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엄태웅의 대표작인 <부활>,<마왕>을 잇는 또하나의 복수극의 명작인 줄 알았습니다. 수백년이 지나도 복수극의 고전으로 각광받는 <몬테크리스토 백작>처럼 말이죠. 물론 <적도의 남자>는 악인들에 의해 억울하게 고통받은 주인공이 자신을 괴롭히던 이들을 자기가 당했던 그대로 복수하는 패턴을 보여주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닙니다. 결국 주인공 김선우가 최종적으로 겨냥하고 있는 강한 목표물은 하필이면 김선우라는 씨앗을 이 세상에 뿌린 진노식(김영철 분)입니다. 


첫 회 한 때 진노식이 경영하던 태국의 한 리조트에서 이장일(이준혁 분)이 노식에게 총귀를 겨누며 했던 말이 있었습니다. "선우가 회장님의 친아들이었으면 좋겠지요." 그 때 장일을 말리던 선우. 그 때 선우는 마치 그간에 품었던 원한과 분노를 모두 내려놓고 용서, 안타까움 등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이었습니다. 몇 초 안되는 짦은 시간이었지만, 그동안 김선우가 살아온 과정을 모두 압축하여 눈빛으로 드러낸 의미심장한 장면이었죠. 


그 때부터 이미 김선우의 친아버지는 진노식으로 밝혀졌는지도 몰라요. 그 이후에도 계속 선우의 친부가 노식이라는 강한 복선과 암시가 깔려있었구요. 다만 맛있는 것은 마지막에 먹는다는 최수미(임정은 분)처럼 이제서야 선우의 친아버지가 노식이라는 것이 확실해졌을 뿐이죠. 


처음부터 선우의 아버지가 노식이라는 것을 짐작하고는 있었고, 그래야 단순 복수를 넘어 인간의 사랑과 미움이 어디까지 갈까라는 다소 철학적이고 근원적인 문제를 다루는 <적도의 남자> 스토리가 흥미진진해진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선우의 친아버지가 진노식이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도 컸습니다. 현재 복수의 화신이 되어버린 선우이지만, 본바탕은 선한 선우을 낳아준 사람이 살아있는 악마 진노식이라고 밝혀지면 엄청난 충격을 받고 다시 눈이 멀지도 모를 선우이니까요. 


아마 진노식도 처음부터 잔악무도한 사람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도 처음에는 그의 아들 선우처럼 선한 피가 흐르고 있었겠죠. 하지만 가난한 집 장남으로 태어나 어릴 때 고통스러웠던 세월에 대한 보상으로 돈과 사람에 대한 집착이 오늘날 아들조차 자신의 아버지임을 부정하고픈 골리앗으로 굳어지게 한거죠. 


어떤 면에서 한 때 자신을 낭떠러지에 굴러 떨어트린 이들에게 자기가 당한 만큼 똑같이 복수하는 선우를 보고 그에게도 진노식의 피가 흐르고 있구나 싶어 놀란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간 선우가 노식, 이장일 부자에게 당한 것을 생각하면 아무 것도 아니죠. 그들이 15년 전 자신들의 범죄에 대해서 진심으로 뉘우치고 빌었으면 모를까. 그러기는 커녕 오히려 뻔뻔하게 "내가 그 때 선우도 죽였어야했어"라면서 되레 돌아온 선우만 원망하는 뼛속까지 악으로 받친 그들이니까요. 그들에게는 '용서'와 '자비'라는 단어도 사치입니다. 


결국 자식을 잘 키워보겠다는 빙자하에 15년 전 자신의 손으로 선우 양아버지를 죽여놓고도 참으로 떳떳하게 잘 살았던 장일 아버지는 자신과 아들의 과거 범죄가 드러나려고 하던 찰나 그 때 사건과 관련되어있는 노식과 수미 아버지에게 흉기를 휘두르고, 자살을 택합니다. 인간이 얼마나 추해질 수 있는지 몸소 보여주는 장일은 드디어 살인미수 혐의가 세상에 드러나고 검사직도 내놓고 설상가상 아버지까지 잃을 수도 있는 가장 최악의 벼랑 끝에 내몰려 있습니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그 부자들 손에 희생된 선우 부자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이 있었다면 그들의 끊임없는 추락에 약간이라도 안쓰러운 마음이 있었을텐데, 이미 용서의 한계를 넘어버린 이들이니까요. 


