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영화 <그리고 싶은 것>의 시작은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 중국, 일본 3국의 그림책 작가들이 모여 ‘평화’를 주제로 한 그림책을 준비하던 도중. 한국의 권윤덕 작가는 태평양 전쟁 당시 종군 위안부 피해 여성 심달연 할머니의 증언을 토대로,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를 책으로 출간하기로 결심한다.
예상대로, 위안부 이야기를 일본에서 그림책으로 발간하는 것은 여러 가지 문제점에 봉착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위안부’는 일본 정부가 가장 감추고 싶어 하는 역사다. 지난해 아베 신조가 총리로 재집권 한 이후 급격히 우경화 되어가고 있는 일본은 몇몇 우익 유명 인사들이 위안부를 두고 망언을 하는 등, 한일 관계는 점점 냉랭해지고 있다.
권윤덕 작가에 의해 심달연 할머니 증언을 토대로 만들어진 ‘꽃 할머니’ 이야기가 세상에 나오기까진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권윤덕 작가 역시, 어린 시절 아픈 상처가 있었기에 누구보다 위안부 할머니들을 이해할 수 있었고, 할머니들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스케치가 채 완성되기 전에,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악화되는 주변 상황들은 그녀를 점점 힘들게 한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모두 돌아가시고 나면, 우린 무엇을 할 수 있을까?”하는 권효 감독의 물음 하에, 영화는 지난 5년간 위안부 소재 그림책 작업 과정, 일본에서의 출판 시도를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았다.
과거를 부정하고, 일본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역사를 가르치지 않는 일본의 변화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된 작업이지만, 영화 속 권윤덕 작가는 자신들의 선조가 저지른 잘못을 사과하고 인정하지 않는 일본에 분노 대신, 아픈 역사를 반복하지 않는 양국 간 신뢰 회복을 강조한다.
그녀의 스케치를 둘러싼 한국, 일본 작가들 간의 치열한 논쟁 이후, 어떻게든 일본 내에 위안부 이야기를 널리 알리고픈 목표를 이루기 위한 일종의 온건한 시도라고도 볼 수 있다.
허나 맹목적인 애국주의에서 비롯된 분노를 경계하고, 위안부를 일본의 잘못만이 아닌, 전쟁 중 벌어진 국가 성폭력으로 규정짓고자하는 권윤덕 작가의 시각은, 여전히 과거에 대한 반성 없는 일본을 마냥 우호적으로 바라볼 수 없는 한국의 관객들에게 적잖은 이견을 품게 할 법도 하다.
하지만 위안부를 바라보는 권 작가의 시선에 동의할 순 없다한들. 2013년 기점으로 생존한 위안부 할머니가 고작 57명밖에 남지 않는 현실에서 위안부 이야기를 그림으로 옮겨 일본 정부의 진정한 공식 사과와 배상. 할머니들의 명예 회복을 이루기 위한 일련의 움직임은 우리의 아픈 역사임에도 불구, 위안부 문제에 있어서 무관심에 가까웠던 대한민국에 잔잔한 파장을 던진다.
권 작가의 그림책을 통해 비로소 ‘위안부’를 알게 된 일본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큰 충격을 받는다. ‘꽃 할머니’를 보고 나서 위안부 할머니들의 평생 가슴 속에 맺힌 한을 따스하게 어르러 만져주는 한국 초등학생들의 반응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여전히 일본 정부는 자신들의 역사를 부정하고 있고, 아쉽게도 영화는 ‘위안부’를 둘러싼 한, 일간의 미묘하고도 첨예한 입장 차이만 보여주며 모두가 꿈꾸던 엔딩에 도달하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가 원하고, 그리고픈 결말을 맞이하는 방법은 한 가지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역사를 가르치고, ‘역사의 증인’이 모두 사라지기 전에 위안부 할머니들의 평생 숙원을 풀어주기 위해 더 많은 시민들이 뜻을 함께 하는 것. 그렇게 영화는 위안부라는 아픔을 끌어안으며, 녹록치 않은 과정에서도 굴하지 않는 의미 있는 움직임 속에 언젠가 피어날 희망의 꽃을 기다리고 있었다. 8월 15일 개봉.
한 줄 평: 여전히 멀고 먼 위안부 역사 규명. 그 험준한 과정 속에서 희망의 씨앗을 뿌리는 의미 있고도 꼭 필요한 움직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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