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깊은 나무>에서 정기준(윤제문 분)은 양반 사대부임에도 불구하고 수십 년 간을 백정 가리온으로 몸을 숨기면서 살아왔습니다. 그 와중에 천민으로서 양반들에게 몸을 낮춰야했고, 양반들의 횡포에 억울하게 죽을 뻔 한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백정으로서 양반들로부터 온갖 무시를 받고 살아왔을 법한 정기준은 세종 이도(한석규 분)이 만들고 있는 한글의 우수성을 알자마자 무조건 새 글을 막아야한다고 분노를 금치 못했습니다. 

 

정기준이 한글을 막아야한다고 결론을 지은 이유는,  사대부가 사대부인 이유는 글을 알기 때문입니다. 글이야말로 사대부의 권력이요, 힘의 근거다. 허나 이렇게 쉬운 글자라면 조선의 모든 질서가 무너질 것이고, 이 조선의 뿌리인 사대부가 무너질 것이라는 염려만 가득찬 정기준입니다. 

그래도 양반 사대부임에도 불구하고 자청해서 백정 가리온으로 위장하였던 정기준인터라 내심 글을 몰라 고통받아왔던 백성들의 삶을 잘 알 것 같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사대부가 중심이 되는 새로운 조선을 만들고자하는 것도 결국은 모든 백성들이 아무 걱정없이 살 수 있는 태평성대를 구사하기 위해서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래도 <뿌리깊은 나무>에서 주인공 세종과 맞서는 정기준은 자신의 욕심에 의해서 주인공을 괴롭히는 악역에 비해서 뭔가 다를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정기준은 말 그대로 사대부를 위한, 사대부에 의한재상 총재제를 원했을 뿐입니다. 물론 재상 중심제를 통해 몇몇 사대부만 권력을 독점한다고 해도, 백성들이 글을 모른다고 해도 백성들이 살아가는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정기준 옆에 모여든 사대부들은 사대부로서 나라와 백성의 안위를 걱정하기보다, 자신들의 사대부의 지위와 당장의 사리사욕부터 챙기기 바쁜 탐욕스러운 자로만 가득 차 있습니다. 그동안 밀본 조직원임에도 불구하고 세종 이도에게 붙어 권력을 유지하던 이신적(안석환 분)이 다시 밀본에게 붙은 것은 오로지 권력욕 때문입니다. 단순히히 정기준에게 붙는 차원이 아니라, 밀본의 새로운 수장이 되어 재상 자리를 꿰차 더 많은 권세와 부를 누리고 싶은게   이신적의 야욕입니다. 이신적이나 심종수(한상진 분)이나 백성들의 삶보다 자신들이 당장 날 세금절약과 재정비축에만 관심을 두는 듯 합니다. 이런 이들이 권력을 잡는다 해도, 이도가 지배했던 조선만큼 태평성대를 구축할 것 같지도 않고, 오히려 백성들의 삶만 피폐해질 것 같은 걱정만 앞설 뿐입니다. 

 
정기준의 백부 삼봉 정도전이 재상중심의 조선을 원했던 이유는 왕 중심 지배체제보다 훨씬 더 나라를 안정적으로 다스릴 수 있다는 철학에 의해서입니다. 비록 사대부 내에서 찾아야한다는 한계점이 있지만, 왕실에서만 지도자감을 찾는 것보다 나라를 위해 일할 수 있는 똑똑한 인재를 발굴해낼 수 있다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삼봉 정도전 선생은 '언로를 틔워 백성의 소리를 들으라" 라고 할 정도로 그 당시 사대부 기준에는 천하기 짝이 없는 백성들의 민심을 귀기울여 듣고자 하였습니다. 세종 이도(한석규 분)이 백정 가리온으로 변장한 정기준과 함께  정도전 그리고 정기준이 밀본 조직원들을 불러놓고 비밀 회동을 하던 바위에 앉아서 술 한잔 주면서 "(한글창제야 말로) 정도전 선생의 대의에 가장 부합되는 일이라는 것도 새 글을 만들면 보다 백성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맥락때문이었습니다. 

 

 

반면 백부의 뜻을 받들여 밀본 삼대 수장 자리에 앉은 정기준은 사대부 중심 국가를 만들고자하는 목표는 있었으나, 백성들의 소리를 귀기울이라는 백부의 진정한 국가 철학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오직 사대부 권력이 흔들릴 것을 위험해서 백성들이 글을 아는 것을 두려워하는 정기준입니다. 새 글을 통해서 백성들의 말로서 더욱 좋은 정치를 펼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소리를 막으려고 안간힘을 다 쓰고자하는 정기준입니다. 