하지만 스스로들 미처버려 자멸을 택한 장일 부자와 달리,  진짜 선우가 무너뜨러야하는 골리앗 노식은 더이상 선우의 손으로 무너뜨릴 수가 없단 말이죠. 진노식을 친다는 것은 선우가 스스로 자신의 눈을 찌르는 것과 다름없으니까요. 


예상했던 결말이긴 하지만, 선우의 친아버지가 노식으로 밝혀진 것만큼 허망한 순간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제 막 노식을 향한 선우의 복수에 탄력이 붙었는데 "노식은 선우의 친아버지." 하면서 기어코 찬물을 끼얹고 말았으니까요. 허나 점점 복수를 위한 괴물이 되어가는 선우를 보면 그러면 안되겠지만 여기까지 멈추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습니다. 노식, 이장일 부자, 최수미 부녀는 결코 용서받아서는 안될 인물이지만, 혹시나 선우가 미쳐버리거나 다시 눈이 멀까봐, 그리고 그가 이번 생에서 저지른 복수로 영영 헤어나올 수 없는 지옥으로 빠져버릴까봐 그것만 걱정이었던거죠. 


그러나 여전히 자기들이 뭘 잘못했는지 인정하고 반성하기는 커녕, 오직 자신들이 선우에 의해 곤경에 처한 것만 원망하고, 자신들의 범죄를 은폐하기 위해 눈깜짝도 안하고 또다른 범죄를 저지르는 그들을 무작정 '용서'하는 것 만큼 더 어리석은 일도 없을 듯 합니다. 아니 처음부터 선우에게 자신들의 잘못을 진심으로 무릎꿇고 사과했다면 선우는 진작에 그들을 용서해주었을 겁니다. 왜나 그들은 보통 사람들과 달리 춥고 외롭고 지독하게 불쌍한 중생이니까요. 


이제 다음주 종영을 목표로, 2회 분만 남겨둔 <적도의 남자>. 아마 김인영 작가의 전작 <태양의 여자>나 지금 <적도의 남자>가 흘려가는 분위기를 보면 복수를 끝내고 용서와 화해를 그릴 가능성도 높아보입니다. 극한으로 치닫는 사람 간의 증오와 분노를 다루면서 원하지 않는 운명에 어쩔 수 없이 순응해야하는 나약한 인간들의 초상화를 그리고픈 작가의 의도는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도저히 인간으로서는 거역하기 어려운 운명때문에 그간 자신을 가장 괴롭히던 친아버지를 용서해야하는 선우. 그것 또한 시청자들이 거역할 수 없는 <적도의 남자>의 예정된 운명이긴 하겠지요. 


하지만 한 때 선우의 등에 칼을 꽃은 인간들이 반성의 기미도 없는데 '휴머니즘'과 '박애주의'를 운운하면서 피해자만 용서하는 어설픈 반쪽 화해는 지양했으면 합니다. 16일 MBC <라디오스타>에서 김태원이 김구라를 두고 언급한 것처럼 누군가를 용서하는 것은 자신도 용서받을 자격이 생기기에 용서해야한다는 말이 맞긴 합니다. 허나 용서를 받는 위치에 있는 사람도 무작정 용서만을 바라기보다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기본적인 자격. 즉 자신의 행위에 대한 반성과 참회가 있어야하지 않을까요. 


