해결안되고, 그 나물이 그 밥이라고 아예 모든 것에 철저히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더 이상 못참겠다고 들고 일어서곤 한다. 당연히 기득권층은 백성들이 아예 포기하길 바랄 지도 모른다. 후자의 경우가 된다면 어떻게해서든지 그 싹이 더 크게 피어오르기전에 싹뚝 잘라버리려고 할 것이다. 그래야 자신들이 힘겹게 지켜온 이익이 고이고이 보전될 터이니 말이다. 

그렇게 자신은 아바마마처럼 피의 통치가 아닌 문의 치세로 만들겠다고 다짐하여 20여년이상 그렇게 집권해온 세종도 계속 이어지는 자신이 아끼는 신하들의 의문사와 결국은 자신도 죽을 수 있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군주로서는 한없이 훌륭한 왕이지만, 그 역시나 한 인간으로는 결함도 많고 콤플렉스로 똘똘 뭉친 약자였기 때문에 이 모든게 두렵고 후회스러울 수도 있다. 결국 이도는 과거 20년 전 야심만만하게 아바마마에게 '나는 집현전으로 이방원과 다른 이도의 조선을 만들겠다고' 공헌한 자신을 꾸짖기까지 이른다. 다 그 잘난 너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청년 이도의 멱살을 잡으면서 몰아붙인다. 


 
하지만 청년 이도는 승하하기 일보 직전인 아바마마 이방원에게 그랬던 것처럼 중년 이도을 비웃으면서, 그럼 아바마마의 무덤에 가서 무릎꿇고 눈물을 흘려라를 주문한다. 평생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던 중년 이도로서는 펄쩍 뛸 수 밖에 없다. 아바마마처럼 살지 않을 것이라고 그렇게 다짐 또 다짐을 하였는데 결국은 자신들의 신하가 죽고, 자기마저 죽을 수 있다. 어쩌면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고 있을 지 모른다. 차라리 아바마마 말씀대로 자신을 위협할 만한 싹을 진작에 제거했다면 자신이 아끼는 신하들이 억울하게 죽는 일은 미연에 방지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국 피로 흥한자는 피로 망한 법이다. 아바마마 이방원은 평생 두다리 쭉 뻗고 잠을 자지 못했을 것이다. 부엉이 소리만 들어도 바들바들 떨었다. 결국 이방원이 지은 죄가 아들 이도에게 전가된 것일 뿐이다. 사실 이방원도 계속 많은 이들을 죽이면서까지 왕이 되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처음부터 피를 흘리다보니 그 피를 보고 더더욱 광분하는 이들에 맞서기 위해 더 많은 피를 봐야했을 뿐이다. 이렇게 무자비한 폭력과 억압으로 강제적으로 상대방을 숨막히기 하는 통치는 결국은 반발과 아예 걷잡을 수 없는 상태로 약화될 뿐이다. 

중년 이도는 청년 이도를 향해 권력의 독은 안으로 그리고 더이상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깊게 퍼진다고 하였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질병도 초기에 발견해서 재빨리 치료를 받아야하듯이, 권력의 독 또한 그 낌새를 알아차리고 재빨리 제거를 했어야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권력의 독 때문에 계속 고통받아야하는 백성들의 불만 또한 속히 어루만져줘야한다. 다행히 아바마마가 희대의 학살자라는 치명적인 결함빼곤, 그 외에 아무것도 흠잠을 데가 없이 착실하게 통치해온 이도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게는 백성들의 이름으로 그 권력의 독을 처단할 수 있는 절대적인 명문이 생겼다. 그래서 이도는 자신을 죽이기 위해 혈안이 된 강채윤에게도 "너의 길을 계속 가거라"를 말하면서, "나 또한 나의 길을 가겠다"를 다짐했다.

 


그렇다. 비록 곧 자신의 목이 달아나는 일이 있어도 백성의 아버지인 왕은 백성들을 널리 이롭게하고, 나라를 바로 세우는 길을 계속 가야할 것이다. 그러나 곧은 왕이 자기 혼자서 깨끗함으로 곱게 치장한 반대 세력과 대적은 멀고도 험하고 외롭다. 과거 세종의 옆에는 젊고 깨끗한 집현전 학사들이 힘겨운 싸움을 이어나가는 왕을 도왔지만 이제는 대다수의 청년들이 나라와 국민을 위한 지도자를 알아보고, 호시탐탐 그 지도자를 경계하는 세력들에게 지켜주고, 행여나 그들에게 흔들리지 않고 계속 초심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한다.

다행히 이제 젊은이들은 기득권층을 향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기반을 자신들의 힘으로 다시 쟁취할 수 있게 되었다. 배우 유아인처럼 20대 참정권을 언급하면서 '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존엄을 가진 인간이란 이유로 발전지향적 변화를 가지는 모든 공통 분모 안에서 민주주의가 나왔다. 이기기 위해서 투표하는 것이 아니다' 라는 굉장히 옳은 말을 펼칠 수 있는 의식있는 젊은이들도 많아졌다. 그러나 유아인이 마지막에 자신의 트위터에서 지적했던 것처럼 가장 중요한 것은 청년 이도처럼 나의 조선은 과거 이방원의 조선과는 다를 것이라는 그 때 그 마음을 변하지 않고 유지하고, 자기 혼자 배부르게 되었다고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기보다 자신도 물론이요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세상을 계속 꿈꾸어야한다. 그래야 얼마나 잘하는지 지켜보자는 기성세대의 비이냥을 이기면서, 끝내 다 모두가 잘살기 위함이라는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는 법이다. 그래서 청년 이도는 여러모로 중요하다. <뿌리깊은 나무>에서나 현재 대한민국에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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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너돌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