 

도대체 정기준은 백정으로 살면서 글을 모른다는 이유로 억울하게 죽음을 당하는 백성들의 고통을 헤아리지 못했을까요? 정기준 또한 조말생(이재용 분)에 의해 남사철 살해 시도 용의자로 내몰렸을 당시 힘없는 백성들은 양반의 한 마디에 처참하게 죽어야한다는 현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말 뿐이었습니다. 정령 정기준이 글을 몰라서 백성들이 지배층에게 당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면, 권력을 잡으면 백성들의 권익 신장을 위해서 힘을  쏟아야겠지요. 허나 정기준은 오직 한글로 인한 지배층의 혼돈만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백정으로 양반들에게 괄시당하면서도, 양반들의 지위 강화에만 더 큰 관심을 두고, '사대부 중심 나라'만 상상하고 있던 정기준입니다. 

 

수 십년 동안 백정으로 살아왔지만, 진짜 백정의 마음이 되지는 못한 정기준은 선거철에만 점퍼 차림으로 시장을 돌아다니고, 상인들과 약수를 하고 국밥을 먹는 정치인을 보는 듯 합니다. 말로는 백성들 가장 가까이서 그들의 삶을 체험했다고 하나 진정으로 백성들과 소통을 하려고 하지도,  백성들이 똑똑해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정기준입니다.  


물론 정기준 역시 자신이 조선 최고 권력자가 되겠다는 욕심 때문에 밀본을 다시 일으킨 것은 아니겠지요. 그 당시 지도자들에게 백성들에게 베푸는 선정이란 오직 백성들의 배만 두둑하게 부르게 하고 전쟁없이 평화롭게 사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였기에 정기준 역시 권력을 잡으면 백성들은 아무런 걱정없이 무탈하게 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오직 탐욕에 눈이 먼 세력들과, 호시탐탐 조선에 대한 기득권을 누리고자하는 명나라를 끼고 정권을 찬탈하려는 정기준이 과연 집권한다해도 세종 이도만큼 정말 조선과 백성을 위한 선정을 펼칠 수나 있는지 의문입니다. 


사대부 중심 국가를 구현하여 새로운 조선으로 바로잡겠다고 하나, 결국은 기득권의 이익 챙기기에만 몰두했던 밀본과 정기준입니다.  천민의 삶을 경험했으나, 조금이라도 백성들의 편에서 그들이 살기 좋은 나라에 대한 이상을 품기보다  그 역시도 오직 지배층의 권력보존에만 관심 있는 탐욕스러운 정치인에 불과했습니다. 백성이 똑똑해지고, 많이 알면 사대부가 중심이 되어야하는 조선의 지배질서가 무너지고 세상에 혼돈만 가득 찬다고 혼비백산한 정기준입니다. 

 


오히려 진심으로 백성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들의 편에서 '글자'라는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기라성 대신들과 자신의 모든 것을 내걸고 맞짱뜬 사람은 한번도 백정의 삶을 경험하지도, 궁궐 밖에서 살아보지도 않은 왕 '이도' 였습니다. 거기에다가 그는 군주의 권위와 힘으로 무작정 대신들의 뜻을 강제로 굽히기보다, '논리'와 '열린 소통'으로 대신들을 설득하고자 하였습니다. 세종의 끝장 토론에 한글을 반대했던 신하들도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정말 칼보다 글이 더 무섭다는 것을 여실히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반면에 어린 시절 이방원 독재의 부당성을 설파하다가 이도에게 빰맞고 "겨우 폭력이나?" 라면서 일침을 가했던 정기준은 오직 '폭력'으로 이도와 그의 수하의 목을 조르려고 할 뿐입니다. 도대체 정기준은 장차 지도자를 꿈꾸는 사람으로서 백정으로 살아 가면서 무엇을 느끼고 배웠던 걸까요?  가장 낮은 신분에서 천대받는 삶을 살고도 결국은 사대부의 기득권만 챙기기 바빴던 정기준이란 인물에게 너무나도 실망스럽네요. 아니 엄밀히 말하면 만날 입으로는 어렵게 자라, 누구보다 서민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하나, 실질적으로는 상위 1%의 기득권의 이익만 대변하는 듯한 정치인을 보는 것 같아, <뿌리깊은 나무> 정기준이 단순히 드라마 속 인물로만 보여지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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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 이방원(백윤식 분)은 유독 권력욕이 강한 사람이다.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 아들 중에서 가장 비범한 인물임은 틀림이 없다. 만약에 그가 이성계의 큰 아들이었다면, 아니 하다못해 이성계가 가장 총애했지만 결국 그 아비의 가슴에 비수를 꽃고 산으로 들어간 큰 아들의 다음 아들로 태어났어도 이방원이 수많은 이들의 피를 흘리면서까지 조선 최고의 권력자가 되는 비극은 없었을 지도 모른다. 

