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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전망대

적도의 남자 김영철 엄태웅 친아버지라도 면죄부 받을 수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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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엄태웅의 대표작인 <부활>,<마왕>을 잇는 또하나의 복수극의 명작인 줄 알았습니다. 수백년이 지나도 복수극의 고전으로 각광받는 <몬테크리스토 백작>처럼 말이죠. 물론 <적도의 남자>는 악인들에 의해 억울하게 고통받은 주인공이 자신을 괴롭히던 이들을 자기가 당했던 그대로 복수하는 패턴을 보여주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닙니다. 결국 주인공 김선우가 최종적으로 겨냥하고 있는 강한 목표물은 하필이면 김선우라는 씨앗을 이 세상에 뿌린 진노식(김영철 분)입니다. 


첫 회 한 때 진노식이 경영하던 태국의 한 리조트에서 이장일(이준혁 분)이 노식에게 총귀를 겨누며 했던 말이 있었습니다. "선우가 회장님의 친아들이었으면 좋겠지요." 그 때 장일을 말리던 선우. 그 때 선우는 마치 그간에 품었던 원한과 분노를 모두 내려놓고 용서, 안타까움 등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이었습니다. 몇 초 안되는 짦은 시간이었지만, 그동안 김선우가 살아온 과정을 모두 압축하여 눈빛으로 드러낸 의미심장한 장면이었죠. 


그 때부터 이미 김선우의 친아버지는 진노식으로 밝혀졌는지도 몰라요. 그 이후에도 계속 선우의 친부가 노식이라는 강한 복선과 암시가 깔려있었구요. 다만 맛있는 것은 마지막에 먹는다는 최수미(임정은 분)처럼 이제서야 선우의 친아버지가 노식이라는 것이 확실해졌을 뿐이죠. 


처음부터 선우의 아버지가 노식이라는 것을 짐작하고는 있었고, 그래야 단순 복수를 넘어 인간의 사랑과 미움이 어디까지 갈까라는 다소 철학적이고 근원적인 문제를 다루는 <적도의 남자> 스토리가 흥미진진해진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선우의 친아버지가 진노식이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도 컸습니다. 현재 복수의 화신이 되어버린 선우이지만, 본바탕은 선한 선우을 낳아준 사람이 살아있는 악마 진노식이라고 밝혀지면 엄청난 충격을 받고 다시 눈이 멀지도 모를 선우이니까요. 


아마 진노식도 처음부터 잔악무도한 사람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도 처음에는 그의 아들 선우처럼 선한 피가 흐르고 있었겠죠. 하지만 가난한 집 장남으로 태어나 어릴 때 고통스러웠던 세월에 대한 보상으로 돈과 사람에 대한 집착이 오늘날 아들조차 자신의 아버지임을 부정하고픈 골리앗으로 굳어지게 한거죠. 


어떤 면에서 한 때 자신을 낭떠러지에 굴러 떨어트린 이들에게 자기가 당한 만큼 똑같이 복수하는 선우를 보고 그에게도 진노식의 피가 흐르고 있구나 싶어 놀란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간 선우가 노식, 이장일 부자에게 당한 것을 생각하면 아무 것도 아니죠. 그들이 15년 전 자신들의 범죄에 대해서 진심으로 뉘우치고 빌었으면 모를까. 그러기는 커녕 오히려 뻔뻔하게 "내가 그 때 선우도 죽였어야했어"라면서 되레 돌아온 선우만 원망하는 뼛속까지 악으로 받친 그들이니까요. 그들에게는 '용서'와 '자비'라는 단어도 사치입니다. 


결국 자식을 잘 키워보겠다는 빙자하에 15년 전 자신의 손으로 선우 양아버지를 죽여놓고도 참으로 떳떳하게 잘 살았던 장일 아버지는 자신과 아들의 과거 범죄가 드러나려고 하던 찰나 그 때 사건과 관련되어있는 노식과 수미 아버지에게 흉기를 휘두르고, 자살을 택합니다. 인간이 얼마나 추해질 수 있는지 몸소 보여주는 장일은 드디어 살인미수 혐의가 세상에 드러나고 검사직도 내놓고 설상가상 아버지까지 잃을 수도 있는 가장 최악의 벼랑 끝에 내몰려 있습니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그 부자들 손에 희생된 선우 부자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이 있었다면 그들의 끊임없는 추락에 약간이라도 안쓰러운 마음이 있었을텐데, 이미 용서의 한계를 넘어버린 이들이니까요. 