지금으로서 노식은 단순히 선우 친부라는 이유로 면죄부를 받을 수 있는 자격조차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기어코 자신의 친아버지 때문에 어설프게 운명의 끈을 놓아야하는 선우가 안타까운 것입니다. 만약 선우가 끝내 아버지를 용서하겠다는 설정으로 그리는 것이 김인영 작가의 의도라면 그가 그동안 자신의 잘못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눈물을 흘렸는지 진심으로 반성하고 뉘우치는 진노식의 극적인 변화와 횡령, 뇌물에 대해서 제대로된 죗값을 받는 모습을 보여줘야할 듯 하네요. 하지만 몇몇 이들의 예측처럼 선우가 자신을 낳아준 아버지란 이유로 진노식을 진정으로 용서할지는 마지막에 가서 뚜껑을 열어봐야 알 듯 하네요. 과연 <적도의 남자>는 어떠한 마무리를 지을 지 사뭇 궁금해지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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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일(이준혁 분)은 춥고 외로웠어. 그래서 날 쳤어." 


과연 이장일이 15년 전 벼랑 끝에서 유일한 친구 김선우(엄태웅 분)의 뒤통수를 친 이유는 뭘까요? 진노식(김영철 분)의 사주를 받고 선우 아버지를 죽인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서. 아님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 어떤 이유에서 김선우를 쳤던 간에 그 이후로 이장일은 자기 혼자 살겠다고 친구까지 죽이려고 했던 살인미수자일뿐입니다. 공소시효가 지났기에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한 형벌은 더이상 묻지 않겠지요. 하지만 그는 제 아무리 유능한 검사라고해도 결코 손바닥으로 가릴 수 없는 '살인미수'를 저지른 범죄자일뿐입니다. 


15년 전 끔찍한 사건을 알면서도 입을 다물었던 이들이 모두 선우에 의해서 철저히 망가지고 있는 통쾌한 전개입니다. 어쩌면 선우는 공소시효가 지나길 바랐는지도 몰라요. 그 때 사건에 관련되어있는 사람들이 "난 선우 아버지 죽음에 대해서 결백해. 너 때문에 선우 아버지가 죽었어."하면서 서로 물어뜯다가 미쳐버리는거. 이보다 더 고소한 상황이 또 있을까요. 다만 결국 진노식 회장이 선우 친아버지일 가능성이 100%일 듯 한데 자기 손으로 아버지를 죽였다는 죄책감에 다시 눈이 멀 수도 있는 선우의 예정된 미래가 두려울 뿐이죠.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범인과 자신을 죽이려고 한 가해자를 모두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 선우. 15년전 사건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장일이 자신이 가진 유일한 힘인 '검사'를 이용해서 어떻게든 선우의 입을 막아보려고 하지만, 누구도 쉽게 무너뜨릴 수 없는 '다윗'이 되어버린 선우는 이장일도, 진노식도 도저히 막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tv 생방송을 이용해서 15년 전 범죄가 수면 위에 떠오를 위기가 되자, 직접적인 사건 가해자 이장일 부자는 물론, 진노식 그리고 각각 사건의 목격자이지만 자신들이 본 것을 똑똑히 말하지 않은 위증자 최광춘(이재용 분),최수미(임정은 분)도 비상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선우가 미리 놓은 덫에 걸러든 상황에서도, 계속 상대방 탓만 합니다. "선우 애비 숨통을 끊은건 너야."라는 진노식 회장. "장학금을 빌미로 선우 아버지를 죽이려고 강압적으로 지시한 게 누군데요."라고 대항하는 장일 아버지. 끝까지 "네탓이요. 난 아무 죄없어." 라면서 팽팽한 기싸움을 벌이는 진노식과 이용배. 둘다 누가 더 잘못했어 할 거 없이 도찐개찐인데 그저 니 x가 더러워라면서 어느 한 사람에게 죄를 모조리 뒤집어 씌우려는 이 두 사람이 참으로 우습고도 가증스럽기까지 합니다. 





