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중학생 딸을 성폭행으로 무참하게 잃은 한 아버지가 있다. 경찰은 아버지에게 “기다리라.”만 이야기할 뿐, 범인 검거는 오리모중이다. 결국 참다 못한 아버지가 직접 범인들을 응징하기 위해 길을 나선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한 영화 <방황하는 칼날>은 이제 한국 관객들에게 더 이상 파격적인 소재가 아니다. 미성년자, 강간범에게 유독 처벌이 미약한 공권력을 대신하여 ‘사적복수’에 나서는 성범죄 피해자 부모들의 이야기는 이미 <돈 크라이 마미>, <공정사회>에서 다뤄진 바가 있다.
한국 영화로서는 성폭행을 소재로 한 후발주자에 속하는 <방황하는 칼날>은 딸 잃은 부모의 사적복수의 카타르시스보다 직접 가해자를 처벌하는 피해자 부모에 대한 판단의 딜레마를 주입시킨다.
딸 잃은 상현(정재영 분) 못지 않게, 그와 동등한 비중으로 영화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하는 이는 살해 용의자로서 상현을 쫓을 수 밖에 없는 형사 억관(이성민 분)이다. 잔혹한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미약한 처벌에 그치고 마는 현실에 답답함을 느끼는 억관은 그럼에도 상부의 명령으로 상현을 체포해야한다.
범인을 잡으려 먼 길을 떠난 남자와 그 남자를 잡을 수밖에 없는 또 다른 남자의 대결 구도를 명확히 드러내고자 했으나, 영화가 힘을 실어주는 쪽은 딸 잃은 상현의 아픔이다. 상현을 체포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와중에도 “자신이 상현이라도 직접 범인을 죽였을 것.” 이라고 소신을 밝히는 현수(서준영 분)은 경찰이기 앞서, 부조리한 상황에 분노하는 평범한 시민에 가깝다.
‘사적복수’를 감행하는 미성년자 성범죄 피해자 부모의 이야기만으로 새로워 질 것 없는 소재를 흥미롭게 하는 것은 정재영, 이성민 두 배우의 관록이 묻어나는 연기다.
정재영이 온 몸으로 딸 잃은 아버지의 애끓는 부성애를 분출한다면, 이성민은 절제된 감정으로 성현의 무모하면서도 안타까운 복수를 마냥 지켜볼 수밖에 없는 관객들의 입장을 대신한다. 복수의 자극적인 설정보다 형식적 법치주의의 모순이 두드러지는 영화다. 4월 10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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