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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전망대

해피엔딩 네버엔딩. 지극히 현실적인 동화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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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대기업 회장의 딸로 곱게 자란 로라(아가시 보니처 분)은 여전히 백마 탄 왕자님을 믿을 정도로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다. 어느 날, 파티에서 우연히 마주친 가난한 예술가 산드로(아서 듀퐁 분)에게 첫눈에 반한 로라는 산드로와 불꽃같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얼마 후, 로라 앞에 치명적인 마성의 매력남(벤자민 비올레이 분)이 나타나고 그토록 운명의 남자를 기다려온 로라는 일생일대 최고의 고민에 빠진다. 





아네스 자우이가 연출, 각본, 주연을 도맡은 영화 <해피엔딩 네버엔딩>은 제목 그대로 달콤하면서도 씁쓸한 영화다. 부부 사이로, 함께 시나리오를 공동 작업한 아네스 자우이와 장 피에르 바크르는 운명의 굴레에 집착하다가 결국 생각지도 못한 일과 맞닥뜨리게 되는 등장인물들을 통해 믿음의 필요성과 부조리를 하나씩 벗겨낸다. 


로맨틱한 환상을 품고 있는 운명과 미신 신봉자 로라는 그토록 원하던 왕자님을 만나게 되었지만, 행복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자신이 죽는다는 날을 우연히 알게된 산드로의 아버지 피에르(장 피에르 바크리 분)은 예고된 그 날이 다가올 수록 초조함을 감출 수 없다. 





신념의 이면을 보다 효과적으로 들추어내기 위해 <해피엔딩 네버엔딩>이 사용한 주요 소재는 동화 비틀기다. <해피엔딩 네버엔딩>에서 구두를 떨어트리는 이는 남자인 산드로이고, 그 구두를 주워 산드로와의 재회만을 기다리는 왕자님은 대기업 회장 딸인 로라다. 동시에 로라는 왕자님의 키스만 기다리는 잠자는 숲 속의 공주, 늑대의 유혹의 수렁에 빠진 빨간 모자이기도 하다. 영화 속 왕자님 로라와 사랑에 빠졌지만, 재벌가 사위를 선택하는 대신 스스로의 삶을 개척하고자하는 산드로의 캐릭터도 흥미진진하다. 


어릴 때부터 <신데렐라>, <백설공주>, <잠자는 숲속의 공주> 등 동화를 보고 자라난 전세계 수많은 여성들은 무의식 중에 백마 탄 왕자님을 꿈꾼다. 하지만 현실에 백마 탄 왕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운이 정말 좋아 백마 탄 왕자를 만나 결혼을 한다 하더라도 과연 그 두 사람은 영원히 행복하게 잘 살았을까. 그리고 지금도 수많은 소녀들에게 백마 탄 왕자님을 주입시키는 동화가 현 시대에 맞는 것인가. 영화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묻는다. 





<해피엔딩 네버엔딩>은 백마 탄 왕자를 부정한다는 점에 있어서 최근 국내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디즈니의 <겨울왕국>과 비슷한 맥락을 취하고 있는 영화다. 주체적인 삶을 살고 있었지만, 결국 왕자님의 키스로 진정한 행복을 찾았다는 디즈니의 예전 공주들과 달리 <라푼젤>을 기점으로 디즈니의 21세기 공주들은 진화하고 있었다. 


21세기에 맞게 새롭게 제작된 동화에서는 더 이상 키스로 공주를 마법에서 깨우는 순수한 왕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겨울왕국>의 세상 물정 모르고 컸던 순수한 공주가 백마를 탄 왕자이긴 하지만, 그녀를 이용만 하려고 했을 뿐 사랑하지 않았던 남자로 인해 힘든 시기를 겪었듯이, <해피엔딩 네버엔딩>에서의 현실 속 공주 역시 자신이 꿈꾸던 왕자를 만나 행복하게 되나 싶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혹독한 현실인식이다. 왕자의 키스가 아닌 스스로의 노력으로 시련을 극복하는 여성들. 그렇게 현대식으로 재해석한 동화들은 백마 탄 왕자라는 판타지를 서서히 타파하고 있었다.





<해피엔딩 네버엔딩>은 우리가 늘 꿈꾸는 판타지의 환상을 완전히 뒤틀어 버린 영화다. 하지만 그럼에도 <해피엔딩 네버엔딩>은 로맨틱한 분위기를 잃지 않는다. 흔히 운명이라고 하는 허구적 상념 대신, 인간 스스로가 개척한 결과의 아름다움을 믿는다. 


다소 뜬금없는 마무리로도 볼 수 있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선택을 보여준 <해피엔딩 네버엔딩>의 "그 들은 그 후로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답니다."의 에필로그가 진한 여운을 남긴다. 2월 13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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