참으로 안타깝게도 이들에게서 15년 억울하게 희생된 김선우 아버지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은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자신에게 닥쳐온 위기를 모면할까 잔머리만 굴리는 시정잡배들만 남았을 뿐이죠. 차라리 이들이 15년 전 사건이 윤곽이 드러난 순간에 그 당시 자신들이 얼마나 죽을 죄를 저지렀는지 하늘에 계신 신에게라도 잘못을 빌었다면 덜 미웠을텐데. 하긴 뼛속까지 이기적이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누구 하나 치는 것은 일도 아닌 사람들이 잘못과 미안함이라는 단어를 알고나 있을까요. 그저 코너에 몰린 자기 자신만 불쌍하고 "왜 나만 갖고 그래."라면서 울부짖을 뿐이죠. 마치 동료들 뒤통수 치고도 뻔뻔하게 앵무새처럼 소리내는 그들처럼 말이죠. 


그런데 더 가관은 역시나 시청자들을 실망시키지 않는 이장일 검사님이십니다. 검찰청 내부를 넘어, 수많은 국민들에게 존경받는 '검사님' 지위를 이용해서 진노식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 씌우게 함은 물론, "왜 그 때 나를 쳤니."라고 물어보는 김선우의 질문에 끝까지 모르쇠잖아요. 특히나 그가 자신과 다를 바없는 범죄자에게 죄를 묻고 그의 죄를 낱낱이 밝히는 직접에 종사하고 있다는 자체가 황당할 뿐입니다. 15년 전 자신이 저리는 살인미수로 조사받고 감옥에 들어가도 시원치않을 사람이 도대체 누구의 죄를 묻고 그에 합당한 처벌을 내린다는 말입니까. 





허나 친구 선우를 죽이려고 했던 자신의 범죄 행위에 대한 죄책감은 15년 전에 안드로메다 행성으로 보내버린 이장일 검사님은 현재 자신이 지옥으로 떨어져도 용서받기 어려운 죄를 저지르고 있는지 잘 모르고 계시는 모양입니다. 오직 15년전 살인미수 사건이 들통나서 그간 진노식의 피묻은 돈받고 승승장구한 자신의 공든탑이 무너질까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입니다. 차라리 아버지를 위해서 모든 죄를 진노식에게 뒤집어 씌우려고 한 것은 아버지를 위한 자식의 마지막 효도라고 애써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그는 아버지에게 대놓고 "죽으세요."라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너를 위해서 유서쓰고 죽을까하는 아버지의 반어법 질문에 "그러세요."라고 방조하는 지경까지 도달했습니다. 


설마 이장일도 아버지가 자신을 위해서 죽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았고, 그냥 지금 자신에게 닥친 상황이 감당이 안된 멘붕상태에서 무심결에 나온 한마디일 수도 있지요. 그러나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기는 커녕, 어떻게하면 김선우가 놓은 덫에서 자기 혼자 살아나올 수 있을까 머리만 굴리는 이장일. 어쩌면 그는 김선우의 말대로 아버지를 위해서 선우의 뒤통수를 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 친 것이 아닐까하는 강한 의문을 품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장일은 정말 용서할 수 없는 천하의 호로자식인거죠. 검사가 되기 위해 선우를 내려 친것을, 아버지를 위한 효심으로 포장한 동정론으로 몰고가는 것이니까요. 


차라리 처음부터 선우에게만이라도 솔직했다면, 지금이라도 모든 사건을 선우에게 털어놓고, 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구했다면, 선우는 15년전 한없이 따스했던 그 품으로 장일을 힘껏 안아줬을 거에요. "그래 넌 그 때 춥고 외로웠어. 그래서 날 친거야." 하면서 말이죠. 


하지만 15년전과 반대로 자신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순간까지도 자신이 얼마나 잘못 살았는지 한번이라도 반성하기는 커녕, 사건을 기억하고 있는 선우와 15년전 진노식을 대신하여 선우 아버지를 죽인 아버지만 원망하는 이장일. 그래도 한 때는 아버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우의 뒤통수를 내려친 이장일이 안쓰러웠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건 양의 탈을 뒤집어쓴 음흉한 늑대의 이면을 보지 못한 착각인가 하는 생각도 드네요. 이장일을 안쓰럽게 바라보던 이들의 바람과는 달리 그는 자신이 저지른 15년 전 살인미수에 대해 인정하고 참회하기는 커녕, 용서를 구할 생각조차 하지 않으니까요. 


