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 번 째 생일날. 할아버지와 춤을 추던 안젤리키가 갑자기 베란다에서 뛰어내린다. 안젤리키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에도 할아버지의 엄격한 보살핌 하에 집안은 변함없이 평온을 유지한다.
전직 회계사인 할아버지는 수입이 전혀없는 상황 속에서도 안정적인 생활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직접 손주들의 등하교를 시켜줄 정도로 자상한 면모를 보인다. 너무 평화로워서 이상할 정도의 집. 도대체 열 한살 밖에 되지 않은 안젤리키는 왜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까.
2013년 제70회 베니스 영화제에서 은사자상, 남우주연상을 거머쥔 영화 <은밀한 가족>은 한국에서는 다소 생소한 그리스 영화다. 작년 부산영화제에서는 <폭력녀>라는 이름으로 상영된 이 영화는 열한 살 소녀의 자살로 비밀의 서막을 올린다. 자상하고도 너그러울 줄 알았던 할아버지는 종종 가족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자신의 말에 일방적 복종을 강요한다.
언틋 보면 <은밀한 가족>은 가부장제의 폐해를 고발하는 영화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진짜 더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었다. 실직으로 생활고에 시달리던 할아버지는 자신의 딸은 물론, 미성년자인 막내딸과 어린 손녀까지 성매매에 끌어들인다. 초등학교 저학년 아동에 불과한 손녀까지 매춘을 시키면서, 손주들의 등하교를 직접 시켜주기 위해서 직장까지 그만두는 할아버지의 이중성은 가족들은 물론 관객들의 숨통까지 조인다.
열한 살 손주가 베란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까지, 이 가족은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고 있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는 완벽한 가정이다. 안젤리키의 자살 원인을 조사하기 위해, 가정방문을 한 사회복지사에게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한다. “힘들게 얻은 평화입니다.”
손주가 자살을 한 이후에도 완벽한 집을 만들기 위해, 아니 오랫동안 잘 숨겨온 추악한 비밀이 들통날 위기에 처하자, 더욱 병적으로 평화에 집착하는 할아버지의 강박증을 위해 이 가족은 오랫동안 고통 속에서 신음해야했다. 그럼에도 할아버지의 폭력에 익숙해진 가족 구성원은 어느 누구도 할아버지, 아버지에게 저항하거나 달아나지 않는다.
겉으로 보이는 이 가족의 모습 그대로 영화는 절제되면서 우아한 품위를 보여주고자 하지만, 그 숨막히는 아름다움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가장의 광적인 학대와 유린에 시달리는 가족의 일상을 보여주는 드라마이지만, 웬만한 스릴러 장르 영화보다도 섬뜩하고도 기괴하다.
100분 가량의 러닝타임 동안 끔찍한 소름을 유발하는 이 영화는 결말에 가서야 모든 게 끝난다. 결말 자체도 충격이지만, 그 결말을 이해하게 만드는 이 가족의 은밀한 비밀이 더 무섭다. 4월 10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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