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영화계의 거장 알렉산더 소쿠로프의 <몰로흐-히틀러>, <타우르스-레닌>, <더 선-히로히토>을 이은 권력4부작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파우스트>. 요한 볼프강 본 괴테의 작품 중에서도 최고의 백미로 꼽히는 <파우스트>를 원작으로 하였다.
그런데 소쿠포르의 <파우스트>는 우리가 알던 <파우스트>와 영 거리가 멀다. 주인공 파우스트가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버리는 기본 틀은 같은데, 더 많은 지식을 얻기 위해 검은 유혹에 이끌린 괴테의 <파우스트>와 달리, 소쿠로프의 <파우스트>는 절세미녀 마가레테와의 하룻밤을 위해 영혼을 판다.
원작과 마찬가지로 법학, 의학, 철학, 신학까지 모든 분야를 꿰찬 박사 파우스트(요하네스 자일러 분)의 지상 최대 목표는 진리추구다. 인간의 근원, 심지어 죽음 이후의 삶까지 파헤치기 위해 인체까지 해부하지만 남은 것은 지독한 생활고뿐이다. 오랜 세월 연구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 삶과 둘러싼 진리에 방황하고 있던 파우스트는 돈을 마련하기 위해 찾은 전당포에서 대금업자 뮐러를 만나게 한다. 생김새부터 남들과 달랐던 뮐러는 고상함에 숨겨진 파우스트의 욕망을 한 꺼풀씩 서서히 벗겨낸다. 오직 공부밖에 몰랐던 파우스트는 뮐러를 따라간 빨래터에서 마가레테에 첫눈에 반한다. 아니 마가레테를 만난 이후, 온통 파우스트의 머릿속엔 그녀 생각뿐이다.
어떻게 하면 마가레테와 사랑을 나눌 수 있을까 고심하던 파우스트는 뮐러의 계략으로 한 술집에서 마가레테의 오빠인 발렌틴을 우발적으로 살해한다. 그럼에도 불구 파우스트는 마가레테와 가까워질 궁리만 한다.
호시탐탐 파우스트의 맑은 영혼을 노리는 뮐러가 이 좋은 기회를 놓칠 리 없다. 결국 발렌틴 친구에 의해 파우스트가 오빠를 죽인 범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 마가레테는 파우스트를 멀리하고, 낙담한 파우스트는 마가레테와의 하룻밤을 보내게 해줄 테니 자신에게 영혼을 달라는 뮐러의 제안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혈서로 응한다.
원래 늦바람이 무섭다고, 평생 공부만 한 아저씨가 뒤늦게 사랑에 빠지니 도무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다. 마가레테를 향한 파우스트의 강렬한 욕망은, 그에게 가장 중요했던 영혼까지 내놓게 한다. 평생을 진리 탐구에 뜻을 두었던 파우스트는 먹고 살기 위해 평생을 어둠 속에 살고 있는 아버지를 좋아하지 않는다. 파우스트의 아버지 또한 자기 앞가림조차 못하면서 영혼의 순결함 어쩌고 하면서 고고한 척 하는 아들이 마음에 들 리가 없다.
그런데 그 파우스트가 마가레테라는 절세미녀의 아름다움에 완전히 매료되니,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버린 다음 일은 전혀 생각지 않는다. 그저 마가레테와 보내는 하룻밤만 원할 뿐이다. 그리고 약속했던 대로 그녀와 하룻밤을 지새우니 그녀와 함께 더 있고 싶어진다. 하지만 이미 파우스트는 뮐러에게 영혼을 팔아버리겠다고 약조한지 오래요, 그는 빼도 박도 못하게 평생 뮐러의 영혼이 되어야 한다.
궁극적인 진리 탐구나, 부의 축적이 아닌 오직 사랑에 심취해 악마에게 영혼을 내건 파우스트는, 곧 닥쳐올 불행은 생각지도 못하고 즉흥적인 욕망에 빠져버리는 현대인의 자화상과 많이 닮았다.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는 진정한 ‘앎’에 목이 마른 지식인보다 사랑에 애가 타는 남자 이야기가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올 수도 있다.
덧없는 욕망으로 인해 스스로를 파괴하는 세속적인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고자하는 소쿠로프 감독의 새로운 시도. 그리고 광고 문구대로 결코 잊지 못할 아름답고 매혹적인 이미지들의 향연과 파우스트와 마가레테가 만나는 씬에서 펼쳐지는 황홀한 분위기는 보는 이들의 눈을 매료시킨다. 이 때문에 <파우스트>는 작년 제68회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소쿠로프 특유의 미학과 철학. 그리고 134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이 압박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하지만 한 폭의 명화를 보는 것 같은 소쿠르프의 <파우스트>는 참으로 아름답고, 환상적인 21세기 새로운 고전의 탄생을 알린다. 12월 6일 개봉. 다만, 우리나라는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 사자상까지 수상한 이 영화를 서울에서 그것도 이화여대 아트 하우스 모모 한 곳에서만 개봉하는 걸로 ㅡ.,ㅡ
한 줄 평: 소쿠로프 미학에 재해석된, 욕망에 충실한 21세기의 새로운 고전 탄생 ★★★★☆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공감하시면 손가락을 꾸욱 눌러주세요^^
제 블로그가 마음에 드시면 구독+을 눌러주세요.
'영화전망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원데이. 하루를 사랑해도 후회 없이 뜨겁게 (9) | 2012.12.15 |
---|---|
마린. 소중한 이의 부재를 함께 위로하는 남은 자들의 새로운 시작 (16) | 2012.12.11 |
신의소녀들. 개인의 자유의지를 짓밟는 맹목적 집단 폭력의 심각성 (6) | 2012.12.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