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빗:뜻밖의 여정.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때로는 무모한 모험이 필요하다.

피터 잭슨의 신작 <호빗> 시리즈는 사실 잘해야 '본전'이다. 피터 잭슨은 2001년 21세기 최고의 판타지 걸작 <반지의 제왕> 삼부작을 내놨고, <반지의 제왕> 삼부작은 동시대 누구도 넘을 수 없는 명작 중의 명작으로 평가받는다. 

그런데 <반지의 제왕> 원작자 J.R.R 톨킨이 어린이들을 위해 쓴 동화. 그것도 300페이지 안팎에 불과한 <호빗>을 피터 잭슨은 <반지의 제왕> 과 똑같은 삼부작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한다. 무려 첫 번째 편의 러닝타임이 2시간 50분. <반지의 제왕> 삼부작 러닝타임들과 맞먹을 정도다. 영화 <반지의 제왕>이 소설을 스크린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압축하는 데 애를 먹었다면, <호빗>은 늘이는 데 더 힘이 들 법한 케이스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보다 10년 늦게 만들어지긴 했지만, <호빗>은 <반지의 제왕> 프리퀄 격이다. <호빗>은 <반지의 제왕>의 프로도(일라우저 우드) 삼촌 빌보 배긴스(마틴 프리먼 분)이 어떻게 '절대 반지'를 얻게되었는 지 여정을 그린 작품이다. 위기에 빠진 중간계를 구해야하는 운명이기에 시종일관 심각했던 프로도와 달리 "이 여정을 하게 되면 너의 인생은 달라져있을거야."라는 마법사 간달프(이안 멕켈린 분)의 말에 꾀여 난쟁이 족과 구태여 안해도 될 모험을 떠나게된 빌보 배긴스는 예고했던대로 유머러스하고 밝은 성격이다. (물론 빌보 배긴스는 간달프 할아버지와 함께 모험을 떠날 타고난 운명이긴 하다만!)

하지만 프로도보다 한층 유쾌한 성격의 소유자 빌보의 등장에도 불구, <호빗: 뜻밖의 여정>의 첫 시작은 지루함과 하품으로 문을 연다. 나이가 든 빌보가 프로도에게 자신의 옛 모험에 대한 글을 남기는 장면을 시작으로, 왜 난쟁이 족들이 왕국을 뺏기게 되었는지, 그리고 난쟁이들이 왕국을 다시 찾아나서는 여정에 빌보 배긴스가 합류하게 되는 과정을 그려내는데, 앞으로 2번 남은 <호빗> 시리즈를 위해서라면 꼭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지만, 솔직히 지루하게 다가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다행히 이 지루한 1시간만 견디고 나면, 관객들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곧 <호빗>만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물론 스토리나 주요 인물 구성 면에서 판타지 포함 영화계 사상 최고 드림팀으로 평가받는(아르곤,,레골라스...등등등) 전작 <반지의 제왕> 보다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10년의 시간 동안 유일하게 이룬 업적 그래픽과 영상 기술의 진화는 관객들의 시각적 쾌감을 충분히 만족시킨다. 

만약 <반지의 제왕>만 아니었다면, <호빗: 뜻밖의 여정>은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판타지 영화로 호평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호빗>은 단순히 <반지의 제왕> 프리퀄과 피터 잭슨 감독을 넘어서, 3부작이 끝날 때까지 <반지의 제왕>과 떼레야 뗄 수 없는 긴밀한 관계다. <호빗>이 방영하기 전, 피터 잭슨은 자신의 영화에 많은 기대감을 가진 전세계 팬들에게 <호빗>은 <반지의 제왕>과는 달리 가벼운 판타지라고 해도 이미 <반지의 제왕>에 맞춰진 관객들은 무의식적으로 <호빗>에게 <반지의 제왕> 그 이상을 기대하기 마련이다. 

피터 잭슨 감독이 그걸 모를리가 없다. 그럴싸할 판타지 작품을 새로 내놓아도 언제나 <반지의 제왕>과 비교당하며 평가절하 당할 확률이 유력한 <호빗>의 운명을 말이다. 21세기 판타지 영화의 신화 <반지의 제왕>을 만든 천재 감독으로도 남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2000년대를 빛낸 세기의 명감독으로만 남기보다 <반지의 제왕>과 비슷하면서도 또 전혀 다른 <호빗>으로 새로운 모험을 떠난다. 

역시나 <호빗>에 대한 관객들의 평가는 그리 썩 좋지 못하다. 하지만 아직 <호빗>에 대해서 실망하긴 이르다. 아직 본격적인 모험이 시작하기 직전을 다룬 1편이 다소 지루하고 결말 부분에서 진중권이 그리도 강조하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나오는 오류가 범해지기도 했다. (그래도 <호빗>은 모 SF 영화와 달리 빌보 포함 주요 인물들이 자기 힘으로 적과 싸우려는 의지라도 보여줬기 때문에 다행인건가?)

그러나 전작 <반지의 제왕>과 비교하면 아쉬운 점이 한두가지가 아닐 지 몰라도, 그럼에도 <호빗>의 다음 편이 무지 기다려진다. 다음 편이 개봉하려면 1년 이상을 기다려야함에도 불구, <반지의 제왕>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관객들은 벌써 1년 후 스케줄이 제대로 저당잡혔다. 만약 피터 잭슨이 <호빗>의 실패로 잃을 무언가를 두려워하며 빌보 배긴스처럼 엄마가 남겨준 그릇지키는데만 열중했다면, <호빗>처럼 2010년대 지금 극장에서 3시간 남짓 그럭저럭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신작을 볼 수 있는 경험이라도 해봤을까. 

암담한 현실에 그럭저럭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면서, 그거라도 제대로 지키고자하는 자세도 필요하겠지만, 때로는 두려움을 딛고 우리의 안락한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새로우면서도 무모한 도전이 필요하다. 왜 굳이 고생을 사서할까 비웃을 지 몰라도, 그게 바로 인류 발전의 시작이고 원동력이다.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를 살아가고자 함이라면 말이다. 지키기는데만 급급한 기존 세력과 맞서서 새로운 세상을 열려는 도전 정신이 퇴색되는 시대. 전편과 비교하면 약간 미흡하게도 느껴질 수 있는 <호빗>의 뜻밖의 여정이 반갑게 다가오는 이유다. 

한 줄 평: 다음 편이 기다려지는, 약간 미흡한 여정의 첫 시작 ★★★★

놓치지 말아야할 자질구레 포인트: 60년 전과 비교해 탱탱한 피부를 자랑하는 스미골(골룸)과 달리 어찌 60년 전이 더 나이 들어보이는 간달프 할아버지........항간에는 호빗과의 여정이 끝나고 60년동안 젊어지는 마법만 연구하셨다는 소문이 자자...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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