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성 스위딘 날로 불리는 7월 15일. 우연히 대학 졸업식에서 만난 엠마(앤 헤서웨이 분)과 덱스터(짐 스터게스 분)은 그 날 이후 세상 어디에도 없는 절친한 친구 사이가 되자고 약속한다. 하지만 작가를 꿈꾸는 목표가 확고했던 순수한 엠마와 부잣집 아들로 자라, 세상을 즐기고픈 덱스터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정반대의 길을 걷게 된다.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두 청춘에게 7월 15일은 엠마와 덱스터가 서로의 진심을 확인할 수 있는 특별한 하루다. 그러나 매년 다가오는 7월 15일 외에도 함께 소중한 시간을 보내야하는 특별한 운명이라는 것을 확인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과 용기가 필요했다.
두 사람의 사랑을 확인하는 달콤한 나날들도 잠시. 긴 시간동안 유독 서로에게만 진심을 드러낼 용기가 없었던 두 사람을 빙빙 돌려놨던 조물주는 두 사람이 함께 하는 행복한 시간을 그리 오래 주지 않는다.
엄밀히 말하면 <원데이>는 영화를 보러온 관객이 원하는 답을 주지 않는다. 따라서 포스터만 보고 선남선녀의 달콤하고도 행복한 로맨스라고 가볍게 여기고 극장을 찾아간 관객이라면, 크게 실망할 수도, 놀랄 수도 있다. 충격적 장면 전환을 위해 내놓은 반전이 의아스럽고 뜬금없기까지 다가오는 것도 없지 않다. 그러나 눈 뜬 장님처럼 바로 코앞에 있는 인연도 알아보지 못하는 게 우리가 살고 있는 인생이기도 하다.
다행히 영화는 따스한 멜로를 기대했는데, 예상치 못한 반전에 놀란 관객들이 실망감에 마냥 비통에 젖게 하지 않는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이 남긴 명언처럼 영화는 20년 이상 보이지 않는 쇠슬 고리로 단단히 얽힌 두 남녀가 서서히 사랑이 싹트는 과정을 멀리서 혹은 가까이서 차분히 응시한다.
그래서 관객들은 비극을 향해 달려 나가면서도, 예상치 못한 이별의 후유증을 묵묵히 견디는 남은 자의 추억을 통해 매년 다가오는 7월 15일을 살아가는 일상과 두 사람이 처음 만났던 찬란했던 1988년 7월 15일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을 오버랩하며 복받쳐 오는 슬픔을 벅찬 행복으로 승화시킨다.
다른 사람을 품고 있음에도, 자신들 마음속의 진정한 사랑이 서로를 향하고 있다는 모르는 두 남녀가 유일하게 마음을 열 수 있는, 특별한 하루를 연이어 보여주며 인간과 사랑의 흥망성쇠를 자연스럽게 풀어내는 스토리가 일품이다. 감칠나면서도 기발한 대사처리 때문에 감독보다 시나리오 작가가 더 궁금했던 영화. 현재 파파라치가 찍은 낯 뜨거운 사진 때문에 곤경에 처한 앤 해서웨이는 알맹이 큰 범생이 안경을 써도 사랑스럽고, 짐 스터게스는 나이가 좀 들어 보일 때가 가장 gorgeous하다.
역시 사랑도 그렇고 인생의 모든 이치란, 지금 살고 있는 현재와 감정에 좀 더 솔직하고 충실해져야 앞으로 후회를 덜 할 것 같다. 그 결과가 좋던 나쁘던 간에 말이다. 10초 후 벌어질 일도 모르는 게 사람 일인데, 어차피 내일 일은 내일 가봐야 아는 것 아닌가. 12월 13일 개봉.
한 줄 평: 사랑과 우정사이에서 오락가락. 하루를 사랑해도 후회 없이 솔직하게, 자신 있게. ★★★★
추천 대상자: 일본 소설 <냉정과 열정사이>를 인상 깊게 본 분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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