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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전망대

응답하라 1988. 가족드라마는 이렇게 만드는 것이라고 전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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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 드라마 명가로 우뚝선 tvN 내에서도 가장 성공적인 시리즈로 평가받는 <응답하라> 시리즈 이지만, <응답하라 1988>은 지난 시리즈와 비교해봐도, 가장 잘 된 3부작으로 평가받을 듯하다. 단순히 13,8%(닐슨코리아, 유료플랫폼 가구, 전국 기준)에 육박하는 시청률 때문만은 아니다. 소포모어 징크스, 전작 뛰어넘는 속편 없다는 말도 <응답하라> 시리즈에게는 모두 기우에 불과했다. 





하지만 <응답하라 1988>이 시작되기 전, 드라마를 이끄는 메인PD인 신원호는 “이번 시리즈는 힘들 듯.” 하면서 엄살 아닌 엄살을 부렸다. <응답하라 1997>, <응답하라 1994>를 연이어 성공시킨 자만이 할 수 있는 겸손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결코 낙관만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이유는 드라마 자체보다는 편성 시간에 있었다. 2013년 <응답하라 1994>의 성공 이후, 금, 토요일 저녁 타임은 tvN이 주력해서 미는 드라마들이 대거 편성 되던 황금 시간대이다. <미생>도 그렇고, 최근 tvN에서 방영하여 괜찮은 평가를 얻었던 <오 나의 귀신님>, <두 번째 스무살> 모두 금, 토요일 오후 8시 반에 방영되었다. 그리고 금요일 드라마가 끝나면, 어김없이 나영석 표 예능들이 밤늦은 시간까지 tvN으로 채널을 고정시켰다. 


그런데 <응답하라 1988>은 8시 반보다 40분 앞당긴(어떤 날에는 8시에 시작하기도 한다) 7시 50분에 드라마를 편성하였다. 즉, 동시간에 방영하는 일일 드라마, 공중파 주말드라마, 뉴스와 정면으로 맞붙는 전략을 취한 것이다. 그래도 전작들의 성공 덕분에, 방영 전부터 기대작으로 꼽혔던 <응답하라 1988>라고 하나, 이 드라마가 대결해야하는 상대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콘크리트 시청률을 자랑하는 강적들이다. 


그럼에도 불구, <응답하라 1988>은 <응답하라 1994>가 그랬듯이, 주말드라마와 뉴스만 살아남는 줄 알았던 주말 8시~9시 시간대에 당당히 시청률 10% 이상을 달성하는 기록을 세운다. 그렇다고 <응답하라 1988>이 방영하는 시간대에 편성된 기존 드라마, 뉴스의 시청률이 <응답하라 1988>로 인해 떨어진 것도 아니다. 여전히 이 프로그램들은 <응답하라 1988> 방영 전과 다름없는 시청률 수치를 기록하며, 순항 중이다. 다만, <응답하라 1988>이 애초 이 시간대에 TV를 보지 않는 새로운 시청자들을 일시적으로 유입한 것이다. 





1971년생인 남자 주인공 쓰레기와 1975년생인 여주인공 성나정과 그녀의 친구들의 이야기가 드라마의 주를 이루었던 <응답하라 1994>와 달리, <응답하라 1988>의 메인 캐릭터를 형성하는 쌍문동 골목 다섯 아이들은 모두 1971년생이다. 여기에 1965년생인 김정봉(안재홍 분), 1968년생 성보라(류혜영 분), 1972년생 성노을(최성원 분), 그리고 1983년생 진주(김설 분)가 가세하여, 보다 폭넓은 연령대를 구성한다. 그런데 <응답하라 1988>은 이전 시리즈에서는 조연으로 끝났던 젊은 주인공들의 부모들의 역할을 대폭 확장하여, 청춘 남녀의 사랑 이야기만이 아닌 가족들의 이야기를 담고자 한다. 


전작에서도 그랬듯이, <응답하라 1988>이 가장 공을 많이 들이고 있는 테마는 젊은 여주인공 성덕선(혜리 분)의 남편 찾기다. 그리고 덕선의 유력 남편 후보로 거론되는 김정환(류준열 분), 최택(박보검 분)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도 뜨겁다. ‘어차피 (덕선) 남편은 류준열(김정환)’이라는 ‘어남류’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졌고, 그럼에도 이번에는 <응답하라> 시리즈의 뻔한 레퍼토리에서 벗어나, 택이로 가야한다는 의견이 팽팽 하게 맞서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여주인공의 남편 찾기는 <응답하라> 시리즈의 메가 히트 아이템이자, 로맨스를 좋아하는 여성 시청자들의 관심을 끄는 최고의 무기다. 


그런데 <응답하라 1988>은 <응답하라 1994>처럼 몇몇 주인공들의 사랑 이야기에 그 외의 다수 캐릭터들의 이야기가 묻혀버리는 우를 범하진 않는다. 10회 들어서, 덕선을 둘러싼 정환과 택이의 삼각관계가 수면 위에 떠오르며, 이들의 이야기의 비중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고 하나, <응답하라 1988>의 한 회를 구성하는 대부분의 에피소드는 가족이다. 





