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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전망대

꽃보다 할배. 복불복 넘은 이서진의 고생과 편집의 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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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꽃보다 할배> 메인 PD 나영석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단연 <1박2일>, 복불복이다. 나PD를 MBC <무한도전> 김태호PD와 더불어,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구가하는 예능 PD로 등극시킨 KBS <1박2일>, 그리고 <1박2일>을 빛낸 감초 ‘복불복’은 그의 PD 인생에 있어서 떼래야 뗄 수 없는 존재처럼 보였다. 


하지만 <꽃보다 할배>가 방영되자마자, 나PD는 <1박2일>에 이은 또 하나의 자신의 대표작을 채워나감과 동시에, <1박2일>보다 더 스펙터클하고도 폭넓은 여행 버라이어티의 영역을 새롭게 개척해나가고 있었다. 복불복과 게임 없이 말이다. 







<꽃보다 할배>는 출연진들이 뭘 요구할 때마다, “안됩니다.”, “땡”을 외치던 야박한 나PD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이례적으로 할배 출연진들의 연세를 존중해 술까지 허용하는 <꽃보다 할배>에서 나PD는 되도록 할배들의 요구를 다 들어주는 지극히 착한 제작진이다. 대신, <꽃보다 할배>의 젊은(?) 짐꾼 ‘서지니’ 이서진만 정조준 하는 나PD는, 이서진과의 사이에서 ‘톰과 제리’를 보는 것 같은 물고 뜯기는 관계를 구축해 나간다. 





70세가 넘지 않으면, 어른이 아니라 아이라는 <꽃보다 할배>만의 세계에 있어서, 불혹을 훌쩍 넘겨버린 적지 않은 나이를 가진 이서진은 아기와 다름없다. 어르신들에게 차마 무거운 짐을 들게 할 수 없으니, 할배들의 몫까지 척척 옮겨주며, 유창한 영어실력을 앞세워 가이드 역할까지 충실히 해내는 이서진은 ‘만능 짐꾼’임과 동시에, 배낭여행이 익숙지 않을 법한 할배들의 ‘지니’다. 


<1박2일> 같았으면 복불복을 통해 게임에서 진 누군가에게 전가할 궂은 일이, <꽃보다 할배>에서는 처음부터 이서진의 몫으로 배정되었다. 그런 이서진의 희생에 힘입어 <꽃보다 할배>는 나PD의 <1박2일> 시절보다 더욱 여행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꽃보다 할배>는 할배들의 여유로운 배낭여행을 위해 수고스러움도 마다하지 않는 이서진의 희생을 잊지 않았다. 이제 완전히 이서진의 메인 타이틀 OST가 되어버린 클론의 ‘내 사랑 송이’ 전반부 가사로 나름 이서진을 위로(?) 하고자하는 <꽃보다 할배>의 스킬은 거의 병 주고 약주고 수준이다. 





연기자로서는 김명민만 칭찬하지만, <꽃보다 할배> 짐꾼에 있어서는 이서진을 강력 추천한 이순재 할배의 의견을 받들어 이서진을 짐꾼으로 임명한 나PD는, 이서진의 생고생에 있어서는 철저히 방관자 입장이지만, 행여나 이서진이 실수를 벌일 때는 과거 ‘안됩니다’ 전공을 살려 성큼 다가와 ‘깐족거리는’ 악역의 역할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나 교통비를 제외하곤 출연진들 임의로 모든 걸 결정하는 <꽃보다 할배>에서, 확실히 <1박2일>보다는 출연진들 간의 관계에 있어서 덜 간섭하는 나PD의 부재는, 편집과 배경 음악으로 말끔히 채워진다. 가령 수동 운전에 익숙지 않은 이서진이 계속 스트라스부르 역 주위만 맴돌고 있을 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마냥 기다리고 있을 할배들의 분노를 상기하며 겁에 질린 이서진의 ‘멘붕’ 상태를 리얼하게 표현한 몽타주 기법은 공포 영화 부럽지 않은 모범적인 미장센을 보여준다. 





70이 넘어야 어른이라는 할배들에게, ‘어른들은 몰라요’라는 깨알 같은 BGM을 깔고, 그간 이순재, 신구, 박근형, 백일섭이 보여준 가장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여준 장면은 또 어떤가. 나PD와 <꽃보다 할배> 제작진들이 다시 재구성한 영상물에서 F4 부럽지 않은 H4 할배들은 아이보다 귀엽고, 할배들 뒷바라지에 없던 고혈압까지 생겼지만, 그럼에도 할배들을 진심으로 배려하고 공경하는 이서진은 수많은 시청자들의 위로와 신임을 동시에 얻는 ‘어른들에게 예의바른 국민 짐꾼’으로 거듭난다.



 


현재의 <1박2일>이 ‘복불복’만 매달려, 정작 여행 버라이어티라는 본질을 완전히 망각해버린 사이, <1박2일>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던 나PD는 할배들과 젊은 짐꾼의 배낭여행으로 여행 버라이어티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보여주었다. 회가 거듭될수록 더욱 재미가 배가되고, 복불복의 부재를 연출과 매력적인 캐릭터 구축만으로도 완벽히 메꿀 수 있다는 것을 제대로 보여주는 <꽃보다 할배>의 다음 진화가 사뭇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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