아이러니하게도 조선 초기 시대 유능한 왕들은 대부분 다 장자가 아니다. 가문은 장자가 잇는다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성리학 국가에서 정작 성리학이 정한 질서에 모범을 보여야하는 왕실에서 가장 기본을 깨트린다는 것은 성리학 왕조 조선의 정당성을 약화시킨다. 그래도 조선 초기에는 조선 중, 후기처럼 성리학이 심화되지 않았다. 성리학 신봉자로 신권 중심의 나라를 세우고자한 정도전 스스로가 이성계 첫째 부인에서 난 다 큰 아들들을 제치고, 이제 막 어린애 티를 벗은 방석, 방번 형제를 왕위에 옹립하려고 했으니. 만약 그 때 정도전이 이성계 둘째 부인 자식들이 아닌 그중에서 가장 뛰어난 아들인 이방원을 왕위에 앉히려고 했으면 그래도 형제들끼리의 칼부림은 일어나지 않았을까? 아니다. 원래 정도전과 이방원은 숙명적으로 대적할 수 밖에 없는 운명에 놓였다. 정도전은 조선을 재상 중심의 나라로 만들려고 하였고, 반면 이방원은 왕 중심의 강력한 군주 국가로 만들고자 하였다. 하지만 본래 성리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신하들끼리의 당파를 만들고, 신권이 강한 정치를 권하는 쪽이었다. 만약 정도전 하나를 제거한다고 해도, 또 성리학에 깊이 빠져든 나머지 군주 중심의 통치를 하고자하는 이방원에 반기를 드는 세력은 나날이 늘어날 것이다. 그래서 이방원은 자기에게 반기를 들 조짐만 보이면, 바로 제거하였다. 그게 이방원의 정치다. 

 


자기에게 걸리적 거리는 모든 것이라면 바로 과감히 제거해버리는 이방원에게 이도 즉 충령대군과 같은 온화하고 생각이 깊은 아들이 태어났다는 것은 기적이다. 본래 이방원의 피를 가장 많이 타고난 아들은 첫째인 양녕대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태종은 첫째, 둘째를 놔두고 셋째 아들인 이도에게 자신의 왕위를 계승한다. 그것도 자신은 상왕으로 자리를 옮기고 아들을 꼭두각시 주상으로 앉혀놓고 실질적인 통치권은 다 자기가 차지한다. 아들 이도에게는 넌 오로지 방진이나 하면서, 내가 하라는대로만 하라고 엄명을 내려놓았다. 역사적 정설로는, 이방원이 흘린 피는 앞으로 세종이 성군이 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희생이었다고 하나, <뿌리깊은 나무> 속의 이방원은 여전히 권력욕에 눈이 먼 나머지, 아들 중에서 가장 유약한 이도를 앉혀놓은 듯 보인다. 그래야 자기 입맛에 맞게 왕이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르는 조선으로 굴릴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도(송중기 분)는 한반도 땅에 있었던 역대 왕조 중에서도 가장 성군으로 평가됨은 물론, 가장 희대 천재형 인물이었다. 이방원 역시 만만치 않은 인물임에는 틀림없으나, 이도의 천재성을 따라갈 수는 없었다. 다만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흘린 피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려왔고,틈만나면 왕과 아비의 특권으로 이도를 강압적으로 누르곤했던 이방원때문에 상대적으로 기를 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세종은 자기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어느 모르는 이가 했던 말 "넌 혼자서 아무것도 못해"라는 말에 깊은 상처를 안고 있으면서, 유일하게 스스로 할 수 있는 방진에 집착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방진은 천재 이도에게 단순한 놀이가 아니었다. 앞으로 조선을 이끌어갈 왕으로서 아버지 이방원이 잔인하게 밀고나갔던 조선 땅을 모두다 공평하게, 그리고 어느 누구의 희생이 없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어나가고자하는 것이 바로 이도였다. 그래서 이도는 방진의 숫자를 맞춰보면서 세상의 이치를 깨닫게 되었다. 아버지 이방원은 여러 고민없이 오로지 하나(1)을 빼고 그 외 모든 것을 과감하게 제거했지만 이도는 결국 방진을 풀어내었다. 그리고 이제 드디어 아버지 이방원에게 맞서게 된다. 33방진을 어느 한 숫자의 제거없이 완벽히 풀어냈으니 나의 조선은 아버지의 조선과는 다를 것이다면서 말이다. 