<적도의 남자>가 끝나고 바로 mbc에서 방영한 <황금어장-라디오스타>에서 김태원은 무려 10년 전 막말로 방송에서 퇴출당한 김구라를 두고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것은 (자신도) 용서받을 자격을 만드는 것이다. (김구라를) 용서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를 언급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김구라는 자신의 10년 전 잘못이 드러나는 순간, 즉각 인정했고, 국민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했고, 바로 모든 방송에서 하차했잖아요.


그러나 더더욱 슬픈 것은 김구라처럼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는 커녕, 드라마 속 인물이긴 하지만 이장일처럼 그 때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자신의 아버지 자살까지 방조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직까지도 잘 버티고 있다는 것이죠. 과연 자신이 얼마나 몹쓸 짓을 저질렀는지 알지도 못하고 되레 또다시 누군가의 뒤통수를 치려고 하는 이장일을 용서해야할까요. 중요한 건 무심결에 내뱉은 말이라고 해도, 결국은 죽겠다는 아버지를 말리기는 커녕 "그러세요." 라면서 방조한 이장일은 김구라가 아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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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도의 남자>에서 주인공 김선우(엄태웅 분)과 대적하는 이장일(이준혁 분)은 어려운 집안 환경을 극복하고 검사로서 성공하겠다는 야망은 강했지만 누군가에게 손가락질 받을 만한 나쁜 사람은 아니었어요. 자신이 어려울 때 도와준 친구 선우에게 닥친 억울한 아버지의 죽음을 위로하며, 훗날 그가 검사가 되면 선우 아버지 의문사를 해결해준다고 약속했으니까요. 


그러나 우연히 선우 아버지를 죽인 사람이 다름 아니라 자기 아버지였고, 아버지와 진노식 회장과의 피묻은 거래로 자신이 서울의 최고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는 충격적인 진실을 접한 장일. 진정서를 내려는 선우를 어떻게든 말려보려고 했지만, 결국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자 바위 주변에 놓여진 각목으로 선우의 뒤통수를 치고 기절한 그를 벼랑 끝으로 밀어넣습니다. 


그 뒤 2년 동안 식물인간 상태로 누워있던 선우는 의식은 회복했지만 시력은 잃어버리고 말았죠. 그럼에도 장일은 아무일 없었던 척, 오히려 선우와의 동거를 불편하게 생각합니다. 그 때만해도 약간의 죄의식이나 미안한 감정이 있는지는 몰라도, 혹시나 자신의 범행이 밝혀져 출세도 하기 전에 몰락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두려움이 가장 컸겠죠. 


하지만 선우는 장일을 포함 주위 사람들에게 말 한마디 없이 떠났고, 그 뒤 머릿 속에서 선우를 잊어버리는데 성공한 장일은 원하는 대로 사법고시를 패스하고, 수많은 시민들에게 존경받는 스타검사로 우뚝 서게 됩니다. 특히나 어려운환경에 처한 서민들의 억울함을 풀어주는데 적극 협조하면서 말이죠. 아마 이장일과 김선우와의 내막을 잘 모른 채, 이장일의 겉모습만 보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이장일은 실사판 배트맨이자, 슈퍼맨입니다. 


그러나 선량한 시민을 위한 정의의 사도에 가려진 이장일의 진짜 모습은 배트맨이 아니라, 배트맨의 강적 '조커'의 지령받고 움직이는 새끼 악마였습니다. 원래 태생부터가 악의 본능이 꿈틀거렸기에 예정된 수순대로 악마가 되어버렸는지는 몰라도 적어도 선우의 뒤통수를 치기 전까지 그는 성공하겠다는 의지는 강했지만 상식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꿈을 쟁취하고픈 인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아버지를 위해서든, 아님 그 속에 내포되어있는 출세의 욕심때문에 각목을 휘둘렸는지 정확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15년 전 벼랑 끝에서 선우의 뒤통수를 친 이후 부터 그는 용서하기 어려운 '배신의 아이콘'이 되어버립니다. 


