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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전망대

설국열차. 미지의 열차에 올라선 관객을 향한 봉준호의 담대한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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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설국열차>의 세계는 소위 상류층이 사는 앞 칸, 그리고 다수의 빈민들이 사는 꼬리 칸으로 나뉜다. 이상 기온으로 꽁꽁 얼어붙은 지구에서 ‘기차’로 사람들을 구원한 월포드(에드 해리스 분)은 총리 메이슨(틸다 스윈틴 분)을 앞세워, 기차 안 사람들에게 자신이 인위적으로 만든 질서를 충실히 따를 것을 명한다. 





하지만 용감하게도 기차 내의 질서를 거부한 이가 있었으니, 이름 하여 커티스(크리스 에반스 분). 꼬리 칸에서 성자로 불리는 길리엄(존 허트 분)의 조언과 기차 안 보안 설계자인 남궁민수(송강호 분)과 그의 딸 요나(고아성 분). 그리고 커티스와 뜻을 함께하는 이들의 도움과 희생으로 계속해서 앞 칸으로 전진해나가는데 성공을 거둔다. 하지만 그토록 갈망하던 앞 칸 진격의 기쁨도 잠시. 예상치 못한 상황은 커티스를 대혼란에 빠지게 한다. 


<설국열차>가 개봉하기 이전, 많은 사람들은 이 영화를 두고 가진 자에 의해 철저히 억압당하면서 비참하게 살아온 하층민의 반란을 담아낸 작품이라고 여겼다. 실제로 <설국열차>는 월포드와 앞 칸 사람들의 압제에 참다못해, 그들에게 저항하는 과정이 이야기의 대다수를 차지한다. 





그래서 어떤 이는 <설국열차>를 두고 신자유주의를 비판했다고 한다. 또한 철저히 각 개인이 가진 자본과 사회적 지위로 계급이 나누어지고, 공포와 불안 조장으로 기득권의 질서를 유지하고자하는 현 인류의 모습을 기차 안 세계로 풍자했다고 보기도 한다. 모두 맞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봉준호 감독은 커티스의 반란 또는 혁명을 통해 상위 1%와 다수의 99%. 즉 부자와 빈자로 이등분이 되어버린 세상에 비판적 시각만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인류 자체를 옭아매는 체제나 사상을 뛰어넘은 가장 근원적이고도 진취적인 이상을 제시한다. 


이상기온으로 얼어붙은 지구에서 얼마 남지 않은 인류라도 살아남을 수 있던 것은, 당시 모든 이들의 비웃음 속에서도 어떤 환경에서도 버틸 수 있는 기차를 만들었던 월포드의 도전정신 덕분이다. 월포드는 죽음 직전 인류를 구원한 영웅이자, 앞 칸 사람들에게서 있어서 그 자체가 종교이자, 거역할 수 없는 진리다. 





하지만 꼬리 칸에 간신히 몸을 실은 대다수 하층민들에게 ‘설국열차’에 올라타 잠시나마 목숨을 보전한 것을 온전한 축복이라고 보기 어렵다. 기차 안 생태계의 균형을 맞추고 싶었던 이들의 철저한 계산 하에 서로를 죽이고 잡아먹었던 그 시절은 꼬리 칸에서 살아남은 모두에게 기억도 하기 싫은 재앙이자 악몽이다. 


앞 칸으로 나아가기 이전, 커티스의 꿈은 꼬리 칸 사람들을 억누르는 가진 자의 세상을 전복시키는 것이었다. 하지만 기차의 지배자 월포드를 제거하고 꼬리 칸의 빈민들을 해방시키는 것이 유일한 목표이자 신념이었던 커티스의 행보를 따라 들어선 앞 칸의 세계는 지상의 낙원이라기보다, 흔들리기 일보 직전의 카오스 상태에 가깝다. 그렇게 영화는 인류가 종적을 감추는 상황에서 유일하게 살 수 있는 ‘노아의 방주’에 올라타게 된 것이 마냥 행복한 축복인지 되묻는다. 





행여나 사람들이 기차를 이탈하여 월포드가 구축한 생태계가 무너질까봐 두려워하며, 그래서 필사적으로 기차 안 질서를 지키기 위한 월포드의 탁월한 술수(지배력)는 꼬리 칸에만 미치지 않았다. 꼬리 칸에는 끊임없이 우려되는 하층민의 반란을 막기 위해 잔인한 무력과 폭력이 동원된다면, 앞 칸 사람들에게는 월포드를 믿고 정해진 질서에 따르는 것이 유일하게 살 길임을 끊임없이 주입시키거나, 아예 생각할 틈을 주지 않기 위해 환락, 유흥에 빠지게 한다. 있을 건 다 있다는 열차 안에 유독 ‘책’(물론 의사소통을 가르치는 책과 월포드님을 찬양하고 경배하자는 글은 있다...)이 없다는 것도 눈에 띄는 요소다. 





월포드를 위시한 그의 추종자들은 기차 엔진의 지배자, 앞 칸, 꼬리 칸으로 나누어진 세계가 영원히 지속되길 원한다. 그래서 그들은 기차 밖을 나가면 끔찍한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는 공포와 불안은 앞 칸, 꼬리 칸 모든 이들에게 정기적으로 환기시킨다. 월포드 무리의 거듭된 주입식 사상 교육과 공포에 세뇌된 나머지 판단력과 이성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월포드를 향한 맹목적 믿음과 순응으로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천부적인 능력을 거세당한다. 


하지만 대다수 인간들이 꿈꾸는 욕망, 두려워하는 공포, 불안만을 보여준 것이 아닌 그 이상을 제시한 <설국열차>의 결말은 높고도 거룩했다. 





현실의 부조리함에 저항하는 선을 넘어, 두렵지만 후세들에게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 불안으로 에워싼 기존의 체제, 틀을 뛰어넘어 아무도 도전하지 않았던 미지의 세계로 힘차게 나아가는 것이 인류가 발전할 수 있는 유일하고도 가장 큰 힘임을 봉준호는 여실히 보여주었다. 다소 아쉬운 점이 많았던 2시간 남짓 탑승시간이 아깝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한 줄 평: 미지의 세계를 향해 나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의 거룩한 숙명에 관한 봉준호 감독의 담대한 이상과 도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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