이제 그 풀기 어렵다하여 악마의 '마'방진이라고까지 불리는 방진을 풀어낸 이도는 아버지가 휘두르는 '칼'보다 더 무서운 것을 알게 되었다. '칼'로 짓밟을 수록 더 날카로운 '칼'이 나오게 되지만, 글을 앞세운 문화로 인한 통치는 한 방울의 피도 흘리지 않으면서 더욱 무섭게 상대방을 진압할 수 있다. 그게 바로 600여년전에 태어난 왕 이도가 파악하던 리더십이다. 

안타깝게도 그토록 '칼'이 흘리는 피에 경계를 하였던 세종의 혈육에서 역시나 조부 이방원에 버금가는 독재자가 한 명 출연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방원, 수양대군에 못지 않은 학살자가 나오기도 하고, 또한 세종에 버금가는 훌륭한 정치를 하였던 지도자도 이따금씩 나왔다. 하지만 피로 인한 권력은 곧 순식간에 무너지는 법이다. 앞에서만 고개를 숙일 뿐. 결국은 때를 기다리면서 또다른 피바람을 낳을 뿐이다. 하지만 자신의 목숨을 겨눈 정적에도 베풀 수 있는 관용과 부드러움은 더많은 이들의 지지와 존경을 받는 법이다. 물론 태종 이방원이 휘두른 칼 때문에 세종이 자신의 통치에 훼방을 놓을 인물이 다 제거된 상태에서 완벽한 정치를 펼칠 수 있었다는 점도 없지 않아 있다.

하지만 세종은 그토록 자기를 죽이고 싶은 노비 강채윤마저도 결국은 완전히 왕에게 복종을 하게 만드는 인물이다. 세종이 살았던 1400년대나, 세종이 반대세력을 물리치면서 만들어낸 한글로 보다 많은 이들이 똑똑해진 21c 대한민국이나, 정치에 대한 본질은 같다. 독재는 잠시는 조용할 지 모르나, 후에 걷잡을 수 없는 더 큰 반발을 초래한다. 반면 만물의 조화를 표방하는 정치는 그 과정에서는 온갖 잡음이 들릴지 몰라도 결국은 온 국민의 존경과 나라 안의 평화를 가져온다. 호시탐탐 이 나라를 노리는 외적이 침입했을 때도 똘똘 뭉쳐 위기를 이겨내는 큰 힘을 가져오게 한다. 그래서 세종이 인간 이도가 가지는 모든 약점을 극복하고 그 어느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성군의 위치와, 유례없는 태평성대를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이다. 

덧) 어린(?) 이도 역할을 맡은 송중기가 이리 연기를 잘하는 배우인 줄은 몰랐다. 젊은 배우가 외유내강형의 섬세한 감정을 표현하는게 쉽지만은 않을텐데;; 진짜 한석규만 아니었어도 송중기가 세종을 계속 해도 될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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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쩐의 전쟁>, <바람의 화원> 연출자 장태유PD 연출, <대장금>,<히트>,<선덕여왕> 김영현 작가, 16년만에 드라마로 컴백하는 배우 한석규, <추노>, <마이더스>의 장혁. 제작진, 연기자 이름만 들어도 <뿌리깊은 나무>는 이미 예견된 히트작이었다. 하지만 요즘 연출과 작가의 필력, 연기력 등 모든 성공요소를 다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실망만 안겨준 드라마가 수도 없기 많기 때문에 <뿌리깊은 나무> 또한 뚜껑을 열기 전까지는 안심할 수 없었다. 