하지만 스스로들 미처버려 자멸을 택한 장일 부자와 달리,  진짜 선우가 무너뜨러야하는 골리앗 노식은 더이상 선우의 손으로 무너뜨릴 수가 없단 말이죠. 진노식을 친다는 것은 선우가 스스로 자신의 눈을 찌르는 것과 다름없으니까요. 


예상했던 결말이긴 하지만, 선우의 친아버지가 노식으로 밝혀진 것만큼 허망한 순간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제 막 노식을 향한 선우의 복수에 탄력이 붙었는데 "노식은 선우의 친아버지." 하면서 기어코 찬물을 끼얹고 말았으니까요. 허나 점점 복수를 위한 괴물이 되어가는 선우를 보면 그러면 안되겠지만 여기까지 멈추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습니다. 노식, 이장일 부자, 최수미 부녀는 결코 용서받아서는 안될 인물이지만, 혹시나 선우가 미쳐버리거나 다시 눈이 멀까봐, 그리고 그가 이번 생에서 저지른 복수로 영영 헤어나올 수 없는 지옥으로 빠져버릴까봐 그것만 걱정이었던거죠. 


그러나 여전히 자기들이 뭘 잘못했는지 인정하고 반성하기는 커녕, 오직 자신들이 선우에 의해 곤경에 처한 것만 원망하고, 자신들의 범죄를 은폐하기 위해 눈깜짝도 안하고 또다른 범죄를 저지르는 그들을 무작정 '용서'하는 것 만큼 더 어리석은 일도 없을 듯 합니다. 아니 처음부터 선우에게 자신들의 잘못을 진심으로 무릎꿇고 사과했다면 선우는 진작에 그들을 용서해주었을 겁니다. 왜나 그들은 보통 사람들과 달리 춥고 외롭고 지독하게 불쌍한 중생이니까요. 


이제 다음주 종영을 목표로, 2회 분만 남겨둔 <적도의 남자>. 아마 김인영 작가의 전작 <태양의 여자>나 지금 <적도의 남자>가 흘려가는 분위기를 보면 복수를 끝내고 용서와 화해를 그릴 가능성도 높아보입니다. 극한으로 치닫는 사람 간의 증오와 분노를 다루면서 원하지 않는 운명에 어쩔 수 없이 순응해야하는 나약한 인간들의 초상화를 그리고픈 작가의 의도는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도저히 인간으로서는 거역하기 어려운 운명때문에 그간 자신을 가장 괴롭히던 친아버지를 용서해야하는 선우. 그것 또한 시청자들이 거역할 수 없는 <적도의 남자>의 예정된 운명이긴 하겠지요. 


하지만 한 때 선우의 등에 칼을 꽃은 인간들이 반성의 기미도 없는데 '휴머니즘'과 '박애주의'를 운운하면서 피해자만 용서하는 어설픈 반쪽 화해는 지양했으면 합니다. 16일 MBC <라디오스타>에서 김태원이 김구라를 두고 언급한 것처럼 누군가를 용서하는 것은 자신도 용서받을 자격이 생기기에 용서해야한다는 말이 맞긴 합니다. 허나 용서를 받는 위치에 있는 사람도 무작정 용서만을 바라기보다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기본적인 자격. 즉 자신의 행위에 대한 반성과 참회가 있어야하지 않을까요. 


지금으로서 노식은 단순히 선우 친부라는 이유로 면죄부를 받을 수 있는 자격조차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기어코 자신의 친아버지 때문에 어설프게 운명의 끈을 놓아야하는 선우가 안타까운 것입니다. 만약 선우가 끝내 아버지를 용서하겠다는 설정으로 그리는 것이 김인영 작가의 의도라면 그가 그동안 자신의 잘못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눈물을 흘렸는지 진심으로 반성하고 뉘우치는 진노식의 극적인 변화와 횡령, 뇌물에 대해서 제대로된 죗값을 받는 모습을 보여줘야할 듯 하네요. 하지만 몇몇 이들의 예측처럼 선우가 자신을 낳아준 아버지란 이유로 진노식을 진정으로 용서할지는 마지막에 가서 뚜껑을 열어봐야 알 듯 하네요. 과연 <적도의 남자>는 어떠한 마무리를 지을 지 사뭇 궁금해지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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