젊은 주인공들 못지 않게, 그들의 부모로 나오는 성동일, 이일화 김성균, 라미란, 최무성, 김선영, 유재명 등이 모두 골고루 주목받으며, 그들이 선보인 명장면, 명연기 하나하나가 빠짐없이 회자되고 있다. 여기서 덕선이의 남편 찾기는 말그대로 거들 뿐이다. 덕선이의 2015년 남편이 누구인지 궁금하긴 하지만, 이 또한 <응답하라 1988>이 선사하는 재미의 한 요소이지, 드라마를 이끄는 전부는 되지 않는다. 이것이 이전 시리즈의 한계를 극복한 <응답하라 1988>가 보여준 분명한 차이점이다. 


‘가족’은 <응답하라 1988>뿐만 아니라, 이 드라마와 동시간대 방영하는 일일드라마, 주말 드라마 모두가 공통으로 내세우는 소재다. KBS 2TV <부탁해요 엄마>, MBC <엄마>, <내 딸 금사월> 등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요즘 주말 드라마에서 강조되는 캐릭터는 엄마다. 그리고 이 엄마들은 자식들을 위해 악역도 마다하지 않는 수고로움을 감수하며, 극에 탄탄한 에너지를 불어넣는다. 자식 세대를 대변하는 젊은 배우들도 드라마에 주요 캐릭터로 등장하고 있으나, 출중한 연기력을 바탕으로 노련함까지 갖춘 중년 연기자들의 카리스마를 뛰어넘지는 못한다. 


중년 연기자들의 열연 덕분에, 이들 드라마들은 평균 20% 안팎의 안정적인 시청률을 자랑한다. 그런데 높은 시청률에도 불구, 이들 드라마들은 그에 비례하는 높은 화제도를 얻지 못한다. 아예 임성한 드라마처럼 괴기한 장면으로 시청자들을 혼란에 빠트리지 않는 한, 일일,주말드라마들은 더 이상 온라인 상에 화제가 되지도, 젊은 네티즌들에 의해 거론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젊은 세대들에게 있어서, 일일, 주말 드라마는 엄마들이 빠짐없이 챙겨보는 프로그램일 뿐이다. MBC <무한도전>이 유재석이 <내 딸 금사월>에 카메오로 출연했을 때, 해당 드라마도 덩달아서 잠깐 주목받은 적 있었지만, 평소 김순옥 표 막장 드라마로 악명높았던 이 드라마가 젊은 시청자들에게 호의적인 평가를 얻었던 것은 딱 유재석이 출연했던 그 때 뿐이다. 





가족 드라마를 지향한다고 하지만, 정작 부모 세대만 시청하는 중년 드라마들이 가득한 금, 토 오후 8시 시간대에, <응답하라 1988>은 1980년대 후반 인기리에 방영한 <한 지붕 세가족>에서나 나올 법한 정통 가족 이야기를 표방한다. 자식을 향한 부모들의 헌신적인 사랑을 보여주는 것은 보통의 가족 드라마와 별반 차이가 없어보인다. 그런데 재벌은 기본이요, 엄친아들이 즐비한 여타 가족 드라마의 주인공들과 달리, <응답하라 1988>의 사람들은 지극히 평범하고, 보는 이들의 가슴을 철렁이게하는 특별한 사건이 없다는 점에서 보통 사람들의 하루 일과를 보는 것 같다. 그래서 기존의 방영된 드라마에 익숙한 사람들은 이 드라마가 자칫 밋밋하게 다가올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응답하라 1988>은 기존 <응답하라> 시리즈의 고정팬은 물론이거니와, 평소 이 시간대  가족드라마를 보지 않았던 새로운 시청자들까지 유입시키는 데 성공을 거둔다. 


표면적인 시청률은 10% 중반이지만, 온라인 체감 시청률은 그 이상을 뛰어넘는 <응답하라 1988>의 주요 시청자들은 1980년대 후반을 살았고, 그 시기에 아련한 기억이 남아있는 30~40대들이다. 여기에 그 시기를 살지 않았지만 드라마 자체의 재미와 류준열, 박보검, 고경표, 류혜영, 안재홍, 이동휘 등 젊은 배우들에게 매료된 젊은 시청자들이 가세하여, 웬만한 공중파 드라마들을 훌쩍 뛰어넘는 탄탄한 인기를 보여 준다. 분명 <응답하라 1988>이 중년들만을 위한 시간대에 젊은 시청자들을 끌어들인 데에는 매력적인 남성 배우들을 앞세운 달달한 로맨스가 큰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응답하라 1988>이 이전 <응답하라> 시리즈 외에도 여느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와 확연히 다른 차별점을 구현하고, 시청자들에게 색다른 흥미를 안겨줄 수 있는 힘은 가족에 있었다. 





가족의 사랑을 담고 있다고 하나, 정작 보는 이들의 피로도만 쌓이게하는 무늬만 가족 드라마가 아닌, 보는 시청자들의 마음까지 따뜻하게 하는 가족과 이웃들의 이야기. 그 어느 때보다 ‘가족’를 다루는 프로그램이 많아졌다고 하나, 부모의 사회적 지위와 재산에 따라, 자식의 계급까지 결정된다는 ‘수저 계급론’만 조장하거나, 혹은 부모 세대의 이해 관계만 강조되는 듯한 드라마, 예능의 홍수 속에서 그야말로 쌍팔년도 이야기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 21세기를 살아가는 자식 세대들도 공감할 수 있는 가족 이야기를 보여주는 <응답하라 1988>의 저력이 유독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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