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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전망대

자기 복제도 실패한 패션왕 기대작에서 배우가 아까운 졸작으로 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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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껑을 열어 맛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패션왕>은 수많은 드라마 애청자를 두근거리게하는 2012년 상반기 최고 기대작이었습니다. <사랑을 그대 품안에>, <별은 내 가슴에>로 트렌디 드라마 시대 문을 여시고, 2004년 <발리에서 생긴 일>로 트렌디 드라마의 정점을 찍었던 이선미, 김기호 콤비 작품에 요즘 충무로 핫 피플인 유아인과 이제훈의 정면 대결. 다른 건 몰라도 트렌디 드라마 여주인공 필수요건 중 하나인 비주얼만큼은 밪춰주는 세경씨. 인기 아이돌 소녀시대 유리의 본격적 연기 데뷔. 이것만 해도 <패션왕>은 충분히 봐줄 만한 가치가 있었으니까요. 


그렇게 오래 뜸을 들인 뒤, 조심스레 뚜껑을 열고 맛을 본 <패션왕>은 우리 기대와는 너무나도 다른 맹물 맛에 실망하신 분이 적잖았습니다. 처음에는 <별은 내 가슴에> 대본을 쓴 작가의 작품 아니라고 할까봐 시대만 21c로 바뀐 <별은 내 가슴에>를 보는 것 같다는 볼멘소리가 튀어 나왔습니다. 하긴 <별은 내 가슴에> 여주인공 연아(고 최진실 분)도 이가영의 탈을 쓰고 있는 세경씨와 똑같이 고아 출신에 가진 것은 잘난 남자 여럿 울리는 미모와 남다른 감각을 갖춘 패션 디자이너였잖아요. 


하지만 <별은 내 가슴에> 연아는 당시 이선미 작가 손에서 만들어진 전형적인 '캔디'였을 뿐이지만 적어도 보면서 짜증을 불러일으키는 인물은 아니었어요. 차인표, 안재욱 사이를 연신 맴돌면서 여자들 뒷목 잡는 어장관리도 원래 심성이 곱고, 불쌍해보이기까지하는 연아만큼은 모든 행위가 다 용서되었으니까요. 


그러나 강산이 무려 2번이나 변해서 그런건지, 21c에 다시 김기호, 이선미 월드 여주인공이 우리 앞에 짠하고 나타난  패션 디자이너는 과거 연아가 받았던 동정은 커녕, 어장관리의 나쁜 예로 보면 볼 수록 시청자들의 짜증 지수를 솟구치게하는 일등 공신이 되어버립니다. 20년 전 연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세계 최고 디자이너와 버금가는 실력을 갖춘 가영이라고하나, 이상하게 날이 갈 수록 가영이가 보여주는 모습은 "제가 뭘요." "우리 사장님에게 왜 그러세요." 입니다. 아,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 정재혁 이사 꼬셔놓고 이제와서 전 강영걸 사장님을 사랑해요 하면서 홀라당 재혁 곁을 떠나다가, 다시 영걸이는 널 버렸어하는 재혁의 한 마디에 언제 그랬나는듯이 다시 재혁의 품에 안기는 팜므파탈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는 업적도 남겼군요. 





그런데 <패션왕>. <별은 내 가슴에> 뿐만 아니라 트렌디 드라마 신기원을 열었던 <발리에서 생긴 일> 작가들의 작품이라 그런지, 시간이 지날 수록 <발리에서 생긴 일>을 다시 보는 기분입니다. 아니 패션업에 종사하는 등장인물들만 차이가 있을 뿐, 이건 영락없는 <발리에서 생긴 일>입니다. 특히나 정재혁 역을 맡은 이제훈은 생김새도 <발리..>주인공 조인성을 연상시키는데, 정재혁이란 이름과 캐릭터까지 완전 조인성 정재민 도플갱어라고 불러도 무방할 수준입니다. 


물론 작가가 자신에게 저작권이 있는 작품 좀 활용하겠다는데 딴죽을 걸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발리..>에서야말로 이김 콤비가 남긴 가장 역사적인 작품인데, "우리 <발리..>만든 작가야."라고 자랑하고픈 마음도 충분히 이해하니까요. 허나 <패션왕>의 최대 문제는 <별은 내 가슴에>, <발리에서 생긴 일> 복제가 아니라, 전작의 수준도 미치지 못하는 개연성없고 설득력없는 사각관계의 치정만 남았다는 것이죠. 


워낙 살기 어렵다보니 이성보다 욕망이 앞서 남의 소중한 가치도 서스럼없이 빼앗는 인물, 도대체 자기가 누굴 좋아하는 지 스스로 인지하지 못해 자신의 이익에 맞춰 이 남자 저 남자 만나고 다니는 여자. 모든 것을 다 갖췄음에도 가질 수 없는 사랑과 욕망에 눈이 멀어 스스로 자멸하고마는 남자. <패션왕> 인물들의 기본적인 성격이 아예 이해가 안되는 것은 아니에요. 이미 <발리...>를 통해 대중들에게 친숙한 캐릭터잖아요. 


차라리 8년 전 이수정, 강인욱, 정재민처럼 끝까지 자신들의 욕망에 충실했다면, 차라리 욕은 덜 먹었을 지도 몰라요. 하지만 온갖 여우같은 모습으로 재혁에게 꼬리칠 땐 언제고 이제와서 순진한 척 눈물을 흘리는 가영씨. 그리고 그 가영에게 홀려 정재민보다 더 찌질해보이는 호구킹 정재혁. 하다못해 <발리...>강인욱은 싸가지는 없지만 추하기는 커녕 멋있기라도 했지, 8년 뒤 <패션왕>에서는 어떠한 역할을 맡아도 생동감 넘치게 찰지게 소화하는 배우 유아인이 가진 매력까지 감퇴시켜버리는 강영걸. 처음부터 끝까지 시청자들은 공감할 수 없는 '사랑 놀이'만 하다가 결국 마지막 장면에서도 뜬금없는 설정으로 영걸을 죽여버린 <패션왕>을 어찌해야할까요. 아 tv 속 신데렐라를 통해서 대리만족 느끼면서 살아가야하는 서민 주제에 재벌에게 대들면 안된다는 진정한 현실 인식과 역시 여자는 희쁘면 돼~를 영걸의 죽음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작가의 친절한 가르침에 비롯된 치기일까요? 


작가가 이번 <패션왕>을 통해 궁극적으로 무엇을 말하고 싶나는 이제 더이상 알고 싶지도 않습니다. 시간이 지날 수록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겠고, 시놉시스와 원대본에 낚여버린듯한 배우들이 아까운 드라마를 2012년에도 만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에, 엄청난 결말로 받아버린 충격 또한 상당합니다. 


어찌되었든 2012년 <패션왕>. <발리...>이후 드라마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작품임은 분명합니다. 드라마에서 흥행될 요소는 모두 다 장착했는데, 정작 짜깁기도 제대로 못하다가 결말까지도 엉망인 이런 드라마를 만들면 안된다는 베리베리 나쁜 예로 말입니다. 어차피 뭘 해도 욕먹을 것 같은 결말. 이럴 바엔 차라리 <발리...>처럼 정재혁이 직접 강영걸과 가영씨를 총으로 쏴 죽이고, 너 죽고 나 죽자자가 나았을 뻔 했어요. 진심으로요. 


한 줄 요약: 서민은 죽어도 재벌을 이기지 못한다. 여자는 얼굴만 이쁘면 다 용서된다. 그리고 걸오, 완득이 그리고 승민이 다 어디로 갔어?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했고, 저작권은 해당 방송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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