하지만 역시 <선덕여왕>의 김영현 작가는 달랐다. 기존 정사와는 다른 접근으로 나가면서도 풍부하면서도 설득력있는 이야기로 보는 이들을 매료시키는 필력을 가진 김영현 작가가 새로 도전한 인물은 바로 이도 세종대왕. 국민들이 좋아하는 만원 화폐에 계신 분으로, 대한민국 왕조 최고의 성군이자 한글 창제자이신 대왕. 그러나 수많은 국민들이 존경하는 위인임에도 불구하고 사실 인간 이도에 대해서 알려진 바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세종대왕하면 근엄하고, 오로지 백성들을 사랑하는 애민정신으로 똘똘 뭉친 어진 왕이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세종대왕은 세계 어느 위대한 황제와 견줘봐도 정치, 군사, 경제 등 모든 방면에서  완벽한 천재였다. 그래서 김영현 작가와 <뿌리깊은 나무>를 공동으로 집필한 박상연 작가는 "세종대왕은 알면 알 수록 정말 위대한 분이시다"라고 극찬을 하였다. 하지만 세종대왕이 더 위대한 이유는, 바로 지도자로서 유독 백성을 위하고 자신의 목숨을 걸고 앞으로 백성들이 지도층에 맞서 새로운 권력을 만들 수 있는 '문자'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만약에 세종이 그저그런 왕이었다면, 기존 세력에 대항하기 때문에 엄청난 반발을 불러일으킬 문자를 만들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 '충녕'이 아닌 '양녕','효령'이 되었다면 21C 현재에도 보기만 해도 머리가 아파오는 한자를 사용하면서, 인터넷에 댓글 치는 것도 상당히 어려움을 호소하고 살 뻔 했다. 물론 세종대왕처럼 비범한 지도자가 작정을 하고 '한글'에 버금가는 문자를 만들었을 수도 있겠지만,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단순히 '한자'라는 글자가 글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도층과 피지배층의 격차와 지도층이 앞으로도 글자를 알아보지 못하는 백성들을 상대로 권세를 펼칠 수 있는 굉장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종은 '한글'을 만들려 하였던 것이고, 지배층은 당연히 반발할 수 밖에 없었다.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고, 사용할 수 있는 문자. 설상가상으로 관료를 등용하는 과거 시험에 '한자'가 아닌 새로운 글자인 '한글'로 본다면, 법제적으로는 양반이 아니라 일반 상민도 볼 수 있으니 양반들이 그렇게 유지하고픈 신분제도마저 무너질 위험이 있다. 그래서 지배층들은 한글이 도입된 이후에도 과거시험만큼은 유려한 '한문'으로 보게 했다. '한자'가 '한글'보다 더 수준있고 지식의 척도를 잘 말해준다는 이유로. 지금도 그 지식의의 수준을 가늠하는 수단이 '한자'에서 '영어'로 바꿨을 뿐 지배층과 피지배층을 나누는 문자 기준은 변함이 없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에도 '영어'를 잘하기 위해서 수많은 가족들이 기러기 가족과 막대한 외화유출을 감수하고 외국으로 떠나고, 대학생들은 오직 영어 관련 자격시험 고득점에 목을 멘다. 그래도 지금은 누구나 쓸 수 있는 '한글'이 있어서 의사소통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고 인터넷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얼마든지 피력할 수 있다. 하지만 세종이 막 왕에 즉위할 당시에는 일반 백성들은 간단한 상소문조차 쓸 수 없었다. 아니, 아예 읽지 못해서 목숨까지 잃는 봉변을 당하는 안타까운 일이 부지기수 였다. 

아마 강채윤(장혁 분)이 똘복이로 살았을 시절 그의 아버지도 조금 모자라긴 하였지만 만약에 문자를 읽을 수 있었다면  세종(송중기 분)이 장인을 위해서 보냈으나 이미 누군가에 의해서 조작된 밀지를 곧이 곧대로 충녕의 장인이자 어르신 심온 대감에게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그 밀지로 인해 심온 영감이 화를 당하고, 역시 똘복의 아버지 또한 밀지를 전달했다는 죄 하나만으로 억울한 죽음을 당한다. 그 때부터 똘복은 이 모든게 다 이도때문에 발생한 일이라면서 분노를 표하고, 결국 이도 앞에서 반드시 왕을 죽이겠다고 선언한다. 그 때부터 똘복은 아버지를 죽이게한 웬수 이도를 죽이기 위해 복수의 칼을 간다. 그리고 강채윤으로 변신한 똘복은 기어코 궁에 입성 이도를 죽을 날만 손꼽아 기다린다. 하지만....

