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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전망대

슈가맨 섭외부터 청중단 구성까지. 젊은 세대 취향 제대로 저격한 슈가맨의 놀라운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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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방영한 JTBC <투유 프로젝트-슈가맨>(이하 <슈가맨>) 청중 평가단에 적지 않은 변화가 생겼다. 50대 이상 청중 평가단 대신, 10대 청중들이 새로이 자리한 것. 


이날 방청한 10대들 중에서는 담임 선생님, 같은 반 학생들이 함께 스튜디오를 찾은 케이스도 있었지만, 다이아, 로미오 등 10대들로 구성된 신인 그룹들도 함께 자리했다. 일반인 방청객들이 참여하는 프로그램에 신인 아이돌들의 홍보성 출연이 좀 뜬금없게 다가올 수도 있지만, 이름을 알리기 위해 <슈가맨>을 찾아온 아이돌들도 이 프로그램에서 만큼은 여느 또래들과 똑같은 10대들이다. 





50대 청중단이 빠진 자리에 10대 청중단이 참여한만큼, <슈가맨>의 타켓도 한층 영해졌다. 지난 17일 방영분에 ‘슈가맨’으로 출연한 리치와 izi의 오진성 모두 2000년대 초중반 활동하여 큰 인기를 얻었던 30대 초반들이다. 활동 기간은 짧았지만, 리치의 ‘사랑해, 이말 밖엔’, izi의 ‘응급실’ 모두 당시 젊은층들이 즐겨하던 싸이월드 미니홈피, 노래방에서 꾸준히 사랑받았던 노래들인만큼, 많은 10대들이 이 날 등장한 슈가맨들의 노래를 알고 있었다. 특히 ‘응급실’은 2명의 40대 청중단을 제외하고, 청중 평가단 모두 이 곡을 안다는 놀라운 반응을 보였다. 


슈가맨으로 등장하기엔 너무나도 젊었던 리치와 오진성. 아직도 무대에서 활발히 활동해야할 것 같은 30대 초반 실력파 보컬들이 히트곡 하나만 남긴 잊혀진 가수로 다시 시청자들 앞에 소환 되었던 걸까. 


<슈가맨>에서도 언급 되었지만, 리치는 1998년 만 12살의 나이에 ‘이글파이브’로 데뷔한 올해 17년차 가수다. 당시 리치와 이글파이브로 활동한 윤태준은 배우 최정윤과 결혼한 재벌 2세이며, 훗날 ‘블랙피트’로도 활동한 심재원은 현재 SM 엔터테인먼트 소속 안무가로 활동 중이다. 그 외에 이글파이브 멤버 중 한 명이 CIA 요원이라고 하는데, 아무래도 리치와 함께 재미교포 멤버 였던 ‘론’ 인듯하다. 





이글파이브 활동 당시 발표한 ‘오징어 외계인’이 인기를 얻었으나, 수많은 아이돌 그룹의 홍수 속에 이글파이브는 소리 소문도 없이 대중들의 시야에서 사라지게 된다. 그리고 리치는 2001년 솔로로 데뷔, ‘사랑해, 이 말 밖엔’을 크게 히트 시키며 그 해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비, 휘성과 함께 연말 가요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받기도 하였다. 그런데 톱스타 자리에 올라선 비, 휘성과 달리 리치는 1집 앨범의 대성공 이후에도 꾸준히 음반을 발표하고 활동도 했지만, ‘사랑해, 이 말밖엔’ 외엔 이렇다할 히트곡을 발표하지 못했다. 그리고 14년 뒤 아이 아빠가 되서 돌아온 리치는 <슈가맨>을 통해 다시 재기의 꿈을 키우고 있었다. 


그래도 아이돌, 솔로 활동을 통해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졌던 리치와 달리, ‘응급실’을 부른 izi의 오진성의 얼굴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오진성을 자기 팀 슈가맨으로 선정했던 유희열도 무대 뒤가 아닌 30대 청중단 틈에 태연히 앉아있던 그를 몰라볼 정도 였다. 그도 그럴 것이 2005년 ‘응급실’이 인기를 끌던 당시 izi는 얼굴없는 가수였다. 드라마 <쾌걸춘향> OST 였던 ‘응급실’은 드라마보다 더 유명했지만, izi가 TV 프로그램에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본 이는 거의 없었다. 그래서 ‘응급실’ 노래 중간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벌떡 일어나 청중들 사이에서 노래를 부르는 오진성의 등장은 그야말로 서프라이즈 였고, <슈가맨> 역사상 가장 기억에 남을 뭉클한 등장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 한층 젊어진 청중단, 그들의 취향에 맞춰 지금의 20-30대가 학창시절 이었을 때 즐겨 들었던 노래, 젊은 세대가 노래방에서 즐겨부르는 애창곡으로 꾸며진 이날 <슈가맨>은 그 어느 때보다 후끈한 반응을 보였다. ‘사랑해, 이 말 밖엔’, ‘응급실’ 모두 비교적 최근에 발표한 노래에, 최신 가요 트렌드에 민감한 10대 청중단들, 여기에 나이는 어리지만 탄탄한 가창력을 뽐내며 요즘 젊은 취향 제대로 저격하는 샤이니의 종현, 정승환이 쇼맨으로 참여하니, 그동안 <슈가맨>의 유일한 계륵으로 골머리를 앓던 ‘역주행송’ 또한 비로소 활개를 찾은 모습이다. 