<적도의 남자>에서 가장 악의 화신을 꼽으라면 진노식(김영철 분)입니다. 노식의 별장에서 허드렛일을 하던 장일 아버지는 그의 살인 사주 명령을 거절할 수 없어 결국 그의 손으로 선우 양부의 목숨을 끊고야 말았구요. 조선시대로 말하면 주인과 머슴의 관계 비슷하기에 피고용인 입장에서 고용인의 지시를 거부하기는 어렵지만, 선우 양부를 죽인 대신 아들 장일의 학비, 장학금 지급을 덥썩 받아들인 것도 그입니다. 그 당시에 장일 아버지는 자신이 얼마나 큰 죄를 저지르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노식에게 맞고 쓰러진 선우 양부를 보고 당장 달려와서 경찰에 신고해야하는거 아니나고 했던 장일 아버지니까요. 그러나 선우 양부를 죽인 죄책감도 잠시, 오히려 그는 15년이 넘은 후에 아버지 죽음과 얽힌 진실을 밝히려는 선우를 원망하고, 되레 15년 전 선우를 죽였어야한다고 울분을 토합니다. 선우 아버지를 죽인 것에 모자라, 그 아들은 선우를 식물인간, 실명에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이 밝혀지면 자기 아들 출세에 지장이 생길 까봐 그것만 걱정되는 것이지요. 


 

장일 부자도 처음에는 누군가를 배신하고 그 대가로 번듯한 자리 하나 꿰뚫고 싶은 생각은 없었을 거에요. 장일을 위해 기어코 선우의 뒤통수를 또 한번 내리친 수미(임정은 분)도 마찬가지였을거구요. 다만 그들은 누군가의 뒤통수만 치면 얻게될 풍성한 과일이 탐난거에요. 함께 있으면 쉽게 따먹을 수 없는 과일이지만 누군가를 짓밟고 악마의 유혹에 응하면 나 혼자 독식할 확률이 높거든요. 어찌되었던 장일 아버지는 선우 양부를 죽인 대가로, 장일은 입막음용으로 선우의 뒤통수를 친 대가로 15년동안 호화스러운 집에서 스타 검사로 떵떵거리며 호위호식 잘 살았으니까요. 


그러나 불행히도 친구의 뒤통수 쳐서 성공한 이는 <적도의 남자>라는 드라마 속 이장일 말고도 우리 현실 속에서도 많아요. 아니 오래전부터 나라를 팔아먹는 이, 그리고 독립 운동하는 척 하다가 '종교적 계시'니 '더 나은 조선을 위해서' 등등 궤변만을 앞세우며 변절한 이들이 광복 이후 제대로 된 처벌을 받기는 커녕, 그들의 후손들이 오히려 독립 운동을 위해 헌신한 분들의 후손들보다 잘 먹고 잘사는 경우를 너무나도 많이 보았으니까요. 

 

 

 


더 기가막힌 것은 15년 전 아버지의 살인을 감추기 위해 그에 버금가는 '살인미수'를 저지른 장일이 선량한 시민을 위하는 정의의 사도인척 가증스럽게 행동하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 아버지를 위해서 친구의 뒤통수를 쳤던 장일. 그의 배신이 이해가 가긴 해요. 허나 아버지 죽음과 둘러싼 정의를 찾겠다는 친구의 뒤통수나 치는 종족이 어찌 그 더러운 입으로 책임감과 신뢰, 그리고 선거관리위원회 홍보대사로 활약하며 유권자의 책임을  운운할 수 있겠습니까. 차라리 처음부터 노식처럼 대놓고 악마로 살던가, 마치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자신들의 모든 것을 내다버린 이들에게 동조하는 척 하다가 뒤통수나 치면서 마치 자신들은 정의의 수호자인척 명연기하는 이들이 (메인 앵커 자리 하사받으며) 판치는 세상. 이보다 더한 코미디는 없을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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