 


<뿌리깊은 나무>는 세종의 한글 창제 과정을 다루면서, 그 당시 '한글'로 큰 혜택을 보게될 백성들 즉 강채윤 같은 노비 출신들이 당시에는 이 새로운 문자에 대해서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에 초점을 맞췄다. 작가의 생각은 그 당시 피지배층은 한글 창제에 대해서 마냥 설레면서 박수치지는 않았을 것 같단다. 오히려 그들은 왕이 왜 굳이 새로운 문자를 만드는데 힘을 쏟는가라는 의문을 품을 법도 하다. 그 문자 덕에 그들의 후손들도 '대통령'이 될 수 있고, 지배층의 반열에 올라갈 수 있는 기반을 닦게 되었지만, 당시 피지배층들에게 '한글'이라는 문자는 그야말로 어안이 벙벙할 듯 하다. 그래서 작가는 강채윤을 통해 당시 막 처음으로 '한글'이란 문자를 접한 백성들이 한글을 어떻게 받아들였으며, 결국 세종과 연합하여 한글을 반대하는 지배세력과 싸워나갔는지를 보여주고자 한단다. 그래서 초반부 글을 몰라 억울하게 죽은 강채윤의 아버지와 그 모든 분노를 이도에게 몰고간 강채윤을 그러내었다. 하지만 결국 그는 진심으로 백성들을 사랑하는 왕 '이도'의 진심을 알고 시종일관 왕을 노리는 세력들과의 다툼에서 왕을 보호할 것이다. 

 


<뿌리깊은 나무>는 단순히 세종대왕의 이면에 가려진 인간 이도와 한글 창제 과정에 있었던 숨막히는 에피소드를 재조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드라마가 아닌 듯 하다. 어질고 품위있는 왕과는 차원이 다른, 저잣거리에서나 들릴법한 속어를 궁중에서 사용하고, 농경사회 조선에서 육식을 좋아하고, 가끔은 신경질도 잘내는 그역시 인간에 불과한 이도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군주'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이 가진 약점을 슬기롭게 조절할 줄 알았고 무엇보다도 진심으로 백성을 이해하고자 하였고, 그래서 당대 백성들뿐만 아니라, 평민, 노비의 후손마저 권력을 잡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그래서 이도가 인간으로서 가진 모든 약점이 커버되면서, 600년이 지난 이후에도 대한민국 왕조 역사상 흠잡을 데 없는 최고 성군으로 추앙받는 것이다.

바야흐로 선거철이다. 또한 의도치않게 대통령을 뽑는 대선 이후 빅매치라는 서울시장 보궐 선거도 치뤄야 한다. 특히사 서울 시장은 대선으로 나가는 발판이기 때문에 서울시민이 아니라도 모든 국민들이 관심을 가질 법도 하다. 이제 우리 국민들은 대부분 다 '한글'도 읽을 줄 알고, 어느 정도 배웠기 때문에 이제 스스로의 힘으로 진정으로 국민들을 위하는 지도자를 직접 선출할 자격이 있다. 과거 세종과 강채윤이 살았던 시절에는 꿈도 꿀 수 없었던 획기적인 변화이다. 비록 백성들을 사랑했지만, 아직까지 역사적 사료로 판단해보면 전형적인 군주의 틀에 머물렀던 세종 또한 백성들이 직접 '지도자'를 선출하는'혁명'까지는 원했을 것 같지는 않은 듯 하다. 오히려 세종은 칼로서 자신의 권력을 정

당화한 아버지 태조 이방원과 달리, 새로운 문자를 창조하여 백성들을 자기의 편으로 끌

인후 더 많은 지배층을 무력화시키고자하는 의도로 까지 비춰지기도 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가 만든 '한글'은 보다 많은 조선민들을 이롭게 하였고, 보다 자유롭게 하였다. 이것이 바로 세종의 한글 창제 이유이자, 그토록 이도를 죽이고픈 강채윤이 결국은 세종에게 진심으로 머리숙어 항복한 이유다. 첫 도입부만 봐도 뭔가 큰 메시지를 내포하는 굉장한 드라마 하나 탄생할 기세다. 요근래동안 이처럼 보는 이의 가슴을 뛰게하는 드라마는 실로 오랜만인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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