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겨울 바람이 분다 조인성. 해피엔딩 간절케하는 눈물겨운 송혜교 사랑법

오수(조인성 분)이 가짜 오빠 행세하면서 오영(송혜교 분)에게 접근한 건 순전히 78억 돈 때문이다. 살아야할 이유는 없었지만, 그럼에도 살고 싶었던 오수는 살기 위해 오영이 필요했다. 그런데 죽기 위해 지하철 선로 아래로 뛰어 내리려는 오영을 말리는 순간, 오수는 처음으로 오영이란 여자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자신의 목숨을 구제해줄 수 있는 잠시 스쳐가는 물주가 아닌, 그녀를 위해 기꺼이 목숨까지 내놓을 수 있을 정도로 사랑하는 사람으로 말이다. 

SBS <그 겨울, 바람이 분다>(이하 <그 겨울>) 원작에서도 그랬듯이, 돈 때문에 여주인공에게 접근한 남주인공은 나쁜 놈이다. 제 아무리 배우 조인성의 빛나는 아우라로 애써 좋게 포장한다한들 오수는 자기 혼자 살자고 한 때 사랑하던 여자까지 죽음으로 내몰게하는 악질 중의 악질이다. 그러던 오수가 완전히 변했다. 자기밖에 모르는 나쁜 남자에서 오영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건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로. 

"내가 진짜 너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은 바로 너야."

오영을 진심으로 사랑하니, 오수는 진심으로 오영이 눈을 뜨길 바란다. 예정대로 오영에게 78억원 못받아 조무철에게 칼 맞아 죽는다고 한들, 그래도 오수는 괜찮다. 뇌종양을 앓고 있던 오영이 다시 건강해질 수만 있다면. 78억원이 누구네 집 개 이름도 아니고, 그 어마머마한 돈에 자신의 목숨이 달려있는데 제 아무리 애틋한 사랑을 한다한들, 자신의 생명줄까지 포기하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오영은 오수에게 광기어린 집착을 보이는 진소라(서효림 분)의 짜증스러운 폭탄 고백을 듣기 전까지, 오수를 정말로 자신의 친오빠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과 함께 했던 오수가 자신의 친오빠가 아니라는 말을 들은 오영은 예상대로 분노한다. 믿었던 오수마저!!!

만일 오수가 오직 자신밖에 몰랐던 쓰레기 같은 인생이었다면, 진소라를 따라 함께 한국을 떠나고도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오수는 진소라의 경고에도 불구, 그녀가 원하는 대로 공항에 나가주지 않았다. 끝까지 오영을 지키려고 했다. 설령 오영이 모든 사실을 알아도 좋다. 오영이 자신에게 차가운 멸시와 냉소를 보낸다해도, 오수는 오영 곁에 있고자 한다. 자신에게 살아갈 시간이 허락된 만큼이라도 말이다. 

하지만 오수는 오영을 목숨보다도 사랑하면서도, 그녀를 소유하려고 하지 않는다. 오영을 끔찍하게 사랑하는 새엄마로서 자신의 존재를 완벽히 증명하기 위해, 쉽게 나을 수 있었던 오영의 눈을 방치해놓고 시각장애인으로 집안에만 가두려고 했던 왕비서(배종옥 분)의 집착과, 오수에게 제대로 거절당했음에도 여전히 '사랑'이란  미명 하에 오수를 옭아매려는 진소라의 싸이코 행각과는 차원이 다르다. 

오히려 오수는 오영에게 그릇된 애정을 보여주는 왕비서와 달리 오영을 위해 죽음까지 각오하고 있는 인물이다. 물론 오영을 두고 황천길로 발걸음을 떼기가 쉽지 않다. 거기에다가 오수는 그간 살기 위해 악착같이 몸부림 치던 전례까지 있다. 오수 뿐만이 아니라 오영처럼 매일 죽음만 생각하더라도, 막상 죽음의 순간이 다가오면 그 누구나 두렵다. 

그러나 오수는 오직 오영을 위해 죽을 수도 있는 운명까지 덤덤이 받아들인다. 그리고 행여나 오영이 건강해지고 시력을 회복해서 앞이 보이는 그 날을 위해, 오수는 오영과 자신만이 알았던 비밀의 방에 자신의 사진이 아닌, 진짜 오영 오빠 오수의 사진을 붙인다. 

그러고보니, 오수는 오영에게 너무나도 예쁜  너를 보여주고 싶다는 소리는 했어도, 한번도 자신의 (잘생긴) 얼굴을 보여주고 싶다는 소리를 안했다. 차가운 바람에 풍경이 흔들리면, 오빠를 생각하라고 오영에게 각인시키긴 했지만, 그건 오수 자신이 아닌, 죽은 오영 친오빠 오수로서의 흔적을 만들어주려는 것 같이 보일 정도다. 

곧 있으면 오영 곁을 떠날 운명이기에, 애써 오영과 거리감을 두려고 하지만, 사랑에 벅차오른 사람의 가슴을 스스로가 통제하기란 어렵다. 희주가 하늘나라로 떠난 이후, 사랑이란 인간들이 만들어낸 한낱 장난이라고 믿었던 오수가 그 '사랑' 때문에 오영의 곁을 떠나지 못하고 빙빙 오영의 곁만 맴돌고 있다. 그 애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아직까지 동생이었던 오영의 입술에 살포시 입을 맞추기도 했다. 근친상간(?)과 위험한 관계를 아슬아슬 오가는 오수의 키스. 허나 이제 서로를 보고 있어도, 솔직한 자신들의 마음을 차마 드러내지 못하고 자꾸만 어긋나는 오수와 오영의 힘겨운 사랑에 완벽히 빙의된 시청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노희경 작가이시여. 제발 오수와 오영에게 해피엔딩을 허하소서!"

뻘소리) <그 겨울>에는 유독 클로즈업 샷이 많다. 캐릭터의 감정선을 보여주는 데 있어 클로즈업같이 좋은 샷도 없지만, <그 겨울>처럼 대놓은(?) 클로즈업은 관객 입장에서 자칫 부담스럽고 숨막혀 보이는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없다. 하지만 <그 겨울> 김규태 감독의 연출이 워낙 훌륭할 뿐더러, 조인성, 송혜교의 완벽한 외모, 그리고 그 극강 미모까지 잊게 하는 두 배우의 훌륭한 감정선이 클로즈업의 미학을 빛나게 하는 것 같다. 

아무쪼록 <그 겨울>을 통해 미장센에 대해서도 많이 배우고 있고, 단순히 이 드라마로 연출을 공부하겠다 식의 학습적 접근만이 아닌 <그 겨울> 자체에 홀라당 빠져버렸다. 노희경 작가의 특유의 매력이 반감되었고, 등장 인물들의 감정이 과잉되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그 겨울>이 좋다. 평소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던 조인성, 송혜교 팬이 되어버릴 정도로 말이다. 하하하하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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