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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전망대

변호인. 돌아온 송강호의 감동적인 표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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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호는 명실상부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배우다. 1991년 연극 <동승>으로 데뷔한 이래, 1997년 개봉한 영화 <넘버3>로 일약 스타로 떠오른 송강호의 그 후 배우 인생은 탄탄대로였다. 괴물(2006)로 천만관객을 동원하기도 하였고, 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전도연과 달리, 그는 무관에 머물려야했지만 밀양(2007)과 같이 전세계적으로 작품성을 인정받은 영화에 출연한 이력도 있다. 





가끔 송강호라는 이름값이 무색하게, 흥행 실패의 쓴 맛을 본 적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송강호 위기론'이 튀어나올 때 쯤,  그는 언제나 보란듯이 화려하게 재기에 성공했고, 2013년에는 그가 출연한 <설국열차>, <관상>, 18일 전야 개봉한 <변호인> 포함 무려 2100만 관객(2013년 12월 26일 기준)을 동원하여 이 시대 최고의 흥행메이커의 위치를 공고히 하기도 했다. 


2013년 개봉한 <설국열차>, <관상>에서 배우 송강호는 이 시대 최고 배우답게 좋은 연기를 펼쳤다. 하지만 크리스 에반스, 틸다 스윈튼, 존 허트 등 할리우드에서도 이름난 배우들과 함께한 <설국열차>에서 송강호가 맡은 남궁민수는 크리스 에반스를 돕는 중요한 역할임에도 불구, 그의 전작 출연작들에 비해 그리 존재감이 크게 다가오지 않았다. 송강호에게 올해 대종상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안긴 <관상>의 경우에는, 극 중 무게중심을 잡는 송강호의 연기도 흠잡을 데 없이 완벽했지만, '수양대군' 역을 맡은 이정재의 카리스마가 더 인상깊게 다가오는 영화였다. 





하지만 <변호인>은 좀 다르다. <변호인>은 요 몇 년간 송강호의 필모그래피에서 그리 두드려지지 않았던, 배우 송강호의 장점을 십분 살린 영화다. <설국열차>, <관상>에서 그와 비슷한 위치의 배우들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던 것과 달리, <변호인>에서 송강호는 그 혼자서 영화 시작부터 엔딩까지 모든 것을 책임져야했다. 


물론, 곽도원, 김영애, 오달수, 이성민, 임시완 등 명배우들이 각각의 뛰어난 연기력으로 영화를 빛냈다고 하나, <변호인>은 극중 송강호가 맡은 송우석을 위한, 송우석에 의한, 송우석의 영화다. 게다가 <변호인>은 잘 알다시피, 한국 근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인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다.  때문에 송우석 역을 맡은 배우 송강호의 책임감은 그 어느 때보다 무겁게 다가온다. 





고졸 출신으로 동료 변호사들의 따가운 시선을 뒤로하고, 어떻게든 돈을 벌기 위해 부동사 등기, 세무 시장에 뛰어드는 송우석의 얼굴은 살아남기 위해 아등바등 거리는 대다수 우리들의 삶의 방식과 많이 닮아 있었다. 주위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부르던 말던 돈이 좋다고 싱글벙글 웃는 송우석은 한 마리의 능구렁이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돈 버는게 좋은 속물임에도 불구 사법 고시에 합격하기 이전 한창 어려울 때, 밀린 외상값에 일말의 죄책감이 들어 변호사로 성공한 이후 단골 국밥집에 찾아가 주인 순애(김영애 분)에게 사죄를 드리려 찾아가는, 적어도 상식과 양심이 살아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돈이 우선이었던 송우석이 어느 날 변했다. 아무리 계란으로 바위를 친다고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고, 데모하는 학생들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송우석은 하루 아침에 억울하게 빨갱이로 몰려 잡혀들어간 학생들을 변호하기에 이른다. 부동산 등기, 세무 업무만 전문적으로 하던 송우석이 어떠한 정치적 소신이 있어서 공안 사건에 뛰어든 것은 아니다. 자신이 내 집처럼 찾아가는 국밥집 아들 진우(임시완 분)이 무죄라는 확신하나만으로, 그리고 차동영(곽도원 분)이 진우에게 행한 고문의 흔적을 참을 수 없었던 우석은 그동안 잘나가는 변호사로 누렸던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기꺼이 국보법 사건에 뛰어든다. 





진우를 변호하는 우석은 거침없었다. "이러면 안되는 거잖아요." 하면서 그동안 자신이 인식하지 못했던 또 다른 세상을 경험한 송우석은 한 때 진우에게 절대 안된다고 충고했던 그 방식대로 결코 무죄가 되지 않을 그 사건에서 기어이 무죄를 받아내기 위해 법전 하나만 들고 차디찬 법정을 맞선다. 


송우석이 진우의 사건을 접하기 전까지만해도 <변호인>은 사실 고졸 출신 핸디캡을 극복하고 당당히 사법고시에 합격했지만 결국 속물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 이야기였다. 그런데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 일렬의 사건의 계기로 인권 변호사로 거듭나는 과정은, 세상 그 영웅담보다도 더 극적이고도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무엇보다도 그런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던 분이 한 때 우리와 같은 세상에 살았다는 사실이 놀랍다. 





실화를 기반으로 재구성한 스토리도 비교적 탄탄하다고 하나, 역시 우리의 히로인 '송우석'을 반짝반짝 빛나게 하는 송강호다. 2011년 개봉한 <푸른 소금>이 흥행의 쓴 맛을 보긴 했지만, <설국열차>, <관상> 등 충무로 전체가 기대하는 대작에 연이어 캐스팅될 정도로 여전히 잘나가던 송강호는 <변호인>에 출연한다는 이유만으로 "급전이 필요했나?"라는 농담섞인 말까지 들어야했다. 영화 내적의 완성도를 떠나, '그 분'을 다뤘다는 이유만으로 외적으로 말 많은 영화이기 때문에 얻는 것보다 잃을 것이 더 많은 최고 배우 송강호에게는 <변호인>에 출연하는 것 자체가 부담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하지만 송강호는 영화 속 우석처럼 "제가 하겠습니다."는 자세로 <변호인>에 임했고, '그 분'을 표현함에 누가 되지 않을까 한 프레임도 허투루 찍지 않았다는 송강호는 근 몇 년간 그의 출연작 중에서 가장 친근하면서도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진짜 '그 분'이 되어 있었다. 평범한 우리들 얼굴로, 우리들 대신 속 시원히 한 마디 해주며 2시간 남짓 시간동안 관객을 웃기고 울린 배우 송강호. 그의 진심어린 표효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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