그동안 <슈가맨>에서 발표했던 ‘역주행송’ 모두 실력파 뮤지션들의 참여와 완성도 있는 편곡을 보여주었음에도 불구, 이름 그대로 역주행에 실패한 것은 원곡과 2015년 버전으로 리메이크된 노래와의 세월의 간극 차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지난 주 방영된 <슈가맨>에 등장한 에메랄드 캐슬의 ‘발걸음’을 기억하고 있는 20-30대들은 자신들의 학창, 대학 시절 많은 추억을 공유한 원곡 그대로의 감흥을 되새기려고 할 뿐, 아무리 뛰어난 리메이크 버전도 원곡이 주는 힘을 이기진 못한다. 물론 ‘응급실’을 통해 이별의 아픔을 수없이 달랬던(?) 세대들에게는 izi가 부른 원곡에 각별한 애정이 있을 수밖에 없겠지만, 어린 시절 미니홈피, 그리고 노래방의 불명의 애창곡으로 뒤늦게 접한 10대들은 izi의 원곡도, 정승환의 리메이크 둘다 좋다. 오히려 10대들에게는 샤이니 종현 버전의 ‘사랑해, 이 말 밖에’가 더 친근하게 다가온다. 그 세대에게는 익숙한 사운드요, 창법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노래는 세대에 따라 각자 다른 반응을 보이기 마련이다. <슈가맨>이 세대별로 청중평가단을 모집한 것도, 세대 간의 다양한 반응을 살펴보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90년대, 2000년대에 활동했던 원히트 원더를 재조명하는 <슈가맨>에서 50대 이상 청중단은 철저히 소외되었다. 방청오신 어머니들이 전혀 엉뚱한 답을 내놓거나, 혹은 MC 유재석, 유희열을 가까이 보고 싶어서 일부로 오답을 내는 식의 웃음 코드에만 활용될 뿐이다. 나름 최용준, 박준하 등 50대 이상 청중단들도 알 법한 슈가맨을 섭외하기도 했지만, 50대 청중단의 반응은 언제나 물음표였다. 


50대 이상 청중단을 위해 슈가맨의 연령대를 확 높이자니, 다른 세대들의 반응이 걱정되는 등 이래저래 청중단 구성에 고민이 많았을 법한 <슈가맨>은 지난 17일 방영분에서 과감히 10대 청중단을 배치해, 슈가맨도 청중단의 반응도 확연히 젋어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물론 청중단의 구성은 앞으로 슈가맨 섭외에 따라 유동적으로 달라질 것이다. 이날 <슈가맨>에 처음 등장한 10대 청중단, 유독 젊었던 30대 초반 슈가맨들, 그리고 어느 때보다 젊었던 청중단의 구성은 <슈가맨>이 시도하는 변화 중 일부일 뿐이다. 다음 회에서는 중년 어머님들을 위한 슈가맨이 등장하여, 50-60세대들에게 아련한 향수를 줄 수도 있겠다. 





중요한 건, 단순히 세대별로 나눠 확연히 다를 수밖에 없는 반응만 살펴보는 것이 아니라, 특정 세대의 취향 저격을 위해 포맷 변경까지 자유자재로 행하는 <슈가맨>의 놀라운 유연성이다. 이는 파일럿 시절때부터 시청자들의 반응에 빠른 피드백을 보이며 꾸준히 변화를 꽤해왔던 <슈가맨>이기 때문에 가능한 행보인지도 모른다. 


정규편성된 이후 꾸준히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하나, 아직도 <슈가맨>은 같은 방송국의 간판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 <비정상회담>, <히든싱어4> 정도의 화제성을 이끄는 프로그램은 아니다. <슈가맨>에 출연하는 가수들도 방송이 나가는 당시에만 실시간 검색어로 화제가 될 뿐, 방송 이후 이렇다할 뚜렷한 행보를 보여주지는 않았다. 





하지만 슈가맨 섭외부터 평소보다 더 짖궃으면서도 재미있는 멘트가 오갔던 MC들의 진행까지 철저히 젊은 세대의 취향에 맞게 타켓팅한 <슈가맨>은 지난 방송들과 확연히 다른 영한 분위기를 보여주었다. 여러 세대들이 함께 느끼는 공감의 폭은 좁아졌지만, 이날 스튜디오를 찾은 10대부터 40대 방청객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노래에 얽힌 각자의 추억을 떠올리며 무대를 즐기는 뭉클한 장면을 연출할 수 있었다. 그래서 <슈가맨> 출연을 계기로 가수 활동 재기를 꿈꾸는 슈가맨들의 각오에 집중하고 그들의 꿈을 응원하는 동시에 그동안 쉽게 마음이 열리지 않았던 ‘역주행송’ 또한 자연스레 귀 기울여 듣게한다. 


<슈가맨>이 보여준 선택과 집중이 낳은 놀라운 변화. 몇 번의 시행 착오 끝에 예능 프로그램으로서 안정 궤도에 들어서기 시작한 <슈가맨>의 앞날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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